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잡는 회귀검사-55화 (55/174)

55화 오길태, 재판의 결과

구속영장실질심사.

‘구속 전 피의자심문제도’라고도 불리는 이 제도는, 구속영장을 청구받은 판사가 피의자나 변호인의 신청에 의해, 피의자를 심문(審問)하는 제도이다.

이 제도의 주목적은 한 마디로, 구속영장 발부가 적법한 지, 그렇지 않은지에 대해 따져, 피의자의 구속을 결정하기 위한 것이다.

검찰이나 경찰의 무분별한 구속수사 관행을 막기 위해 법적으로 마련한 안전장치였는데, 이 심사의 결과에 따라 피의자의 구속 여부가 결정되기 때문에, 재판 전 비공개 법정 공방으로도 불렸다.

이미 이 구속영장실질심사를 통해 박환영의 구속은 확정되어, 현재 구치소에 수감되었다.

그리고…….

오늘은 오길태의 구속영장실질심사가 있는 날이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313호실.

이곳에서 치열한 공방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피의자가 아들을 위해 불법 장기매매를 지시했다는 이 내용은 그저 추측성…….”

“잠깐, 잠깐만요.”

한참 열변을 토하고 있던 오길태 측 변호사가 실질심사 담당 판사의 제지에, 입을 다물었다.

“변호인 측, 본격적인 법정 공방은 정식 공판(재판) 들어가서 합시다. 눈으로 보이는 증거만 가지고 판단하자, 이 말입니다. 지금은 구속영장의 발부, 이 적법성에 대해서만 변론(辯論)해 주세요.”

한차례 입술을 질끈 깨문 오길태의 변호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잇는다.

“…현재, 보시는 바와 같이 피의자는 건강이 급격히 나빠져 거동(擧動)이 불가능할 정도입니다.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이 없을 정도로요. 그에 대한 증빙 자료로, 병원에서 정식으로 발부받은 진단서를 제출합니다.”

말을 마친 오길태 측 변호사가 상의 안주머니에서 진단서로 추정되는, 곱게 접힌 종이를 꺼내 내밀었다.

판사 우측에 앉아 열심히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던 법원 서기가 그 종이를 받아드는 것과 동시에, 오길태가 거친 기침을 터뜨렸다.

“쿨럭, 쿨럭.”

변호사가 오길태를 가리키며 계속 말한다.

“피의자의 사회적 지위를 고려하면, 굳이 구속수사를 하지 않아도 도주할 우려는 전혀 없을 거라 생각합니다. 피의자가 치료를 마칠 때까지만이라도,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을 수 있게 해 주셨으면 합니다.”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어여쁜 캐디 뒷모습이나 감상하면서, 열심히 휘두르셨을 텐데?’

어이없다는 듯 피식 웃음을 터뜨린 도윤이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난다.

“……?”

순간 자신에게 집중되는 시선을 느끼며, 도윤이 오길태를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한다.

“…검사 측?”

“야, 야! 어디가!?”

판사가 한차례 고개를 갸웃하며 중얼거리자, 윤만석이 다급히 외친다.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걸음을 옮긴 도윤이 어느새 오길태의 앞에 섰다.

“……?”

한참 기침을 쿨럭거리던 오길태도 잠시 멈칫하며 앞에 선 도윤을 바라본다.

“쿨럭, 쿨럭. 뭐요……?”

오길태가 힘없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 순간.

도윤이 갑작스레 자세를 낮추더니, 휠체어에 앉아 있는 오길태의 가랑이 사이로 빠르게 주먹을 뻗었다.

“……!”

대경(大驚)한 오길태가 본능적으로 두 손을 들어 급소를 보호했다.

그리고.

“…쫄!”

주먹이 오길태의 그곳(?)에 닿기 직전, 내뻗은 주먹을 멈춰 세운 도윤이 장난스럽게 중얼거렸다.

“이… 이……!”

순식간에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르는 오길태를 보며, 변호사가 제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신성한 법원에서 이따위 장난질이라니! 판사님! 이는 피의자를 위협하기까지 한 이러한 행동은 형법상 폭행죄에도 충분히 해당……!”

“아니,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도 없다길래요.”

도윤이 중얼거리자 한참 말을 잇던 변호사가 입을 다물었다.

“보니까 손가락은 물론, 팔도 잘 움직이는데요?”

우스꽝스럽게 오길태의 행동을 흉내 낸 도윤이 제자리로 돌아간다.

“…흠, 흠……!”

불편한 듯 헛기침을 터뜨린 판사가 한차례 힐끗 도윤을 노려본다.

“검사 측, 경고합니다. 이미 주 검사가 자리에 있기 때문에, 또다시 이런 행동을 보이면 곧바로 퇴정(退廷) 조치하겠습니다.”

“아, 예. 죄송합니다, 판사님. 피의자의 행동이 너무 어이가 없어서… 주의하겠습니다.”

짧게 한숨을 내쉰 판사가 오길태와 변호사에게 시선을 돌린다.

“변호사 측, 또 변론할 것 있습니까?”

“…없습니다.”

한참이나 도윤을 노려보던 변호사가 판사에게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더 이상 변론할 것이 없다면, 이것으로 실질심사는 마치겠습니다. 가급적이면 일과 중에 피의자의 구속여부를 결정하도록 하겠습니다.”

말을 마친 판사가 자리에서 일어나 출입문을 향해 걸어갔다.

이윽고, 판사가 313호실 밖으로 나가자 도윤도 자리에서 일어난다.

“가시죠, 선배님.”

도윤의 말에 멍한 표정을 짓고 있던 윤만석이 얼떨결에 자리에서 일어난다.

“너, 진짜…….”

두 손 다 들었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윤만석이 오길태 쪽을 향해 시선을 돌린다.

실질심사 내용을 확인 후, 서명날인을 해야 했기 때문에 변호사는 열심히 서류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오길태는…….

“이봐.”

출입문을 나서기 직전 오길태의 부름에 도윤이 멈칫했다.

“…나요?”

도윤이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대답했다.

“너무 날뛰고 다니진 않는 게 좋을 거야. 내가 비록 지금은 이런 꼴이지만…….”

싸늘한 목소리로 뒷말을 흐리는 오길태를 보며 도윤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놈이 할 행동이야 뒷말은 더 듣지 않아도 뻔하다.

이미 회귀 전 한차례 경험하지 않았던가?

피식 웃음을 터뜨린 도윤이 의도적으로 가운뎃손가락을 들어 미간을 긁적였다.

팍 하고 인상이 구겨지는 오길태를 보며 도윤이 출입문을 나섰다.

이윽고 윤만석까지 도윤을 따라 나가자, 오길태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젠장…….”

오길태의 낮은 목소리가 313호실 내부에 조용히 울려 퍼졌다.

그리고 약 6시간 뒤.

오길태에 대한 구속이 결정되었다.

* * *

2개월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났다.

어느덧 무더운 여름이 지나가고 예쁘게 물든 낙엽이 떨어지기 시작하는 가을이 찾아왔다.

대학생들은 새로운 학기 시작으로 의욕을 불태웠고, 직장인들은 성과 마무리에 한참 열을 올리고 있을 무렵.

바로 오늘.

길거리, 회사, 학교 등 여러 장소에서 사람들이 한가지 주제에 대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오늘이 오길태 재판이지? 지금쯤이면 벌써 끝났으려나?”

회사 옥상에서 담배를 태우던 동기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 묻자, 김철수가 힐끗 손목시계를 바라본다.

“지금 시간이면… 끝났을 것 같은데?”

“아오! 궁금해 죽겠네. 왜 있는 놈들 재판만 비공개냐? 우리나라는 공개 재판주의 아니야?”

김철수가 픽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 있는 놈들이 대국민 쪽 다 팔 수도 있는 일을 하려고 하겠냐? 어떻게든 숨어서 하고 싶겠지.”

“하긴…….”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동기를 보며 김철수가 말한다.

“형(刑)은 얼마나 받을까?”

“그 흉악한 새끼, 지 아들 살리자고 남의 집 귀한 자식 심장을 산 채로 끄집어낸 것도 모자라, 죄 없는 사람한테 뒤집어씌우기까지 했잖아. 아, 다시 말하니까 또 열 받네. 미친 새끼, 무조건 사형이지!”

“사형? 글쎄… 오길태나 되는 놈에게 사형을 구형할까?”

“야! 당연히 사형 때려야지! 니 어린 아들이 그 짓 당했다고 생각해 봐. 어휴, 상상만 해도 속이 뒤집어지네, 나라면 국가에서 안 죽여 줘도 내가 직접 죽이러 간다.”

“나도 마음이야 그렇지만… 현실은 그게 아니잖아. 살인죄 최소 형량이 5년이니까, 명성에서 마음먹고 돈 좀 쓰면 기껏해야 10년이나 받으려나…….”

“10년은 얼어 죽을! 그 새끼는 무조건 사형이라니까!?”

“뭐, 설령 사형을 때린다고 해도…….”

잠시 무언가 생각하던 김철수가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 나라에 사형 제도는 분명히 존재하지만, DJ정권이 들어서면서 단 한 번도 사형이 집행된 적은 없었다.

마지막으로 집행된 사형이 1997년이었으니까, 사형수의 형을 집행하지 않은 지도 벌써 5년이 훌쩍 지났다.

사실상 사형 제도는 폐지되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 순간, 옥상 출입문이 벌컥 열린다.

“재판 결과 나온다!”

또 다른 동기의 외침에 김철수와 다른 동기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두 사람이 헐레벌떡 뛰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 * *

같은 시각, 서울중앙지방법원.

“…이제 피고인 오길태에 대한 형을 선고합니다.”

상석에 앉은 재판장의 말에 좌중은 쥐죽은 듯 침묵이 내려앉았다.

잠시 피고 측과 원고 측을 번갈아 바라보던 재판장이 말을 잇는다.

“주문, 피고인 오길태를 징역 15년에 처한다.”

재판장이 말을 마친 순간, 법원 내부가 시끄러워지기 시작한다.

변호사가 제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15년!? 말도 안 됩니다!”

재빨리 피고인 자리로 다가온 오길태의 최측근 비서도 말한다.

“항소(抗訴)해야 합니다. 15년이라뇨!? 이건 정말 말도 안 되는…….”

그 순간 방청객에서 고함 소리가 터져 나왔다.

“에라이, 똥물에 튀겨 죽일 놈아! 15년이 말이 안 돼? 오냐,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따위 짓을 저지르고 15년!? 사형시켜라!”

“사형시켜라! 사형시켜라!”

한 방청객의 목소리에 흥분한 나머지 방청객들도 한목소리로 외치기 시작한다.

한쪽 구석에서는 납치된 아이의 유가족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대성통곡(大聲痛哭)을 하고 있었다.

그 사이로 한 사내가 확 튀어나온다.

“내 새끼… 불쌍한 내 새끼 죽여 놓고 15년? 개소리 지껄이지 마라! 내가 저놈 죽인다, 내가 반드시……!”

악에 받친 목소리로 고함친 사내가 오길태를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한다.

그 순간, 미리 대기하고 있던 법정경위(법정경찰)들이 재빨리 사내를 붙들었다.

“놔라! 놓으라고! 저 씹어 먹어도 시원치 않을 새끼, 내가 오늘 꼭 죽인다! 내가 꼭 죽여! 으아아아아아악!”

고래고래 고함치는 사내를 보며 재판장이 재빨리 재판을 파한다.

“이는 피고인이 저지른 범죄가 한 아이를 가진 아버지 입장에서, 일부 이해가 가는 부분이 있다고 판단하여 내린 결정입니다. 피고인은 이런 결정이 자신들의 죄를 없애는 것이 아님을 유념해야 할 것입니다. 이상 재판을 마칩니다.”

땅, 땅, 땅.

“뭐? 이해가 가!? 니 새끼가 그런 일을 당해도 그 따위 소리를 지껄일 수 있을 것 같아!? 판사면 다야!? 으아아아아악!”

큰소리로 외치는 남자를 보며 도윤도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 정도로 주먹을 꽈악 말아 쥐었다.

15년.

만약 도윤이 준비한 비장의 카드가 아니었다면 그보다 더 낮아졌을 것이다.

‘김두식이 아니었다면…….’

도윤이 한숨을 내쉬었다.

수사 막바지에 이르러 구치소에 수감되어 있는 김두식을 이번 판에 극적으로 끌어들였다.

기껏해야 필로폰 투약 및 매매죄로 2년을 선고받을 거라 생각했던 놈의 형량이 불법 장기매매까지 추가되어, 재판에서 종신형을 선고받게 되었다.

당연히 놈의 마음은 조급해졌고, 도윤은 그 틈을 파고들었다.

김두식이 선고받은 법정형은 감형 자체가 불가능한 무기징역이 아닌 상대적 종신형이었기 때문에, 그 점을 이용했다.

적극 수사에 협조하는 조건으로, 감형에 나름 힘써 주겠다는 타협 아닌 타협을 했던 것이다.

장기매매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김두식이 직접 법원에 출석하여 진술하자, 오길태가 도저히 뒤집을 수 없는 판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런데도 15년이라니…….’

아무래도 이 나라는 도윤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썩었던 모양이다.

15년.

그 안에 명성을 완전히 무너뜨린다.

꽉 쥔 주먹을 부르르 떨던 도윤이 속으로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