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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잡는 회귀검사-42화 (42/174)

42화 배팅의 결과

월드컵 8강으로 직행하는 티켓을 놓고 벌이는 대한민국과 이탈리아의 전반전 경기가 끝이 났다.

하우스 내부는 쥐죽은 듯 침묵이 내려앉았다.

경기가 시작된 지 불과 몇 분도 지나지 않았는데, 이탈리아 선수의 반칙으로 대한민국이 패널티킥 찬스를 얻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하우스는 흥분의 도가니였다.

도박을 위해 모여든 사람들이지만 그 기본적인 목적은 재미.

특히 스포츠 경기에서 반전이 있는 게임이 관중들에게 짜릿한 쾌감을 선사한다.

그런 스포츠 경기 중에서도 인기 종목인 축구, 피파 랭킹 40위권에 해당하는 한국과 10위권에 해당하는 이탈리아의 경기다.

자국 대표 팀의 경기라는 점을 제외하더라도, 관중들이 충분히 기대를 가지고 경기를 지켜볼 만하다.

무엇보다 한 번의 경기로 8강행이 결정되는 매우 중요한 경기가 아닌가?

그런데…….

그런 중요한 경기에서, 키커로 나선 대한민국 공격수, 그것도 에이스가 실축을 했다.

좌측 구석으로 찔러 넣은 공을 이탈리아 골키퍼가 정확하게 막아선 것이다.

그뿐인가?

이십여 분이 채 지나지 않아, 선제골마저 허용했다.

토티의 예술 같은 코너킥을 비에리가 그대로 헤딩골로 연결시킨 것이다.

이후로는 특별한 공방 없이 시간이 흘러갔고, 지금 막 전반전이 종료된 것이다.

“그러면 그렇지…….”

고요한 침묵 속에 누군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이를 기점으로 하우스 내부가 시끌벅적해지기 시작한다.

“니미, 이럴 줄 알았지.”

“애초에 저 아주리 군단을 꺾고 8강으로 간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됐지.”

“8강은 무슨… 1승이목표였는데, 16강에 온 것만 해도 기적이지.”

또 다른 한쪽에서는 전반전에서 패널티킥을 실축한 선수를 향한 욕지거리를 내뱉기 시작했다.

“어휴… 저 등신.”

“니미, 축구를 얼굴로 하나. 저걸 못 넣어?”

“에라이, 새끼야. 차라리 내가 찼으면 1골 넣었다. 저 실력으로 국가대표 하겠다고!”

하우스 내부는 순식간에 도박꾼들의 욕설로 가득해졌다.

그런 분위기를 즐기기라도 하듯 주변을 잠시 훑어보던 성 실장이 마침내 마이크에 대고 입을 열었다.

“아, 아. 여러분, 흥분을 가라앉히시고 잠시 조용히 해 주시기 바랍니다.”

성 실장의 목소리가 스피커를 타고 하우스 구석구석에 울려 퍼졌다.

그럼에도 이 기회에 단단히 한몫 챙겨 보겠다는 목적으로 온 몇몇 사람을 빼고는, 여전히 욕설을 내뱉는 데 여념이 없었다.

소란스러움이 전혀 가라앉지 않자 성 실장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애국심 투철한 멋쟁이들이 정말 많군.’

속으로 조소한 성 실장이 다시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 베팅을 시작하겠습니다.”

“…….”

베팅이라는 말에 하우스 내부에 귀신같이 침묵이 내려앉았다.

도박꾼들은 입을 다문 채 서로의 눈치를 살피느라 여념이 없었다.

“베팅 방식은 이전과 동일합니다. 먼저…….”

성 실장이 하우스 정중앙을 가리켰다.

마치 투표함 같은 커다란 함이 여러 개 설치되어 있었다.

“최종 스코어와 마지막 골을 넣는 선수, 베팅 금액을 제가 나눠 드린 종이에 적어 바로 저기 보이는 저 안의 함에 넣어 주시면 됩니다. 투표하는 것처럼요. 일전과 마찬가지로 최소 베팅 금액은 1억입니다. 종이마다 고유 번호가 있으니 섞일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리고…….”

성 실장이 이번에는 출입문 옆쪽 구석을 가리켰다.

“베팅금은 저쪽에 접수해 주시면 됩니다. 현금도 좋고, 계좌로 쏴 주셔도 좋습니다. 뿐만 아니라 개인 자가용이나 부동산도 마찬가지.”

성 실장이 출입문 옆에 대기하고 있는 다섯 사람을 가리켰다.

“저기 있는 저희 전문가들이 현 시세에 맞춰서 정확하게 베팅하시는 매물에 대한 매입가를 측정해 줄 겁니다.”

성 실장이 주변을 둘러보며 소리친다.

“1억 이상이라면 베팅 금액은 자유! 물론 더 많은 금액을 베팅하시면 당첨자가 다수일 경우, 베팅하신 금액에 따라 차등 분배를 해 드립니다! 설마 최소 금액이 2,700억인 판을 고작 1억으로 날름하시려는 얌체 같은 분은 여기 없으시겠죠? 1억 그거, 여기 계신 분들한테는 아무것도 아니잖아요?”

“…….”

“에이~ 우리 다 그 정도 능력은 되잖아요. 서민들 아파트 한 채 사다가 개집으로 던져 주고, 세배하는 조카 용돈으로 큰 거 한 장씩 쥐어 주고, 다들 그러시잖아요.”

여전히 말이 없는 도박꾼들을 향해 성 실장이 순간 고개를 갸웃한다.

“어라? 다들 표정들이 왜 그러세요? 마트에서 우유 사면 일부러 제일 뒤에 진열된 우유 집어서 사는 사람들처럼. 혹시 그러신 건 아니죠?”

성 실장의 말에 몇몇 사람들이 피식,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뭐? 성 실장, 대체 우릴 뭘로 보는 거야?”

“나는 우유 시켜서 먹는 사람이야!”

“진열장 뒤에 있는 우유를 사? 그런 짓을 왜 해?”

뒤바뀐 하우스 분위기를 보며 싱긋 미소 지은 성 실장이 말을 잇는다.

“뭐 그러시다면야… 더 말할 것도 없이 바로 베팅을! 시작하시죠!”

성 실장이 말을 마친 순간, 하우스 내부의 사람들이 한쪽 구석으로 우르르 몰려가기 시작한다.

천여 명은 족히 넘어 보이는 사람들이 한 번에 움직이자, 원래 공장으로 쓰이던 드넓은 하우스가 좁아 보일 지경이었다.

“투명한 게임을 위해 베팅하신 결과는 앞에 보이는 대형 스크린을 통해 곧바로 공개할 예정입니다! 집계와 원활한 운영을 위해 하프타임 동안만 베팅이 가능한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성 실장의 말에 도박꾼들의 움직임이 더욱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그제야 품에서 볼펜을 꺼내 부랴부랴 종이에 써 내려가는 사람도 있었다.

“함은 충분히 많이 있으니, 여러분들의 안전을 위해 질서 있게 움직여 주시기 바랍니다!”

“아 좀 비켜 봐요!”

“뭘 지금 쓴다고 길을 막고 그래! 아, 저리 가서 쓰라고!”

“좀 나오라고!”

성 실장의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도박꾼들이 서로 앞다투어 함에 몰려들었다.

그런 도박꾼들의 모습에 성 실장이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마이크에서 입을 뗐다.

“아주 아름다운 광경이야.”

성 실장이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 * *

후반전이 시작되고 나서도 30분이 훌쩍 지났을 무렵.

여전히 1 : 0 스코어를 유지한 채 이탈리아가 앞서고 있는 상황.

“하아~ 믿은 내가 등신이지.”

일부 사람들은 나지막한 한숨을 내쉬었고.

“저 새끼, 존재감도 좆도 없는데 왜 안 빼고 가만 냅두는 거야!? 바꾸라고!”

또 다른 사람들은 욕설을.

“역~ 시 아주리 군단. 그렇지! 가투소는 완전히 황소네, 황소여.”

“잘한다! 그냥 이대로 끝내라고! 2,700억 한번 먹어 볼라니까!”

“2,700억은 무슨, 나눠 먹어야지! 혼자 먹다 체한다!”

“나도 그쪽에 걸었거든!”

환호성을 지르는 사람들도 있었다.

인원으로 따지면 후자의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1 : 0 스코어 유지라는 선택은, 골을 넣는 선수까지는 따로 맞춰 내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었다.

도박꾼들이 다양한 반응을 보이고 있을 때, 단상 위에 오른 성 실장이 다시 마이크에 입을 댔다.

“아, 아. 지금부터 베팅 집계 결과를 공개하겠습니다. 앞에 보이는 대형 스크린에 주목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윽고 대형 스크린에 화면이 들어왔다.

그리고… 잠시 눈앞에 떠오른 숫자들의 향연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던 사람들이 잠시 후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뭔 놈의 숫자가 저렇게 많아?”

“어휴, 눈이야.”

화면에는 각 도박꾼들을 나타내는 고유 번호와 베팅 금액, 베팅한 결과만이 간략하게 나와 있었지만, 인원수 자체가 제법 되다 보니 숫자가 상당히 많았다.

“역시 대부분 이탈리아 쪽에 붙었군.”

“뭐, 당연한 결과잖아?”

이탈리아가 1 : 0으로 이긴다는 결과에 베팅을 한 도박꾼이 절반 이상이나 될 정도로 가장 많았고, 2 : 0이나 3 : 0 스코어에 베팅한 사람도 많았다.

무승부라는 결과는 나올 수 없었기 때문에 제외고, 반대로 일확천금을 노리고 ‘한국이 역전을 한다.’에 베팅을 한 사람들도 제법 있었다.

물론, 그런 사람들은 베팅한 선수들이야 제각각이지만 베팅 금액은 최소치인 1억만을 베팅했다.

그런데…….

“뭐… 뭐야, 50억?”

“기회도 날려 먹고, 언제 교체당해도 이상하지 않을 놈한테 50억이라고?”

“어느 미친놈이야?”

“127번? 누구야? 어디 재벌집 회장이 놀러 오셨나?”

단 한 명.

전반전에 패널티킥을 실축하고, 그 탓인지 경기 내내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선수에게 50억이나 되는 거금을 베팅한 사람이 있었다.

“세상은 넓고 돈이 썩어 넘쳐서 흘러내리는 사람도 많네.”

“얼굴이라도 한번 보고 싶다.”

“왜? 줄이라도 잡아 보게?”

“아서라. 이쪽에서 만나서 친해져 봐야 얼굴 붉힐 일 안 생기면 다행이다.”

“돈 뿌릴 거면 나나 좀 도와주지, 쩝.”

도박꾼들이 연신 웅성거리고 있을 때 무리 속에 섞여 있던 도윤도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

‘설마 단독 베팅일 줄이야…….’

이 부분까지는 도윤도 예상하지 못했다.

워낙 모험을 좋아하는 도박꾼들이라, 최소 3~4명은 따라올 거라 생각했는데 단 한 명도 따라오지 않을 줄이야.

‘하긴, 막 지르기에는 판돈이 제법 세지.’

도윤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박판섭이 내준 20억까지 총 50억이나 되는 거금을 베팅했다.

10억 이상을 베팅한 사람도 몇 보이지 않는데, 갑자기 50억이나 되는 금액이 보이니 사람들이 놀랄 만도 하다.

“…정말 한국이 역전할 거라 보시는 겁니까?”

“물론.”

번개의 물음에 도윤이 짧게 대답했다.

그런 도윤을 잠시 바라보던 번개가 고개를 숙인 채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경기 종료까지 5분도 채 남지 않았다.

자신의 돈은 아니지만, 눈앞에서 50억이나 되는 거금이 허공에 날아갈 것을 생각하니 속이 쓰렸다.

“땅 꺼지겠다. 잠시 스크린 좀 보지?”

“예?”

순간 주변의 웅성거림이 조금씩 커지기 시작하자 번개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어… 어… 어?”

“설… 설마!”

후반 43분, 한국 공격수의 패스가 이탈리아 수비수에게 맞고 그라운드로 흐른다.

그리고…….

“슈우우우우우우우웃!”

해설가의 외침과 동시에 한국 공격수의 발을 떠난 공이 골문 구석을 향해 빨려 들어간다.

빗맞은 공은 골키퍼가 막을 수 없는 방향으로 들어갔고, 그대로 골문을 갈랐다.

대부분의 도박꾼에게 찬물을 끼얹는 극적인 동점골.

일반적인 응원 장소였다면 환호성이 터져 나올 타이밍이었지만, 좌중은 쥐 죽은 듯 조용했다.

몇몇 사람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제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이어지는 연장전.

이탈리아의 공격수 토티의 퇴장.

종료 3분 전, 오른쪽에서 올라온 수비수의 크로스를 발견한 대한민국의 공격수가 높이 뛰어오른다.

전반전에서 페널티킥을 실축한 바로 그 선수였다.

그리고…….

그 선수의 머리를 떠난 공이 그대로 골대 망을 갈랐다.

대한민국의 8강행을 결정짓는 짜릿한 헤딩 역전골.

대전 월드컵 경기장에서 금빛 결승골이 터져 나온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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