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잡는 회귀검사-69화 (69/174)

69화 대망의 대선

“아,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일이라고 하지 않소!”

여기저기서 마이크를 들이대는 기자들을 보며 성호동이 버럭 고함쳤다.

서울고등검찰청 1층 로비는 어느새 몰려든 기자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검사장님! 한 말씀 해 주시죠! 차기 검찰총장 자리를 위한 정치적 뒷공작이 맞습니까?”

“뭐요!?”

한 기자의 외침에 성호동이 고개를 홱 돌려 그쪽을 노려봤다.

“부하의 과한 충성이 잘못이라면 잘못이겠지, 나는 전혀 모르는 일이오!”

“그 말씀은, 장문식 검사가 검사장님을 위해 독단적으로 벌인 일이란 말씀이십니까?”

“나를 위해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가 전혀 모르는 일인 건 틀림없단 말이요!”

“어! 저기!”

빠르게 걸음을 옮기던 성호동이 또 다른 곳에서 들려오는 외침에 멈칫한다.

“장문식 검사다!”

“장 검사님! 중심일보의 한 기자입니다! 한 말씀 해 주시죠!”

어느새 비상계단을 통해 내려온 장문식이 한곳을 노려보며,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기자들이 우르르 그곳으로 몰려갔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장문식이 계속 걸음을 옮겼다.

“검사장님!”

이를 한차례 으득 간 장문식이 버럭 고함쳤다.

“가만히 듣고 있으니까, 자꾸 나한테 독박 씌우려고 하는데 너무한 것 아니요!?”

“뭐, 뭐라……?”

갑작스러운 장문식의 외침에 성호동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기자들이 자못 흥미로운 표정으로 번갈아 바라보기 시작한다.

“웬 미친놈 하나 때문에 자꾸 나를 마녀사냥하려고 하는데, 이 자리에서 분명히 말하지만 나는 하늘을 우러러 한 점의 부끄럼도 없소!”

기자들의 웅성거림이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그런 일을 한다고, 나한테 득 될 게 뭐요? 오히려…….”

잠시 말끝을 흐리던 장문식이 성호동을 가리킨다.

“정승만 지검장님이 잘못되면 가장 이득을 보는 건 성호동 검사장 아니겠습니까!? 지검장님의 유일한 라이벌이시니까요!”

“저, 저런 미친 새끼……!”

성호동이 기가 찬 표정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애초에 저는 서울지검 소속 검사입니다. 성호동 검사장이 저더러 부하라고 칭하던데, 하나의 독립기관 격인 검사에, 소속조차 다른 저를 왜 검사장님이 부하라고 칭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야이 개새끼야!”

순식간에 장문식에게 달려든 성호동이 그의 멱살을 와락 틀어쥐었다.

“뚫린 입이면 다야? 어!? 다시 말해 봐. 뭐, 뭐, 부하가 어쩌고 저째?”

“이것 보십시오. 한 기관의 기관장이라는 사람이, 신성한 검찰청에서 이따위 폭력적인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 또라이 새끼!”

찰칵, 찰칵, 찰칵, 찰칵, 찰칵.

서울고등검찰청 1층 로비가 순식간에 플래시 세례로 뒤덮였다.

두 사람의 모습은 기자들의 카메라에 고스란히 촬영되어, 빠르게 전국으로 퍼져 나갔다.

이미 얼마 전 한차례 홍역을 겪은 바 있는 대검 수뇌부들은, 소식을 접하는 즉시 발 빠르게 움직였다.

성호동을 서울고등검찰청 검사장 자리에서 전격 직위 해제하였으며, 대검 차원에서 연이은 검찰 내부의 불미스러운 일에 대해 전 국민들에게 고개 숙여 사과했다.

또한, 장문식에 대한 집중적인 감찰조사를 예고하면서 사실관계를 확실히 따져, 관련자들을 엄벌하겠다는 발표를 했다.

이전까지의 제 식구 감싸기 식 행동이 아닌, 검찰의 이례적인 피바람 예고에 모든 국민들이 욕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환호했다.

그리고…….

이번 일로 큰 변화를 맞게 되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또 있었다.

* * *

“이, 이게 대체…….”

정승만은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처음 차량 뒤에서 사과 상자가 발견되었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까지만 하더라도, 어처구니가 없었다.

세상 사람들이 바보가 아닌 이상, 설마 이런 저급한 장난질에 놀아날까 생각했다.

분명 그렇게 생각했는데, 하나둘 손가락질하는 사람이 늘어나기 시작하더니, 차량 트렁크 안에서 사과 상자가 발견되면서 세상 모든 사람이 등을 돌렸다.

절망하고, 좌절했다.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마저 들었다.

이제는… 끝이라고 생각했다.

분명 그렇게 생각했는데, 어느 시점을 기준으로 절망이 희망으로 뒤바뀌었다.

마치 소름 돋는 반전 영화라도 되는 것처럼 세상 사람들이 다시 자신에게 돌아섰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눈앞의 남자가 있었다.

정승만이 도윤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을 때, 강혁수가 입을 열었다.

“기적… 기적입니다.”

강혁수가 TV에 시선을 고정한 채 멍하니 중얼거렸다.

기적.

정승만도 강혁수의 말을 부정할 수가 없었다.

기적이라는 말이 아니고서야, 지금 이 상황을 설명할 수 있겠는가?

“이제 첫걸음일 뿐입니다.”

도윤이 옅은 미소를 지은 채 말했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

강혁수가 도윤에게 시선을 홱 돌리며 물었다.

정승만 또한 말은 하지 않았지만 묻고 싶은 것이 상당히 많은 눈치였다.

“그게…….”

도윤이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물론 스킬과 같은 설명하기 곤란한 일들은 얘기하지 않았다.

우연히 장문식과 낯선 남자가 무언가를 주고받는 모습을 목격했고, 주차장에서 있었던 일들.

이런 민감한 시기에 차량에 사과 상자를 싣는 것이 이상하게 생각되어 사진을 촬영하게 되었던 것까지.

도윤이 설명이 이어질수록 정승만의 두 눈에 감탄의 기색이 역력해졌다.

그리고 마침내 도윤의 설명이 끝이 났을 때, 어느덧 도윤을 바라보는 정승만의 두 눈에는 ‘신뢰’라는 감정이 똬리를 틀고 있었다.

“젊은 친구의 기지가… 대단하군.”

그 무뚝뚝한 강혁수마저 헛기침을 하며 도윤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웠다.

한참이나 말이 없던 정승만도 입을 열었다.

“생각이 바뀌었어.”

“……?”

“영입해도 그만, 못 해도 그만인 인재. 품어 안고 갈 수 있다면 든든하기야 하겠지만, 위험성도 커 반드시 영입해야 할 필요성은 느끼지 못하는, 그런 존재로 생각했는데…….”

잠시 말끝을 흐리며 정승만이 도윤의 두 눈을 바라본다.

“그게 아니었어. 품에 안고 가야 할 존재가 아닌, 함께 손잡고 나아갈 동지. 내가 한 발자국 더 나아가기 위해 반드시 영입해야 할 인재.”

“…….”

“삼국지에 비유하면… 그래, 삼고초려(三顧草廬) 해도 모자랄 제갈량 같은…….”

정승만의 눈빛 사이로 어떤 뜨거운 열망이 깃들기 시작했다.

“그런 인재였군.”

“…과찬이십니다. 단지,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도윤이 멋쩍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이제 내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나?”

“예?”

정승만의 물음에 도윤이 멍하니 반문했다.

“지금 상황에서 내가 어떻게 행동하면 좋을지, 자네 의견을 듣고 싶네.”

강혁수가 잠시 눈을 크게 떴다.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귀담아듣되, 자신의 고집은 철저히 지키는 정승만이 이제 갓 임용된 신임 검사에게 도리어 되묻고 있다.

도윤도 조금은 가라앉은 눈빛으로 대답한다.

“모든 인간 관계의 시작은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제는 툭 터놓고, 가감 없이 말씀드리겠습니다.”

“헛, 허허허허.”

잠시 헛웃음을 터뜨리던 정승만이 도윤을 바라보며 말한다.

“경청하지.”

“지금 검찰은 안팎으로 뜨거운 용광로와 같습니다. 부산지검장 사건에 이어, 또다시 이런 불미스러운 일이 터졌으니까요.”

“음…….”

“아마 총장님도 내부 수습에 총력을 다하실 겁니다. 직원들의 작은 실수 하나에도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드시겠죠.”

현 검찰총장인 김관우의 성격을 떠올린 정승만이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분이라면 확실히…….”

“해서, 지금 움직이는 것은 하(下)책 중에서도 하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치권에 손을 뻗는 것도 마찬가지. 지금은 섣불리 움직일 때가 아니라,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서서 관망(觀望)할 때입니다.”

“그 건과는 예외로 떨쳐낼 의혹은 확실히 떨쳐 내야겠지. 이번 일로 지검장님 이미지에 적지 않은 타격을 입었으니까.”

강혁수의 말에 도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부분은 아마 성호동 검사장이 썼던 방식을 그대로 써먹어도 될 듯합니다.”

“성호동이가 써먹은 방식……?”

반갑지 않은 인물이 거론되자 잠시 인상을 찌푸리던 정승만이 고개를 갸웃한다.

그 모습에 옅게 미소 지은 도윤이 대답한다.

“기자회견을 열어 이번 일에 대해 적당히 유감을 표현해 주고, 이번 건에 대한 진실을 밝히는 데 적극 협조를 아끼지 않겠다… 정도면 되겠지요.”

“아……!”

옆에 있던 강혁수가 감탄사를 터뜨렸다.

“큭큭큭, 그 인간 표정 한번 볼만하겠군.”

낮게 웃음을 터뜨리는 강혁수를 보며 정승만도 피식 미소 짓는다.

“좋군.”

“그리고 대선 문제는, 눈에 띄는 행동은 자제하고 조용히 물밑으로 줄만 잡아 놓는 정도면 충분할 겁니다.”

순간 정승만이 고개를 갸웃한다.

“니 말대로 지금은 상황을 지켜볼 타이밍인데, 굳이 정치인들에게 줄을 댈 필요가 있나? 어차피 차기 검찰총장은…….”

쑥스러워 뒷말은 잇지 못하겠는지 말끝을 흐리는 정승만을 보며, 도윤이 대답한다.

“검찰총장 자리로… 만족하십니까?”

“……!”

정승만과 강혁수가 두 눈을 크게 떴다.

“지검장님이라면, 더 높은 곳을 바라보셔도 될 거라 생각합니다.”

“…큭.”

멍한 표정을 짓고 있던 정승만이 낮은 웃음을 터뜨렸다.

“제갈량(諸葛亮)인 줄 알았더니, 조조(曹操)였군. 아부 능력이 상당해.”

“칭찬 감사합니다.”

짧게 고개를 숙이는 도윤을 보며, 정승만이 조심스레 묻는다.

“선택은… 이전과 같나?”

“대선후보에 관한 얘기라면, 제 생각은 이전과 똑같습니다.”

“흠…….”

“굳이 나서서 들쑤실 필요는 없습니다.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지금은 이전과 상황이 다르니까요. 그저 작은 끈 정도만 연결해 두면 됩니다.”

“그럼 그냥 두 곳 모두에…….”

“안 됩니다.”

도윤이 단호하게 말했다.

“입소문이 상당히 빠른 곳입니다. 두 곳 다 줄을 댔다간, 훗날 정계에 진출하셨을 때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

정승만이 입을 다문 채 상념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한참을 말을 잇지 못하는 정승만을 보며, 도윤이 굳은 목소리로 말한다.

“지검장님.”

“……?”

의아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정승만을 보며, 도윤이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말을 잇는다.

“저를, 믿으십시오.”

“……!”

정승만이 눈을 크게 떴다.

* * *

2개월이라는 시간이 빠르게 지났다.

2002년 11월.

그사이 세상은 빠르게 변해 갔다.

월드컵의 열기가 채 식기도 전에, 2002 부산 아시안 게임이 개막하고, 폐막했다.

TV에서는 해리포터의 두 번째 시리즈, 비밀의 방이 개봉하며 또 한 번 대박을 터뜨렸다.

검찰에서는 장문식의 정치적 뒷공작 혐의를 인정하여 구속하였지만, 성호동의 수사결과 대해서는 아직 아무런 공식 발표가 없었다.

사실 이즈음 세상 사람들은, 성호동의 처분 결과보다는 다른 쪽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다.

대선.

5년에 한 번 있는 그 치열한 레이스가, 바로 다음 달에 끝이 날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승만이 사무실에 홀로 앉아 한곳에 시선을 고정한 채 입을 헤 벌렸다.

정승만의 시선이 향하는 곳, TV 화면에서는 한참 대선 관련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바로 오늘, 여당 제1후보자와 국민통합21 후보자의 드라마 같은 단일화, 그 결과가 공개됩니다!”

월드컵 기적을 토대로 인기가 오를 대로 오른 후보자와 경선 과정 자체가 기적인 후보자의 단일화.

그 드라마 같은 여론조사 결과가 지금 막, 흘러나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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