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화 진흙탕 레이스 (2)
“잠시 여기서 기다리지.”
강혁수가 도윤과 김영재를 향해 말했다.
대답을 기대한 건 아니라는 듯, 강혁수가 곧바로 출입문에 노크를 한다.
똑, 똑, 똑.
“지검장님, 강혁수 검사입니다.”
‘검사들이란…….’
속으로 중얼거린 도윤이 쓰게 웃었다.
사람의 평소 행동이나 말투만 봐도 그 사람이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 조금은 알 수 있다.
마치 명령하는 듯한 말투.
일방적인 통보.
몸짓 하나하나에 거리낌이 없고, 당당하다.
처음 대하는 사람을 평가라도 하는 것처럼 탐색하듯 훑어본다.
‘아마 지금껏 쭉 그런 삶을 살아왔을 테지.’
“혁수? 들어와.”
도윤이 강혁수라는 인물에 대해 평가하고 있을 때, 출입문 너머로 중년 사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럼 저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지검장님.”
“응? 더 있다가 가도 되는데, 벌써 가나?”
“밀린 일도 많은데 농땡이 피우면 다른 사람들이 욕할 것 같아서 말입니다. 하하, 따로 한 번 모시겠습니다.”
“그래? 멀리는 안 나가네.”
“예, 예.”
문틈 사이로 잠시 대화 소리가 들려오는가 싶더니, 이내 한 인영이 빠져나온다.
고집스러운 입매에 마흔 안팎의, 일견에도 깐깐해 보이는 인상의 소유자.
순간 그 인영을 발견한 김영재가 잠시 눈을 크게 뜨더니, 들릴 듯 말 듯 작게 중얼거렸다.
“삼촌…….”
‘삼촌?’
용케 김영재가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은 도윤이 슬쩍 미간을 찌푸렸다.
김영재를 향해 한차례 말없이 미소 지어 준 김석두가 힐끗 도윤에게 시선을 돌린다.
“가만, 니가…….”
“이번에 발령받은 강도윤입니다.”
말을 마친 도윤이 가볍게 허리를 숙였다.
“음…….”
잠시 도윤을 위아래로 훑어보던 김석두가 한차례 고개를 끄덕여 주고는, 강혁수를 향해 말한다.
“혁수, 오랜만이야. 날 잡아서 한잔해야지?”
지검장실 안으로 들어서려던 강혁수가 그에 대한 대답이라도 하듯 말없이 손을 흔들었다.
잠시 지검장실 안에 들어갔던 강혁수가 곧바로 밖으로 나오더니, 도윤과 김영재를 향해 입을 열었다.
“한 사람씩 지검장님이랑 면담할 거야. 신임이 들어오면 으레 있는 행사 같은 거니까 너무 긴장은 하지 말고.”
“예!”
군기가 바짝 든 김영재가 큰 목소리로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별 감흥이 없는 표정으로 대답하는 도윤을 잠시 묘한 눈초리로 바라보던 강혁수가 김영재를 바라본다.
“자네부터 들어오지.”
“옙!”
김영재가 뻣뻣한 동작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김석두가 눈빛으로 ‘잘 부탁한다.’라는 신호를 보내오자, 작게 고개를 끄덕인 강혁수가 이내 김영재와 함께 출입문 너머로 사라진다.
쿵!
작은 소음과 함께 출입문이 닫히자, 이제는 도윤과 김석두.
두 사람만이 남게 되었다.
어색한 침묵 속에 도윤이 애꿎은 바닥만 바라보기 시작했다.
‘이 양반은 왜 안 가고 여기 계속 있는 거야… 불편해 죽겠네.’
도윤이 속으로 중얼거리고 있을 때, 김석두가 입을 열었다.
“듣기로, 연수원 성적이 수석이었다지?”
“예? 아, 예. 운이 좋았습니다.”
김석두가 고개를 저었다.
“겸손하군. 이번 성명병원 사건에서도 명성의 그 오길태를 구속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들었다.”
“딱히 제가 한 건…….”
도윤이 말끝을 흐렸다.
그런 도윤을 보며 김석두가 말한다.
“나는 능력 있는 친구들이 참 좋아.”
“…….”
“혹시 나랑 같이 일해 볼 생각 있나?”
“예?”
도윤이 멍한 표정으로 반문했다.
눈앞의 인물이 검사라는 사실은 잘 알겠다.
지검장이나 되는 사람과 독대를 할 정도라면, 그 위치도 보통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 사람, 자신이 듣기론 분명 김영재의 삼촌이 아니었던가?
왜 자신에게 이런 말을…….
도윤의 표정을 오해한 김석두가 재빨리 말을 잇는다.
“소개가 늦었군. 이곳 형사 4부장으로 있는 김석두야.”
“…반갑습니다, 부장검사님.”
“갑자기 내가 이런 말을 해서 당황스럽나?”
“솔직히 조금 그렇습니다.”
도윤의 솔직한 대답에 김석두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겸손한 데다, 솔직하군. 어렵게 생각할 거 없어. 그저 뛰어난 인재를 먼저 선점하고 싶은 늙다리의 욕심이니까. 유능한 직원을 밑에 두고 싶은 건, 누구나 같은 마음 아니겠나?”
“…….”
도윤이 입을 다문 채 침묵을 지켰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났을까?
김석두가 다시 입을 열었다.
“초면에 이런 걸 물어보기 조금 그렇지만, 자네는 꿈이 뭔가?”
“…예? 꿈, 말씀이십니까?”
“그래, 꿈. 고작 검사가 된 것만으로 만족하는 건 아니겠지? 검찰총장이 해 보고 싶다든가, 세상에 존재하는 나쁜 놈들을 모조리 잡아 보고 싶다든가, 그것도 아니면 재벌집 여식 하나 잡아서 인생 펴 보고 싶다든가, 자네만의 꿈이 있을 것 아닌가?”
도윤이 말없이 시선을 내려, 김석두의 가슴 한쪽을 힐끗 바라본다.
잠시 고민하는 듯하던 도윤이 이내 입을 열었다.
“제 꿈은…….”
* * *
“이만 가 보겠습니다!”
김영재가 허리를 90도로 굽혔다.
“그래, 그래. 이만 가 봐. 석두 말대로, 오랜만에 능력 있는 친구를 만나게 되어, 나도 반가웠네.”
김영재가 눈을 크게 떴다.
“감사합니다!”
우렁찬 목소리로 대답한 김영재가 출입문을 조심스럽게 열더니, 밖으로 나갔다.
이내 김영재가 시야에서 사라진 것을 확인한 서울지검장, 정승만이 입을 열었다.
“어때?”
“딱 예상했던 대로입니다. 어떤 특별한 기대감은 없지만, 부려 먹기에는 좋은. 아마 저 녀석을 쓰신다면, 다른 변수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정승만이 픽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누가 철밥통 공무원 아니랄까 봐, 너무 안정만 추구하는 것 아닌가?”
“이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지금은 ‘예’라고 대답하는 놈이 필요한 것이지, 기발한 생각이랍시고 다른 대답을 하는 놈이 필요한 것은 아니니까요.”
“…….”
“적당히 멍청하면서, 적당히 똑똑한. 저는 지검장님이 저 녀석을 졸로 썼으면 좋겠습니다.”
턱은 괸 채 무언가 고민하던 정승만이 씨익 웃으며 입을 열었다.
“합격자가 이미 정해져 있더라도, 면접은 해 봐야 하지 않겠나?”
강혁수가 입을 다물었다.
“밖에 있는 나머지 친구, 들어오라고 해.”
“…알겠습니다.”
짧게 고개를 숙인 강혁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출입문을 향해 걸음을 옮기던 강혁수가 문득 뒤를 돌아본다.
“지검장님.”
“응?”
“…아닙니다.”
‘만약 이번 선택이 틀린다면…….’이라는 말을 가까스로 삼킨 강혁수가 이내 몸을 돌려, 출입문을 열어젖혔다.
* * *
벌컥.
“들어와.”
강혁수가 문을 열자마자 눈앞에 보이는 도윤을 향해 말했다.
“…실례하겠습니다.”
말을 마친 도윤이 출입문 안으로 들어서자, 바로 정면으로 나이를 짐작할 수 없는 중년 사내가 보였다.
지금 이곳에서, 저 자리에 앉을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뿐이다.
“반갑습니다, 지검장님. 신임검사 강도윤이라고 합니다.”
순간 자리에 앉은 정승만의 눈빛에 이채가 스쳐 지나간다.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인사.
자신쯤 되는 인물을 만날 때, 으레 신임들이 보이는 행동 또한 없었다.
눈빛은 또렷하고, 태도는 당당하다.
이런 놈은…….
“…지검장님?”
묘한 눈빛으로 도윤을 바라보던 정승만이 순간 옆에서 들려오는 강혁수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아, 정승만이네. 만나서 반가워. 앞에 앉지.”
“예.”
도윤이 자리에 앉자 정승만이 입을 열었다.
“얼마 전에 있었던 활약, 아주 잘 들었네. 총장님께서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아끼지 않으시더군. 능력 있는 친구가 우리 지검에 오게 되어 나도 기분이 좋아.”
“과찬이십니다, 지검장님.”
“…혹시 내가 왜 자네들을 불렀는 줄 아나?”
정승만의 물음에 힐끗 강혁수를 바라본 도윤이 대답한다.
“분명 신임들 환영 인사 차원에서 지검장님을 뵙는 것이라고…….”
언뜻 정승만의 눈빛으로 스치는 실망감을 도윤은 놓치지 않았다.
‘뭐지?’
그게 아니었던가?
신임들에 대한 환영 인사가 아니라면, 지검장이나 되는 사람이 고작 초임 검사를 만나려고 할 이유가 있을까?
잠시 고민하던 도윤의 머릿속에 순간 번뜩이는 게 있었다.
인사 철만 되면 경찰 내부적으로도 해마다 있는 일이었다.
거기에 지검장실에 들어오기 직전 김석두가 자신에게 했던 제안.
김석두의 가슴 한쪽에서 옅게 빛나던 보랏빛 광채.
이 모든 걸 종합하면…….
생각을 정리한 도윤이 입을 열었다.
“…혹시, 사람이 필요하십니까?”
순간 정승만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왜 그렇게 생각하지?”
“인사 철만 되면 각 부서에서 유능한 직원을 데려오기 위해 다들 혈안이 되어 있으니, 혹시나 그런 건가 생각했습니다.”
정승만이 기대감 어린 목소리로 묻는다.
“니가 말한 그런 의미에서 내가 사람을 구하는 거라면,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시키려 하는 줄도 알겠나?”
잠시 고민하던 도윤이 곧바로 대답한다.
“…차기 대권.”
이번에는 감정 표현이 거의 없는 강혁수도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정승만과 강혁수의 반응을 살피며, 도윤이 계속 말을 잇는다.
“대권을 위해 줄을 잡는다. 결심이 섰다면, 상대 후보자에 대한 모든 걸 파헤친다. 자식들의 병역 관계나 차명 계좌에 묻어 둔 돈은 기본이고, 오늘 후보자의 마누라가 무슨 속옷을 입었는지까지 하나도 남김없이. 물론, 다른 대권주자나 국정원보다 더 빨리 정보를 수집하는 건 필수겠죠.”
“…….”
“그리고… 그렇게 취득한 정보들을 선거기간에 맞춰 하나하나 터뜨린다.”
“……!”
도윤이 마지막 말을 잇는다.
“대외적으로 움직일 말이 필요하신 것이겠죠. 그런 일이라면 함부로 움직이기 힘든 지검장님이나 다른 여러 선배님들보다는, 신임 검사가 제격일 거구요. 밖에서는 멋모르고 설치는 초임쯤으로 비춰질 테니까요.”
도윤이 말을 마치자 바늘 하나 떨어지는 소리마저 들릴 정도의 침묵이 내려앉았다.
잠시 후.
“…헛!”
정승만이 헛웃음을 터뜨렸다.
“혁수야, 지금 내가 들은 말들, 잘못 들은 건 아니겠지?”
“…분명히 제대로 들으셨습니다.”
“니 반응을 보니, 내가 제대로 들은 건 맞는 것 같네. 그럼 하나 더, 눈앞의 이 친구가 정말 신임 검사가 맞나?”
“…….”
이번에는 강혁수도 대답하지 않았다.
자신도 믿기지 않았으니까.
“말만 들어서는 이미 검찰이라는 조직에 찌들 대로 찌든 베테랑인데, 신임이라…….”
정승만이 피식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재밌네.”
“…….”
“강도윤이라고 했지? 마지막으로 내가 제안 하나 해도 되나?”
제안이라는 말에 강혁수가 눈을 크게 떴다.
“지검장님!”
“싫습니다.”
“……!”
도윤의 대답에 강혁수의 눈이 더 이상 커질 수 없을 정도로 부릅떠졌다.
정승만도 예상 못 한 도윤의 대답에 멍한 표정을 지었다.
“…아직 어떤 제안인지 얘기도 하지 않았는데.”
“지검장님의 말이 되어 달라는 제안이라면, 죄송하지만 거절하겠습니다.”
“미친…….”
강혁수가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신임 검사 따위가 서울지검장이나 되는 사람의 줄을 잡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아니, 그 기회조차 잡을 수 없다.
특별한 연결 고리가 없는 이상, 다짜고짜 사무실에 찾아가 ‘제 줄이 되어 주세요.’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런 기회를 제 발로 차 버리는 도윤이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그보다 더 강혁수를 화나게 하는 건…….
눈앞에 있는 애송이의 저 알 수 없는 자신감.
강혁수는 그게 매우 마음에 들지 않았다.
발끈한 강혁수가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순간.
“잠깐.”
정승만이 강혁수에게 앉으라는 듯 손짓하더니, 가라앉은 눈빛으로 도윤을 바라본다.
“…왜 싫은 건지, 얘기해 줄 수 있나?”
잠시 정승만의 두 눈을 마주 바라보던 도윤이 이윽고 입을 열었다.
* * *
일명 법조인 타운이라 불리는 서초구 대로변에 위치한 자그마한 건물 2층.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건물 외벽 위로 장호식 법률사무소라 적힌 작은 간판이 달려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아니, 강도윤 이 썩을 놈은 사람 고생은 고생대로 시키면서 연락 한 번 없네.”
한참 모니터 안의 주식 차트를 들여다보고 있던 호식이 입을 삐죽 내밀었다.
“아니 내가 지 펀드매니저야 뭐야. 이런 건 아이디어 낸 놈이 보고 있어야지, 왜 내가 보고 있냐고! 시켜만 놓고 일은 내가 다 하네. 아오! 열 받아.”
한참이나 씩씩거리던 호식이 순간 멈칫한다.
어느새 같은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여직원이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저… 변호사님, 시원한 거라도 한잔하실래요?”
작은 체구에 앙증맞은 안경을 착용한 여직원의 말에 호식이 멋쩍게 웃었다.
“아하하, 아니에요. 일 보세요, 미정 씨.”
‘망할.’
속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은 호식이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어휴, 앓느니 내가 죽지. 가만…….”
순간 멈칫한 호식이 다시 주식 차트를 들여다본다.
“나도 투자나 한번 해 봐?”
잠시 무언가 고민하는 듯하던 호식이 이내 씨익 미소 지었다.
“좋아, 결정. 내가 제깟 놈보다 못할 게 뭐 있겠어?”
그때부터 호식이 빠르게 마우스를 딸칵거리기 시작했다.
한참이나 손을 움직여 대던 호식이 이윽고 손을 멈췄다.
그리고…….
“…호식이 세 마리 치킨?”
모니터의 한 부분에 시선을 고정한 채 호식이 멍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느낌 좋은데?”
호식의 손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창밖에선 간판이 바람에 미친 듯이 덜컹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