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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잡는 회귀검사-68화 (68/174)

68화 절정, 클라이막스

콰당!

커다란 소리와 함께 서울고검장실 출입문이 벌컥 열린다.

“검, 검사장님!”

“…엉? 피 검사, 무슨 일이야?”

특이하게 피씨 성을 가진, 자신의 라인 쪽 검사가 헐레벌떡 들이닥치자, 성호동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큰, 큰일 났습니다!”

“큰일?”

성호동이 반문하자, 옆에 앉아 있던 장문식도 슬쩍 미간을 찌푸렸다.

“지금, 지금 정승만 지검장의 사과 상자 사진이 세상천지에 뿌려지고 있습니다.”

“아, 뭐야? 그 일 때문이었어?”

성호동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피 검사, 아무리 지방 출장 갔다 온 직후라지만, 명색이 내 라인이라는 사람이 소식통이 너무 느린 것 아니야? 그거 이미 다 알고 있는 일이잖아.”

곁에 있던 장문식도 옅은 미소를 지었다.

“…예? 알고 계신다고요?”

순간 멍한 표정을 지은 남자가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묻는다.

“그런데… 이렇게 가만히 계셔도 되는 겁니까?”

성호동이 쯧쯧 혀를 찼다.

“이렇게 머리가 안 돌아가서야……. 내 이래서 이쪽에 붙은 지 얼마 안 된 장 검사를 더 신뢰하는 거야. 지금은 적당히 유감 표현만 해 주고, 가만히 앉아서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면 될 때야. 괜히 설쳐서 좋을 것 하나 없다니까?”

성호동의 말을 장문식이 받는다.

“사과 상자 사진은 아마 현장에 있던 기자들이 찍은 것일 겁니다. 처음부터 같이 있었거든요.”

“예? 기자들이 같이요?”

피 검사라 불린 남자가 멍하니 반문했다.

이내 정신을 차린 남자가 다시 묻는다.

“그럼… 그 독종 같은 기자들이 눈앞에서 특종거리인 남자를 놓쳤다는 말입니까?”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이제는 성호동도 인상을 찌푸렸다.

두 사람의 모습을 바라보며, 잠시 무언가 곰곰이 생각하던 장문식이 재빨리 TV 리모컨을 손에 쥐었다.

그리고 이내 TV에 뉴스 속보 관련 화면이 떠올랐을 때.

“……!”

장문식의 두 눈이 찢어질 듯 부릅떠졌다.

“저, 저게 뭐야?”

무심코 TV를 향해 시선을 돌리던 성호동도 두 눈을 크게 뜨며, 제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마침 TV에서는 정승만 지검장의 뇌물수수 의혹 관련 속보와 함께, 차량에 실린 사과 상자 사진이 첨부되어 세상에 알려지고 있었다.

그런데…….

“저 새끼, 저 새끼가 저기 왜 나와!”

얼굴이 시뻘게진 성호동이 버럭 고함쳤다.

추가로 입수된 긴급 보도 자료라는 자막과 함께, 웬 젊은 남자가 사과 상자를 나르는 사진이 마치 파노라마처럼 보도되고 있었다.

그것도, 코앞에서 클로즈업이라도 한 것처럼 사내의 얼굴까지 비교적 또렷하게 나왔다.

“장문식이! 저거 뭐야! 뭐냐고, 이 새끼야!”

“…….”

멍하니 TV를 바라보고 있던 장문식도 이를 악물었다.

놈에게서 갑자기 연락이 끊어질 때까지만 하더라도 그 부분에 대해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사내는 자신이 시킨 일을 완벽히 처리했고, 더 이상 이용할 가치도 없었기 때문이다.

한낱 버러지만도 못한 놈이 허튼짓을 할 거라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일반인들에게 검사라는 신분은 그 자체만으로 강력한 무기였으며, 무엇보다 자신이 ‘친동생’이라는 인질을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놈이 배신을 했다? 아니야. 아무런 이득도 되지 않는 일에, 배신을 할 이유가 없어. 무엇보다 저 사진은 제삼자가 찍었다. 즉, 현장에 다른 사람이 있었다?’

속으로 중얼거린 장문식이 입술을 잘근잘근 씹어 대기 시작했다.

“왜 꿀 먹은 벙어리야! 본드라도 처먹었어!? 장문식이, 대답해 봐!”

“…아마, 현장에 다른 사람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장문식의 대답에 성호동이 성큼성큼 그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짜악!

경쾌한 타격음과 함께 장문식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이런 등신 새끼! 그런 일 하나 제대로 처리 못 해!? 이거, 이거 이제 어쩔 거야! 어쩔 거냐고, 이 새끼야!”

“…….”

입술이 터지며 흘러나온 피를 손등으로 닦아 낸 장문식이 다시 고개를 바로 하며 입을 열었다.

“…저희는 이번 일, 아무것도 모르는 겁니다.”

“뭐?”

“TV를 보십시오. 공개된 거라곤 놈의 사진, 그것 하나뿐입니다. 놈이 누구의 사주를 받았는지, 뭐 하는 놈인지, 나이는 몇 살인지, 어디 사는 놈인지, 이름은 무엇인지! 밝혀진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

씩씩대던 성호동의 호흡이 조금씩 가라앉기 시작한다.

“비록 제 실수로 사진이 언론에 뿌려지긴 했지만… 놈이 배신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 리스크를 감수한다고, 놈이 얻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으니까요.”

“…….”

“우리는 해 오던 대로, 그저 입을 다문 채 모른 척하고 있으면…….”

“저, 저기!”

장문식이 말을 잇고 있을 때, 피 검사가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피 검사가 덜덜 떨리는 손가락을 들어 TV 화면을 가리키고 있었다.

두 사람의 고개가 홱 돌아간다.

그와 동시에…….

성호동과 장문식의 두 눈이 더 이상 커질 수 없을 정도로 찢어질 듯 부릅떠졌다.

TV 화면에는, 속보라는 말과 함께 긴급 기자회견이 준비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내용은…….

사진 속의 젊은 사내.

김재규의 양심선언이었다.

* * *

서울지검장실.

바늘 떨어지는 소리마저 들릴 정도의 고요한 침묵 속에 TV 화면에서 준비되고 있는 기자회견을 보며, 도윤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언제 플래카드까지 제작했는지, 상단에는 ‘의문의 남자, 그의 눈물 어린 양심선언’이라는 자극적인 팻말까지 걸려 있었다.

양심선언(良心宣言).

‘감추어진 비리나 부정을 양심에 따라 사회적으로 드러내어 알리는 일’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가진 이 행위의 파급력은 생각보다 대단하다.

회귀 전, 도윤이 몸담았던 경찰 조직에서도 이와 관련된 유명한 에피소드가 하나 있었다.

책상을 탁 하고 치니, 억 하고 죽었다.

5공화국 말기, 고문으로 숨진 서울대 학생의 사인(死因)에 대한 당시 치안본부장의 발표였다.

당연히 이 해괴한 발표에 전국에 있는 국민들이 들고일어났고, 특별한 증거를 찾지 못해 답답한 가슴만 부여잡고 있을 때, 결정적인 증언이 영화처럼 등장했다.

학생을 최초로 검안한 의사가 학생의 사인에 대해, 쇼크사가 아닌 고문에 의한 사망이라고 양심선언을 한 것이다.

당연히 고문에 관련된 경찰관들은 구속되었고, 당시 치안본부장은 전격 해임되었다.

사건과 연관되어 있는 한 사람의 증언은, 이토록 큰 파급력을 갖는다.

도윤이 완벽한 시나리오를 짜고 있을 때, 강혁수가 굳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저놈 신병, 당장 우리가 확보해야 합니다.”

“…….”

“이렇게 놈들이 짜 놓은 대본대로 흘러가게 놓아둘 수는 없습니다. 양심선언? 또 무슨 해괴한 짓을 꾸밀지, 상상도 가지 않습니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쥔 채 침묵을 지키고 있는 정승만을 보며, 강혁수가 말을 잇는다.

“아마 기자 대부분이 저쪽으로 몰려갔을 겁니다. 직원들로 적당히 막아 세우고, 이제는 우리도 움직여야 합니다.”

“…….”

“지검장님!”

여전히 말이 없는 정승만을 보며, 강혁수가 답답한지 버럭 고함쳤다.

“나더러…….”

“…….”

“나더러 뭘 어떻게 하란 말이냐? 내 차 트렁크에서 저 빌어먹을 상자가 발견된 순간, 게임은 끝난 거야. 국민들에게는, 어떤 말을 해도 변명처럼 들릴 거다.”

“장문식, 이 개새끼…….”

강혁수가 씹어 내뱉듯 중얼거렸다.

차량 아래에 있는 사과 상자야 그렇다 치더라도, 트렁크 안에서 발견된 사과 상자는 절대 설명이 되지 않는다.

지검장의 차량을 움직일 수 있는 내부직원.

앞뒤 정황을 봤을 때 현재 연락이 되지 않고 있는 장문식이 이번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다.

강혁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장문식이, 그 씹어 먹어도 시원치 않을 새끼부터 잡아 오겠습니다. 놈을 잡아서, 사실을 실토하도록 만들어야…….”

“됐어.”

“지검장님!”

“소용없다는 거, 혁수 니가 더 잘 알잖아?”

“…….”

씁쓸하게 중얼거리는 정승만의 말에 강혁수가 입을 다물었다.

“전부 내 인덕이 부족한 탓이지…….”

정승만이 고개를 들어 TV를 들여다봤다.

이제 곧 기자회견이 시작되려고 하는지, 분주하게 움직이던 TV 속 기자들이 하나둘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마침내 도윤이 입을 열었다.

“이제 곧 영화가 시작되겠군요.”

“뭐야!?”

예민해진 강혁수가 발끈하며 도윤을 노려본다.

“영화? 너는 지금 이 상황이 영화처럼 느껴진다 이거냐? 이게 재미있어?”

도윤이 낮게 웃음을 터뜨렸다.

“큭큭, 예. 재미있어 미칠 것 같습니다.”

강혁수의 얼굴이 와락 구겨진다.

“이 미친 새끼가.”

순식간에 도윤에게 달려든 강혁수가 강하게 멱살을 틀어쥐었다.

“너도 성호동 쪽 간자였냐? 쓰레기 같은 새끼!”

모든 것을 포기한 것처럼 보이던 정승만도 표정을 굳히며 도윤을 돌아봤다.

허탈함과 분노.

여러 가지 감정이 소용돌이치는 정승만의 두 눈을 잠시 바라보던 도윤이 잠시 품 안을 뒤적였다.

이내 도윤이 손에 잡힌 물체를 테이블 위에 탁 하고 올려놓았다.

“이건……!”

도윤이 올려놓은 물체를 확인한 강혁수의 두 눈이 찢어질 듯 부릅떠졌다.

“저놈 사진이잖아!”

TV 속의 김재규가 사과 상자를 실어 나르는 사진의 원본.

수십 장이나 되는 그 사진이 도윤의 손길에 따라 테이블 위에 가득 펼쳐졌다.

정승만도 떨리는 눈동자로 도윤을 바라봤다.

“영화감독은 바로 접니다.”

“그게 무슨…….”

“시사회를 앞둔 감독의 마음이 이럴까요? 이제 시작하는데, 일단 보고 말씀하시죠.”

도윤이 TV를 가리키며 말했다.

강혁수와 정승만이 TV를 향해 시선을 돌리자, 이내 기자회견이 시작되는지 김재규가 단상 위로 올라온다.

“아, 아.”

잠시 마이크를 톡, 톡 두드리던 사진 속의 남자, 김재규가 쏟아지는 플래시 세례 속에 이윽고 입을 열었다.

“안녕하십니까, 국민 여러분… 저는 지금 한참 논란이 불거지고 있는, 검사장 뇌물수수 의혹 사건 관계자입니다.”

찰칵, 찰칵, 찰칵, 찰칵, 찰칵.

김재규가 말을 잇기 시작하자, 기자들이 더욱 빠르게 카메라 셔터를 눌러 대기 시작했다.

“이미 눈치채셨겠지만… 사진 속에 사과 상자를 나르는 남자가, 바로 저입니다.”

사진과 인상착의가 완벽히 일치했기 때문에, 아무도 이에 대해 의문을 표하는 사람이 없었다.

잠시 기자들을 둘러보던 김재규가, 제 입술을 꽈악 깨물며 말한다.

“그리고… 저는 현 서울지검장인 정승만 검사장과, 평소 아무런 친분이 없습니다. 물론, 이번 사건과 관련하여 사전에 만난 사실조차 없구요.”

이 부분에서 기자들이 잠시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입을 열어 김재규에게 질문을 던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사전에 기자회견이 끝나고 질문 시간을 갖기로 미리 약속을 하였기 때문이다.

“저는…….”

말을 잇던 김재규가 한차례 깊게 심호흡했다.

이내 무언가 결심한 듯한 얼굴로 마침내 김재규가 입을 열었다.

“현 서울중앙지검 소속 장문식 검사의 사주를 받았습니다.”

김재규가 말을 마치자 기자들은 웅성거림을 넘어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찰칵, 찰칵, 찰칵, 찰칵, 찰칵.

두 눈으로 쏟아지는 플래시 세례에 아랑곳하지 않고, 김재규가 마지막 말을 잇는다.

“사과 상자들을 여기 메모지에 적힌 차량 아래에 갖다 놓아라. 그리고 한 상자는 트렁크 안에 실어 놔라. 그 일만 잘 끝내면, 친동생이 구속된 사건을 잘 봐주겠다.”

찰칵, 찰칵, 찰칵, 찰칵, 찰칵.

“그런 사주를… 받았습니다.”

도윤이 찍은 영화는 점점 클라이막스(climax)로 치닫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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