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화 진흙탕 레이스 (4)
똑, 똑.
“들어와.”
지검장실 출입문을 누군가 두드리자 홀로 앉아 있던 정승만이 말했다.
출입문이 벌컥 열리더니, 한 인영이 지검장실 안으로 들어온다.
“강도윤입니다, 지검장님.”
짧게 고개를 숙이는 도윤을 보며 정승만이 씨익 웃었다.
“부르셨다고 들었습니다.”
“일단 앉지.”
정승만이 앞쪽 소파에 자리를 권하자, 도윤이 걸음을 옮겼다.
이내 도윤이 자리에 앉는 것을 확인한 정승만이 입을 열었다.
“둘이서 한번 얘기해 보고 싶어서 따로 불렀네. 괜찮지? 아직 자리가 없어서 딱히 할 일도 없는 걸로 아는데.”
“…….”
도윤이 입을 다문 채 침묵을 지키자 정승만이 말을 잇는다.
“밤새 생각은 좀 해 봤나?”
“무슨…….”
“내 제안.”
“그건 이미…….”
“일단.”
말을 잇던 도윤이 입을 다물었다.
“자네 생각을 한번 들어 보고 싶네. 그저 개인적인 생각을 얘기해 주면 되니, 부담은 가지지 않아도 돼.”
“…알겠습니다.”
도윤의 대답에 만족한 듯 미소를 지은 정승만이 말한다.
“이번 대선, 누가 이길 것 같나?”
“……!”
도윤이 속으로 화들짝 놀랐다.
‘너무훅 들어오는데……?’
순식간에 무표정으로 돌아온 도윤이 입을 열었다.
“무슨 의도로 물으시는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큰 의미는 부여하지 마. 니가 말한 대로 나는 차기 검찰총장 자리를 위해 줄을 잡고 싶어. 썩은 동아줄을 잡지 않으려면,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들어 보고 결정해야 하지 않겠나?”
“제 의견 따위는…….”
“그건 내가 판단할 테니까.”
“…….”
“일단 들어나 보자고.”
“…….”
정승만이 말을 마치자 도윤이 입을 다문 채 한참이나 침묵을 지키기 시작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났을까?
대략 찻물이 끓어오를 정도의 시간이 지나, 도윤이 대답한다.
“저는…….”
잠시 말끝을 흐리는 도윤을 정승만이 기대감 어린 눈빛으로 바라본다.
“…집권 여당이 바뀌지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순간 정승만이 눈을 크게 떴다.
“집권 여당이 바뀌지 않는다? 그 말은…….”
정승만이 말끝을 흐리자 도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직전 선거에서 대한민국 헌정사상 최초로 평화적인 정권 교체가 이루어졌죠. 저는 그 흐름이 쉽사리 끊길 거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
정승만이 표정을 굳힌 채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정승만이 입을 열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뭐지?”
“…….”
“니 말대로라면 그 어르신이 질 거라는 소린데, 나로서는 솔직히 그 어르신이 진다는 게 상상이 가지 않아.”
“…….”
“2인자 자리마저 허수아비 노릇은 하기 싫다며 제 발로 걷어차신 분이야. 청렴한 이미지로 국민들에게 평판도 좋지. 비록 정치 공세에 휘말려 한차례 쓴 물을 마시긴 했지만,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이번 대선에 도전하고 있어.”
정승만이 도윤의 두 눈을 바라보며 묻는다.
“그런 사람이 또 한 번 질…….”
“한 번 뒤바뀐 흐름을 다시 뒤엎을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
정승만이 충격을 받은 듯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게 무슨 소리지?”
“직전 선거에서 여당의 가장 큰 패인은 두 가지. 대선 직전에 터진 IMF, 그리고… 후보자 아들의 병풍(병역비리) 논란.”
“…….”
“곪고 곪아 언젠가는 터졌을 IMF는 제외하고서라도, 후자는 이번에도 피해 갈 수 없습니다. 국민들이 가장 민감하게 생각하는 것들 중 하나니까요. 얼마 전 대국민적인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톱 가수의 사태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설마 똑같은 이유로 또 한 번 고배를 마시겠나? 이미 그에 대한 대비도 분명히 해 뒀을 거야. 한차례 당한 경험이 있으니까.”
정승만의 말에 도윤이 고개를 저었다.
“그때와 지금, 대선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달리진 점이 있습니다.”
“…달라진 점?”
정승만이 고개를 갸웃하며 묻자, 도윤이 곧바로 대답한다.
“인터넷.”
“…….”
“고작해야 몇 안 되는 콘텐츠를 가지고 있던 천리안, 나우누리 세대는 갔습니다. 인터넷 보급률 또한 그때와는 비교할 바가 아니죠.”
“겨우 인터넷 하나가 얼마나 영향을 줄 거라고…….”
“겨우 인터넷이 아닙니다.”
“…….”
도윤이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을 잇는다.
“그 인터넷 하나가 주는 파급력은 이전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상상을 초월할 겁니다. 국민 대다수의 의견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요.”
“…….”
도윤의 말에 정승만이 입을 다물었다.
무언가 반박하고 싶은데, 딱히 떠오르는 말이 없었다.
아마 자신이 컴퓨터나 인터넷 따위와는 그다지 친하지 않은 세대이기 때문이리라.
정승만이 한차례 입술을 꾸욱 깨물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하지만 니 말과 달리 드러나는 지지율은 정반대야.”
“지지율은 득표율이 아닙니다. 말 그대로 지지율일 뿐이죠.”
“…….”
잠시 무언가 생각하는 듯하던 도윤이 묻는다.
“지검장님은 사람에게 ‘운명’이라는 것이 존재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운명?”
정승만이 슬쩍 미간을 찌푸리며 반문하자, 도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글세…….”
“저는 이 세상에 운명이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죽음과 회귀.
갑작스럽게 보이기 시작하는 주사위와 게임과 같은 능력들.
현실 같지 않은 이 현실을, ‘운명’이라는 말 외에 설명할 길이 있을까?
도윤이 정승만의 두 눈을 똑바로 마주 바라보며 말한다.
“이미 한차례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든 사람입니다. 저는 그 흐름이 쉽게 바뀔 거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음…….”
정승만이 나직이 침음을 삼켰다.
‘운명이라…….’
정승만이 속으로 중얼거리고 있을 때, 도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말씀하신 대로, 어디까지나 제 개인적인 생각일 뿐입니다. 선택은 지검장님이 하시는 거구요.”
도윤이 짧게 허리를 숙였다.
“이만 나가 보겠습니다.”
도윤이 인사를 마쳤음에도, 정승만은 무언가 골똘히 생각에 잠긴 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던 도윤이 이내 몸을 돌린다.
‘선택은 자기 자신이 하는 것이겠지. 과연 새파랗게 어린 신임 따위의 말을 얼마나 받아들일지는 모르겠지만… 그것 또한 저 사람의 운명.’
도윤이 출입문을 열어 그대로 밖으로 나갔다.
쿵.
작은 소음과 함께 출입문이 닫혔다.
홀로 남은 지검장실.
한참이나 상념에 빠져 있던 정승만이 이윽고 눈을 빛내며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다.
* * *
“…누구라고?”
오춘화 회장이 되묻자, 안경을 한 번 고쳐 쓴 오춘화 회장의 오른팔, 박건우가 다시 말한다.
“강도윤이라고, 성춘이와 동기입니다.”
“…그러니까, 이제 들어온 새파란 핏덩어리 놈이 나를 이 지경까지 만들었다?”
오춘화 회장의 물음에 잠시 머뭇거리던 박건우가 마지못해 대답한다.
“…예.”
“허, 허헛.”
오춘화 회장이 허탈한 듯 헛웃음을 터뜨렸다.
“자식 놈은 팔자에도 없는 콩밥 신세에, 그룹 총이익의 절반 가까이 타격을 입었지, 우사(愚事)란 우사는 있는 대로 다 했고. 그런데…….”
오춘화 회장이 씹어 내뱉듯 중얼거린다.
“나를 물먹인 놈. 그 주인공이 고작 이제 임용된 핏덩어리라…….”
잠시 말끝을 흐리던 오춘화 회장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건우야.”
“예, 회장님.”
“지금 상황에서 내가 어떻게 해야겠냐?”
“…….”
“30년 넘도록 내 곁을 지킨 너라면 내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잘 알 거라 생각한다.”
오춘화 회장의 물음에 박건우가 한차례 마른침을 삼켰다.
박건우는 안다.
오춘화 회장이 이런 종류의 질문을 할 때는,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함이 아니다.
이미 눈앞에 있는 자신의 주인은 문제에 대한 답안지를 작성해 놓은 상태다.
그 답안지에 대한 확신을 가지기 위해, 지금 자신에게 이렇게 묻고 있는 것이리라.
박건우는 이런 상황에서 어떤 대답을 해야 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잠시 침묵을 지키던 박건우가 이윽고 입을 열었다.
“지금 당장 움직이시는 건 하(下)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오춘화 회장의 눈빛이 더더욱 차갑게 내려앉았다.
“하지만…….”
“…….”
잠시 목을 가다듬으며 박건우가 말을 잇는다.
“이미 이번 일에 대한 얘기는 알 만한 사람들의 귀에는 모조리 들어간 상태입니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가만히 있으면, 다른 사람들이 명성을 우습게 생각할 겁니다.”
오춘화 회장의 굳은 표정이 조금씩 풀어지기 시작한다.
그 모습을 힐끗 바라본 박건우가 계속 말한다.
“명성을 건드린 대가는 톡톡히 치르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
“언제든지 잡을 수 있는 피라미 한 마리 때문에, 대의를 놓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음…….”
잠시 침음을 흘리던 오춘화 회장이 이내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언제든지 잡을 수 있는 피라미라… 니 말이 맞다.”
“…….”
“지금은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이 남아 있었지.”
오춘화 회장이 벽에 걸린 시계를 확인한다.
“언제 만나기로 했나?”
“2시간 뒤에, 역 앞에 있는 커피숍에서 만나기로 했습니다.”
“저쪽에서는 누가 나온다고 하던가?”
“서울고검장이 직접 나올 것 같습니다.”
순간 오춘화 회장이 눈을 크게 떴다.
“성호동이가 직접?”
박건우가 고래를 끄덕였다.
“예. 저쪽에서도 제가 나간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인지, 신경을 쓰는 것 같았습니다. 대외적으로는 저를 몸이 좋지 않으신 회장님의 대리인 정도로 알고 있으니까요.”
“마음에 드는군.”
오춘화 회장이 흡족한 듯 옅게 미소 지었다.
“선거 자금 전달은 내일이라고 했나?”
“예.”
“차명계좌랍시고 마음 놓고 흔적 남기는 바보 같은 짓은 하지 마. 뭐, 건우 너라면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겠지만, 나도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노파심이라는 게 생겨서 말이야.”
“자금은 차떼기를 이용할 생각입니다.”
“차떼기?”
오춘화 회장의 반문에 한차례 옅게 미소 지은 박건우가 대답한다.
“예. 어르신 쪽 정치인들이 생각해 낸 방법인데…….”
박건우가 무어라 설명하기 시작한다.
박건우의 설명이 이어질수록 오춘화 회장의 얼굴 위로 감탄의 기색이 역력해진다.
이윽고 박건우의 설명이 끝이 났을 때.
“정말 정치인들 발상은 날이 갈수록 기가 막히는군.”
오춘화 회장이 제 머리를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렸다.
“어찌나 이런 쪽으로는 머리가 잘 돌아가는지, 감탄할 정도야.”
“…….”
“저쪽 계획에 맞춰서, 우리 쪽에서도 준비는 다 끝났나?”
“예. 3톤짜리 탑차로 한 대 준비해 뒀습니다.”
박건우의 말에 잠시 고민하던 오춘화 회장이 재차 묻는다.
“3톤이라… 얼마나 들어가지?”
“가득 채우면 200억은 충분히 들어갑니다.”
“딱 좋군.”
이내 오춘화 회장이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건우 니 일 처리가 제일 마음에 들어. 돌대가리 같은 내 아들놈들보다 훨씬 나아.”
박건우가 깊이 허리를 숙였다.
“아닙니다.”
“뒷마무리 확실히 하고. 이번 일은 전적으로 건우 너한테 일임하지. 그리고…….”
무언가 떠올랐는지 오춘화 회장이 슬쩍 미간을 찌푸렸다.
잠시 후, 오춘화 회장이 입을 열었다.
“오성춘이, 지금 들어오라고 해.”
잠시 눈을 크게 뜬 박건우가 곧바로 대답한다.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