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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잡는 회귀검사-60화 (60/174)

60화 진흙탕 레이스 (5)

“오성춘이.”

“…예, 회장님.”

오춘화 회장의 부름에 오성춘이 침중한 얼굴로 대답했다.

“반성 좀 했나?”

“…….”

“아비는 철창신세에 팔자에도 없던 독방에 갇혀 있으려니, 죽을 맛이겠지?”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있는 오성춘을 보며, 오춘화 회장이 말을 잇는다.

“그렇게 좋아하던 깡패들 골목대장 노릇도 못 해, 이제 재미 좀 보나 싶던 여자 장사도 못 해, 아무것도 못 하고 골방에 틀어박혀 있으려니, 답답해 미칠 것 같지 않아?”

“그, 그걸 어떻게…….”

오성춘이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말끝을 흐렸다.

여자 장사라니?

그 얘기를 대체 오춘화 회장이 어떻게 안단 말인가!

순식간에 굳은 오성춘을 보며 오춘화 회장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아직 멀었군. 이 상황에서는 ‘어떻게’라고 물을 게 아니라, ‘죄송합니다.’라고 그 뻣뻣한 대가리를 숙여야지.”

“죄… 죄송합니다.”

오성춘이 급히 고개를 조아렸다.

오성춘의 뒤통수를 바라보며 오춘화 회장이 한숨을 내쉬었다.

“자기가 싸지른 똥은 자기 스스로 치워야겠지?”

“…….”

“기회를 주지.”

‘기회’라는 말에 오성춘이 순간 눈을 크게 떴다.

“기회라면…….”

“너, 분명 대형 면허 가지고 있었지?”

“예.”

오성춘은 재벌가 자제들 중에서는 조금 특이하게 대형 면허를 따 놓은 상태였다.

물론 운전을 좋아해서 딴 것은 아니다.

21살이 되던 해에 생일 선물로 받은 수십 억짜리 초호화 버스.

여행을 좋아하는 자신을 위해 마련된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그 버스를 직접 몰고 싶어, 따 놓은 것이었다.

“일단, 간단한 심부름 하나만 해.”

“무슨…….”

“준비 끝나는 대로 건우가 너한테 연락 줄 거다. 탑차 한 대 끌고 가서, 물건만 전달해 주고 와.”

“물건이라면…….”

“선거 자금.”

“……!”

“이런 일은 건우가 더 제격이지만, 피 하나 안 섞인 건우가 가는 것보다는, 비록 망나니라도 내 핏줄인 네놈이 직접 가는 게 더 낫겠지. 저쪽에서도 더 안심하고 받아먹을 테고.”

“…알겠습니다.”

마지못해 대답하는 오성춘을 잠시 못마땅한 눈빛으로 바라보던 오춘화 회장이 말을 잇는다.

“사실 누가 가든 받아먹기야 하겠지만… 이번 일에 대한 벌이라고 생각하고, 니가 직접 다녀와.”

“예.”

“그리고…….”

잠시 말끝을 흐리던 오춘화 회장이 말한다.

“성호동이 알지?”

“…서울고검장 말씀이십니까?”

오춘화 회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놈한테도 10억 정도 가져다줘. 돈이 조금 필요하다고 하는 것 같으니까. 이제는 한 식구기도 하고.”

“…….”

“차 키 미리 받아 놓고, 포장 잘 해서 조용히 그놈 트렁크에 실어 놔. 내 미리 얘기해 놓을 테니까. 변호사가 그놈 만난다고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 아무도 없으니까, 괜한 실수만 하지 말어.”

“…예.”

“네놈, 지금부터 지켜볼 거야. 또 한 번 개짓거리 했다간… 말 안 해도 알지?”

“…알고 있습니다.”

“나가 봐.”

오춘화 회장의 축객령에 오성춘이 한차례 깊이 허리를 숙였다.

쿵!

이내 작은 소음과 함께 출입문이 닫히자, 오춘화 회장이 혀를 끌끌 찼다.

“쯧, 못난 놈…….”

작게 중얼거리는 오춘화 회장의 목소리가, 서재 내부에 조용히 울려 퍼졌다.

* * *

“씨발!”

와장창!

오성춘이 신경질적으로 내뻗은 손길에 화분이 바닥으로 떨어지며 산산조각이 났다.

“빌어먹을, 노망난 늙은이! 그 곰팡내 나는 독방에서 한 달 만에 끄집어내 놓고 택배 배달 따위나 시켜!”

한참이나 씩씩대던 오성춘이 울분에 찬 고함을 터뜨린다.

“으아아아아아악!!”

오성춘이 광기에 가득 찬 눈빛으로 주변을 휘휘 둘러본다.

TV, 의자, 컴퓨터.

시야에 들어오는 것들은 닥치는 대로 깨부수던 오성춘이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휴대전화마저 집어 던지려다가 멈칫한다.

“스읍~ 후우~”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가 내뱉은 오성춘의 두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는다.

휴대전화를 집어 든 오성춘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3번의 신호음이 채 들려오기 전에, 수화기 너머로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예, 장춘만입…….”

“뭐 한다고 전화를 이렇게 늦게 처받아!?”

한껏 예민해져 있던 오성춘이 큰 소리로 고함쳤다.

“아따, 귀청 떨어지겠소. 도련님, 오랜만에 목소리 듣는데, 이제 좀 살 만한 갑소?”

“뭐? 살 만해? 씨발놈아! 니 밑에 씹어 먹어도 모자랄 모지리 새끼들, 그 새끼들이 일 처리 좆같이 해서 지금 이 모양, 이 꼴 아냐!?”

오성춘의 말에 남자가 조금 굳은 목소리로 대답한다.

“…애들이 잘못한 건 인정하요. 그건 미안하게 됐소. 그래도… 욕은 하지 맙시다. 우리도 이번 일로 사업장 절반을 빼앗겼소.”

“뭐, 욕은 하지 마?”

‘큭큭’ 하고 낮게 웃음을 터뜨린 오성춘이 말한다.

“장춘만이, 너도 내가 우습나?”

“그게 무슨…….”

“버러지 같은 깡패 두목 나부랭이 새끼가, 이제는 나랑 맞먹으려고 들어?”

“…….”

수화기 너머의 남자가 입을 다문 채 침묵을 지키자, 오성춘이 낮은 목소리로 으르렁거린다.

“남은 사업장이라도 잘 지키려면 생각 잘 해. 괜히 내 신경 건드리지 말고, 주제에 맞게 행동하란 말이야, 버러지 새끼야.”

“…….”

“내 행동에 따라 사업장을 모조리 빼앗길 수도, 빼앗긴 사업장을 다시 되찾을 수도 있다는 것. 너도 잘 알 텐데?”

한차례 입술을 꽈악 깨문 남자가 대답한다.

“…미안합니다.”

남자의 사과에 깊게 심호흡한 오성춘이 입을 열었다.

“시킬 일이 있다.”

“…말하시오.”

“운전 잘하는 놈… 아니, 아니지.”

말을 잇던 오성춘이 한차례 고개를 저었다.

단순히 운전만 잘하는 놈은 안 된다.

이번 일을 하는 데 준비물은 필수다.

한 치의 변수도 있어서는 안 된다.

구린 일을 하는데, 혹시라도 무면허 따위로 단속이라도 당하면 골치 아파진다.

아마 그래서 오춘화 회장도 가장 먼저 자신에게 대형 면허 얘기를 했으리라.

잠시 고민하던 오성춘이 곧바로 말을 잇는다.

“운전은 기본이고 대형 면허도 있는 놈, 그리고 믿을 만한 놈 세 명 정도 더 준비해 둬.”

“…무리요. 지금 우리 조직이 어떤 상황인지는, 누구보다 당신이 잘 알고 있지 않소? 그 정도 여유 인원은 이쪽에도 없소.”

남자, 장춘만이 우두머리로 있는 망치파의 상황은 현재 매우 좋지 않다.

이번 사건으로 조직원의 약 30퍼센트가 줄줄이 연행되어 갔고, 그 틈을 타 평소 감정의 골이 깊어질 대로 깊어져 있던 20세기파의 급습을 받았다.

순식간에 사업장 대부분을 빼앗겼고, 망치파는 그런 상황 속에서도 함부로 움직일 수 없었다.

이번 일로 경찰뿐만 아니라 검찰까지 이쪽을 예의 주시하기 시작했다.

섣불리 움직였다가는, 얼마 남지 않은 조직원들마저 콩밥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다.

“안 돼?”

오성춘이 서늘한 목소리로 물었다.

무언가 말하려던 장춘만이, 결국 한숨을 내쉬었다.

“…아니요. 최대한 빠릿빠릿한 놈들로 준비하겠소.”

“그래야지. 이번에도 병신짓 했다간, 기대해도 좋을 테니까.”

“…알았소.”

장춘만의 대답을 들은 오성춘이 곧바로 통화 종료 버튼을 눌렀다.

그 어렵다는 사법고시까지 패스한 자신에게 택배 기사 노릇이나 하라고?

“웃기는 소리.”

자리에서 몸을 일으킨 오성춘이 중얼거린다.

“버러지들이 하는 일은, 버러지들이 해야지. 그보다는…….”

눈을 빛낸 오성춘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 * *

“오? 자네가 오 회장님 손주라는 그…….”

자리에서 일어난 성호동이 지금 막 고검장실로 들어서는 오성춘을 반갑게 맞이한다.

“반갑습니다, 검사장님. 오성춘이라고 합니다.”

고개를 숙이는 오성춘을 보며 성호동이 밝은 얼굴로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명성의 보물을 보게 되어, 내가 더 반갑네. 오 회장님 손자 중에 같은 법조인이 있다고 해서, 항상 궁금했는데 이렇게 보게 되는군.”

오성춘이 옅게 웃었다.

“저도 평소 고검장님 명성을 익히 들어, 꼭 한 번 뵙고 싶었습니다.”

성호동이 짓궂게 미소 지었다.

“그거 너무 입에 발린 소리 아닌가? 일단 앉지.”

“감사합니다.”

오성춘이 자리에 앉자, 성호동이 입을 열었다.

“오 회장님한테는 연락 받았네. 어르신 챙기기도 벅차실 텐데, 내 얘기는 언제 들으셨는지… 참 존경스러운 분이야.”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오성춘의 대답에 성호동의 미소가 한층 짙어진다.

잠시 주변을 휘휘 둘러보던 성호동이 목소리를 낮추며 말한다.

“혹시 내가 왜 그 돈이 필요한지, 그것도 들었나?”

“예? 아니요. 그것까지는…….”

“한두 푼도 아니라 오 회장님도 궁금하실 법도 할 텐데… 아니, 이미 알고 계시려나?”

못 말리겠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던 성호동이 장문식에게 했던 얘기를 그대로 하기 시작했다.

자신과 정승만의 2파전.

그리고, 예상되는 상황.

“이미 정승만이 라인 쪽에 붙어 있던 장문식이가 우리 쪽으로 돌아섰어. 일이 쉬워졌지. 시기에 맞춰서, 떡값… 아니, 명절 선물 명목으로 사과 상자 한두 박스 정도 준비해서 정승만이 차량 트렁크에 실을 거야. 아는 기자도 이미 하나 섭외해 뒀지. 거기까지만 가면…….”

성호동이 씨익 미소 지었다.

“정승만이는 미치고 팔짝 뛰며 결백을 주장하겠지. 당연히, 내부 감찰에서도 사과 상자의 출처를 밝히기 위해 수사를 시작할 테고. 사실, 그쯤에서는 진위 여부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어.”

“이미 그 상황 자체만으로 큰 타격을 입은 정승만 지검장은, 사퇴할 수밖에 없겠죠. 자진 사퇴를 하지 않더라도, 현 총장님이 가만히 있지 않을 테고…….”

“그렇지!”

오성춘의 말에 성호동이 ‘짝’ 하고 손뼉을 쳤다.

“문식이를 제외하고, 지금 정승만이 옆에 남아 있는 놈은 강혁수 하나. 그놈까지 이쪽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면 금상첨화겠지만, 워낙 고집불통인 놈이라… 하긴, 그것까지 바란다면 욕심이겠…….”

말을 잇던 성호동이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슬쩍 미간을 찌푸렸다.

“아니지, 하나 더 있었군. 최근에 그쪽에 합류한 신임. 확정된 건 아니라고 들었는데, 요즘 만나는 횟수나 분위기로 봐서는 거의 합류한다고 봐야겠지.”

“…신임이요?”

오성춘이 인상을 찌푸렸다.

‘서울지검에 신임이라면 분명…….’

“분명 이름을 들었던 것 같은데… 강, 뭐지?”

“…강도윤, 아닙니까?”

“오! 맞아! 자네가 어떻게 알았지?”

잠시 무언가 생각하던 오성춘이 비릿한 미소를 짓는다.

“제 동기거든요.”

“오!”

성호동이 감탄사를 터뜨렸다.

“그거 잘됐군! 혹시 친한가? 그럼…….”

“검사장님.”

“응?”

“그쪽은, 저한테 맡겨 주실 수 있을까요?”

오성춘의 말에 성호동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래 준다면야 내가 고맙지! 오히려 내가 부탁하고 싶군. 하하하! 이번에 미안할 정도로 도움을 받는 것 아닌가 모르겠어.”

“괜찮습니다. 쉬운 일인데요.”

‘그저 상자 하나만 더 만들면 되는 일인데…….’

뒷말을 삼킨 오성춘의 미소가 한층 짙어졌다.

* * *

우우웅, 우우웅.

굵은 땀방울을 뚝뚝 흘리며, 산책로를 뛰고 있던 도윤이 주머니에서 느껴지는 진동에 휴대전화를 꺼내 들었다.

이윽고 화면 위로 떠오른 ‘박판섭’이라는 이름을 확인한 도윤이 통화 버튼을 눌렀다.

“…응, 나야.”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뜀박질을 하고 있던 도윤이 순간 제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그 첩보, 진짜겠지?”

“아, 그렇다니까! 이미 망치파 대부분은 우리 식구나 다름없어! 확실해.”

도윤의 미소가 짙어졌다.

“지금 가지.”

통화를 끊은 도윤이 왔던 길을 되돌아 뛰어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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