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잡는 회귀검사-45화 (45/174)

45화 명성그룹의 대(大)서재

성명병원에 대한 수색 및 압수 소식은 곧바로 명성그룹 회장 오춘화의 귀에 들어갔다.

오춘화 회장의 자택 대(大)서재.

명성그룹 내에 특히 중요한 일이나 비상사태가 발생했을 때, 오춘화 회장의 소집 명령에 따라 회의가 이루어지는 곳.

특별한 일이 없다면 항상 굳게 닫혀 있는 이 출입문이, 모처럼 육중한 몸을 움직였다.

활짝 열린 출입문 안쪽엔 오춘화 회장이 성난 표정으로 자리에 앉아 있었다.

일흔이 훌쩍 넘은 나이임에도 꽉 다문 입매와 타오르는 듯한 눈빛, 마치 범을 보는 듯한 인상은 그가 상당히 고집스러운 인물이라는 것을 느끼게 했다.

명성의 사람들은 누구나 다 안다.

눈앞의 이 늙은 회장이 아직 매우 정정할 뿐만 아니라, 화가 나면 그 누구도 말릴 수 없는 다혈질 성격의 소유자라는 것을.

뿐만 아니라 그 성격에 맞는 영향력도 충분하다 못해 넘칠 정도로 엄청나다는 사실까지.

현재의 직함 따위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당장 오춘화 회장의 한 마디면 지방에 있는 지사로 좌천되는 것은 순식간이다.

대서재 안은 바늘 떨어지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조용했다.

마치 찍어 누르는 듯한 그 무거운 분위기를 참지 못하고 오춘화 회장의 차남, 오길태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나이에 비해 상당히 젊어 보이는 오길태의 안경테 사이로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그 순간 기다렸다는 듯 오춘화 회장이 입을 연다.

“오길태.”

“예, 옙. 아버… 아니, 회, 회장님.”

더듬더듬 대답하는 오길태를 미간을 찌푸린 채 바라보던 오춘화 회장이 순간 커다란 책상 위에 놓여 있던 재떨이를 집어 든다.

크리스탈 재떨이라고도 불리는 그 물건은 보기에도 상당히 묵직해 보였다.

오길태가 질끈 눈을 감았다.

그 순간.

퍼어어억!

재떨이가 그대로 오길태의 머리로 날아들었다.

“끄어어어억…….”

피할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눈을 감고 있던 오길태가 필사적으로 침음을 삼킨다.

주르르륵.

이마 사이로 피가 흘러내림에도 닦을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벌벌 떨고 있는 오길태를 보며 오춘화가 다시 입을 열었다.

“오성춘이.”

오길태의 바로 뒤에 기립해 있던 오성춘이 흠칫한다.

원래대로라면 오성춘은 이 자리에 있을 수 없다.

이 공간은 재벌 1세대인 회장을 기준으로 2세대인 바로 밑의 직계 자손, 그중에서도 임원급 이상의 직함을 가진 사람만이 출입할 수 있다.

예외적으로 회장이 특별히 허락한 사람도 출입할 수 있지만, 그런 일은 최근 10년 동안 단 한 번도 없었다.

“옙! 회장님.”

오성춘이 군기가 바짝 든 목소리로 대답했다.

“예쁘다, 예쁘다 해 주니까 세상이 전부 니 것 같지?”

“아, 아닙니다!”

“아니긴…….”

오춘화 회장이 와락 인상을 구기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집어던질 물건을 찾기 위해 연신 두리번거리는 오춘화 회장을 보며 오성춘이 질끈 눈을 감았다.

이내 찾고자 하는 물건이 보이지 않자 오춘화 회장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털썩.

제자리에 주저앉은 오춘화 회장이 조금 힘 빠진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닦아.”

순간 자신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 오길태가 멍한 표정으로 앉아 있자, 오춘화 회장이 버럭 소리 지른다.

“피, 닦으라고!”

“예, 옙! 감, 감사합니다!”

오길태가 벌벌 떨리는 손동작으로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이마 사이로 흐르는 피를 닦아 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또다시 한숨을 내쉰 오춘화 회장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한다.

“내가 모르고 있을 줄 알았나?”

“…예?”

“하찮은 깡패 새끼들한테 손을 내밀 때도, 그 하찮은 깡패 새끼들이 싸지르고 난 똥구멍을 대신 닦아 줄 때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아, 아버지…….”

오길태가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불길한 감정을 느껴서였을까?

아버지라는 말이 부지불식간 터져 나왔다.

“심지어, 망나니 같은 니 아들놈이 내 회사를 말아먹었을 때도 마찬가지. 화는 났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 쓰레기 같은 놈이 주제에도 맞지 않는 과분한 시험을 통과해서, 딱 한 번. 그에 대한 면책권이라 생각하고 말이야.”

이제는 오성춘마저 온몸을 사시나무 떨 듯 떨어 대기 시작했다.

그런 두 부자(父子)를 보며 오춘화 회장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한다.

“오길태, 성명이… 니 것이라고 생각하나?”

“절대 아닙니다!”

오길태가 일 초의 망설임도 없이 소리쳤다.

이런 식으로 대화가 흘러가서는 안 된다.

자신의 것에 대한 소유욕이 범인들은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사람이 자신의 아버지, 오춘화 회장이다.

오춘화 회장의 것에 손을 댄다?

아니, 실제 손을 대지 않았어도, 그런 느낌만으로 아들 따위는 아무렇지도 않게 내던질 수 있는 사람이다.

“그저 이름뿐인 자리입니다! 성명의, 성명병원의 주인은 당연히 아버지, 아니, 오춘화 회장님이십니다!”

“…….”

오길태의 말에 오춘화 회장이 입을 다문 채 침묵을 지켰다.

그 무거운 침묵이 얼마간 지속되었을 때, 오춘화 회장이 입을 열었다.

“…어린 아들놈 하나 살려 보겠다고 죽을 둥 살 둥 발버둥 치는 모습, 그게 안타까워서 같은 인간이 절대 해서는 안 될 짓을 하는 것도 묵인해 왔다.”

“……!”

오길태의 눈이 찢어질 듯 부릅떠졌다.

“늘그막에 낳은 늦둥이 자식,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정도로 귀여웠겠지. 가뜩이나 손이 귀한 집안이니까.”

“아, 아버지……!”

오길태가 다급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이해해. 남들은 내 피가 철로 되어 있다고들 하지만, 나도 사람이야. 자기 자식에 대한 정은 나도 남들 못지않아.”

위험하다.

자신의 아버지, 오춘화 회장은 이런 말을 자질구레하게 늘어놓는 성격의 소유자가 아니다.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무슨 일이든 가차없이 내던지는 사람.

변명도 필요 없다.

그저 말 한 마디면 충분했으니까.

그런 오춘화 회장이 평소와 달리 많은 서두를 던지고 있다.

이건…….

“오길태.”

오춘화 회장의 부름에 오길태가 고개를 번쩍 쳐들었다.

“이번 일은 내 손을 벗어난 일이다.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

오길태가 눈을 크게 떴다.

“니 스스로의 능력으로 해결해라. 그게 안 된다면… 자신이 한 행동은 자신이 책임을 져야겠지.”

자신이 한 행동은 자신이 책임져라.

최악의 경우, 그룹 차원에서 자신을 버리겠다는 말이다.

“아버지!!!!!!”

목이 찢어져라 소리치는 오길태를 일별한 오춘화 회장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만 회의를 마친다.”

그제야 숨 쉬는 소리조차 참고 있던 오길태의 나머지 형제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직각으로 허리를 굽혔다.

“오창원.”

“예, 회장님.”

출입문을 나서기 직전 자신을 부르는 오춘화 회장의 목소리에, 장남 오창원이 재빨리 대답한다.

“일이 잘못되었을 시, 뒤처리는 니가 책임지고 해라.”

마치 쐐기를 박는 듯한 오춘화 회장의 말에, 자리에서 일어날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있던 오길태가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 정도로 주먹을 꽈악 움켜쥐었다.

그런 오길태를 잠시 바라보던 오창원이 짧게 고개를 숙이며 말한다.

“깔끔하게 마무리하겠습니다.”

오창원의 말에 작게 고개를 끄덕인 오춘화 회장이 그대로 출입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쿵!

출입문이 닫히는 묵직한 소리가 고요한 대서재 내에 울려 퍼졌다.

* * *

“어머, 내 정신 좀 봐. 오늘 중요한 미팅이 있었는데 깜빡했네. 호호호…….”

오춘화 회장의 자식, 셋째이자 장녀인 오호순이 짝 하고 손뼉을 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먼저 일어날게, 오빠. 너무 낙담하지는 마. 잘 풀리겠지. 전화위복(轉禍爲福)이라는 말도 있잖아?”

“…….”

자신의 말에도 오길태가 아무런 반응이 없자 멋쩍은 미소를 지은 오호순이 출입문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나 먼저 갈게, 오빠.”

오호순의 말에 장남 오창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오호순도 출입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자, 자리에 앉아 있던 나머지 두 사람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게 바로 손 안 대고 코 풀기?”

평소 사이가 좋지 않은 넷째, 오남규가 비아냥거리자 오길태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오늘 오랜만에 친구들 모아서 파티라도 해야겠다. 킥킥킥. 이런 날 돈 안 쓰면 언제 쓰나~?”

마지막까지 빈정댄 오남규마저 출입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가뜩이나 피딱지가 내려앉아 흉신악살 같은 오길태의 얼굴이, 분노로 벌겋게 달아올랐다.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오성춘도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입술만 꽈악 깨물었다.

일찌감치 그룹 경영권 승계 경쟁에서 멀어져 있던 막내 오상규가 잠시 측은한 눈빛으로 오길태를 바라봤다.

“하아…….”

한차례 깊은 한숨을 내쉰 오상규마저 큰 형 오창원을 향해 짧게 고개를 숙이고는 출입문 밖으로 걸어 나갔다.

커다란 대서재에 이제는 오길태와 오성춘, 그리고 오창원만이 남아 있었다.

무거운 침묵을 깨고 오창원이 입을 열었다.

“오길태.”

“…….”

“설마 이대로 촌구석으로 좌천될 생각은 아니겠지?”

“…….”

여전히 입을 다문 채 침묵을 지키고 있는 오길태를 보며 오창원이 말을 잇는다.

“마지막 카드, 아직 쥐고 있을 텐데?”

오길태가 눈을 크게 떴다.

곧이어 오창원이 무어라 중얼거리자, 그 소리를 들은 오길태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형이 그걸 어떻게……!”

“그게 중요한가?”

“씨발! 내 쪽에 형의 끄나풀이 있었던 거군.”

순간 욕지거리를 내뱉는 오길태를 보며 오창원이 인상을 찌푸린다.

“못난 놈…….”

“이미 속이 뒤집어질 대로 뒤집어졌으니까, 그만하지? 형은 좋으시겠어? 계열사 몇 개를 날로 꿀꺽할 수 있는 기회니까 말이야!”

악에 받쳐 고함치는 오길태를 잠시 바라보던 오창원이 홱 하고 몸을 돌렸다.

그대로 출입문을 밀고 나가려던 오창원이 마지막 말을 잇는다.

“오길태.”

“…….”

“내가 아는 걸 아버지가 모를 것 같나?”

“……!”

오길태의 눈이 더 이상 커질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

“마무리… 잘해라.”

쿠우웅!

이윽고 육중한 출입문이 닫히자, 오길태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었다.

“젠장…….”

커다란 대서재에 오길태의 욕지거리가 조용히 울려 퍼졌다.

* * *

벌컥!

장장 수 시간을 달려 부산지검 동부지청에 도착한 도윤이 익숙한 소회의실의 출입문을 그대로 밀고 들어갔다.

도윤을 가장 먼저 반긴 것은 소회의실 내부에 마구잡이로 널브러져 있는 의료용 차트와 서류 더미였다.

어림잡아 10명은 되어 보이는 사람들이 열심히 서류들을 뒤적이고 있었다.

“오, 강프로. 왔어? 먼 길 오시느라 고생했겠는데?”

그 사이에서 윤만석 검사가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와, 이게 다 압수한 서류들이에요? 이걸 언제 다…….”

도윤이 입을 쩍 하고 벌리자 윤만석 검사가 초췌한 얼굴로 대답한다.

“안 그래도 죽겠다. 일반 서류들이야 뭐 노가다 좀 하면 되지만, 의료용 차트에 적힌 꼬부랑 글씨들은 알아볼 수가 있어야지. 그것 때문에 우리 귀하신 공의(公醫)님들도 모셔 왔잖아.”

윤만석 검사가 의료용 차트 더미 사이에 파묻혀 있는 두 사람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 두 사람을 잠시 바라보던 도윤이 말한다.

“그냥 감정 촉탁의뢰 하시면…….”

특별한 학식이나 전문지식이 있는 제3자에게 증거에 대한 조사를 의뢰하는 것을 감정 촉탁의뢰라고 한다.

도윤이 말끝을 흐리자 윤만석 검사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대답한다.

“이걸 다?”

“…….”

엄청난 서류 더미를 가리키며 윤만석 검사가 말하자 도윤이 곧바로 입을 다물었다.

그 순간.

“이, 이건……!”

의료 차트에 파묻혀 있던 한 공의가 놀라 소리치자 도윤과 윤만석 검사의 고개가 동시에 홱 하고 돌아간다.

그리고…….

이어지는 공의의 말에 두 사람이 눈을 크게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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