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잡는 회귀검사-66화 (66/174)

66화 반전의 묘미(妙味)

“그런데… 장 검사님.”

한참 걸음을 옮기고 있던 경성신문의 기자 박병창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예?”

“A양 원정 성매매와 관련된 찌라시는 증권가에 제법 오래전부터 돌고 있던 걸로 아는데… 아닙니까?”

의미심장한 어조로 묻는 박병창을 보며 장문식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박병창의 말대로 A양 찌라시는 반년도 훨씬 더 전에 나돌고 있던 것이었다.

이 바닥에 도는 찌라시라는 것이, 확 하고 금방 떠오르다가도, 다시 죽어 버리는 일이 다반사였기 때문에 오래된 사건을 갑자기 끄집어내는 현직 검사의 의도가 궁금했으리라.

‘기자들이란…….’

속으로 중얼거린 장문식이 옅게 미소 지으며 입을 열었다.

“비교적 최근 수사에 진척이 있었습니다. 명색이 검사라는 사람이, 확실하지도 않은 정보를 미리 뿌려 댈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다른 더 큰 사건이 있는 건 아니구요?”

“…….”

박병창과 달리 직설적인 성격의 소유자인 한신신문 김성필 기자의 말에 장문식이 잠시 입을 다물었다.

“아, 오해는 마십쇼. 저희 둘만 이렇게 따로 불러 주신 게 궁금하기도 하고, 혹시나 해서 여쭤본 겁니다.”

장문식이 옅게 미소 지은 채 대답한다.

“오해는요, 비판적인 사고(critical thinking)는 기자의 기본자세 아닙니까? 이해합니다. 그리고…….”

걸음을 옮기던 장문식이 두 기자에게 시선을 돌리며 말을 잇는다.

“이미 아시겠지만, 지금 저희 지검에는 기자님들이 큰 사건이라 생각할 만한 소스가 없습니다. 연말이 다가오니, 저희도 비수기라서요.”

“…….”

“기자님들도 아시겠지만, 이쪽 바닥도 그놈의 성과, 성과 노래를 부르는 곳이라… 성과 시즌에만 바짝 열을 올리고 있거든요. 지금은 일거리를 더 드리고 싶어도, 드릴 수가 없는 상황입니다. 이해하시죠?”

“그야 뭐…….”

이내 고개를 끄덕이는 기자들을 잠시 바라보던 장문식이 정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벌써 다 왔군요.”

정면에 자리한 지하 주차장 입구를 바라보며, 장문식이 중얼거렸다.

‘지금쯤이면…….’

속으로 중얼거린 장문식이 힐끗 손목시계를 확인한다.

‘벌써 30분은 지났다. 단순한 작업인 만큼 뒷마무리까지 끝났겠지.’

생각을 끝낸 장문식이 뒤를 돌아보며 말한다.

“자료가 꽤 많은데, 여기서 조금만 기다리시면…….”

“아니, 아니요. 같이 가시죠. 날로 먹는 마당에, 짐이라도 들어 드려야죠.”

김성필의 말에 박병창도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한발 앞으로 나섰다.

“그러시다면, 저야 감사합니다.”

이내 장문식이 지하 주차장을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응?”

지하 주차장에 들어서자마자 장문식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입구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차를 주차해 뒀기에, 주차장에 들어서면 자신의 차량과 정승만의 차량이 한눈에 보였다.

그런데…….

‘웬 사람들이…….’

속으로 중얼거린 장문식이 빠르게 그쪽으로 다가간다.

“…누구시죠?”

안절부절못하고 있던 두 사내 중 하나가 고개를 홱 돌렸다.

“부… 부장검사님.”

두 사내 중 하나의 정체를 확인한 장문식의 두 눈이 더더욱 커졌다.

“자네는…….”

멍한 표정으로 중얼거리던 장문식이 급히 고개를 숙였다.

지금 고개를 들었다간, 웃음이 터져 나올 것 같았기 때문이다.

‘큭, 큭큭큭. 이건 마치 드라마 같지 않은가?’

눈앞에 있는 남자.

서울지검장 정승만의 전속 실무관이나 다름없는 사람이다.

옆에 있는 남자도 크게 낯설지 않은 것이, 아마 같은 검찰청 직원인 듯했다.

‘하늘이 이 장문식이를 돕는군.’

작업 시간과 주차장에 도착하는 시간 사이에 시간 차를 둔 것은, 은연중에 이런 의도도 있었기 때문이다.

기자들에 의해 세상 만천하에 알려질 일이다.

그런 일이라면 그 전에 미리 내부적으로 소문이 나, 한 번 뒤집어 주는 것이 더 극적인 효과를 연출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공개된 장소에 놓여 있는 사과 상자.

대수롭지 않게 지나칠 사람이 대부분이겠지만, 분명 궁금증을 못 이겨 확인해 보는 사람도 있을 테니까.

‘돈에 눈이 멀어도 이렇게 사방이 뚫린 공간에서, 이 무거운 걸 대놓고 가져갈 수도 없을 테고.’

결과적으로 신의 한 수였다.

짐짓 표정을 굳힌 장문식이 두 사내를 밀치며 앞으로 걸음을 내디딘다.

“무슨 일이야?”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장문식의 뒤에서 기다리고 있던 두 기자도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이건…….”

장문식이 화들짝 놀란 표정으로 차량 뒤 바닥에 놓여 있는 사과 상자를 향해 다가갔다.

이미 개봉되어 있는 사과 상자 안에는 만 원권 지폐가 한가득 들어 있었다.

그리고 지폐 다발 위에 살포시 놓여 있는 흰색 봉투에는 ‘정승만’이라는 세 글자가 선명하게 적혀 있었다.

“정승만이라면 분명…….”

“서울지검장……?”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두 기자가 멍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김성필이 주변을 휘휘 둘러봤다.

눈앞에 있는 2개의 사과 상자.

조금 떨어진 차량 아래의 사과 상자까지, 눈에 보이는 것만 3상자나 되었다.

짧은 시간 사이에 상황 파악을 마친 김성필이 손가방 안에서 급히 휴대용 카메라를 꺼내 들었다.

톱스타 원정 성매매 따위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특종이다.

펜대만 잘 굴리면, 국민적 영웅으로 등극함은 물론 승진과 두둑한 보너스까지 노려볼 수 있다.

“에헤이! 김 기자! 뭐 하는 거야!”

카메라를 들이대는 김성필의 앞을 장문식이 급히 막아섰다.

“아, 좀 비켜 보십쇼, 검사님. 방해되지 않습니까?”

“방해라니! 진짜 우리 사이에 이럴 건가!? 일단 상황 파악부터 해야…….”

“저도 일단 상황 파악부터 해야 하니까, 일단 좀 나와 보십쇼.”

“A양 건! 준다니까!?”

“필요 없습니다.”

“이익……! 문 실무관! 뭐 하는 거야! 빨리 안 막아!?”

“예? 아, 예, 예.”

장문식의 고함 소리에 정신을 차린 정승만의 실무관이 급히 다가와 김성필을 막아섰다.

세 사람이 옥신각신하고 있는 그 순간.

찰칵, 찰칵, 찰칵, 찰칵.

갑작스레 쉼 없이 들려오는 셔터 소리에 세 사람이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어느새 카메라를 꺼내 든 박병창이 차량과 사과 상자를 열심히 찍어 대고 있었다.

“박 기자! 박 기자!”

귀신같은 솜씨로 순식간에 촬영을 끝낸 박병창이, 장문식의 고함 소리에 아랑곳하지 않고 나머지 사과 상자를 향해 뛰어간다.

“막아! 막으라고!”

“예, 예!”

실무관이 박병창을 향해 급히 뛰어간다.

“아, 좀 비켜 보십쇼! 국민들은 알권리가 있습니다!”

라이벌 격 신문사 소속인 박병창에게 선수를 빼앗길 수는 없다.

다급해진 김성필이 장문식을 확 하고 밀어냈다.

“어이쿠!”

장문식이 앓는 소리를 내며, 한쪽으로 밀려나자 그 사이로 쉼 없이 플래시 세례가 터져 나왔다.

찰칵, 찰칵, 찰칵, 찰칵.

마치 아름다운 노랫소리라도 되는 것처럼 셔터 소리가 기분 좋게 장문식의 귀청을 때렸다.

‘끝났군.’

장문식이 조용히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 * *

“지검장님!”

지검장실 출입문이 벌컥 열리며, 강혁수가 뛰어 들어왔다.

“뭐야, 무슨 일이야?”

노크도 없이 급하게 뛰어 들어오는 강혁수를 보며 정승만이 잠시 인상을 찌푸렸다.

“TV. TV 좀……!”

“뭐? TV? 무슨 소리를…….”

“지금 빨리! TV 한번 틀어 보십시오!”

다급히 고함치며 주변을 휘휘 둘러보던 강혁수가 이내 책상 위에 놓여 있는 리모콘을 발견했다.

리모콘을 집어 든 강혁수가 곧바로 전원 버튼을 눌렀다.

“진짜 뭐 하는 짓…….”

말을 잇던 정승만의 두 눈이 찢어져라 부릅떠졌다.

대낮부터 이례적으로 뉴스 속보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저게 무슨 개소리야!?”

정승만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뇌물수수라니! 뭐? 내 차에서 현금 다발이 발견됐다고!?”

“…제 차 아래에서도 발견되었답니다.”

강혁수가 허탈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돈은커녕 사과 한 알도 받은 적이 없는데, 이런 미친 새끼들이!”

격분한 정승만이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출입문을 향해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지검장님! 지금 나가시면……!”

강혁수가 급히 외쳤지만, 한발 늦었다.

정승만이 출입문 밖으로 나오자마자 커다란 목소리가 귀청을 때렸다.

“저기 나온다!”

“지검장님! 중심일보의 박대기입니다! 말씀 좀……!”

로비에서 언제 이곳까지 올라왔는지, 지검장실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기자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소문이 워낙 빠르게 퍼져 나가 지검 직원들조차 미리 대비할 시간이 부족했으리라.

필사적으로 기자들을 막아서고 있는 지검 직원들을 보며, 정승만이 입술을 꽈악 깨물었다.

사실 확인이 우선이다.

지금 기자들에게 붙잡히면, 확인은 고사하고 하루 종일 인터뷰에 시달려야 할 것이다.

생각을 마친 정승만이 비상계단을 향해 빠르게 뛰어갔다.

“지검장님! 지검장님!”

“내려간다!”

“말씀 좀 해 주시고 가시죠, 정승만 지검장님!”

등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들을 무시하고, 정승만이 한참이나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이윽고 비상계단을 통해 1층 로비에 도착했을 때.

“……!”

파도처럼 몰려든 인파를 보며, 정승만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위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기자들이 몰려 있었다.

“지검장님!”

“지검장님! 조국일보의 정석진입니다! 한 말씀만 해 주시죠! 뇌물수수 정황이 포착되었다는 게, 사실입니까!?”

“사과 상자를 누구한테 받으셨습니까!?”

몇 안 되는 직원들이 드넓은 로비에서까지 기자들을 막을 수는 없었다.

어느새 주변으로 몰려든 기자들의 목소리가 연신 귀를 시끄럽게 했고, 쉼 없이 터지는 플래시 세례는 눈을 아프게 했다.

“하…….”

정승만이 한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었다.

* * *

같은 시각.

작은 밀실 안에서 도윤이 TV에서 지금 막 흘러나오는 뉴스 속보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음모와 모략. 나와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는데…….”

도윤이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어느 직장을 가도 다 그렇듯, 인사나 승진과 관련된 일들은 항상 더러운 정치 싸움이 판을 쳤기 때문에, 애초에 그쪽으로는 관심조차 가지지 않았었다.

청탁, 뇌물, 근거 없는 모략, 흑색선전.

그따위 것에 심신을 소비하기에는, 한 번뿐인 인생이 너무 아깝지 않은가?

‘한 번의 죽음을 경험하기 전이었다면… 말이지.’

속으로 중얼거린 도윤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명성을 무너뜨리기 위해, 높은 사회적 지위는 가장 큰 무기 중 하나다.

그런 무기를 스스로 포기할 생각은 전혀 없다.

계획대로 검사가 되었고, 더 높은 곳에 오르기 위해 지금도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애꿎은 사람에게 피해만 주지 않는다면, 도윤은 명성을 무너뜨리는 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것을 위해서… 날 좀 도와줘야 되겠어.”

도윤이 힐끗 뒤를 돌아본다.

순간 도윤의 시선을 느낀 젊은 사내가 흠칫 몸을 떨었다.

장문식에게 차량 열쇠를 전달받아 사과 상자를 옮겼던 바로 그 사내였다.

“영화든, 드라마든, 기막힌 반전이 있어야 재미있잖아?”

“…….”

씨익 미소 지은 도윤이 말을 잇는다.

“두 번째 에피소드, 반전 신. 같이 준비해 보자고.”

도윤이 낮게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작은 밀실 내부에 조용히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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