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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잡는 회귀검사-46화 (46/174)

46화 심장이식 수술의 진실 (1)

“심장이식 수술 의료차트, 찾았어!”

한참을 의료차트를 뒤적이던 공의, 김석환의 말에 윤만석과 도윤이 빠르게 그쪽으로 다가갔다.

“무언가 특별히 눈에 띌 만한 정보가 있나?”

윤만석이 다급한 목소리로 묻자, 김석환이 고래를 저었다.

“차트만으로 알 수 있는 정보에는 한계가 있어. 일단 심장이식 수술을 한 날짜는… 가장 최근 것이 10개월 정도 되었군.”

순간 도윤이 눈을 크게 떴다.

10개월이라면, 시기상으로 딱 맞다.

“혹시 다른 건, 다른 건 알 수 없나요?”

도윤의 물음에 잠시 의료차트를 들여다보던 김석환이 대답한다.

“수사에 도움이 될 만한 정보는 특별히 없지만, 수술을 집도한 의사는 나도 잘 아는 사람이네.”

“그게 누구죠!?”

도윤이 다급히 물었다.

“박환영.”

“…….”

“심장 이식수술 쪽에서는 국내에서 따라올 사람이 없는, 이 분야 최고의 전문가야.”

“어디를 가면 그 사람을 만날 수 있습니까?”

“어디 갈 필요도 없어. 바로 이 병원에 있으니까.”

“예?”

도윤이 멍한 표정으로 반문했다.

“명성이 성명병원을 인수한 뒤, 이쪽 병원으로 넘어왔거든. 명성의 식구나 마찬가지인 사람이니까. 아마 이 밑에 있을 거야.”

김석환이 말을 마친 순간 도윤이 빠르게 출입문 밖으로 뛰쳐나간다.

“야, 야! 강도윤! 지금 만나서 뭘 어쩌겠다고……!”

화들짝 놀란 윤만석도 재빨리 도윤을 뒤따랐다.

그런 두 사람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김석환이 다시 의료차트를 향해 시선을 돌린다.

“…응?”

순간 김석환이 고개를 갸웃한다.

“왜 의료차트가 두 개나 되지?”

* * *

서울 도심 한복판에 위치한 성명병원.

총 15층으로 이루어진, 대한민국 최고의 병원 중 한 곳.

15층 건물 전체가 의료시설로 이루어진 성명병원은 밖에서 보면 마치 고층 아파트를 보는 듯한 어마어마한 위용을 자랑한다.

내부 구조를 살펴보면 더욱 더 입이 벌어진다.

건물 내에 내과나 정형외과, 안·이비인후과는 물론이고, 성형외과와 치과까지 과라는 과는 모두 개설되어 있다.

이 때문에 환자들은 특별히 다른 병원으로 가지 않아도, 성명병원 내에서 모든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물론 그런 이유로 아플 때마다 성명병원에 내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큰 수술을 주로 집도하는 3차 병원이라는 인식이 강할 뿐더러, 수술 후 입원비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비쌌기 때문이다.

똑같은 진단명에, 똑같은 수술을 했음에도 병원마다 입원비가 크게는 수백만 원까지 차이가 나는 것이 종종 뉴스에 보도되곤 하는데, 그때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병원이 바로 성명병원이었다.

일반 입원실 비용이 그 정도인데 10층부터 14층까지 이루어진 VIP 전용 입원실은 말할 것도 없다.

어지간한 직장인 월급으로는 며칠 입원해 있지도 못한다.

그런 성명병원의 꼭대기, 15층.

일견 보기에도 고풍스러운 느낌을 자아내는 레드카펫 사이로 ‘대표이사실’이라는 명패가 떡하니 달려 있는 출입문.

이 출입문 안이, 명성그룹 오춘화 회장의 차남이자 성명병원의 실질적 경영권을 가진, 오길태의 개인 집무실이다.

천장에 달린 샹들리에와 고급 원목으로 된 개인용 책상과는 어울리지 않게, 오길태가 침중한 얼굴로 앉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아버지…….”

오성춘이 안타까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식사는 하셔야죠. 벌써 몇 끼를 거르셨는지 아십니까?”

“…….”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는 오길태를 보며 오성춘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버지… 이미 일은 터졌습니다. 지금은 뒷수습만 생각할 때입니다.”

“…….”

오성춘이 답답하다는 듯 자신의 가슴을 두드렸다.

“과거로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다른 건 다 제쳐 두고, 영철이를 포기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오성춘의 입에서 오영철이 거론되자 오길태의 얼굴이 확하고 일그러졌다.

“…다시 되돌릴 수 있다면, 같은 일을 하더라도 숨길 수는 있었겠지.”

“아버지!!!”

오성춘이 버럭 고함쳤다.

“이미 뒷수습은 불가능하단 말이다!!!”

그 순간 오길태가 울분을 토하듯 마주 고함쳤다.

“이미 언론에서 냄새를 맡았다! 영장은 발부되었고, 검찰에서는 병원 전체를 탈탈 털어 갔다! 지금쯤이면 대략적인 윤곽도 잡혔겠지. 아니, 어쩌면 모든 상황을 파악하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러니까 한시라도 빨리 뒷수습을……!”

콰아앙!

오길태가 주먹으로 책상을 강하게 내리쳤다.

“그놈의 뒷수습! 지금 이 상황에서 내가 어디서부터 어떻게 뒷수습을 해야 한다는 말이냐! 똑똑한 니가 한번 얘기해 봐라!”

“…….”

오길태의 말에 입을 다문 채 한참을 침묵하던 오성춘이 입을 열었다.

“마지막 카드.”

순간 오길태가 흠칫 몸을 떨었다.

“큰아버지께서 말씀하신 마지막 카드가, 아직 남아 있지 않습니까?”

“너, 너…….”

오길태가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더듬더듬 말끝을 흐렸다.

“그건, 그건 그 사람을 두 번 죽이는 일이다. 너도 잘 알지 않느냐! 그 사람한테 또 그런…….”

“그룹 경영권에서 완전히 밀려나는 것보다는 낫습니다.”

“…….”

오길태가 입을 다물었다.

“아버지, 지금까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잊으셨습니까?”

“…….”

“단 한순간의 실수로 지금까지 쌓아 놓은 공든 탑을 모조리 무너뜨릴 작정이십니까?”

침묵을 지키는 오길태를 보며 오성춘이 마지막 말을 잇는다.

“명성을.”

“…….”

“이대로 포기하실 겁니까?”

오길태의 개인 집무실 안에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삐리리리리, 삐리리리리.

요란하게 울리는 내선전화 벨소리가 그 고요한 침묵을 깨뜨렸다.

잠시 머뭇거리던 오길태가 짧게 한숨을 내쉬며 외부 스피커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오 이사! 사무실에 있었군!”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격양된 목소리에 오길태가 흠칫 몸을 떨었다.

“내 지금 바로 올라가겠네. 어디 가지 말고 기다리게!”

순간 오길태와 오성춘의 눈이 마주친다.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오성춘을 잠시 바라보던 오길태가 힘없는 목소리로 대답한다.

“…그러지요.”

3분도 채 지나지 않아 출입문 밖에서 인기척이 들려온다.

그리고…….

벌컥!

노크도 없이 문을 박차고 들어온 성명병원의 병원장, 하병춘이 흥분한 목소리로 소리친다.

“오 이사!”

“…오셨습니까?”

“이게 어찌 된 일인지 설명을 해 보게!”

“…….”

“병원 전체에 소문이 다 났네! 명성이 조폭들과 손을 잡고, 병원 내에서 불법장기 수술을 하고 있었다고!”

하병춘이 성난 표정으로 말을 잇는다.

“병원장인 나도 모르게 진행된 이 일을! 병원의 실질적인 주인을 자처하는 자네라면 알고 있을 것 아닌가! 입이 있으면 말을 해 보란 말이네!”

나이가 일흔을 넘어섰음에도 어디서 그런 기력이 나오는지, 하병춘이 쉬지 않고 고래고래 고함쳤다.

“이… 이…….”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채 가까스로 분을 삭이고 있는 하병춘을 보며, 마침내 오길태가 입을 열었다.

“…92년도에 국내에서 처음 심장이식이 시행되었고, 이후 2년 전인 2000년 장기이식에 관한 입법이 이루어지면서, 장기이식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죠. 하지만 그때부터 아직까지도 대기자에 비해 심장 공여자는 턱없이 부족한 실정입니다.”

“그따위 소리나 듣자고……!”

하병춘의 말을 끊고 오길태가 더욱 목소리를 높인다.

“심장뿐만이 아닙니다! 다른 장기들은요? 수요보다 공급이 많은 장기는 단 하나도 없습니다. 두 개씩 달고 있는 콩팥요? 돈 없다고 자기 몸 갈라다 자기 콩팥 한쪽 떼다 파는 미친놈이 이 나라 어디에 있겠습니까?”

“자네, 정말……!”

“세상에 없어져야 할 쓰레기들은 많은데, 지금 막 태어난, 엄마, 아빠 얼굴은커녕 세상 빛조차 제대로 보지 못한 수많은 아이들이 죽어 가고 있습니다. 그런 버러지 같은 놈들 장기 중 하나만 떼다 붙여도 충분히 살 수 있음에도!”

“그게 대체 무슨 개소리인가!?”

이번에는 하병춘이 버럭 고함쳤다.

“다른 걸 다 떠나서, 설령 사람을 죽인 흉악한 놈의 심장을 떼어내도 자네가 말한 아이들을 살릴 수는 없어! 성인의 장기를, 아이의 몸에 이식할 수는 없지 않은가!”

“…….”

입을 다문 채 침묵을 지키던 오길태가 잠시 후, 입을 열었다.

“…버러지의 자식은, 똑같은 버러지일 뿐입니다.”

“……!”

하병춘이 눈을 크게 떴다.

“지금 세상을 보십시오. 회사 사장님의 자식은 나중에 결국 사장님이 되고, 법조인의 자식은 똑같은 법조인이, 의사의 아들은 의사가. 신분 세습제가 폐지되었음에도, 현대사회는 여전히 부모의 직업이 자식에게 되물림되고 있습니다.”

하병춘이 손을 부르르 떨기 시작했다.

“범죄자들은 아닌 것 같습니까? 어렸을 때부터 각종 범죄에 노출되어 있는 그 자식들. 마치 직업이라도 되물림하는 것처럼 성인이 되었을 때, 지 아비와 똑같은 행동을 하죠.”

“오 이사!”

하병춘이 또다시 고함쳤다.

“자네가 방금 한 발언이 얼마나 위험한 말인지 알고 있나!? 한 마디, 한 마디가 모순투성이인데, 마치 진짜라도 되는 것처럼……!”

“모순이 아니라, 사실이겠죠. 팩트 말입니다.”

“미친……!”

기어이 하병춘의 입에서 욕지거리가 터져 나왔다.

“자네, 내가 모르고 있는 줄 아나!?”

하병춘이 자글자글한 주름 사이로 타오르는 듯한 눈빛으로 오길태를 바라본다.

“이윤이 남기 때문에, 그따위 짓을 하고 있는 것 아닌가! 자네는 장사치니까!”

“…….”

입을 다문 채 침묵을 지키는 오길태를 보며 하병춘이 말을 잇는다.

“팩트? 팩트라고 했나? 어디 한번 팩트를 얘기해 보게!”

“…….”

“정치인, 고위 공무원, 자네 아버지의 명성을 포함한 여러 재벌들까지! 대기표 한 장만 바라보고 있는 서민들은 쳐다도 보지 않고, 그 특정 권력자들에게 사람 장기를 팔아 치우기 위해 그따위 짓을 벌이고 있는 것 아니냐, 이 말일세!”

“…….”

“어린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라고? 개소리! 그 빌어먹을 돈 때문이겠지! 수술 몇 번이면 병원에서 1년치 벌어들이는 수익, 그 이상을 벌어들일 수 있을 테니까!”

말을 마친 하병춘이 한참이나 씩씩거렸다.

잠시 후, 어느 정도 진정이 되었는지 하병춘이 입을 열었다.

“…자네가 말한 장기이식의 수혜자들은 좋겠군. 돈이 썩어 넘쳐날 정도로 많을 테니까.”

“…….”

“…당장 기자회견 열고, 자수하게. 만약 자네가 나서지 않겠다면… 내가 직접 검찰에 출석하겠네.”

하병춘의 말에 옆에서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오성춘이 눈을 크게 떴다.

그 순간, 오길태가 입을 열었다.

“…병원장님이 그 수혜자들을 부러워할 필요는 없을 것 같군요.”

“자네, 아직……!”

“이미 그 수혜자시니까요.”

이어지는 오길태의 말에 하병춘의 모든 동작이 일시에 딱 하고 멈췄다.

“그, 그게 무슨…….”

“병원장님의 손자.”

하병춘이 ‘흡’ 하고 숨을 들이마셨다.

그런 하병춘을 보며 오길태가 마지막 말을 잇는다.

“공급도 없던 어린아이의 심장이, 갑자기 어디서 나왔을까요?”

하병춘의 마음속에서 무거운 무언가가 ‘쿵’ 하고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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