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화 진흙탕 레이스 (3)
서울고등검찰청 검사장실.
상석에 앉은 퉁퉁한 체구의 사내가 간절한 표정으로 눈앞에 앉아 있는 남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두꺼운 살집 탓인지 선선한 날씨임에도 쉼 없이 땀을 흘려 대는 것이, 퉁퉁하다기보다는 뚱뚱하다는 말이 더 어울렸다.
뚱뚱한 사내의 이름은 성호동.
현 서울고등검찰청 검사장이다.
“문식아.”
성호동의 부름에 앞에 앉아 있던 중년 남자가 대답한다.
“예, 고검장님.”
“지금이라도 나를 도와주면 안 되겠니?”
“……·.”
성호동의 말에 중년 사내, 장문식이 입을 다물었다.
장문식은 서울중앙지검장인 정승만 쪽 라인이다.
그런 자신에게 차기 검찰총장 자리의 강력한 라이벌인 성호동이 자신의 편이 되어 달라고 한다.
“…저한테 지검장님을 배신하라는 말씀이십니까?”
“야, 말이 뭐가 그래! 너, 승만이 밑에서 일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잖아. 오히려 나랑 알고 지낸 지가 벌써 10년이 넘었어!”
“…….”
“솔직히… 넌 내 편이 되어 줄 줄 알았다. 설마 니가 승만이 쪽 라인에 붙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니까?”
성호동의 말에 장문식이 쓰게 웃었다.
저 말은 사실이 아니다.
처음 차기 대권주자들의 경쟁이 시작되었을 때까지만 해도, 성호동에게 자신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성호동의 말대로 자신이 성호동과 알고 지낸 지 벌써 10년이 넘었다.
아마 검찰 내에서 자신만큼 성호동이라는 인물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일 것이다.
‘검찰총장 자리를 날로 먹고 싶다는 얘기겠지.’
지금은 정승만과 성호동의 양강 구도가 되었지만,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하더라도 차기 검찰총장 후보자는 네 사람이었다.
현 서울지검장인 정승만.
눈앞의 서울고검장 성호동.
대검찰청 차장검사 이용완.
그리고, 전 부산지검장 이준석.
이번 명성그룹과의 스캔들로 이준석은 자연스럽게 대권 레이스에서 탈락했고, 같은 이유로 현 검찰총장인 김관우에게 찍히는 바람에 차장검사 이용완도 다음 대선을 기약했다.
남은 후보자는 정승만과 성호동.
두 사람 중 하나만 떨어져 나가면, 나머지 한 사람이 차기 검찰총장의 단독 후보자가 된다.
만약 그렇게 되면, 단독 후보자 입장에서는 누가 차기 정권을 잡든 상관없다.
차기 대통령은 검찰 내부적으로 형성된 후보자들 외에 다른 선택은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두 사람과 견줄 인물도 없었지만, 그런 선택을 했다가는 자칫 당선과 동시에 심한 견제를 받게 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청와대에 입성하자마자 검찰의 의견 따위는 깡그리 무시하고, 자신의 입맛대로 인사권을 행사한다.
아마 검찰뿐만 아니라 야당이나 다른 기관들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안전한 길이 있는데, 굳이 위험부담을 감수하고 싶지는 않다?’
생각에 잠겨 있던 장문식이 고개를 들어 성호동을 바라본다.
“지검장님의 뒤통수를 치라는 말씀이시군요.”
“야! 말 좀 순화시켜 얘기하자. 뒤통수라니, 내가 뭐…….”
“제가 얻게 되는 건 뭡니까?”
“응?”
큰 소리로 말을 잇던 성호동이 고개를 갸웃했다.
“제가 고검장님한테 붙으면, 뭘 얻을 수 있습니까?”
장문식의 직설적인 물음에 순간 멍한 표정을 짓고 있던 성호동이 이내 정신을 차린다.
“쿡!”
“…….”
“아, 실례. 큭큭큭, 내가 이래서 문식이 너를 좋아한다니까. 뭘 얻을 수 있냐고?”
입을 다문 채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장문식을 보며 성호동이 말을 잇는다.
“아는지 모르겠지만, 내 밑에 있는 놈들 죄다 빠가사리들이야. 이게 안 돌아가, 이게.”
성호동이 제 머리를 톡톡 두들겼다.
“오기만 와. 작전참모로 확실히 기용하지. 내가 그 자리에 올라가면, 임기 내에 지금 내 자리에 너를 앉혀 주지.”
성호동이 말을 마치자, 장문식이 턱을 괸 채 생각에 잠겨들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성호동이 기대감 어린 눈빛으로 바라봤다.
잠시 후, 장문식이 입을 열었다.
“…제가 뭘 하면 됩니까?”
성호동의 얼굴이 밝아졌다.
“고맙다. 제대로 된 감사 인사는 후에 하기로 하고, 일단은…….”
잠시 턱을 쓰다듬으며 생각하던 성호동이 묻는다.
“승만이 운전, 아직 문식이 니가 직접 하고 있지?”
“예.”
장문식의 대답에 성호동이 힐끗 벽에 걸린 달력으로 시선을 돌린다.
“조금 있으면 떡값 들어오겠군.”
“추석 말씀이십니까? 갑자기 그 얘기는 왜……?”
성호동이 옅게 미소 지으며 묻는다.
“촌에 아버지 과수원은 잘되고 있나?”
“그야…….”
무언가 말하려던 장문식이 순간 떠오른 생각에 멈칫한다.
“설마…….”
성호동의 미소가 한층 짙어졌다.
“직원들 추석 선물도 해 주고, 아버지 사과도 팔아 주면 일석이조 아니겠나?”
“…….”
“속이 꽉 찬 놈들로 몇 박스 가져와서, 승만이 차에 실어 줘. 밑에 애들 차에도 하나씩 실어 주고. 나한테 미리 연락 한 통 넣어 주는 것, 잊지 말고.”
성호동의 의중을 간파한 장문식이 입을 다물었다.
실제 사과박스에 무엇이 들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미묘한 시기.
아마 성호동은…….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나?”
시계를 확인한 성호동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세한 얘기는 다음에 하도록 하자고. 중요한 선약이 있어서…….”
성호동의 말에 장문식이 자리에서 일어나, 마주 고개를 숙였다.
“연락드리겠습니다.”
한차례 고개를 끄덕인 성호동이 몸을 돌렸다.
몇 걸음 내디디던 성호동이 순간 멈칫한다.
“……?”
장문식이 의아한 얼굴로 바라보고 있자, 성호동이 다시 몸을 돌린다.
“같이 갈 텐가?”
“예? 어딜…….”
“대쪽 어르신.”
“……!”
장문식이 눈을 크게 떴다.
“그쪽 사람을 만나는 자리야.”
‘그저 보험이었던가……!’
장문식이 속으로 경악했다.
* * *
“그저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꼭두각시 말은 사양이다… 라…….”
잠시 말끝을 흐리던 정승만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어떻게 생각해?”
이제는 두 사람만이 남게 된 서울중앙지검장실.
정승만의 물음에 강혁수가 대답한다.
“건방진 놈입니다. 예상보다 리스크도 훨씬 큰 놈이구요. 절대 우리 생각대로 움직일 놈이 아닙니다.”
“…….”
“지검장님, 제 생각은 이전이나 지금이나 같습니다. 김영재, 놈이 이번 일에 제격입니다.”
곰곰이 생각에 잠겨 있는 정승만을 보며 강혁수가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말을 잇는다.
“감정적으로 판단하실 일이 아닙니다.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일단은.”
정승만이 입을 열자 강혁수가 입을 다물었다.
“일단은 내일 한번 더 만나 보지. 아직 조금 시간이 있으니까.”
“지검장님!”
“그만!”
“…….”
정승만이 한차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혁수야.”
“예.”
“너도 알다시피 다른 기관들과 마찬가지로 이곳 검찰도, 일정 자리 이상은 실력만으로 올라갈 수 없어. 수없이 많은 이해관계가 얽히고설킨 정치 싸움. 그런 곳에서 내가 어떻게 이 자리까지 올라왔는 줄 아나?”
“…잘 모르겠습니다.”
“촉.”
“…….”
“우습게 들리겠지만 나는 이 촉 하나로 이곳, 이 자리까지 올라올 수 있었어. 남들이 느끼지 못하는 무언가를, 나만은 느낄 수가 있었거든.”
말을 하던 도중, 정승만이 픽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이렇게 말하니까 무슨 사이비 교주 같군. 아무튼 나는 이번에도 내 촉을 한번 믿어 보고 싶어.”
“…….”
“이해하지?”
한참을 입을 다문 채 침묵을 지키던 강혁수가 정승만의 시선에 결국 한숨을 내쉬었다.
“…예.”
“고맙다.”
정승만이 씨익 미소 지었다.
* * *
집으로 돌아온 도윤이 그대로 소파에 몸을 던졌다.
‘대선을 위한 말이라…….’
속으로 중얼거린 도윤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시키는 대로 움직여 주는 말.
물론 못 되어 줄 이유도 없다.
명성을 무너뜨리는 데 도움이 된다면, 말이 아니라 더한 것도 되어 줄 용의가 있다.
하지만…….
“그러면 내 가치가 너무 떨어지잖아?”
부려 먹기 좋은, 말 잘 듣는 말.
사용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편하기야 하겠지만, 딱 그뿐이다.
말은 늙거나 다치면 언제든지 다른 말로 대체할 수 있다.
사용가치가 떨어졌다고 생각하면 가차 없이 버려지리라.
‘그럴 순 없지.’
스스로 가치를 높여야 한다.
같은 말이라면, 조랑말이 아니라 여포의 적토마(赤兎馬)가 되어야 한다.
가지고 싶어도 가지지 못하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인식되도록 그 능력을 증명해 내야 한다.
그리고…….
“이후에는 내가 이용한다.”
저 정도 야망이 있는 인물이 검찰총장만으로 만족할 리가 없다.
임기가 끝나면 분명히 여의도 입성까지 노릴 것이다.
물론 도윤도 바라는 바다.
명성을 무너뜨릴 정치적 다리.
활용 방법이야 무궁무진하다.
“이미 결과는 정해져 있다.”
도윤이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번 대선에 어떤 영향을 줄 생각은 전혀 없다.
이미 결과는 정해져 있다.
회귀 전, 대선 당시에도 총득표율 3퍼센트가 채 나지 않는 초박빙 승부였다.
자그마한 행동 하나만으로 결과가 뒤집어질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도윤의 가장 큰 무기 중 하나인 미래에 대한 정보가 뒤죽박죽이 될 수도 있다.
“그저 물 흐르듯, 흘러가는 대로. 나는 그저 지검장이 옳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합리적인 소스만 제공하면 된다.”
곰곰이 생각에 잠겨 있던 도윤의 미소가 한층 짙어진다.
퍼즐이 하나하나 끼워 맞춰지는 느낌이었다.
우우웅, 우우웅.
도윤은 테이블 위에서 진동이 울리기 시작하는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다.
“여보세요?”
“젊은 영감님, 목소리 듣기 참 힘들어?”
수화기 너머로 이제는 친근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도윤이 피식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조금 바빠서. 하는 일은 잘되어 가나?”
“덕분에. 일 얘기 나와서 하는 얘기인데…….”
“……?”
순간 말끝을 흐리는 박판섭을 보며 도윤이 고개를 갸웃했다.
“우리가 망치파 사업장을 대부분 집어삼켰다.”
도윤이 눈을 크게 떴다.
“그 말은…….”
“다 젊은 영감님 덕분이지. 외부 시선이 의식되었는지 명성에서 완전히 망치파와 관계를 끊어 버렸고, 이번 일로 중간 관리자들까지 줄줄이 잡혀 들어갔으니까. 우리는 뭐, 날로 먹었지.”
“잘됐군.”
도윤이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영감님 돈 세탁하랴, 망치파 인수하랴, 조직 내부 안정시키랴, 요즘은 몸이 세 개라도 부족할 것 같아.”
“그런 일이라면 환영 아닌가?”
“하긴…….”
박판섭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그보다… 내가 부탁한 건 알아봤나?”
도윤의 물음에 곧바로 박판섭이 대답한다.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전화했지.”
“…어떨 것 같아?”
도윤의 목소리에 한층 기대감이 어린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분위기로는 충분히 가능할 것 같아. 요즘 거기, 명성의 높으신 분이 잡혀간 이후로 소문이 흉흉해져서, 손님 발길이 뚝하고 끊겼거든.”
“…….”
“머릿수로만 치면 아마 이전이랑 2배, 아니 3배까지도 차이가 날 거야. 이렇게 되면 그쪽 입장에서는 무조건 적자지.”
도윤이 씨익 미소 지었다.
“더 잘됐군. 이럴 때 변화가 필요한 법이지.”
“동감이야. 하지만 영감님, 전에 얘기한 나라님들이 만들어 놓은 법. 그거 때문에 개인이 인수할 수는 없을 텐데? 어쩔 생각이야?”
박판섭의 물음에 순간 누군가를 떠올린 도윤의 미소가 한층 짙어진다.
“다 방법이 있지.”
도윤이 의미심장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