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화 기자회견
일단 마음을 먹은 오길태의 행동은 상당히 빨랐다.
냄새를 맡은 언론사들로부터 쉼 없이 걸려 오는 전화들.
그런 언론사들을 향해 당일 오후, 긴급 기자회견을 예고한 것이다.
그리고 긴급 기자회견 1시간 전, 성명병원 원장실.
“결심이 섰소?”
“…….”
오길태가 조용하지만 분명히 들릴 만한 목소리로 물었음에도, 하병춘은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그런 하병춘을 바라보며 오길태가 말을 잇는다.
“생각 잘 하시오. 병원장의 말 한마디에 따라 수많은 사람이 직장을 얻을 수도, 잃을 수도 있는 거요.”
“…….”
“검찰에 있는 우리 쪽 라인도 최대한 빨리 돌려 볼 테지만… 아마 심장이식수술 건 말고는 다른 건의 증거는 찾지 못할 거요.”
“…그건 왜요?”
오길태가 말을 마치자 지금까지 입을 다물고 있던 하병춘이 물었다.
“…증거 따위는 남기지 않았으니까.”
오길태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말 그대로였다.
심장이식수술에 대한 차트 외에 다른 증거는 남기지 않았다.
그 심장이식수술에 대한 차트마저도 병원장인 하병춘이 확인할 것을 우려하여, 혹시나 하는 마음에 비치해 둔 것이었다.
뒤가 구린 일을 하면서, 증거 따위를 남길 리가 있겠는가?
직접 확인해 보지는 않았지만, 아랫놈들에게 두 번이고 세 번이고 신신당부했다.
자신의 말 한 마디면 마누라 팬티라도 가지고 뛰어올 놈들이니, 실수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검찰이 병원 전체를 털어도, 다른 증거는 발견하기 힘들다.
자신의 말에 하병춘이 아무런 대답이 없자, 오길태가 잠시 병원장실 내부를 둘러본다.
“듣기로… 손자가 이 공간을 상당히 좋아했다지요?”
손자 얘기가 나오자 하병춘이 잘게 몸을 떨었다.
오길태가 과거를 회상하듯 말을 잇는다.
“처음 그 아이를 봤을 때가 떠오르는군요. 아마 병원장이 이 병원에 처음 병원장으로 부임할 때였지요?”
여전히 몸을 떨고 있는 하병춘을 보며 오길태가 계속 말한다.
“참 귀여운 아이였지요. 병원장이 된 당신을 보며, ‘우리 할아버지 이제 사장님이야? 그럼 여기가 사장님 방이네!’ 하며 방방 뛰어다니던 게 바로 엊그제 같은데…….”
“…….”
“이런 큰 병원이 진짜 할아버지 병원이냐고 하던 것도…….”
“그만!”
하병춘이 일그러진 얼굴로 소리쳤다.
“그만하시오.”
흐느끼듯 중얼거리는 하병춘을 잠시 바라보던 오길태가 말한다.
“…내가 아픈 기억을 건드렸군. 사과하지.”
짧게 고개를 숙인 오길태가 홱 하고 몸을 돌렸다.
“…아시다시피 나도 병원장의 손자만 한,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늦둥이 아들이 하나 있소. 병원장의 마음, 누구보다 잘 이해합니다.”
“…….”
“명성이 아닌, 병원장 하나만 바라보고 있는 아래층의 수많은 직원을 생각해 주시오.”
“…….”
고개를 숙인 채 온몸을 떨고 있는 하병춘을 보며 오길태가 마지막 말을 잇는다.
“…부디 손자가 좋아했던 이 공간, 이 병원만이라도 지켜 주길 바라겠소.”
이윽고 오길태가 출입문 밖으로 사라지자, 홀로 남은 하병춘이 소리 죽여 흐느끼기 시작했다.
* * *
긴급 기자회견은 마포구에 있는 명성호텔 1층 로비에서 진행되었다.
오길태는 가능하면 명성의 호텔이 아닌, 성명병원 로비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싶었지만 유동 인구가 워낙 많아 어쩔 수 없었다.
아예 명성과 관련이 없는 장소에서 기자회견을 가질 수도 있었지만, 구태여 그러지는 않았다.
‘의문은 확실히 해소시켜 주는 편이 나을 테니까.’
단상에 선 오길태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벌레 같은 놈들…….’
오길태가 미간을 찌푸리며 정면에 몰려든 기자들을 응시한다.
기자들이란 참 귀찮은 존재다.
조그마한 가십거리라도 발견하면, 죽을 둥 살 둥 달려들어 물어뜯는다.
마음 같아서는 모조리 찍어 눌러 버리고 싶지만, 그럴 수도 없다.
언론사의 힘은, 일개 재벌가가 완전히 무시할 정도로 만만한 것이 아니었으니까.
‘그 유명한 독재자들도 정권을 붙잡아,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언론 장악이니까. 그나마 다행인 점은…….’
오길태가 힐끔 기자 무리 사이에 보이는 몇몇 익숙한 얼굴들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오길태와 시선이 마주친 기자들이 가볍게 눈인사를 건네 왔다.
마주 눈인사를 건넨 오길태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시선을 돌렸다.
명성의 돈을 먹은 기자들.
혹은 명성에게 도움을 받은 적이 있는 기자들이 이번에 명성을 도울 것이다.
온갖 악의적인 기사들 속에 저기 있는 기자들의 기사가 명성을 옹호할 것이다.
그거면 충분하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여론이 완전히 돌아서는 것만 막으면 된다.
조금의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자연스럽게 잊힐 테니까.
잠시 후, 성명병원의 병원장 하병춘이 느릿느릿한 걸음으로 단상에 오르기 시작했다.
그 순간, 기다렸다는 듯 기자들의 플래시 세례가 단상으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찰칵, 찰칵, 찰칵, 찰칵, 찰칵.
기자들을 향해 힘없는 몸짓으로 허리를 숙인 하병춘이 준비된 의자에 앉았다.
그와 동시에 명성에서 나온 사회자가 기자회견의 시작을 알렸다.
“…….”
사회자가 기자회견의 시작을 알렸음에도, 자리에 앉은 하병춘이 한참이나 아무런 말이 없자 기자들이 술렁이기 시작한다.
결국, 궁금증을 참지 못한 기자 중 한 사람이 번쩍 손을 들었다.
“중심일보의 유현진입니다! 무슨 말씀이라도 해 주시죠!”
중심일보를 시작으로 각 언론사의 질문 세례가 하병춘을 향해 쇄도한다.
“동향신문의 민광현입니다! 성명병원에서 불법 장기수술이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말이 사실입니까?”
“단명신문의 성현종…….”
“MSN의…….”
로비 내부가 기자들의 목소리로 가득 찼다.
이윽고 사회자의 통제조차 무의미하게 되었을 때.
하병춘이 입을 열었다.
“…안녕하십니까. 성명병원의 병원장, 하병춘입니다.”
하병춘의 목소리가 스피커를 타고 로비 내부에 구석구석 울려 퍼지자, 거짓말처럼 조용해지기 시작한다.
그런 기자들을 잠시 바라보던 하병춘이 한차례 입술을 꽈악 깨물었다.
이내 무언가 결심한 듯 하병춘이 천천히 말을 잇는다.
“저희 성명병원에서 불법 장기수술이 이루어졌다는 것은…….”
몇몇 기자들이 꿀꺽 침을 삼켰다.
“…사실입니다.”
찰칵, 찰칵, 찰칵, 찰칵, 찰칵.
드문드문 터지던 플래시 세례가 엄청난 속도로 터져 나왔다.
하병춘의 말에 기자들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었다.
“사실이라구요? 성명에서 불법 장기매매에 가담했다는 뜻입니까!?”
흥분해 또 다른 질문 세례를 쏟아붓는 기자와.
“이런, 미친…….”
조용히 욕지거리를 내뱉는 기자.
표현 방식은 제각각이었지만 기자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표출하고 있는 감정은 하나였다.
분노.
대한민국 최고의 병원 중 하나라는 성명이, 조직폭력배와 손을 잡았다.
뿐만 아니라 같은 인간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중범죄까지 저질렀다.
격양된 기자들의 반응을 바라보던 하병춘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성명에서 불법 장기매매에 가담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기자들이 조용해지기 시작한다.
“전적으로 모든 책임은… 저 하나에게 있습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만약 불법 장기매매가 사실이라면 병원장님 하나만으로는 책임이…….”
“아니오.”
한 기자의 말을 하병춘이 짧고 단호한 목소리로 끊었다.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불법 장기매매는 사실이 아닙니다. 손자를 살리고자 하는 마음에, 오로지 제 독단적인 지시로 수술이 진행되었습니다. 수술을 직접 집도한 의사조차, 이 장기의 입수 경로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하병춘의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손자인 하석태가 심장병을 앓고 있었던 이야기.
결국 치료법을 찾지 못했다는 이야기.
그리고…….
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자신이 직접 장기 밀매범에게 의뢰하여, 손자의 심장을 이식하게 되었다는 이야기까지.
하병춘의 말이 절정에 달했을 때,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플래시 세례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이상입니다. 오늘 제가 직접 검찰에 출석하여, 사건에 대한 모든 것을 진술할 예정입니다. 죄송합니다.”
이윽고 말을 마친 하병춘이 자리에서 일어나 깊게 허리를 숙였다.
그와 동시에 사회자의 기자회견을 마친다는 목소리가 로비 내부에 울려 퍼진다.
“딱 한 가지만 묻겠습니다!!!”
하병춘이 몸을 돌린 순간, 기자들 사이에서 우렁찬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자신에게 집중되는 시선을 느끼며, 그 기자가 입을 열었다.
“단명의 성현종입니다! 딱 한 가지만 묻겠습니다!”
자신을 성현종이라 밝힌 기자가 단상 옆에 서 있는 오길태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말을 잇는다.
“개인적으로 하병춘 병원장님에 대해 조금 알고 있습니다. 아무리 대한민국 최고의 병원장이라지만, 병원장님의 평소 행보를 봤을 때 조폭과 어떤 연줄이 있었다고는 믿기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묻고 싶습니다.”
성현종의 시선을 느낀 오길태가 움찔 몸을 떨었다.
“명성은, 이번 일과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까?”
단상 뒤에서 비릿한 미소를 입에 문 채 사태를 관망하던 오성춘이 기자의 말에 발끈한다.
“저 미친 새끼가…….”
씹어 내뱉듯 욕지거리를 중얼거린 오성춘이 단상에 오르려는 순간, 딱 하고 오길태와 눈이 마주친다.
조용히 고개를 젓는 오길태를 본 오성춘이 제자리에 멈춰 섰다.
오길태가 눈짓으로 하병춘을 가리키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여기서는 늙은이가 마무리하는 게 낫겠지.’
다시 여유로운 표정으로 돌아온 오성춘이 단상을 바라보고 있자, 하병춘이 입을 열었다.
“명성은…….”
성현종의 간절한 눈빛을 잠시 바라보던 하병춘이 이내 마지막 말을 잇는다.
“…이번 일과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찰칵, 찰칵, 찰칵, 찰칵, 찰칵.
“이상 기자회견을 마치겠습니다!”
하병춘이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자 사회자가 큰 목소리로 외쳤다.
그와 동시에 기다렸다는 듯, 단상을 향해 재빨리 걸음을 옮긴 오길태가 말한다.
“오길태입니다. 성명병원의 대표이사이자, 명성의 사람으로서 이번 일에 큰 책임을 통감하며, 향후 그룹 차원에서 검찰의 수사에 적극 협조하도록 하겠습니다.”
말을 마친 오길태가 한차례 깊게 허리를 숙이고 몸을 돌렸다.
단상 밑에서 그런 오길태를 바라보는 오성춘의 비릿한 미소가 한층 짙어진다.
‘끝났군.’
* * *
“개자식아!!!!!!!”
도윤이 박환영에게 달려들어 와락 멱살을 틀어쥐었다.
‘심문의 달인 스킬 사용에 성공하였습니다.’라는 홀로그램이 눈앞에 떠오른 것이 10분 전.
그 10분 동안 모든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된 도윤의 두 눈에 핏발이 섰다.
“그럼… 그럼, 대체 그 10살밖에 안 된 어린아이의 심장은… 대체 왜!!!!”
“그야, 심장이 비어 있으면 이상하잖아?”
“뭐?”
“나는 그냥 적당한 심장 하나 구해 오라고 지시했을 뿐이야. 그 뒷얘기는 조폭들한테서 들은 거고.”
박환영이 아무런 표정이 드러나지 않는 얼굴로 말을 잇는다.
“걔내들이 그러더라고. 5살도 채 안 된 어린애들 심장은 구하기가 힘들다고. 나이가 너무 어려서 항상 주변에 부모나 보호자가 붙어 있으니까. 그래서 10살짜리 애를 타깃으로 삼은 거야. 하교 시간만 잘 노리면 손쉽게 작업할 수 있을 테니까.”
도윤의 숨소리가 점차 빨라지기 시작한다.
“육안으로 확인하면, 유아기 애들 심장이나 초등학생 심장이나 큰 차이는 없거든.”
“미친 새끼!”
흥분한 도윤이 주먹을 등 뒤로 힘껏 잡아당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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