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잡는 회귀검사-53화 (53/174)

53화 세상에 알려지다!

“…박봉준이, 사건 다시 윤만석이한테 넘겨줘.”

이준석의 말에 부산지검장실로 소환된 윤만석과 박봉준이 동시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예? 하지만……!”

“하지만?”

이준석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반문했다.

“너, 검사질 몇 년 차야?”

“…….”

“평소에는 쳐다보지도 못하는 지검장 말에 ‘하지만’? 너도 내가 우습게 보이나?”

검사들이란 이런 존재다.

당장 몇 시간 뒤를 걱정해야 할, 곧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놈이, 자존심 하나는 죽을 때까지 지킨다.

자존심 하나로 먹고사는 족속들.

심지어 검사직에서 물러난 이후에도 마찬가지다.

그런 사람들에게까지 고개를 굽실거리니, 전관예우(前官禮遇)니, 포스트잇 선임계니 이 따위 말들이 생기지 않을 수가 없다.

‘죽기 전에도 그런 인간이 하나 있었지.’

속으로 중얼거린 도윤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죄송합니다.”

박봉준이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그런 박봉준을 보며 이준석이 말을 잇는다.

“니가 할 수 있는 대답은 ‘예, 아니면 알겠습니다.’ 둘 중 하나야. 다른 대답은 필요 없어.”

“…예.”

이준석이 이번에는 윤만석을 돌아본다.

“…사건, 니가 받아서 해. 어디 한번 니가 원하는 대로 해 봐.”

솟아오르려는 광대를 억지로 누른 윤만석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단.”

“……?”

“검사 오래 할 생각이라면, 행동 하나하나에 조심, 또 조심해야 할 거야. 적법절차, 그거 꼭 지켜.”

이준석이 적법절차라는 말에 은근히 포인트를 주며 말한다.

“명심하겠습니다. 적법절차.”

이런 쪽으로는 눈치가 없는 윤만석이 마지막 말까지 따라하며 대답하자, 이준석이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강도윤이 빼고, 둘은 이만 나가. 지금 청사 앞에 소설 쓰기 좋아하는 글쟁이들, 진을 치고 있으니까 혹시나 정보 누설되지 않도록 주의하고.”

사실 지금 몰려든 기자들은 대부분 이번에 공개된 녹음 파일의 진실을 확인하기 위해 이준석을 만나고자 몰려든 것이다.

그 사실을 분명히 인지하고 있음에도 이준석이 뻔뻔한 표정으로 말했다.

“예.”

동시에 대답한 윤만석과 박봉준이 자리에서 일어난다.

윤만석이 힐끔 도윤에게 시선을 던졌다.

어떻게 된 것인지, 괜찮은 건지, 묻고 싶은 게 상당히 많은 눈치였다.

그 모습을 보며 도윤이 걱정하지 말라는 듯 편안한 미소를 지었다.

잠시 멈칫한 윤만석이 한차례 피식 웃더니, 이내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쿵!

작은 소음과 함께 윤만석과 박봉준이 지검장실을 빠져나갔다.

이제는 둘만 남은 사무실에 적막이 내려앉았다.

얼마간의 침묵이 계속되었을까?

이준석이 질끈 입술을 깨물었다.

‘내가 왜 그런 말을 했을까?’

도윤과 나눈 대화 내용이 언론에 공개되었을 때.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았던가?

분명히 눈앞의 이 새파란 신임 나부랭이에게 그런 얘기를 했던 기억은 있다.

그런데 나중에 그 녹음 파일을 듣게 되었을 때 자신이 왜 그런 미친 이야기를 했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신임이라서,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나?’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이야기다.

자신은 지검장, 그것도 서울 다음으로 막강한 파워를 자랑하는 부산의 지검장이다.

같은 검사라도, 급이 다르다.

신임 검사 따위는 감히 올려다볼 수도 없는 위치에 있다는 말이다.

‘아니, 아니야.’

이준석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자신의 가장 큰 장점이 무엇인가?

빈틈이 없다.

사소한 부분까지 하나하나 신경 쓰는 치밀함이 다른 사람뿐만 아니라 자신도 인정하는 가장 큰 장점이 아닌가?

“…하실 말씀 없으면 이만 일어나 보겠습니다.”

“앉아.”

이준석이 씹어 내뱉듯 중얼거렸다.

됐다.

이제는 자신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녹음 파일의 출처, 그 유력한 용의자가 눈앞의 새파란 애송이라는 사실이다.

분명 자신의 사무실에는 눈앞의 놈밖에 없었으니까.

“…너냐?”

“무엇 말씀이십니까?”

“시치미 떼지 마라. 녹음 파일을 언론에 흘린 것. 너냐고 물었다.”

도윤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웃어?”

이준석이 팍 하고 인상을 찌푸렸다.

“왈, 왈.”

욕지거리를 내뱉으려던 이준석이 멈칫한다.

마치 어디서 개가 짖냐는 듯 돌연 도윤이 개 짖는 소리를 냈기 때문이다.

“이 새끼가 미쳤…….”

“지검장님의 충실한 개가 되라고 하셨지 않습니까?”

“…….”

“설마, 제가 그런 짓을 했겠습니까? 지검장님께 감정이 있는 누군가가 음해한 것이겠죠.”

이준석이 다시 한 번 입술을 꽈악 깨물었다.

그런 이준석을 보며 도윤이 말을 잇는다.

“혹시 압니까? 지금 나누고 있는 이 대화들도 도청되고 있을지…….”

순간 이준석이 흠칫 몸을 떨었다.

물증은 없지만, 심증으론 분명히 눈앞의 애송이가 범인이 확실하다.

‘그런데…….’

마음은 그러한데, 몸은 본능적으로 굳어 버린다.

조금의 빈틈도 허용하지 않는 자신의 치밀한 성격이, 이럴 때는 정말 원망스럽다.

“빌어먹을…….”

이준석이 욕지거리를 내뱉고 있던 그 순간.

벌컥!

지검장실 출입문이 노크도 없이 열린다.

안 그래도 짜증이 있는 대로 나 있던 이준석이 홱 하고 고개를 돌려 고함친다.

“어떤 새끼야!”

“나다, 이 새끼야.”

“선, 선배…….”

일견 왜소한 체구에 상당히 유약해 보이는 50대 남성이 성큼성큼 걸어 들어온다.

대검 차장검사, 이용완이었다.

어느새 이준석의 코앞까지 다가온 이용완이 그대로 귀싸대기를 올려붙였다.

짜악!

경쾌한 소리와 함께 이준석의 고개가 홱 하고 돌아간다.

“병신 같은 새끼!”

“…….”

이준석은 돌아간 고개를 되돌릴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현 시간부로 넌, 부산지검장 자리에서 직위해제다. 당분간 집구석에 처박혀서 근신하라는 총장님 지시다.”

“……!”

이준석이 눈을 크게 떴다.

“선, 선배…….”

홱 하고 다시 고개를 돌린 이준석이 흔들리는 눈동자로 이용완을 바라본다.

“그렇게 쳐다봐도 소용없어.”

털썩!

“……!”

이준석의 돌발 행동에 이번에는 도윤이 눈을 크게 떴다.

저 자존심 강한 지검장이 무릎을 꿇은 것이다.

“선, 선배. 그거, 그거 나 아니야. 아직 아무것도 밝혀진 게 없는데 직위해제라니, 이런 법이… 이런 법이 어디 있어. 응? 이건 아니잖아.”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잇는 이준석을 보며 이용완이 한숨을 내쉬었다.

“총장님 성격 너도 알지? 당장 옷 벗긴다는 거, 그나마 시간이라도 벌어 둔 거다. 그동안 니 스스로 해결책 찾아내.”

“선배…….”

애처로운 눈빛으로 중얼거리는 이준석을 보며 이용완이 팍 하고 인상을 찌푸렸다.

“놔! 일이 이 지경인데 내가 무슨 힘이 있다고…….”

말을 잇던 이용완이 순간 도윤과 눈이 마주친다.

“…이 친구는?”

자리에서 일어난 도윤이 짧게 고개를 숙인다.

“강도윤입니다, 차장검사님.”

“…강도윤?”

도윤의 이름을 잠시 읊조리던 이용완이 순간 눈을 크게 뜬다.

“녹음 파일 주인공?”

“예.”

곧바로 긍정하는 도윤을 잠시 묘한 눈빛으로 바라보던 이용완이 말한다.

“잘됐군. 밖에 윤만석이랑 박봉준이도 있던데, 너도 나랑 같이 좀 가자.”

“예? 어디를…….”

“서울.”

“서울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반문하는 도윤을 보며 이용완이 마지막 말을 잇는다.

“총장님이 좀 보자고 하신다.”

“…….”

도윤의 눈이 더욱더 커지기 시작했다.

* * *

곧바로 서울로 출발한 도윤은 오후가 채 끝나기도 전에 대검찰청에 도착했다.

이용완이 타고 온 고급 승용 차량 덕분이었다.

차장검사쯤 되는 위치에 있으니, 관용차임에도 그 태가 남달랐다.

‘수행관의 운전 실력도 한몫했지만…….’

실없는 생각을 하던 도윤이 피식 웃으며 정면을 응시한다.

‘검찰총장실’

현재 윤만석이 저 안에 들어가 있는 상태다.

검찰총장은 마치 심문이라도 하듯, 한 사람씩 사무실 안으로 불러들였다.

박봉준은 가장 먼저 저곳에 들어갔다가, 일찌감치 부산으로 돌아갔다.

아마 검찰총장 입장에서는 박봉준에게 특별히 묻고 싶은 게 없었으리라.

도윤이 힐끔 손목시계를 바라본다.

‘벌써 1시간.’

윤만석이 들어간 지도 벌써 1시간이 훌쩍 지났다.

도윤이 따분한 표정으로 잡생각을 하고 있던 그때.

‘벌컥’ 하고 검찰총장실 출입문이 열렸다.

밖으로 나온 윤만석이 도윤을 보더니 옅게 웃으며 안쪽을 가리킨다.

“들어가 봐.”

“제가 피의자가 된 것 같은데요?”

윤만석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기다리신다. 갔다 와서 얘기하자.”

“예.”

고개를 끄덕인 도윤이 검찰총장실 안쪽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마침내 도윤이 검찰총장실 안으로 들어섰을 때.

얼굴 전체에 붉은빛이 감도는, 강인한 인상의 사내, 현 검찰총장 김관우와 마주했다.

‘무슨 인상이… 염라대왕?’

강렬한 첫인상에 도윤이 속으로 기겁하고 있을 때, 김관우가 옅게 미소 지으며 앞쪽을 가리킨다.

“편한 곳에 앉지.”

“아, 예. 총장님.”

상념을 털어 낸 도윤이 재빨리 대답하며 자리에 앉았다.

한참이나 관찰하듯 도윤을 바라보던 김관우가 잠시 후, 입을 열었다.

“듣기로… 성명병원 사건에 지대한 공을 세운 게 자네라고 들었는데.”

“아닙니다. 저는 딱히 한 게 없습니다.”

김관우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겸손도 하고.”

“…….”

도윤이 입을 다물었다.

그런 도윤을 보며 무언가 고민하는 듯하던 김관우가 말한다.

“만석이에게 듣기로는… 명성을 잡을 무기를 쥐고 있다고 하던데, 맞나?”

“예, 총장님.”

“혹시 지금 나한테 들려줄 수 있나?”

이 부분에서 도윤도 멈칫했다.

도윤은 현 시점의 검찰총장이 어떤 인물인지 잘 알지 못한다.

회귀 전 검찰 쪽에는 큰 관심도 없었을 뿐더러, 윤만석처럼 현 검찰총장이 특별한 업적으로 세상에 널리 알려진 것도 아니었다.

아마 정계나 다른 쪽에도 큰 욕심이 없는 인물이리라.

그런 현 총장을 믿을 수 있을까?

도윤이 힐긋 김관우의 가슴 한쪽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없다.’

악의를 나타내는 보랏빛도 없었고, 기쁨을 나타내는 푸른색도 없었다.

최소한 자신에게 악감정을 가지고 있는 인물은 아니라는 뜻이리라.

잠시 고민하던 도윤이 이내 고개를 끄덕인다.

“들려드리겠습니다.”

말을 마친 도윤이 주머니에서 녹음기를 꺼내 들었다.

곧바로 재생 버튼을 누르자 잠시 지지직거리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이내 도윤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최근에 심장이식 수술을 한 사실이 있나요?”

“있죠.”

“그게 누구죠?”

“오영철이라고, 우리 병원 대표이사님의 막내아들에게 심장이식 수술을 했어요. 날 때부터 고장 난 심장을 달고 태어난 아이인데, 그 상태로 몇 년 지나니까, 당장 심장이식을 받지 않으면 죽지 않을 지경까지 이르렀거든.”

이 부분에서 도윤의 목소리가 조금 낮아진다.

“…오영철, 그 애에게 이식할 심장은 어떻게 구했죠?”

이때까지만 해도 도윤은 불법 장기매매로 얻은 심장을 이식했다는 대답이 들려올 줄 알았다.

“심장, 그거 구하기가 참 힘들어요. 수요는 넘쳐 나는데 공급이 없거든. 더군다나 대한민국 전체를 뒤져도 수술이 필요한 사람에게 맞는 심장을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예요.”

그래서 불법 장기매매를 했다는 말이 나왔어야 한다.

하지만…….

“그런데 알고 보니 우리 병원장 손자의 심장이 완전 맞춤형 심장이었던 거야. 하늘에서 뚝 떨어졌나 싶을 정도로 꼭 맞았거든.”

박환영의 말은 계속 이어진다.

“문제는… 병원장 손자도 심장병이 있어서 폐급 심장이었다는 거지. 물론, 대표이사님 아들만큼은 아니고. 내 실력이면 5년은 더 살릴 수 있을 거라 판단했어요. 그래서…….”

박환영의 낮은 목소리가 이어진다.

“급한 대로 병원장 손자의 심장을 떼어 내, 영철이한테 이식한 거죠. 일단 시간만 벌어 놓으면, 명성의 힘으로 어떻게든 다른 심장을 구해 올 거니까.”

“개자식아!!!!!!”

녹음기에서 도윤의 욕지거리가 터져 나왔다.

그리고 이어지는 대화마저 완전히 끝나 재생이 종료되었을 때.

“윤만석이!”

김관우의 우렁찬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윤만석이 헐레벌떡 총장실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예, 예. 총장님!”

“지금 당장 박환영이랑 오길태 그 씹어 먹을 새끼들, 체포영장이랑 구속영장 청구해! 예의고 뭐고, 당장 잡아들여 와. 책임은 내가 진다.”

윤만석의 두 눈이 크게 떠졌다.

“알, 알겠습니다.”

김관우가 성난 표정 그대로 자신을 돌아보자, 도윤이 움찔 몸을 떨었다.

“강도윤이라고 했지?”

“예? 아, 예. 총장님.”

“해 오던 대로 옆에서 만석이 도와줘. 지검에는 내가 따로 얘기해 놓을 테니까, 다른 곳에 신경 쓰지 말고 저쪽에 집중해. 필요하면 특별 팀도 만들어 줄 테니까.”

김관우의 파격적인 말에 도윤도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예, 예. 총장님.”

“사회의 암세포 같은 새끼들… 이번 기회에 모조리 박멸시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김관우가 씹어 내뱉듯 중얼거렸다.

성난 걸음으로 출입문을 향해 걸어가던 김관우가 그대로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쾅!

커다란 소리와 함께 출입문이 닫히자, 커다란 총장실에 둘만 남은 도윤과 윤만석이 멍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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