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화 쓰레기 처리반
“너… 너 이 새끼. 니가 대체 어떻게 여길……!”
순간 장춘만이 두 눈을 부릅뜨며, 부들부들 떨리는 손가락을 들어 도윤의 뒤쪽을 가리킨다.
장춘만의 지목을 받은 사내, 박판섭이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도윤보다 한발 더 나섰다.
“오랜만이요, 형님.”
“이 개자식아!”
격분한 장춘만이 튀어나가려고 하자, 손전등을 쥐고 있던 사내가 재빨리 장춘만의 뒤를 붙잡았다.
“아, 형님! 침착! 침착하쇼!”
“놔라, 불곰! 저 개새끼만 아니었으면 우리가 이렇게 까진……!”
“그만 좀 하쇼!!!”
키가 2미터에 육박하고, 덩치가 작은 동산을 보는 것 같아 불곰이라 불리는 사내가 버럭 고함쳤다.
“너, 너…….”
장춘만이 놀라 눈을 크게 뜨자 불곰이 감싸 쥐고 있던 두 팔을 풀었다.
말을 잇지 못하는 장춘만을 잠시 바라보던 불곰이 저 멀리 있는 박판섭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오랜만이다, 박판섭.”
박판섭이 픽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형님 반응을 보니, 아무래도 설득에는 실패한 것 같네, 불곰.”
박판섭의 말에 장춘만의 두 눈이 찢어져라 부릅떠졌다.
“그게 대체 무슨……!”
장춘만의 두 눈빛이 좌우로 마구 흔들리기 시작한다.
외부에 절대 노출되어서는 안 되는 장소에, 절대 나타나서는 안 될 인물이 나타났다.
그런데 그 인물로부터 나와서는 안 될, 믿을 수 없는 말까지 흘러나왔다.
“설득에 실패했다니… 그게 무슨 소리냐.”
장춘만의 고개가 옆을 향해 홱 하고 돌아간다.
“불곰, 대답해 봐라. 설마 니가, 니가…….”
불곰이 곧바로 대답한다.
“제가 박판섭에게 연락했습니다.”
“니가, 어떻게, 나한테…….”
장춘만의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장춘만의 얼굴이, 조금씩, 악귀처럼 일그러지기 시작한다.
“씨발 새끼야! 니가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
오른쪽 주먹을 등 뒤로 힘껏 당긴 장춘만이 정면을 향해 그 주먹을 그대로 날렸다.
퍼억!
경쾌한 타격음과 함께 불곰의 고개가 홱 하고 돌아갔다.
“…퉷!”
한참이나 그 상태로 가만히 서 있던 불곰이, 바닥을 향해 피가 섞인 침을 내뱉었다.
이제는 얼굴이 완전히 일그러진 장춘만이 다시 한 번 주먹을 내뻗을 듯한 자세를 취했다.
“씹새……!”
“단 한 번도!”
그 순간 불곰이 버럭 고함쳤다.
주먹을 내뻗으려던 장춘만이 움찔한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형님의 말에 항명해 본 적도, 불만을 토한 적도 없었소. 그따위 짓거리를 할 생각조차 품지 않았지. 부모 없이 자란 나를 거둬 키워 준 형님은, 나한테 그 자체로 부모이자 존경의 대상이었으니까.”
“…….”
불곰이 장춘만의 두 눈을 바라보며 말을 잇는다.
“그런데 오늘. 처음으로 형님한테 불평이란 걸 해 봤소. 짐 나르기 따위의 일을 시켜서? 그게 무어라고, 고작 그 정도 일은 형님을 위해서라면 몇천 번도 더 해 줄 수 있어.”
장춘만의 두 눈동자가 다시 흔들리기 시작한다.
“그런데 대체 왜…….”
“형님은 착각하고 있소. 20세기파와 저기 있는 박판섭. 저놈들 때문에 우리 조직이 이만큼 무너졌다고 생각하시오? 정녕 저기 있는 저놈들이 우리 적이라고 생각하시오?”
“놈들이 우리를 먼저 공격했다! 그것도 우리 애들 대부분이 잡혀 들어간 틈을 이용…….”
“이 바닥은!”
장춘만의 말을 끊고 박판섭이 버럭 고함쳤다.
“약해지면 잡아먹히는 게 당연하지 않습니까! 약육강식(弱肉强食)! 적자생존(適者生存)! 가방끈이 짧아 멍청한 나한테, 이 정도 뜻은 알아야 된다며 형님이 입버릇처럼 하던 말들이요.”
장춘만이 입을 다물었다.
“이빨과 발톱이 빠진 맹수가 하이에나들에게 물어뜯기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왜 놈들에게 공격을 당했는지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왜 이빨과 발톱이 빠지게 되었는지, 그 원인을 먼저 알아야죠.”
“…….”
“형님은 우리 조직이 왜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말을 마친 불곰이 힐끗 탑차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불곰을 따라 시선을 돌리던 장춘만이 입술을 꽈악 깨물었다.
“명성 때문에 우리 조직이 이렇게 되었다고? 불곰, 니 착각일 뿐이다! 명성이 우리를 이용하였듯이, 우리도 그저 명성을 이용했으면 되었단 말이다! 그런데 니가, 니가……!”
“명성이 아닙니다.”
장춘만의 말에 단호하게 대답한 불곰이 무언가를 떠올리는 듯한 표정을 짓는다.
“양금이파 사건을 기억하십니까?”
“양금이파라면…….”
잠시 말끝을 흐리던 장춘만이 침음을 삼켰다.
불과 10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양금이파는 국내 최대 규모의 마약밀매조직이었다.
1년 거래량만 자그마치 필로폰 수천 킬로그램.
거래 규모가 엄청난 만큼 그 힘 또한 지금의 망치파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강성했다.
그런 양금이파가 단 1년도 안 되는 기간 동안 정부에 의해 모조리 소탕되었다.
각종 언론에서는 ‘마약과의 전쟁’을 천명한 정부의 발 빠른 행동력에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웠지만, 일부 사람들은 이런 정부의 행동에 큰 의문을 품었다.
당시에는 유력 정계 인사들 중 양금이파의 돈을 먹지 않은 사람이 없다는 소문이 돌 정도로, 많은 권력자가 양금이파와 연결되어 있던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형님에게 거두어지기 전, 어렸던 저에게는 누나가 한 명 있었습니다.”
“……!”
장춘만이 눈을 크게 떴다.
천애 고아인 놈에게, 누나라니?
처음 듣는 소리다.
무언가 말하려던 장춘만이 멈칫한다.
“…있었다?”
불곰이 씁쓸하게 웃었다.
“예. 지금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
짧게 한숨을 내쉰 불곰이 말을 잇는다.
“제 누나는 제법 잘나가는 강남 룸싸롱의 아가씨였습니다.”
장춘만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아가씨?”
불곰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연예인만큼 이쁜 사람들만 모인다는 그곳에서도 에이스였죠. 제 얼굴이야 요 모양 요 꼴이지만, 저희 누나는 저와 달리, 아주 예뻤거든요.”
“그런데 왜…….”
차마 뒷말을 잇지 못하는 장춘만의 말에 불곰이 말한다.
“윤간당했습니다. 양금이파 놈들한테.”
“……!”
장춘만이 쩌억 하고 입을 벌렸다.
“기껏해야 가라오케나 방석방에서 술이나 먹던 놈들이, 급격히 성장하면서 돈 좀 벌었다고 강남까지 상경하여 생판 처음 보는, 급이 다른 아가씨들을 보니 눈이 돌아갔겠죠. 술에 약을 탔고, 발정난 개새끼처럼 많은 아가씨들을 겁탈했습니다. 그리고…….”
잠시 말끝을 흐리던 불곰이 침중한 목소리로 말을 잇는다.
“그 과정에서 저희 누나가 죽었습니다.”
“……!”
장춘만의 두 눈이 더더욱 커졌다.
“필로폰 과다 투약. 지독한 환각과 중독 증세를 이용해 지속적으로 어떻게 해 보려고 했겠지요.”
잠시 먼 곳을 응시하던 불곰이 다시 장춘만에게 시선을 돌린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고.”
한차례 쓰게 웃은 불곰이 계속 말한다.
“그 사건으로 양금이파가 발칵 뒤집혔습니다. 당시 저희 누나는 높은 어르신의 스폰을 잡고 있었습니다.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사람의 말 한 마디에 그 대단한 양금이파가 흔적도 없이 쓸려 나갔죠.”
충격적인 비화를 들어서였을까?
장춘만이 입을 다문 채 침묵을 지켰다.
그런 장춘만의 두 눈을, 불곰이 굳은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을 잇는다.
“저희는 바로 그런 존재들입니다.”
“뭐, 뭐라고……?”
“보이지 않는 음지에서는 마치 왕이라도 되는 것처럼 행동하지만, 권력자의 말 한 마디에 언제든지 폐기 처분될 수 있는, 딱 그 정도의 벌레만도 못한 존재.”
“…….”
“형님, 형님은 항상 저를 못마땅하게 생각하셨죠. 마약과 장기매매. 조직의 가장 큰 자금줄인 일들에 참여조차 하지 않고, 항상 반대만 해 왔으니까요.”
불곰이 스읍 하고 숨을 들이켰다.
잠시 후, 불곰이 가라앉은 눈빛으로 말한다.
“이 자리에서 다시 한 번 말씀드리겠습니다. 마약과 장기매매에서 손을 떼고, 그 빌어먹을 망나니가 있는 명성과도 연을 끊으십시오.”
불곰이 장춘만의 두 눈을 똑바로 마주한다.
“이제는 남들한테 떳떳한 방식으로 힘을 불려 나가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손가락질하더라도, 우리 스스로 떳떳해야…….”
푸욱!
불곰이 말을 잇던 그 순간, 날카로운 무엇인가가 꿰뚫는 듯한 섬뜩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컥!”
불곰이 옆구리를 부여잡고, 주춤주춤 앞으로 몇 걸음 내디뎠다.
“뭐라고 지껄이는 거야, 더러운 배신자 새끼가.”
칼을 잘 써 칼치라는 별명이 붙은, 망치파의 부두목이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달빛조차 희미한 어두운 밤에, 칼치가 손에 쥔 잭나이프만은 유난히 반짝였다.
“끄윽……! 칼치, 너 이 새끼…….”
뒤에서 그대로 옆구리를 찔린 불곰이 솥뚜껑만 한 손으로 그곳을 부여잡자, 손가락 사이로 핏물이 꿀렁꿀렁 흘러나왔다.
“형님, 설마 저따위 위선자 새끼의 말을 귀담아들으시는 건 아니겠죠?”
“…….”
입을 다문 채 멍하니 불곰을 바라보는 장춘만을 보며, 칼치가 말을 잇는다.
“저놈이 하는 말은 하나같이 모두 모순 덩어리입니다. 명성? 명성이 없었으면, 지금의 우리도 없습니다. 명성은 저희의 든든한 빽입니다. 이 나라, 대한민국에 그것만큼 중요한 게 어디 있습니까?”
“…….”
“마약요? 바이어가 원하지 않으면, 팔지도 않는 물건들입니다. 지들이 좋아서 구하고 싶어 눈에 불을 켜고 있는 걸, 저희는 그저 도와주고 있을 뿐입니다.”
여전히 입을 다문 채 침묵을 지키는 장춘만을 보며 칼치가 계속 말한다.
“장기밀매? 그게 뭐 어때서? 우리가 길거리에 있는 아무나 둘러메고 와서 작업을 합니까? 높으신 분들의 수요에 따라, 딱 필요한 만큼만, 사람 봐 가면서 작업하지 않습니까? 그렇게 태어난 새 생명이 이 땅의 수많은 사람들을 먹여 살리겠죠. 그런 위대한 일을 저희가 하고 있습니다.”
말을 잇던 칼치가 불곰을 바라보며 낮게 으르렁거린다.
“그리고, 저 호래자식이 저희를 벌레만도 못하다고 표현했는데…….”
다시 장춘만에게 시선을 돌린 칼치가 말을 잇는다.
“대가리가 빠개지도록 공부해서 일류 대학에 간 놈들도, 그 어렵다는 고시 시험을 패스한 놈들도, 모두 저 명성에 줄이라도 한번 대 보려고 꼬리를 흔듭니다. 그런 명성을, 저희는 이미 빽으로 두고 있습니다.”
칼치가 어이가 없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이런 우리가, 벌레만도 못하다구요? 저 대단하신 양반들도 잡지 못하는 줄을, 우리가 대고 있는데?”
장춘만의 두 눈에 초점이 조금씩 잡히기 시작한다.
그런 장춘만을 보며, 칼치가 마지막 말을 잇는다.
“형님, 우리는 명성의 졸이 아닙니다. 형님 말씀대로, 그저 서로 필요에 의해 이용하는 비즈니스적 파트너일 뿐이죠.”
“…….”
“그저 해 오던 대로 하면 됩니다. 명성은 우리의 보호막이 되어 주고, 우리는 명성에서 필요한 걸 해 주면 될 …….”
“도저히 못 듣고 있겠군.”
그때, 지금까지 침묵을 지키던 도윤이 입을 열었다.
“원래 계획은 망치파는 망치파대로 모두 다 끌어안고 갈 생각이었는데…….”
도윤이 상의에 달린 후드를 푹 뒤집어쓰며, 어두운 곳에서 몇 걸음 더 앞으로 내디뎠다.
“쓰레기까지 안고 갈 필요는 없겠지.”
“미친 새끼.”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혀로 입술을 핥은 칼치가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