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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잡는 회귀검사-43화 (43/174)

43화 밝혀진 정체

“축하드립니다.”

아무도 없는 밀실에서 성 실장이 싱긋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런 과감한 베팅을 하신 분이 이렇게 젊은 분일 줄은 몰랐군요.”

도윤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설마 어리다고 보호자의 동의가 있어야 된다든가, 배당금을 다 줄 수 없다느니 하는 헛소리는 하지 마.”

도윤의 말에 성 실장이 멍한 표정을 짓는다.

아무리 많이 쳐줘 봐야 서른이 채 되어 보이지 않는데, 자연스럽게 하대가 흘러나온다.

문제는 그 하대가 너무 당연하게 느껴진다는 거다.

마치 눈앞의 남자의 몸에서 알 수 없는 포스가 뿜어져 나오기라도 하는 것처럼.

심지어 저 나이에 수천억이나 되는 거금을 손에 쥐게 되었는데도, 아무런 감흥조차 없어 보인다.

‘뭔가 있는 놈이다.’

짐짓 자세를 바로 한 성 실장이 입을 열었다.

“설마요. 단지, 배당금은 저희 책임자가 도착한 이후 지급이 가능하다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아마…….”

힐긋 손목시계를 바라본 성 실장이 말한다.

“10분 안으로 도착할 겁니다.”

‘수고를 덜었군.’

속으로 중얼거린 도윤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도윤을 보며 성 실장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먼젓번에 한 번 뵈었던 것 같은데, 분명 김 사장님 소개로 오신 분이시죠?”

“…….”

말없이 침묵을 지키는 도윤을 보며 성 실장이 재빨리 품에서 무언가 꺼내 내밀었다.

손바닥보다 약간 작은 크기의 명함에는 ‘페이머스 컴퍼니 대표이사 성준호’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페이머스 컴퍼니……?

낯익은 이름에 순간 고개를 갸웃한 도윤이 성 실장을 바라본다.’

“저는 이곳 하우스의 관리자인 성준호라고 합니다. 아, 물론 부업입니다. 원래 소속은 명함을 보면 아시겠지만 페이머스라는 작은 건설 회사에 두고 있죠.”

“…….”

“참고로 제 본업에 대해서는 VIP 중에서도 특VIP 분들만 알고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성 실장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으니, 편하게 성 실장이라고 불러 주시면 됩니다.”

말을 마친 성 실장이 도윤을 빤히 바라보기 시작했다.

‘이쪽에서 먼저 소개를 했으니, 너도 소개를 해라, 이건가?’

성 실장의 두 눈을 마주 바라보며 도윤이 입을 열었다.

“배당금은 모두 현금으로 주나?”

성 실장이 애써 웃는 표정으로 대답한다.

“원하신다면 가능은 하지만… 조금 시간이 걸립니다. 금액이 금액이다 보니, 저희 쪽에서도 준비 기간이 필요해서요.”

“…….”

성 실장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도윤이 다시 입을 다물었다.

밀실 내부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성 실장이 입을 다문 채 고개를 숙이고 있는 도윤을 보며 슬쩍 미간을 찌푸렸다.

‘집안에 대해서는 밝히기 싫다?’

성 실장이 도윤에 대한 정보를 캐내기 위해 팽팽히 머리를 돌리고 있을 때, 벌컥 하고 밀실의 출입문이 열린다.

“이거, 이거. 귀한 손님 계신데 제가 너무 늦었습니다.”

왼쪽 뺨의 칼자국이 인상적인 사내, 독사가 짧게 고개를 숙이며 밀실로 들어선다.

도윤을 발견한 독사가 멈칫한다.

독사와 도윤이 눈을 마주친 채 그 상태로 있기를 잠시…….

“아, 실례. 4,000억의 주인공이 이렇게 젊은 분일 줄이야… 하하하! 오자마자 놀랐습니다. 저는 이곳 하우스의 책임자, 설사독이라고 합니다.”

“옆에 있는 성 실장과 똑같은 얘기를 하는군.”

도윤의 말에 독사가 슬쩍 미간을 찌푸렸다.

기껏해야 조카뻘밖에 안되어 보이는 놈이 초면에 다짜고짜 반말이라니.

‘이런 후레새끼를 봤나…….’

속에서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화를 애써 삭인 독사가 힘겹게 웃으며 말한다.

“하. 하. 하. 어째 우리 어린 고객님께서는 전혀 놀라지 않으신 것 같소? 그 나이에 4,000억이라고 하면 충분히 놀랄 법도 한데…….”

유난히 ‘어린’이라는 말을 강조한 독사가 말을 잇는다.

“…….”

“사실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이지만, 나이 환갑에 수천억 있는 영감탱이보다 10억, 아니 1억 있는 20대 청춘이 훨씬 부러운 법, 아니겠소?”

“그리 큰 금액도 아닌데 너무 유난 떠는군.”

재차 이어지는 도윤의 반말에 순간 욱하려던 독사가 멈칫한다.

‘4,000억이 큰 금액이 아니라고?’

‘뭐 이런 새끼가 다 있나.’ 하는 얼굴로 도윤을 바라보던 독사의 표정이 조금 신중해졌다.

‘허세만 가득 찬 미친놈이거나, 내가 생각도 할 수 없는 수준의 거물이거나.’

마치 탐색전을 하듯 도윤의 아래위를 빠르게 살핀 독사가 입을 열었다.

“혹시 어디에서 오셨는지……?”

“하우스에서 고객의 정보를 함부로 물어도 되나?”

도윤이 도박장의 암묵적인 규칙을 거론하자, 독사가 입을 다물었다.

도박장에서 다른 사람의 신상 정보를 묻는 것은 해서는 안 될 금기 사항 중 하나다.

어느 누가 알겠는가?

돈 잃은 놈이 직장이고, 집이고 찾아와 깽판이라는 깽판은 다 치고 다닐지.

선례도 있었기 때문에 충분히 가능한 얘기다.

“…실례했소. 이전 경기부터 이월되어 온 금액이 2,700억, 이번 16강전 한 게임에 베팅된 금액이 약 1,300억. 총 4,000억이 조금 넘는 금액이요. 지급 방식은…….”

“당신이 총책임자인가?”

“……?”

의아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독사를 보며 도윤이 말한다.

“이곳을 포함한 망치파가 관리하는 하우스들. 그 모든 하우스를 책임지는 사람이 당신이냐고 물었다.”

순간 성 실장이 눈을 크게 떴다.

눈앞 어린놈의 입에서 ‘망치파’라는 얘기가 나왔다.

공공연히 알려진 사실이긴 하지만, 그 사실을 안다고 저렇게 대놓고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최소한 이쪽 바닥과 무언가 연관이 되어 있는 사람이라는 소리다.

독사가 눈을 게슴츠레하게 떴다.

“…너는 누구지?”

독사가 목소리를 내리깔고 물었다.

“그게 중요한가?”

“니 목숨이 하나라면 중요하겠지.”

독사가 말을 마치자 옆에 있던 성 실장이 품으로 손을 집어넣는다. 얼핏 보이는 시야 사이로 나이프 손잡이가 보이는 듯했다.

도윤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이쪽 바닥의 놈들은 어찌 이리도 한결같은지…….”

도윤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성 실장이 품에 있는 나이프를 꺼내 들었다.

“앉아.”

“싫다면?”

슬쩍 미간을 찌푸린 성 실장이 움직이려고 하자, 독사가 손을 들어 제지한다.

망치파의 입장에서 이곳에서 칼부림이 일어나는 일만은 절대 막아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이 거액의 돈을 주기 싫어서 망치파에서 수작을 부렸다고 생각할 것이다.

한 번 입소문을 타기 시작한 일은 삽시간에 외부로 퍼져 나간다.

그렇게 되면…….

‘하우스 장사는 모두 접어야겠지. 여기뿐만 아니라, 우리 조직에서 관리하는 모든 하우스들까지.’

열 받는다고 회사 사장 면전에 사표를 집어던질 수 없듯, 순간의 감정 때문에 일을 망칠 수는 없다.

성 실장도 그 사실을 깨달았는지 조금 뒤로 물러나자, 독사가 입을 열었다.

“장난질 할 생각이라면 번지수 잘못 짚은 거야.”

“나름 수천억대 고객인데, 손님 대접이 너무 형편없군.”

“뭐 하는 놈인지조차 알 수 없는데, 손님?”

독사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반문하자 도윤이 말한다.

“둘이서 얘기하고 싶은데.”

“안 됩니다.”

도윤의 말에 옆에 있던 성 실장이 즉각 반응했다.

그런 성 실장을 잠시 바라보던 독사가 다시 도윤을 돌아본다.

“…정식으로 니 소개를 하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도 되겠지?”

“형님!”

성 실장이 다급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됐어. 준호, 너는 가만히 있어.”

“절대 안 됩니다. 만약 형님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준호야.”

독사의 낮은 목소리에 성 실장이 입을 다물었다.

“나, 설사독이야.”

“…….”

입술을 꽈악 깨문 성 실장이 도윤을 노려본다.

“개수작 부리면 그냥은 못 나갈 거다.”

“나가 봐.”

독사의 말에 짧게 고개를 숙인 성 실장이 이내 밀실 밖으로 걸어 나갔다.

“이제 앉지.”

독사가 밀실 소파에 털썩 주저앉으며 몸을 파묻었다.

그 모습에 도윤이 낮게 웃음을 터뜨렸다.

“조직 내에서 위치가 제법 높은 것 같은데, 상당히 대담하군.”

“니가 할 소리인가?”

“…….”

도윤이 입을 다물자 독사가 계속 말한다.

“혹시 하우스 세부 규칙을 알고 있나?”

“세부 규칙?”

도윤이 의아한 표정으로 반문하자 비릿한 미소를 지은 독사가 품에서 종이를 한 장 내밀었다.

“1,000억 원 이상의 판돈을 먹은 사람은 배당금의 50퍼센트를 수수료로 지불해야 한다.”

2,000억 원이나 되는 돈을 수수료라는 이름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요구한다.

“완전히 날강도로군.”

도윤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대답하자 독사의 미소가 한층 짙어진다.

“혹시라도 몰랐다느니, 하는 소리는 하지 마. 우리는 하우스 내부에 분명히 이 규칙이 적힌 책자들을 비치해 뒀으니까.”

“그러시겠지.”

예상과 달리 상대 쪽에서 특별한 반응이 없자, 독사가 잠시 멈칫한다.

‘정말 무언가 있는 놈인가……?’

이쯤 되자 독사의 마음속에서도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놈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알 수 없는 위압감은…….’

이내 마음속의 감정을 털어 내려는 듯 고개를 좌우로 흔든 독사가 입을 열었다.

“내가 묻는 말에 대답만 잘 한다면 수수료를 30퍼센트까지 낮춰 주지.”

4,000억 원의 30퍼센트라도 1,200억에 육박하는 돈이다.

뻔뻔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지껄이는 독사를 잠시 바라보던 도윤이 말한다.

“페이머스 컴퍼니.”

“……?”

예상치 못한 단어가 도윤의 입에서 나오자, 독사가 멍한 표정을 짓는다.

“무슨…….”

“명성의 자회사가 아닌가?”

“……!”

독사가 눈을 찢어질 듯 부릅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명성에서 탈세를 위해 만든 유령 회사겠지.”

유령 회사.

일부 기업들이 특정한 목적을 위해 실제 존재하지 않음에도, 국가에 서류상으로만 등록해 놓는 회사.

일반적으로 탈세를 위해 이 유령 회사를 만들어 놓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보통 지분 보유자가 이 유령 회사에 자신의 지분을 헐값에 넘기는 방식으로 탈세가 진행된다.

물론, 페이머스 회사가 명성의 유령 회사라는 사실은 극비 중에서도 극비다.

그런 극비를, 도윤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독사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 개…….”

“앉지. 아직 함부로 행동하기에는 이른 것 같은데? 내가 어떻게 이런 사실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나?”

“…….”

도윤의 말에 독사가 입을 다문 채 한참이나 씩씩거렸다.

눈앞의 어린놈의 말이 맞다.

알 수 없는 위압감, 놈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대화 내용들은 결코 일반인이라 생각할 수 없다.

“…정체를 밝혀라.”

씹어 내뱉듯 중얼거린 독사가 털썩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그 모습에 도윤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대화가 길어지겠군.”

말을 마친 도윤이 주머니 안으로 손을 찔러 넣었다.

차가운 표면의 녹음기가 손에 잡혔고, 곧바로 녹음 버튼을 눌렀다.

만일을 위해 도윤이 준비한 무기.

이게 끝이 아니다.

확실한 증거를 확보하기 위한, 도윤만이 가진 최고의 무기.

명성을 잡기 위한 최강의 패 중 하나.

틈틈이 올려 둔 레벨 덕분에 이제는 성공 확률이 50퍼센트에 육박하는 그 스킬.

독사의 타오르는 듯한 두 눈을 마주하며 도윤이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심문의 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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