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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잡는 회귀검사-44화 (44/174)

44화 압수수색영장 청구

우우웅, 우우웅.

사무실에 앉아 산더미 같은 서류들을 연신 뒤적이던 윤만석이 귓가로 들려오는 휴대폰 진동 소리에 멈칫한다.

이내 발신자를 확인한 윤만석이 옅게 미소 지으며 통화 버튼을 눌렀다.

“강도윤이, 연락 한 번 없더니, 먼저 연락을 다 하고. 내일은 해가 서쪽에서 뜨겠어?”

“죄송합니다, 선배님. 잘 지내셨죠?”

수화기 너머로 도윤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윤만석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뭐, 죄송할 것까지야. 바쁘신 강 검사께서 이렇게 친히 전화를 주셨다라… 아주 기대되는데?”

윤만석의 말에 희미하게 미소를 지은 도윤이 입을 열었다.

“…일전에 부탁하신 것.”

순간 윤만석이 눈을 크게 떴다.

“증거 찾았습니다.”

콰당!

윤만석이 앉아 있던 의자가 뒤로 넘어가며 굉음을 낸다.

“그게 정말이야!?”

흥분한 윤만석이 큰 소리로 외쳤다.

“예.”

“어떻게… 아니. 너, 지금 어디야? 내 당장 갈 테니까, 조금만…….”

“선배님이 이곳까지 올 시간이 없습니다.”

바로 나갈 채비를 하던 윤만석이 멈칫한다.

“뭐?”

“압색영장(압수수색검증영장), 지금 바로 청구하셔야 합니다. 지금은 일분일초가 중요합니다.”

“영장?”

윤만석이 멍한 표정으로 반문했다.

도윤이 이렇게까지 서두르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체포와 달리 압수는 ‘긴급’이라는 말이 없다.

피의자에게 중대한 범죄 혐의가 있고, 체포영장을 받을 시간적 여유가 없을 경우 피의자를 먼저 체포한 후 영장을 받을 수 있다.

이를 긴급체포 및 사후영장이라고 한다.

그와 달리 압수는?

무조건 사전에 영장을 받을 것을 요한다.

급하다고 막무가내로 쳐들어가서 뒤집어엎어 물건을 빼앗았다가는, 해당 수사관이 오히려 주거침입에 절도죄로 처벌받는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긴급압수라는 말은 대한민국에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도윤이 다급한 목소리로 말을 잇는다.

“성명병원.”

윤만석이 눈을 찢어질 듯 부릅뜬다.

“성명병원에 대한 압색영장, 지금 당장 청구하셔야 합니다.”

“뭐, 뭐라고?”

윤만석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성명이라고? 니 말은 설마…….”

“거래된 장기로 수술이 이루어지고 있던 병원.”

“……!”

“그 병원이 성명이었습니다.”

콰아아아아앙!

윤만석이 주먹으로 테이블을 있는 힘껏 내리쳤다.

“성명? 성명이라고? 지금 니가 하는 말이 어떤 의미인 줄 알아!?”

“…….”

“거긴… 거긴 대한민국 내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탑 클래스 병원이야. 그리고 그 뒤에는…….”

윤만석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을 잇지 못하자, 도윤이 대신 대답한다.

“명성이 있죠.”

도윤의 말에 윤만석이 ‘흐읍’ 하고 숨을 들이마셨다.

떨리는 가슴을 부여잡은 채, 한참을 심호흡하던 윤만석이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증거, 증거는? 증거가 있어야 영장을…….”

“장기밀매범의 대화 내용이 녹음된 파일이 있습니다.”

윤만석이 멈칫한다.

“녹음 파일?”

“예.”

“설마 감청이라면…….”

윤만석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끝을 흐렸다.

수사기관을 포함한 국가기관이 유·무선을 통해 매개되는 대화나 정보를 당사자 모르게 청취하는 것은, 불법이다.

다시 말해, 이러한 방법으로 취득한 증거는 법정에서 아무런 증거능력이 없다.

위법수집증거배제법칙(違法蒐集證據排除法則)이 괜히 만들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 녹음 파일이 당사자 중 한 사람이 녹음을 한 것이라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도윤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설마요.”

“그럼… 그럼 정말…….”

윤만석이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일단 선배님 메일 주소를 문자로 넣어 주시면, 바로 녹음 파일 보내 드리겠습니다.”

“…알았어. 일단 대화 내용부터 들어 보고 다시 연락하지.”

곧바로 통화가 끊긴 것을 확인한 도윤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사실 도윤도 이렇게까지 일이 잘 풀릴 줄은 몰랐다.

망치파 전체로 봤을 때 중간 관리자급으로 생각했던 놈이, 생각보다 엄청난 거물이었다.

예상을 뛰어넘는 엄청난 정보들이 놈의 입에서 쏟아져 나왔고, 그 과정에서 성명병원이라는 이름이 나왔다.

성명병원.

한국대학병원과 세연대학병원, 대한민국 최고 그룹인 오성에서 지원하는 집현전병원을 제외하고는, 견줄 곳이 없는 초대형 병원.

연 매출이 수천억 원에 육박할 정도이며, 일일 평균 외래 환자 수만 수천 명에 달한다.

그리고 그 뒤에는…….

대한민국 10대 그룹 중 하나라는 명성이 있다.

“하루 유동 인구만 수천 명, 아니 입원 환자까지 수만 명. 가장 큰 자금줄 중 하나인 성명에서 위험부담을 감수하면서까지 그런 미친 짓을 하고 있을 줄이야…….”

도윤도 이 사실이 아직까지 믿기지가 않았다.

도윤의 경험상 불법 장기매매 수술은 너무 작은 병원도 이런 초대형 병원도 아닌, 그저 그런 지역 수준의 대형 병원에서 행해지는 게 일반적이다.

수술 장비도 어느 정도 갖추어져 있을 뿐더러, 위험부담을 감수하면서 얻을 수 있는 이익이 충분히 매력적이니까.

그런데 성명이라니?

명성과 이어지는 작은 단서만 발견해도 만족했을 텐데, 이건 대박 중에서도 초대박이다.

“갈기갈기 찢어질 때까지 물어뜯어 주마.”

도윤이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 정도로 주먹을 꽈악 말아 쥐었다.

때마침 윤만석에게서 전화가 왔고, 도윤이 곧바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예, 선배님.”

“…이걸 어떻게 얻을 수 있었는지는 묻지 않겠다. 지금은 니 말대로 일분일초가 급하니까.”

도윤이 옅게 미소 지었다.

“지금까지 내가 수사한 자료들, 니가 보내 준 녹음 파일이라면 압수수색영장 정도는 충분히 나올 수 있을 거야. 나는 영장이 발부되는 대로 바로 성명을 털 거고. 하지만…….”

“……?”

“성명병원에서 결정적인 증거를 찾아 기소(起訴)한 이후, 그때가 문제야.”

잠시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생수를 벌컥벌컥 들이켠 윤만석이 말을 잇는다.

“법원이든 상대 쪽이든, 분명히 녹음 파일에 대한 출처를 물을 거다. 대화 당사자가 녹음을 했고, 그 당사자가 자발적으로 녹음 파일을 제출했다면, 그 사실이 증명되어야 할 테니까.”

“…….”

“녹음 파일의 망치파 놈이 자백이라도 하는 것처럼, 자기가 한 일을 술술 불기는 하지만, 분위기로 봐서 이놈이 직접 녹음 파일을 제출하지는 않았을 테고, 그렇다면…….”

도윤이 짧게 대답한다.

“그거 접니다.”

“…뭐?”

“목소리 들으면 아시잖아요?”

도윤의 말에 윤만석이 급히 녹음 파일을 재생시켜 본다.

그 상태로 약 1분 정도 목소리를 들어 보던 윤만석이 멍한 표정으로 말한다.

“너, 너, 너. 대, 대체 언, 언제. 아, 아니. 어떻게…….”

도윤이 씨익 웃으며 입을 열었다.

“선배님이 기소를 하신다면 재판 당일, 제가 법원에 출석하겠습니다.”

“…….”

“혹시나 출석요구서 안 보낼 거라는 말씀은 하지 마세요. 안 보내셔도 갈 겁니다.”

여전히 입을 다문 채 침묵을 지키는 윤만석을 보며 도윤이 말을 잇는다.

“선배님, 이만 끊겠습니다. 저도 제법 준비할 게 있어서요.”

“잠, 잠깐!”

도윤이 재빨리 통화 종료 버튼을 눌렀다.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나이트 건 때처럼 잔소리 듣는 건 절대 사양이었다.

“아참!”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도윤이 손뼉을 짝 하고 쳤다.

아직 얘기해 줘야 할 사람이 한 사람 더 남았다.

전화번호부에서 찾고자 하는 이름을 발견해 낸 도윤이 지체 없이 통화 버튼을 눌렀다.

그래 Bye, bye, bye. 가고 싶은 대로 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너의 사랑 찾아가~ Hi, hi, hi…….

경쾌한 컬러링이 얼마간 지속되었을까?

수화기 너머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이야~ 강 프로! 존나게 바쁘신 분이 어쩐 일이시래? 정 없는 새끼야.”

순간 들려오는 호식의 욕지거리에 도윤이 낮게 웃음을 터뜨렸다.

“뭔 여자 친구도 아니고, 징그럽게 내가 맨날 전화해야 하나?”

“아~ 누가 들으면 맨날 전화라도 하는 줄 알겠다? 몇 주가 지나도록 연락 한 번 없던 놈이…….”

“한잔해야지?”

“한잔은 얼어 뒤질…….”

잠시 말끝을 흐리던 호식이 조심스럽게 말을 잇는다.

“니가 사냐?”

“돈 많은 니가 사야지.”

도윤의 말에 호식이 발끈한다.

“야! 빌려준 돈 이자인 셈 치고, 좀 사라! 변호사 쇼핑이라는 말이 나오는 시대에, 경력도 없는 초임 변호사가 돈이 어디 있어!? 삼겹살에 소주라도 한잔 사!”

변호사 수만 명 시대에 접어들면서, 이제는 고소인들도 여러 사무소를 돌며 변호사를 요모조모 따져 보고 골라서 선임하기 시작했다.

수요는 큰 변화가 없는데, 공급은 매해 큰 폭으로 증가하니,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결과다.

피식 웃음을 터뜨린 도윤이 입을 열었다.

“에이, 내 몇 안 되는 베스트 프랜드, 오랜만에 보는데 삼겹살 가지고 되겠어?”

“…엉?”

“가자, 소고기 사 줄게.”

“…….”

크게 산다는 말에도 수화기 너머로 아무런 반응이 없자 도윤이 고개를 갸웃한다.

“계세요, 호식 군?”

“…너, 나한테 뭐 잘못했지?”

“……?”

“아님, 뭐 잘못 먹었나? 이 새끼가 갑자기 이럴 일이 없는데…….”

잠시 턱을 긁적인 도윤이 입을 열었다.

“잘못은 무슨… 그냥 발령 기념으로 밥이라도 한 끼 사고 싶어서 그런 거지.”

“우와~ 우리 강 프로, 철들었네, 철들었어. 형은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 꺼이꺼이.”

“지금 안 나오면 안 사 준다?”

“아, 가지! 가! 간다! 어디로 갈까? 오늘 배때지에 기름칠 한번 제대로 해 볼라니까. 장소만 싸게, 싸게 불러!”

도윤이 식당 주소를 불러 주자 힘차게 고개를 끄덕인 호식이 말한다.

“지금 바로 나간다!”

“아참, 호식아.”

“엉?”

호식의 해맑은 목소리에 도윤이 잠시 머뭇거렸다.

‘도박판에서 이름 팔아먹었다는 말은 나중에 하는 게 좋겠네.’

짧게 한숨을 내쉰 도윤이 입을 열었다.

“아니, 아니야. 먹고 싶은 거 다 말만 해. 오늘 내가 크게 쏠 테니까.”

“오늘 내가 그 식당 다 턴다!”

호식이 환호성을 질렀다.

* * *

성명병원 병원장실.

반백의 머리를 깔끔하게 뒤로 넘긴 남자가 큰 규모의 수술만 모아 놓은 의료 차트들을 뒤적이고 있었다.

남자의 테이블 위, 명패에는 ‘성명병원 병원장 하병춘’이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의료 차트 더미에서 차트 하나를 집어든 하병춘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일거리는 날이 갈수록 늘어나는데, 적자는 갈수록 늘어난다.

어느 순간 병원에 대한 경영권을 명성그룹에 완전히 빼앗겼고, 지금은 그저 이름뿐인 병원장 신세다.

언제 내쳐져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지만…….

병원 관계자들의 시선이 신경 쓰였는지 그렇게까지 하지는 않았다.

“이제 진짜 은퇴할 때인가…….”

하병춘이 힘없는 목소리로 중얼거리고 있을 때, 병원장실의 출입문이 벌컥 하고 열린다.

그리고 정장을 입은 일단의 무리가 우르르 몰려들어 왔다.

“저, 저기. 이렇게 갑자기 이러시면…….”

무리에 섞여 따라 들어온 간호사가 당황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병원장님 되십니까?”

무리 사이에서 이제 갓 마흔을 넘겼을 법한, 커다란 체구의 사내가 한발 앞으로 나서며 물었다.

“예, 제가 병원장은 맞습니다만…….”

하병춘의 말에 커다란 체구의 사내, 이제 마흔을 넘어선 윤만석이 손에 쥔 종이를 내밀었다.

잠시 미간을 찌푸리며 그 종이를 들여다보던 하병춘이 순간 눈을 크게 떴다.

상단에 큰 글자로 압수수색영장이라는 단어가 적혀 있었다.

“지금부터 성명병원에 대한 수색을 시작하겠습니다.”

“……!”

하병춘의 눈이 찢어질듯 부릅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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