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화 약도 치고, 투자도 하고
성명병원 병원장의 ‘불법 장기수술’ 자백으로 대한민국 전체가 충격에 빠져든 지 반나절이 채 지나지 않아, 언론계에는 또 한 번 엄청난 충격이 휘몰아쳤다.
아니,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충격이었다.
성명병원에서 일어난 불법장기수술은 모두 명성그룹의 오너 일가이자, 성명의 대표이사 오길태의 지시였다!
뿐만 아니라, 성명병원 병원장의 기자회견 또한 오길태가 그 죄를 은폐하기 위해 벌인 자작극이었다는 소문이 언론계에 돌기 시작한 것이다.
하병춘의 기자회견 소식을 전해 듣고 격분한 윤만석이 검찰 쪽 기자들에게 의도적으로 정보를 흘린 것이었다.
메인 페이지를 장식할 특종의 냄새를 맡은 각 언론사에서는 그 소식을 접한 즉시, 발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기자들에게 시간은 곧 실적이다.
특정 기삿거리에 대해 얼마나 정확한 정보를 수집할 수 있는가.
다른 경쟁 언론사보다 얼마나 빨리 정보를 수집하여 기사를 낼 수 있는가가 기자의 능력을 측정하는 척도다.
눈에 불을 켠 기자들이 하나둘 부산 동부지청 앞으로 모여들기 시작하더니, 1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인산인해(人山人海)를 이루기 시작했다.
윤만석의 지시에 따라 미리 1층 로비에서 대기하고 있던 수사관들과 실무관들이 그런 기자들을 맞이한다.
“정태야, 오랜만이야! 응?”
“김 실무관! 부장검사님실로 자리 옮기더니, 더 이뻐진 것 같아?”
“듣자 하니 이거 검찰 쪽에서 나온 정보라며? 내가 나중에 한잔 살게. 나 도와주는 셈치고 진짜 한 번만 살려 줘라, 요즘 힘들어.”
평소 안면이 있는 수사관이나 실무관에게 재빨리 다가간 기자들이 연신 손바닥을 비벼 댔다.
반면에.
“아, 진짜. 정 기자님, 아직 수사 중인 거 함부로 얘기 못 하는 거 아시잖아요.”
“언론 창구는 모두 자신한테 일원화하라는 우리 부장검사님 지시가 있었습니다.”
“술 그냥 제가 살게요. 아시는 분이 정말…….”
기자들과 검찰청 직원들 간의 실랑이는 수 시간 동안 계속되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박환영과 오길태에 대한 윤만석의 공소제기 소식은 언론을 통해 세상에 빠르게 퍼져 나갔다.
* * *
‘부산 동부지청, 성명병원 대표이사 오길태 기소!’
‘검찰, 명성을 향한 칼날 빼 들었나?’
‘성명병원 병원장, 사실은 최대 피해자! 불법장기수술의 진실은?’
신문을 쥐고 있는 오춘화 회장의 손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한다.
“오창원이.”
씹어 내뱉듯 중얼거리는 오춘화의 말에 옆에 서 있던 장남, 오창원이 흠칫한다.
“…예, 회장님.”
“오길태, 그 빌어먹을 놈은 지금 어디서 뭘 하고 있지?”
잠시 머뭇거리던 오창원이 대답한다.
“…바깥 활동을 자제하고, 집 안에 틀어박혀 칩거 중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더불어, 초호화 변호인단을 구성하고 있다는 뒷말은 삼켰다.
아버지, 오춘화라는 인물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뻔히 예상되었기 때문이다.
“쓸모없는 놈!!”
파라라락!
오춘화 회장이 손에 쥔 신문지를 거칠게 집어던졌다.
한참을 씩씩거리던 오춘화 회장이 가라앉은 눈빛으로 오창원을 돌아본다.
“언론은?”
오창원이 흠칫 몸을 떨었다.
자신의 아버지, 오춘화 회장의 이런 점이 무섭다.
분명 그룹 차원에서도 큰 위기 상황이고, 속이 뒤집어질 정도로 화가 날 텐데, 누구보다 빨리 다음을 생각한다.
철혈(鐵血)의 거인(巨人).
오춘화 회장과 이렇게 잘 어울리는 별명이 있을까?
“이미 손써 뒀습니다.”
“주 라인뿐만 아니라, 동원할 수 있는 기자란 기자는 모조리 동원해. 명성의 돈을 먹은 놈들부터, 명성의 줄을 이용한 놈들까지. 이번 기회에 밥값 한번 제대로 하라고 얘기하란 말이야.”
“확실히 처리하겠습니다.”
오창원의 대답에 손가락으로 책상을 톡톡 두드리며 생각에 잠겨 있던 오춘화 회장이 말을 잇는다.
“그리고.”
“…….”
“이번 사건 관할권이 부산 동부라고 했나?”
“예, 맞습니다.”
“지금 부산지검장이 누구지?”
미리 준비라도 한 듯 오창원이 곧바로 대답한다.
“이준석 지검장입니다.”
“이준석?”
고개를 갸웃한 오춘화 회장이 반문한다.
“설마 내가 아는 그 이준석?”
“예, 회장님.”
오창원의 대답에 순간 오춘화 회장의 표정이 밝아진다.
“큭, 지금 총장은 워낙 완고한 놈이라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부산지검장이 이준석이라…….”
잠시 말끝을 흐리던 오춘화가 비릿한 미소를 짓는다.
“혹시 모르니까, 핫라인 연결해서 총장 쪽에도 연락은 넣어 놔. 그리고…….”
벽에 걸린 달력을 힐긋 본 오춘화가 말을 잇는다.
“이번 주 내로 이준석이는 나랑 한번 보자고 해. 건우는 내가 시킨 일 때문에 바쁘니까, 니가 직접 일정 잡아.”
박건우는 명성에서만 30년 이상을 일해 온, 오춘화의 충실한 심복이다.
오창원이 재빨리 대답한다.
“최대한 빨리 일정 잡도록 하겠습니다.”
“나가 봐.”
이어지는 오춘화의 축객령에 허리를 굽힌 오창원이 몸을 돌렸다.
“이준석이라…….”
개인 집무실에 홀로 남은 오춘화 회장의 미소가 한층 짙어진다.
* * *
우우웅, 우우웅.
한참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던 도윤이 옆에서 들려오는 진동 소리에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응. 알아봤어?”
“마! 내가 니 시다바리가!?”
수화기 너머의 호식이 어설픈 부산 사투리로 대답했다.
피식 웃음을 터뜨린 도윤이 말한다.
“내가 준 이자에 수고비까지 포함된 건데? 고작 몇 달 만에 빌려준 돈만큼 이자를 꿀꺽했으면서 너무한 것 아니야?”
“야! 안 받는다고 했는데, 니가 주겠다며! 근데 진짜 이 돈 갑자기 어디서 난 거냐?”
마크에게 투자하면서 호식에게 빌린 20억.
바로 엊그제, 이자까지 쳐서 갚아 준 참이었다.
물론, 그 돈의 출처는 월드컵 배팅 금액이다.
박판섭이 현금화까지 깨끗이 뒷마무리한 돈의 일부를 얼마 전 건네받았다.
일부라고 해도 그 돈은 1,000억 원에 육박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박판섭은 나머지 약 3,000억 원에 대한 작업을 하느라 정신이 없을 터였다.
‘그러게, 믿고 준비 좀 미리 해 둘 것이지.’
뭐 빠지게 고생하고 있을 박판섭을 떠올린 도윤이 짙게 미소 지었다.
“비밀. 그래서 기자님은?”
“그럼 나도 비밀.”
도윤이 미간을 찌푸렸다.
“나중에 얘기해 줄게. 나 지금 바빠.”
“아주 지가 갑이네, 사장님이 따로 없네.”
작게 투덜거린 호식이 말을 잇는다.
“그런데… 니가 알아봐 달라고 부탁한 기자님, 정말 아는 사람 맞아? 니 얘기 하니까 전혀 모르던데?”
“벌써 연락도 했어?”
“배영준 기자, 맞지? 우리 회사에 있는 직원이랑 잘 아는 사이라서 바로 연락해 보더라고. 니 이름도 처음이라더라.”
당연히 알 리가 없다.
배영준 기자는 도윤의 회귀 전 인연이었으니까.
도윤이 한참 형사 생활을 하고 있을 무렵, 경찰서에 날마다 들락거리던 중년 기자.
일반적으로 일부 큰 사건들을 제외하고, 평소 경찰서에 들락거리는 경찰 기자들은 초임이거나 경력이 없는 기자들이 대부분이다.
줄도 없고, 짬도 안 되는 기자들이 기삿거리 하나라도 건지기 위해 인근 경찰서를 배회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배영준 기자는 아주 특이했다.
기자 경력이 20년을 넘어서 짬이 되지 않는 것도 아니었고, 나이도 마흔을 훌쩍 넘었다.
그런 기자가 초임들이나 들락거리는 경찰서를 배회하니, 도윤도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워낙 고집이 강하고 자기 입맛대로 기사를 써내다 보니 위에서 내쳐지다시피 한 인물이었다.
자신의 기사를 쓰는 데 거리낌이 없는 인물.
다른 어떠한 가치보다 자신의 소신과 생각대로 기사를 쓰는 데 가장 큰 가치를 두는 인물.
여러 가지로 도윤과 죽이 잘 맞아, 결국 절친한 친구 사이까지 되었던 인물.
배영준을 떠올린 도윤이 옅게 미소 지은 채 입을 열었다.
“잘됐네. 약속만 좀 잡아 줄래?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다고.”
“뭐, 본인이 거부하지 않으면 그 정도야 어렵지 않지. 그런데 기자 경력도 얼마 안 되는 사람을 왜……?”
“약을 좀 쳐야 되거든.”
“약?”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반문하는 호식의 목소리를 들으며, 도윤의 미소가 한층 짙어진다.
일이 터졌을 때, 재벌들이 하는 사후 조치야 뻔하다.
그것을 대비한 약.
코끼리마저 한 방에 잠재울 수 있는 강력한 약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배영준이라는 카드는 도윤이 알고 있는 가장 강력한 카드다.
“아참!”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호식이 짝 하고 손뼉을 쳤다.
“너, 진짜 거기 투자할 거야? 난 진짜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니까?”
“뭐가?”
“자꾸 돈이 목적이 아니라고 하면서도, 수백억이나 되는 돈을 자산 기부가라도 되는 것처럼 쏟아붓고 있잖아!”
“…….”
“너, 설마 이 돈 전부 그 코쟁이한테 투자해서 받은 돈은 아니지? 그런 소식은 없었는데…….”
호식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피식 웃음을 터뜨린 도윤이 묻는다.
“그래서 투자는 했어?”
“인지도에 비해 워낙 자본력이 좋은 곳이라 다 때려 박지는 못했지만, 일단은…….”
“잘했네.”
“근데 이거 진짜 아니야, 지금 인터넷 한번 켜 봐. 전부 다엄 아니면 야호, 메일도 10명 중에 1명이 함메일 쓰지. 누가 이 사이트를 이용해?”
“…….”
“차라리 라이코스에다가 투자를 하든가. 지금 애기들, 거기 있는 디지몽 게임에 환장을 하더라.”
“…….”
“배경 화면도 진짜 촌스러움. 이건 뭐 그리스 로마 신화 만화책에나 나오는 헤르메스 모자도 아니고…….”
“그거 헤르메스 모자 맞아.”
도윤의 대답에 호식이 입을 다물었다.
“…진짜 여기 100억 이상 투자할 거야?”
“더 많이 투자할 수 있으면, 더 해도 좋고.”
“…….”
“날 믿어.”
‘내 기억을 믿어, 가 맞으려나?’
속으로 중얼거린 도윤이 낮게 웃음을 터뜨렸다.
저 커다란 야호가 한국에서 발을 뺄 것이라는 말을 과연 누가 믿을까?
작은 폭으로 성장하던 이 사이트가 2002년, 올 연말부터 폭발적인 성장을 보일 것이라는 사실을 누가 믿을까?
그리고…….
훗날 여러 권력자들의 댓글 조작 지시, 그 핫 플레이스가 될 것이라고 누가 상상이나 하겠는가?
“자세한 얘기는 조만간 날 잡아서 만난 뒤에 얘기해 줄게. 오랜만에 소고기 한 번 먹자.”
“나 요즘 사건 많이 들어와서 바쁘거든?”
“…….”
잠시 침묵을 지키던 도윤이 말한다.
“소고기 받고, 2차 노래방까지.”
“…콜.”
‘단순한 놈.’
피식 웃은 도윤이 말한다.
“그럼, 다시 연락할게. 고맙다.”
“약속한 거나 제대로 사셔.”
통화 종료 버튼을 누른 도윤이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
“다음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린 도윤이 주머니에서 무언가 꺼내 들었다.
오색빛깔, 찬란하게 빛나는 주사위.
박환영과의 대화가 모두 끝나고 나서 받게 된 퀘스트 보상.
상당히 오랜만에 보는 주사위임에도, 이제는 익숙한 듯 손안에서 이리저리 굴려 보던 도윤이 그대로 레인보우 주사위를 집어던졌다.
툭, 툭, 툭.
데구르르르르.
한참을 굴러가던 주사위가 이내 한쪽 벽면에 부딪히더니 그대로 멈춰 선다.
그리고…….
도윤의 방 안에 밝은 빛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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