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화 특검 결성, 박환영 체포
검찰총장인 김관우가 직접 나서자 사건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사건의 주 검사를 윤만석으로 지정했고, 비밀리에 특별검사 팀을 직접 꾸리는 한편, 내부 입단속은 철저히 지시했다.
그 세부적인 지시 내용을 살펴보면 도윤도 입이 쩍 벌어질 정도였다.
검사라고 모두 같은 일을 하는 것은 아니다.
수많은 법이 있고, 그보다 더 많은 수사 기법이 존재하는 만큼, 각 검사마다 전문 분야라는 것이 있다.
물론 30년 이상을 검찰 외길 인생을 살아온 김관우는 이러한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김관우는 윤만석을 주 검사로 지정하면서, 도윤 외에도 4명의 검사를 더 지정했는데, 그 면면이 하나하나 대단했다.
각각 금융계좌추적, 기업비리수사, 조폭수사, 의료분쟁수사 분야에서 국내 최고 전문가들을 투입시킨 것이다.
김관우의 지시가 떨어지자마자 네 사람은 각자 부여받은 임무를 수행하기 시작했고, 그사이 윤만석은 박환영에 대한 체포영장을 청구했다.
일반적으로 체포영장은 피의자가 검찰이나 경찰의 출석요구에 응하지 않거나, 응하지 않을 우려가 있을 때 발부된다.
전자의 경우에는 수사기관이 몇 번이고 피의자의 집에 출석요구서를 보냈다는 사실이 증명되어야 한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연쇄살인범이나 강도범 같은 강력범죄자들이 출석요구서를 받아 들고 순순히 출석할 리가 없다.
오히려 그 출석요구서를 받고, 수사가 진행 중이라는 사실을 알아채 도주할 확률이 매우 높다.
지도에도 제대로 표시되지 않는 마을 어귀에 숨어들거나, 해외로 도피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래서 만들어진 요건이 후자, 출석요구에 응하지 않을 우려가 있을 때 체포영장을 발부받을 수 있다는 요건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길태와 박환영은, 범죄의 중대성은 물론, 증거인멸의 정황까지 포착되는 것으로 봤을 때, 도주할 우려가 매우 농후하다.’라는 내용으로 윤만석이 박환영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받은 것이, 바로 1시간 전이다.
사실 이 정도면 영장 없이 긴급체포도 가능했지만, 세간에서 주목하고 있는 사건인 만큼 보다 확실한 것이 좋다.
그리고…….
콰당!
“뭐, 뭐야!?”
개인 사무실에서 한참 의료차트를 뒤적이고 있던 박환영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노크도 없이 사무실 출입문이 벌컥 열리더니, 일단의 무리가 우르르 몰려 들어온 것이다.
가장 앞쪽에 있는 사람은 박환영도 이미 알고 있는 인물이었다.
박환영이 부들부들 떨리는 손가락으로 정면을 가리켰다.
“너, 너는?”
“오랜만이네요?”
지목을 받은 도윤이 씨익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이 개새끼! 무슨 낯짝으로 뻔뻔하게 내 사무실에 발을 들여! 썩 안 꺼져!?”
“못 꺼지겠는데.”
도윤의 빈정거림에 발끈한 박환영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주거침입죄로 고소당하기 싫으면 다 나가! 김 간호사, 뭐 해!? 이 사람들 안 끌어내고! 너 이 새끼, 이거 엄연히 범죄야! 몰라!?”
문틈 사이로 어쩔 줄 몰라 하는 간호사들을 보며 박환영이 고함친다.
도윤이 픽 하고 웃음을 터뜨리며 작게 중얼거렸다.
“상종 못 할 범죄자 새끼가 범죄 운운하는 것도 웃기네.”
“뭐?”
“여기가 지네 집인 줄 아나, 주거침입은… 애꿎은 간호사님들한테 화풀이하지 말고, 우리 일 얘기나 하자고.”
“뭐, 뭐? 지네 집? 하자고?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새끼가 반말…….”
고래고래 고함치는 박환영에 아랑곳하지 않고 도윤이 입을 열었다.
“아~ 예나 지금이나 나는 이때가 제일 좋더라.”
“혼자 무슨 개소리를 지껄이는 거냐!?”
박환영의 말에 활짝 웃은 도윤이 손에 쥔 얇은 종잇장을 들어 올렸다.
가장 상단에 표시된 큼지막한 네 글자를 발견한 순간, 박환영의 눈이 찢어져라 부릅떠졌다.
“체… 체포영장?”
“하, 오랜만에 고지하려니까 설레네. 이 맛에 수사질 해 먹는다니까.”
작게 중얼거린 도윤이 손에 쥔 종잇장을 팔락이며 말을 잇는다.
“박환영 씨, 본 체포영장에 의거, 당신을 미성년자 납치 교사 및 불법 장기수술 혐의로 체포합니다. 변호사는 물론 그 썩어 넘치시는 돈으로 선임하실 수 있고요, 필요하시면 법원에 체포적부심도 청구하실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하실 말씀 있으신지?”
“씨발!!!!!!!!!!!!!!!”
박환영이 큰소리로 고함치며 눈앞에 있는 의자를 걷어찼다.
“체포영장? 웃기지 마! 그딴 걸 내가 인정할 것 같아? 뭐? 납치? 불법 장기수술? 증거 있어!?”
“인정 못 하시면 강제로 끌고 가야지. 그러라고 판사님이 발부해 주신 영장인데.”
도윤의 말에 양옆에 있던 수사관들이 앞으로 한 걸음 내디뎠다.
“오지 마, 개새끼들아!”
박환영이 바닥에 쓰러져 있던 의자를 집어 들었다.
그런 박환영을 향해 도윤이 느릿느릿한 걸음으로 걸어간다.
“그거 내려놔요. 그래도 의사씩이나 되는 양반이 가오가 있지…….”
“닥쳐, 이 새끼야!”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온 도윤을 향해 박환영이 들어 올린 의자를 집어 던졌다.
휙!
“이크!”
도윤이 정면에서 날아오는 의자를 몸을 낮춰 피했다.
머리 위를 스쳐 지나가는 의자를 느끼며, 도윤이 박환영을 향해 그대로 파고들었다.
“씹어 먹어도 시원찮을 새끼!”
욕지거리를 내뱉은 박환영이 도윤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어, 어?”
순간 박환영이 당혹감 어린 음성을 토해 냈다.
날아오는 주먹을 도윤이 그대로 어깨 위로 흘린 것이다.
도윤이 어깨에 걸쳐진 박환영의 손목을 왼손으로 야무지게 움켜잡았다.
그와 동시에 더욱 자세를 낮춘 도윤이 오른쪽 팔꿈치를 박환영의 겨드랑이 사이에 끼우면서, 지렛대 원리를 이용해 슬쩍 들어 올렸다.
“……!”
두 발이 바닥에서 떨어지는 것을 느끼며 박환영이 눈을 크게 떴다.
그 순간.
쿵!
묵직한 충격음과 함께 공중에서 몸이 한 바퀴 돈 박환영이 그대로 바닥에 메다꽂힌다.
깔끔하게 들어간 엎어치기.
“…컥!”
도윤이 고통으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박환영의 팔목을 꺾어, 수갑을 채웠다.
철컥.
“자세한 건 청에 가서 얘기하자구요.”
도윤이 말을 마치자, 재빨리 다가온 수사관들이 박환영을 일으켜 세웠다.
“으… 으…….”
박환영의 침음이 낮게 울려 퍼졌다.
* * *
하루가 채 지나지 않아 성명병원의 의사, 박환영의 체포 소식은 언론을 통해 빠르게 전국으로 퍼져 나갔다.
그 과정에서 박환영이 저지른 극악한 만행들이 세상에 밝혀졌고, 사람들은 앞다투어 박환영을 욕하기 바빴다.
“저, 저, 짐승만도 못한 새끼!”
“흉악한 놈!”
“정말 여기가 중국도 아니고, 이제 무서워서 저 병원 어떻게 가…….”
“저 병원에 우리 애 입원해 있는데, 내일 당장 옮겨야겠어요.”
“어머, 우리 어머니도 거기 계시는데, 저도 빨리…….”
검찰청으로 향하던 도윤이 길거리의 사람들을 힐긋 바라본다.
다들 하나같이 수 시간 전 보도된 뉴스 속보에 대해 떠들고 있었다.
이미 박환영에 대한 피의자신문조사는 시작되었다.
도윤의 두 손에는 봉지가 한가득이었다.
끼니도 거르고 열심히 일하고 있는 직원들을 위해, 직접 요기거리라도 사 오는 참이었다.
이윽고 도윤이 대검찰청 내에 특별히 마련된 이번 수사팀 사무실에 들어서자, 윤만석이 초췌한 얼굴로 맞이했다.
“왔냐?”
도윤이 고개를 갸웃한다.
“조사 벌써 끝났습니까?”
윤만석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조사가 되겠냐? 묵비권이랍시고 입을 앙다물고 있는데… 뭐, 그래 봐야 구속영장 발부되고 빵에 들어가겠지만.”
병원에서 발견된 진료차트.
장기 거래가 이루어진 대포통장.
박환영과 도윤이 나눈 대화 녹음 파일.
더불어 도윤이 준비한 또 다른 비장의 카드.
굳이 박환영이 진술을 하지 않더라도, 준비된 증거들만으로 박환영을 구속시키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박환영이 저지른 범죄의 법정형을 고려하면, 박환영은 아마 못해도 수십 년은 교도소에서 썩어야 할 것이다.
문제는…….
“오길태에 대한 체포영장은 일부러 청구 안 하신 거죠?”
도윤의 물음에 윤만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미치지 않고서야 오길태나 되는 사람이 도망갈 일은 없을 테니까.”
수사기관의 정당한 출석요구에 불응하여, 도주한다는 것은 자신의 범죄를 인정한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명성그룹의 오너 일가 중 한 사람인 오길태의 위치를 생각하면, 도주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만약, 도주를 하더라도…….
‘그건 그거대로 좋지.’
오길태가 도주한다면 명성은 더욱 더 심각한 타격을 입는다.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한 책임조차 지지 않는 회사의 물건을, 누가 팔아 주겠는가?
만약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굳이 오길태를 잡으러 가지 않더라도, 명성의 오춘화 회장이 직접 데려다 바칠 것이다.
‘놈을 어떻게 매장시킬까…….’
도윤이 속으로 중얼거리며 생각에 잠겼다.
현 상황만 놓고 봤을 때 오길태 또한 박환영과 마찬가지로 구속은 기정사실이다.
아무리 비싼 변호인들을 끌어와도 바뀌는 건 없다.
돈을 써서 빠져나갈 수 있는 스케일은 한참이나 넘어섰으니까.
도윤이 이번 일을 계기로 명성에 가장 큰 타격을 줄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궁리하고 있을 때, 출입문이 벌컥 열린다.
“부장검사님!”
검찰청 1층 로비를 지키는 직원이 헐레벌떡 뛰어 들어온다.
“무슨 일이야?”
“지금… 지금 밑에 오길태 이사가 왔습니다!”
“뭐?”
윤만석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게 무슨 소리야!?”
“저, 그게… 본인이 직접 출석해서 사건에 대해 해명하겠다고…….”
도윤이 재빨리 사무실 TV 전원을 켰다.
잠시간의 시간 뒤, 화면에 익숙한 배경이 펼쳐졌다.
“…진짜 여기잖아!?”
명성의 오길태가 사건에 대한 진실을 밝히기 위해 직접 검찰에 출석한다는 속보와 함께, 오길태가 수많은 사람을 대동한 채 대검찰청 1층에 들어서고 있었다.
그런데…….
화면을 들여다보던 도윤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있는 놈들은 이럴 때만 아프다니까? 아직 저거 써먹기에는 나이가 많이 젊을 텐데.”
화면에 떠오른 오길태는 새하얀 마스크를 착용한 채, 휠체어를 타고 있었다.
그런 오길태의 휠체어를 비서로 보이는 남자가 천천히 밀고 있었는데, 오길태는 이동하는 내내 연신 기침을 쿨럭였다.
“…진짜 아파 보이는데?”
윤만석이 멍한 표정으로 중얼거리자 도윤이 또 한 번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설마요.”
짧게 대답한 도윤이 걸음을 옮긴다.
“어디가!?”
“환자가 왔는데, 주치의가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있나요?”
“…….”
윤만석이 입을 다물었다.
“먼저 내려가 있겠습니다.”
말을 마친 도윤이 빠르게 1층을 향해 이동하기 시작한다.
어느새 도윤이 1층에 도착하자.
찰칵, 찰칵, 찰칵, 찰칵, 찰칵.
번쩍이는 플래시 세례 사이로 오길태가 천천히 입장하고 있었다.
이번 생(生)에서는 처음 보지만, 분명히 도윤의 기억 속에 있는 얼굴.
이번 사건의 진짜 원흉이자, 자신을 죽인 원수.
훗날 하나밖에 없는 자신의 소중한 동생마저 죽음에 이르게 할 소악마의 아비.
도윤이 눈부실 정도로 밝게 미소 지었다.
새로운 퀘스트가 생성되었다는 홀로그램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지금 이 순간, 도윤은 그저 이런 기회를 만들어 준 하늘에 감사했다.
“Welcome to 검찰청이다, 이 새끼야.”
도윤이 아무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게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