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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잡는 회귀검사-47화 (47/174)

47화 심장이식수술의 진실 (2)

의사로서 하병춘의 일생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완벽 그 자체였다.

대한민국 최고라는 한국대학교 의과대학을 나왔으며, 졸업 후 레지던트 과정을 거쳐 곧바로 한국대학교 병원 산부인과 전공의가 되었다.

15년이 채 지나지 않아, 하병춘은 산부인과 분야로는 국내에서 따라올 사람이 없는 최고의 전문의가 되었다.

특히, 불임(不姙) 치료와 관련해서는 ‘신이 내린 명의’라는 별명이 붙었을 정도로 그 명성이 자자했다.

이러한 경력을 바탕으로 오랜 시간이 지나, 대한민국 최고라는 한국대학교 병원 정교수가 되었고, 차기 병원장 후보로까지 거론되고 있을 때, 문제가 발생했다.

늘그막에 얻은 손자가 선천성 심장병(congenital heart disease)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물론, 출생 당시에는 하병춘도 이 사실을 알지 못했다.

심장병이라는 것이, 태아기에 진단되기도 하고, 출생 후 수 년이 지나 진단이 되는 경우도 허다했기 때문이다.

흔히 선천성 심장 기형이라고도 불리는 이 병은, 심장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하여 초래되는 질환이기 때문에 그 정도에 따라 치료 방법이 천차만별이었다.

아주 경미한 경우에는 자연 치유되기도 했지만 하병춘의 손자, 하석태는 외부에서 심장이식을 받지 못하면 3년을 채 넘기지 못할 정도로 매우 심각했다.

3년.

최악의 상황을 가정했을 때, 하병춘이 판단한 손자의 남은 수명이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아직 최소 3년이라는 시간은 남아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하루하루가 지나갈수록 하병춘의 속마음은 타들어갔다.

모든 걸 내려놓고, 미국으로 건너가 심장병과 관련한 연구 자료들만 모조리 파헤치기를 1년.

결국 손자의 치료방법을 찾지 못해, 절망하고 있던 하병춘에게 국제전화를 통해 한국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대학교 후배이자, 자신의 제자 중 한 사람인 박환영으로부터 걸려온 전화였다.

특히, 박환영의 심장이식 수술 실력은 국내 최고였기 때문에, 이식할 심장만 찾으면 손자의 수술을 꼭 집도해 주기로 자신과 약속했다.

그리고.

“선배님! 석태에게 심장을 기증하겠다는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박환영의 목소리롤 처음 들었을 때의 그 벅차오르는 감정을, 하병춘은 잊을 수가 없다.

심장을 기증할 사람이 나타났다니?

손자에게 꼭 맞는 심장이 나타났다는 사실도 놀라웠지만, 다른 많은 대기 인원들을 제쳐 두고 자신의 손자에게 심장을 기증하겠다는 사람이 나타났다는 사실은 더욱 놀라웠다.

“그… 그게 정말인가?”

하병춘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예! 한시가 급하니 수술은 바로 진행하겠습니다. 저만 믿으십시오.”

“믿지, 믿고 말고! 내가 환영이 너를 안 믿으면 누굴 믿겠어!”

“한국에 돌아오실 때쯤이면 무사히 수술이 끝난 석태를 보실 수 있을 겁니다.”

“고마워, 고마워.”

그때, 하병춘은 눈물을 줄줄 흘리며 ‘고맙다.’라는 얘기만 연신 중얼거렸다.

그 길로 하병춘은 미국에 있는 모든 짐을 정리하고, 곧바로 비행기 티켓을 끊어 3일 뒤,한국으로 귀국했다.

그리고…….

들뜬 마음으로 병원에 도착한 하병춘이 가장 먼저 가게 된 곳은 입원실도, 수술실도 아니었다.

성명병원 별관에 있는 장례식장.

가장 먼저 하병춘을 반긴 것은 그토록 보고 싶었던 손자의 얼굴이 아니라, 코를 찌르는 짙은 향냄새와 환하게 웃고 있는 손자의 영정사진이었다.

“죄송합니다.”

수많은 인파가 보는 앞에서, 박환영이 자신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고개를 숙인 채 흐느끼듯 죄송하다는 말만 연신 내뱉는 박환영을 붙잡아, 일으켜 세웠다.

니 책임이 아니라고.

너는 최선을 다했다고.

그렇게 축 늘어진 박환영의 두 어깨를 다독여 주고, 발인이 끝난 이른 새벽.

옅게 낀 안개를 헤치고 반짝이는 강가에 손자의 유골을 흩뿌려 줬다.

하병춘은 박환영을 용서했다.

아니, 애초에 용서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최선을 다한 후배에게 격려는 해 주지 못할망정, 실패를 탓할 수는 없지 않은가.

흩날리는 유골 가루와 함께 마음속에서 손자를 떠나보냈다.

아니, 떠나보냈다고 생각했다.

분명히 그렇게 생각했는데…….

불 꺼진 성명병원의 병원장실.

책상 의자에 홀로 앉은 하병춘의 두 눈에서 끊임없이 눈물이 흘러 내렸다.

* * *

“선택 잘 하신 겁니다, 아버지.”

“…….”

오성춘의 말에도 오길태는 입을 다문 채 침묵을 지켰다.

“지금 상황에서 최선의 선택이었습니다.”

“…뭐가 최선의 선택이라는 거냐?”

“병원 이미지에는 제법 타격이 크겠지만, 그 정도면 싸게 먹히는 것 아니겠습니까?”

“…….”

“병원장 자리야 지금 당장이라도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줄을 서 있습니다. 버리기로 작정한 카드라면, 뽕을 뽑아야지요?”

“…….”

“아마 할아버지도 만족하실 겁니다. 최소한 이 건으로 내쳐질 일은 없겠죠. 아니, 이번 일로 할아버지께서 아버지를 다시 보게 될 수도…….”

“그만.”

오길태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너희 큰아버지 말, 잊었느냐? 아버지라면 이 정도쯤은 모두 예상하고 있었을 거다. 그리고… 그따위 것이 지금 중요한 게 아니지 않느냐?”

“…그럼 뭐가 중요한데요?”

“뭐?”

오길태가 멍한 표정으로 반문했다.

“아버지는 지금 단순히 영철이 때문에 이러시는 것 아닙니까?”

“너…….”

“사소한 인간의 정에 휘둘리면 명성의 주인이 될 수 없다고, 아버지가 항상 입버릇처럼 말씀하셨지요.”

“…….”

오길태가 꿀 먹은 벙어리라도 된 것처럼 입을 다물었다.

“그런 아버지가, 지금 사소한 인간의 정에 휘둘리고 계십니다.”

말을 마친 오성춘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버지가 하지 못하시겠다면, 뒷마무리는 제가 하겠습니다.”

오성춘이 꾸벅 고개를 숙이고는 몸을 돌렸다.

“내일 바로 기자회견 준비하겠습니다. 늦어질수록 좋을 게 하나도 없으니까요. 그럼…….”

이윽고 오성춘이 출입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콰당!

그리 세게 닫지 않았음에도 출입문이 닫히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오길태의 귀에 박혀 들었다.

“빌어먹을…….”

홀로 남은 오길태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었다.

* * *

아래층으로 빠르게 걸음을 옮기는 도윤의 눈앞에 낯익은 홀로그램이 떠올랐다.

[‘성명병원에서 일어난 심장이식수술의 진실을 밝혀라!’ 퀘스트가 생성되었습니다.]

[퀘스트 보상: 레인보우 주사위 1개]

상당히 오랜만에 보는 홀로그램임에도, 도윤은 그것을 제대로 쳐다보지도 않고 지워 버렸다.

지금 상황에서 퀘스트 하나, 주사위 하나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잘만 하면 명성에 크게 한 방 먹여 줄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도윤이 병원 승강기에 오르자, 윤만석이 재빨리 뒤따라 올랐다.

“무슨 생각이야?”

“뭐가요?”

“지금 수술 집도의를 만나서 뭘 어쩌겠다고?”

“물어봐야죠. 그날 있었던 일을.”

도윤의 말에 윤만석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물으면? 심장 가져다 열심히 수술했다고 하겠지. 지금 그 의사를 만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어?”

“아까 그 공의님이 말씀하셨잖아요.”

윤만석이 고개를 갸웃한다.

“공의? 무슨 말?”

“수술을 집도한 박환영 의사가 명성의 사람이나 다름없다고.”

순간 윤만석이 눈을 크게 뜬다.

“너, 설마…….”

“…….”

입을 다문 채 침묵을 지키는 도윤을 보며 윤만석이 말을 잇는다.

“박환영이가… 공범일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

무언은 긍정의 또 다른 대답이라고 했던가?

여전히 침묵을 지키는 도윤을 보며 윤만석이 허탈한 웃음을 터뜨렸다.

“설마. 한 분야의 정상에 있는 의사가, 뭐가 아쉬워서…….”

땡.

윤만석이 말을 잇고 있을 때, 짧은 기계음과 함께 승강기가 1층에 도착했다.

도윤이 승강기 밖으로 걸음을 옮기며 입을 열었다.

“수사는 작은 의심에서부터 시작된다.”

도윤의 말에 윤만석이 멈칫한다.

그런 윤만석을 향해 도윤이 씨익 웃으며 말을 잇는다.

“검사한테 ‘설마’라는 말이 어디 있어요?”

말을 마친 도윤이 조금씩 멀어져 감에도 윤만석이 멍한 표정을 지은 채, 굳은 듯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잠시 후, 승강기 문이 닫히려고 하자 정신을 차린 윤만석이 재빨리 열림 버튼을 눌렀다.

“나참, 누가 선배고 누가 후배인지…….”

윤만석이 기분 좋은 웃음을 터뜨렸다.

* * *

한 사무실 앞에 선 도윤이 깊은 숨을 들이마셨다.

1층에 있는 원무과 직원에게 알아본 결과, 오늘 오후에는 박환영의 수술 집도 계획이 더 이상 없었다.

뿐만 아니라 현재, 개인 사무실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는 얘기도 들었다.

바로 눈앞의 이 문 너머에, 어쩌면 도윤의 목표를 향한 첫 번째 단추가 숨겨져 있을지도 모른다.

잠시 주먹을 꽈악 말아 쥔 도윤이 뒤를 돌아본다.

“선배님.”

“응?”

“이번 일은 저한테 맡겨 주실 수 있으십니까?”

“그게 무슨…….”

도윤이 출입문을 가리키며 말한다.

“저 혼자 다녀오겠습니다.”

“…….”

윤만석이 입을 다문 채 침묵을 지키자 도윤이 품 안에서 무언가 꺼내 들었다.

정사각형의 녹음기였다.

“혹시나 수사의 단서가 될 만한 내용은 이쪽에 모두 담길 테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가 미처 묻지 못한 부분이 있으면, 선배님이 따로 다시 한 번 만나셔도 되고요.”

“…….”

“그러니까… 이번 일은 저한테 맡겨 주시겠습니까?”

윤만석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무슨 꿍꿍이인지는 모르겠지만, 유능한 후배님이 혼자 만나 보시겠다는데 그걸 내가 막을 명분은 없지. 애초에 나는 박환영이를 만날 생각도 안 하고 있었는데.”

도윤의 표정이 밝아졌다.

윤만석이 손을 휘휘 저었다.

“들어가 봐. 앞에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도움 필요하면 바로 부르고.”

“감사합니다!”

도윤이 깊게 허리를 숙였다.

이내 허리를 바로 편 도윤이 곧장 출입문을 두드렸다.

똑, 똑.

아무런 반응이 없다.

도윤이 조금 더 힘을 줘 문을 두드렸다.

똑, 똑, 똑.

“예~”

이윽고 문 안쪽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도윤이 문고리를 붙잡았다.

그리고 그대로 출입문을 열어젖혔을 때.

창가에 서 있던 중년 사내와 도윤의 눈이 마주친다.

흰 가운이 상당히 잘 어울리는 온화한 인상의 사내였다.

재빨리 주머니에 넣어 둔 녹음기의 재생버튼을 누른 도윤이 지체 없이 ‘심문의 달인’ 스킬을 사용한다.

[스킬 사용에 실패하였습니다!]

‘젠장.’

도윤이 속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무슨 일이시죠?”

온화한 인상의 사내, 박환영의 물음에 도윤이 품 안에서 공무원증을 꺼내 든다.

“서울중앙지검 강도윤 검사입니다. 박환영 과장님, 맞으십니까?”

도윤의 말에 잠시 멈칫한 박환영이 이내 옅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제가 박환영이 맞습니다.”

“잠시 시간 괜찮으실까요?”

“물론이죠.”

대화를 나누는 도중에도 도윤은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심문의 달인 재사용 대기시간까지 약 5분.

최대한 시간을 끌어야 했다.

“작년 여름, 어린아이의 심장이식 수술을 집도하신 적이 있습니까?”

도윤의 물음에 잠시 고민하는 듯하던 박환영이 대답한다.

“작년 여름이라면… 석태 얘기를 하시는 거군요.”

‘석태?’

생소한 이름에 도윤이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개명을 했던가?’

“석태요? 혹시 성이…….”

“하씨입니다만… 아무것도 모르고 오셨습니까?”

도윤의 반응에 오히려 박환영이 의문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하석태라고? 망치파로부터 수집한 정보를 종합해 보면 하석태가 아니라 분명히…….’

도윤이 마음속에 있는 의문을 그대로 입 밖으로 냈다.

“하석태? 아이의 성이 오씨가 아니라 하씨라구요? 수술을 집도한 아이의 이름, 오영철이 아닙니까?”

도윤이 말을 마친 순간, 박환영의 모든 동작이 거짓말처럼 일시에 딱 하고 멈췄다.

“…오영철이요? 그건 누구죠?”

말을 하는 박환영의 오른쪽 눈가가 잘게 떨리기 시작한다.

‘숨기는 게 있다!’

이때까지만 해도 도윤은 알지 못했다.

박환영의 입에서 상상도 할 수 없는 충격적인 말들이 쏟아져 나올 것이라는 것도, 그 때문에 명성을 더욱 증오하게 될 것이라는 것도.

불과 수십 분 전의 도윤은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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