소설리스트

재벌잡는 회귀검사-39화 (39/174)

39화 아도사키 (4)

“광, 광땡…….”

억울한 인상의 사내, 도박판에서는 박 사장으로도 불리는 박문수가 허탈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고고한 학 한 마리에 활짝 핀 벚꽃.

정 마담의 손에 쥐어진 패는 높은 걸로만 치면 섯다 판에서 3·8광땡을 제외하고는 가장 높다는 1·3광땡이었다.

“이… 이거 미안해서 어째… 호호호호…….”

곧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표정을 짓고 있는 박문수를 보며, 정 마담이 어색한 웃음을 터뜨렸다.

오늘 하루 박문수에게 먹은 돈만 따져도 족히 1억 원은 훌쩍 넘는다.

그런데… 마지막이나 다름없는 판에서 단 한 번도 쥐어 본 적이 없는 1·3광땡을 손에 거머쥐었다.

혹시나 겉으로 드러날까 표정 관리에 무척이나 신경을 썼던 게 효과가 있었던 건지, 결국 마지막 밑천까지 싹 쓸어 담았다.

옆에 앉아 있던 대머리 사내, 김 사장 또한 정 마담만큼은 아니지만, 제법 많은 돈을 쓸어 담았다.

조용히 눈치만 보고 있던 정 마담의 일행, 김 사장이 짐짓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이거, 오늘 정 마담이 크게 한턱 쏴야겠는데? 핫, 핫, 핫!”

김 사장이 테이블에 앉아 있던 마지막 멤버인 젊은 사내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젊은 친구, 미안허이. 오늘 우리가 돈을 너무 많이 딴 것 같네. 내 소주 한잔 꼭 사지.”

김 사장의 말에 젊은 사내가 옅게 웃었다.

“괜찮습니다. 도박판에서 돈을 딸 수만 있나요. 따다가도 잃고, 잃다가도 따고, 그러는 거죠.”

“응? 하하하핫! 젊은 친구가 성격이 아주 호탕하구만, 그래!”

말을 마친 김 사장이 힐끔 박문수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여전히 부들부들 떨고 있는 박문수를 보며, 김 사장이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난다.

“박 사장, 오늘 판돈 다 잃은 것 같으니, 나도 이만 일어나겠…….”

“이 빌어먹을 사기꾼 새끼들!”

콰당!

박문수가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자, 의자가 꽤 큰 소리를 내며 뒤로 넘어갔다.

“이 개 같은 년놈들, 둘이서 짜고 친 것 아니야!? 씨발! 애초에 한통속인 새끼들이랑 판을 벌이는 게 아니었는데!”

안 그래도 주름이 가득한 박문수의 얼굴이 분노로 붉으락푸르락해지자, 마치 흉신악살 같았다.

그 모습에 김 사장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거, 박 사장! 돈 잃은 마음은 이해하지만, 다짜고짜 쌍욕은 너무한 것 아니야!? 섯다 판에 짜고 치는 게 어디 있다고…….”

“닥쳐! 이런 씨발!”

괴성을 지른 박문수가 김 사장을 향해 달려든다.

“……!”

갑작스러운 박문수의 반응에 김 사장이 그 자리에서 굳어 버렸다.

김 사장의 멱살을 와락 틀어쥔 박문수가 그대로 전방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퍼억!

“윽!”

김 사장의 고개가 팩 하고 옆으로 돌아갔다.

흥분한 박문수가 다시 한 번 오른쪽 주먹을 그대로 등 뒤로 당긴다.

“이 개자식아!!!!!!”

있는 힘껏 등 뒤로 잡아당긴 박문수의 오른쪽 주먹이 전방을 향해 그대로 쏘아지려는 순간.

터억!

누군가 뒤에서 박문수의 주먹을 잡아챘다.

그리고…….

퍼억!

“컥!”

경쾌한 타격음과 함께 얼굴에 주먹을 강타당한 박문수가 그대로 바닥에 고꾸라졌다.

“퉷!”

마치 곰 같은 덩치의 병풍 사내가 자신의 오른쪽 주먹을 감싸 쥐며, 쓰러진 박문수를 향해 침을 뱉었다.

“행패는 집구석에서 부려야지, 시벌놈이…….”

낮게 으르렁거린 사내가 쓰러진 박문수의 옷깃을 붙잡아, 밖으로 질질 끌어내기 시작한다.

“…….”

그런 박문수의 모습을 멍하니 지켜보던 김 사장이 바닥을 향해 탁 하고 침을 뱉었다.

“등신 같은 새끼, 하우스에서 판돈 잃었다고 행패질을……!”

한참을 씩씩거리던 김 사장이 정 마담을 돌아본다.

“기분 잡쳤네. 정 마담, 오늘은 이만 가지.”

김 사장의 말에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 정 마담이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리고 두 사람이 출입문을 향해 걸음을 옮기려는 순간, 누군가 두 사람을 막아선다.

“…성 실장?”

희미한 미소를 입에 문 채, 꾸벅 고개를 숙인 성 실장이 두 사람을 향해 말한다.

“죄송합니다, 김 사장님. 저희 애들도 박 사장이 저렇게 할 거라고는 예상을 못 해서, 바로 대응하지 못했습니다. 얼굴은 괜찮으십니까?”

“그게 뭐 성 실장 애들 책임인가? 그냥 김 사장이 못난 거지. 재수가 없으려니까… 퉷!”

김 사장이 다시 한 번 바닥을 향해 침을 뱉자, 성 실장이 자못 미안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김 사장님, 새로운 놀이가 하나 있는데, 생각 있으십니까?”

“새로운 놀이?”

도박이라면 환장을 하는 김 사장이 귀를 쫑긋한다.

“예. 그리고…….”

성 실장이 말끝을 흐리며 입을 김 사장의 귀에 가져다댄다.

“다이(규모)도 지금껏 즐기시던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100배, 아니 그 이상을 버실 수도…….”

성 실장이 말을 마치자 옆에 있던 정 마담도 소곤거리는 소리를 들었는지, 눈을 크게 떴다.

순간 김 사장과 정 마담의 눈이 마주친다.

그리고…….

꿀꺽 침을 한 번 삼킨 김 사장이 성 실장을 향해 묻는다.

“그 정도 다이면 인원수도 엄청날 것 같은데… 그 정도 인원이 한 번에 참가할 수 있는 놀이라는 게, 대체 뭐요?”

김 사장의 물음에 한차례 싱긋 웃은 성 실장이 대답한다.

“S등급 고객님들에게만 공개하는 정보라, 여기서는 좀…….”

성 실장의 말을 알아들은 김 사장이 고개를 끄덕이곤 정 마담을 돌아본다.

“나 혼자 갔다 올까?”

“아니, 나도 같이 가.”

정 마담이 눈을 빛내며 말했다.

“그럼 두 분 다 이쪽으로…….”

말을 마친 성 실장이 하우스 구석을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한다.

김 사장과 정 마담도 곧바로 성 실장을 따라 움직였다.

세 사람이 걸음을 옮기는 방향의 끝에는, 자그마한 밀실이 자리하고 있었다.

* * *

“부하 직원은 물론, 믿을 만한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데려와도 된다고 했다?”

“예, 형님.”

박판섭의 물음에 대머리 사내가 짧게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박판섭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우리 석두, 사장 대우도 받아 보고, 좋았겠는데?”

“사장 대우는요, 후달려 뒤질 뻔했구먼요, 형님.”

김 사장, 21세기파 조직원 김석두가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흑장미, 석두 연기력이 조금 좋았나 봐?”

요염하게 다리를 꼬고 앉아 있던 정 마담, 흑장미가 대답한다.

“뭐, 원래 멍청한 애들이 간도 크잖아. 그래도 천하의 김석두가 선빵 맞고, 가만히 참았던 건 조금 놀라웠어.”

멍청이라는 말에 발작하려던 김석두가 어깨를 으쓱한다.

“훗, 인내력 하면 이 김석두지.”

두 사람이 하는 행태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던 박판섭이 입을 열었다.

“두 사람 다 수고했어. 새로운 놀이라는 건, 월드컵 배팅이겠지?”

이번에는 김석두와 흑장미 두 사람 다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니, 형님. 제가 벌써 말을 했던가요?”

김석두의 반응에 박판섭이 씨익 미소 지으며 뒤를 돌아본다.

“역시나지?”

지금까지 입을 다문 채 조용히 앉아 있던 도윤이 입을 열었다.

“게임 방식은 승, 무, 패 결과에 배팅을 하는 방식이겠죠?”

김석두가 또 다시 눈을 부릅떴다.

“형님 손님도 그렇고, 말도 안 했는데 대체 어떻게 다 아는 거야?”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연신 고개를 갸웃거리는 김석두를 일별한 도윤이 박판섭을 보며 말을 잇는다.

“진짜 판은 따로 있을 거야.”

“응?”

“단순히 승, 무, 패를 맞추는 경기는 머릿수가 많아야 의미가 있을 뿐더러, 한 경기만으로 먹을 수 있는 배당금에는 한계가 있어.”

“그건 그렇지.”

“큰 메리트도 없는 판에 위험부담을 감수해 가며 거액을 거는 사람은 거의 없을 거라는 얘기지.”

“…….”

“아마 VIP고객들을 위한 전용 도박판도 만들어 놨을 거야.”

“VIP전용 도박판인가… 이 썩을 나라는 어딜 가나 급을 나누는군.”

충분히 가능성 있는 얘기였기 때문에, 박판섭이 욕지거리를 내뱉으면서도 수긍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결론은 우리는 그 판에 끼어들어야 한다는 말이로군? 대가리급들은 전부 그쪽에 몰려 있을 테니까.”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도윤을 보며 박판섭이 말을 잇는다.

“그 판에 낄 수 있는 방법은 있나?”

박판섭의 잠시 고민하던 도윤이 희미하게 웃었다.

“내가 존경하는 사람이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지.”

“……?”

“진정한 수사는 현장에서 시작된다.”

말을 마친 도윤이 자리에서 일어난다.

“가 봐야 알 수 있지 않겠어?”

“나참, 어디 소풍 나가세요? 언제 칼빵 맞아도 이상하지 않을 곳에 간다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얘기하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박판섭도 도윤을 따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우스에 락(lock) 걸려 있는 건 아니지?”

박판섭의 물음에 김석두가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한다.

“예. 소개자 신분만 확실하면 하우스는 누구나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진짜 가시게요?”

“저렇게 얘기하는데, 안 갈 수가 있나?”

“뭐, 그렇다면야…….”

그때, 지금까지 가만히 있던 흑장미가 입을 열었다.

“뭐가 그렇다면야… 냐!? 오빠 손님은 모르겠지만, 오빠는 안 돼!”

“엥? 왜?”

흑장미가 앙칼지게 소리친다.

“장난해? 저 돌대가리나 나야 워낙 음지에서 생활하니까 저쪽에서 못 알아보는 거지, 오빠는 아니잖아!”

미처 그 생각을 못 했다는 듯 박판섭이 눈을 크게 떴다.

“아…….”

“뭐가 아… 야!? 요즘 안 그래도 망치파랑 우리 관계, 언제 터질지 모르는 외줄타기인데, 진짜 칼 맞고 싶어!?”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는 흑장미를 힐긋 바라본 박판섭이 새끼손가락으로 귀를 후벼팠다.

“아, 귀청 떨어지겠네. 조금 살살 말해. 기집애, 성질머리 하고는…….”

“지금 성질 안 부리게 생겼어!?”

빼액 소리를 지르는 흑장미를 일별한 박판섭이 다시 도윤을 돌아본다.

“어쩌지? 생각해 보니 나는 못 갈 것 같은데.”

“괜찮아. 혼자 가면 돼.”

“에이, 그래도 혼자 보낼 수가 있나.”

박판섭이 김석두를 돌아본다.

“석두.”

“예?”

“번개 데리고 흑장미랑 같이 따라가.”

“번개요?”

김석두가 눈을 크게 떴다.

“형님, 혹시 진짜 목적은 망치파 하우스의 자금줄을 끊는 거였습니까?”

“뭐?”

“그게 아니면 왜 굳이 번개를…….”

“아 군말 말고 데려가라면 좀 데려가라! 콱, 그냥!”

“아, 예.”

후다닥 뒤로 물러난 김석두가 곧바로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젊은 영감님, 지금 바로 출발할 거지?”

도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쇠뿔도 단김에 뽑아야지.”

단호하게 대답하는 도윤을 잠시 바라보던 김석두가 말한다.

“…조심해. 같이 못 가서 미안하군.”

도윤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원래 혼자 갈 생각이었는데, 뭐.”

“총알은? 대출 좀 해 줘?”

“충분해. 뭐, 잃을 일도 없겠지만…….”

말을 마친 도윤이 출입문을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런 도윤의 뒤를 김석두와 흑장미가 재빨리 따라붙었다.

“…이봐!”

“……?”

출입문을 나서기 직전 등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도윤이 고개를 돌렸다.

“…조심해.”

도윤이 피식 웃으며 등 뒤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 * *

하우스에 도착한 도윤이 빠르게 주변을 훑었다.

매캐한 연기가 눈과 코를 괴롭게 했지만, 도윤에게 큰 방해는 되지 않았다.

이내 하우스 한쪽 구석에 위치한 조그마한 사무실을 발견한 도윤이 눈을 반짝였다.

“다시 방문해 주셨군요.”

어느새 다가왔는지, 성 실장이 흑장미와 김석두를 향해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하핫, 한참 손맛 좋을 때 왕창 따 가야지. 성 실장 제안은 제안이고, 손맛 올랐을 때 왕창 따 가야지. 순간의 기분 때문에 기회를 날릴 순 없잖아. 안 그래?”

김석두의 말에 성 실장이 싱긋 미소 지었다.

“그런데 이쪽은…….”

성 실장이 도윤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한다.

“아, 우리 가게에서 일하는 애. 한번 해 보고 싶다고 해서 데려왔는데, 괜찮죠?”

정 마담의 물음에 성 실장이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잠시 도윤을 바라보던 성 실장이 이내 김석두와 정 마담을 바라보며, 꾸벅 허리를 숙였다.

“직접 모시고 싶지만, 먼저 오신 손님이 계셔서… 충분히 즐기다 가시길…….”

“아, 신경 쓰지 말어.”

김석두의 대답에 이내 성 실장이 몸을 돌려, 하우스 구석에 위치한 사무실을 향해 걸음을 옮긴다.

“이쪽으로…….”

그런 성 실장의 뒷모습을 한참이나 바라보고 있던 도윤이 옆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은 도윤이 화투 패에 시선을 고정한 채, 혼자만 들릴 목소리로 조용히 중얼거렸다.

스킬, 업그레이드 버전.

“…청각의 비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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