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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잡는 회귀검사-71화 (71/174)

71화 대그룹 미래전술실

“강도윤!”

까페에 홀로 앉아 차를 홀짝이고 있던 도윤이 순간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이내 목소리의 주인을 확인한 도윤이 옅게 미소 지었다.

“호식아.”

“야, 같은 동네 있으면서 뭐 이렇게 얼굴 보기가 힘드냐?”

호식이 도윤의 맞은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러게, 요즘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서 말이야.”

“그러시겠지. 그 서울중앙지검에, 검사장님 따까리까지 해야 하니까.”

도윤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검찰 내부적으로야 도윤이 이번 일로 정승만 지검장 라인에 붙었다는 소문이 공공연히 떠돌고 있지만, 대외적으로 알려진 사실은 아니었다.

사실, 누구누구가 회사 어느 누구의 라인이라는 말이 바깥으로 나돌 성질의 내용도 아니었고 말이다.

“그건 어떻게 안 거냐?”

도윤의 물음에 호식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니가 잊었나 본데, 나 KS그룹 자제거든?”

“…….”

“오성의 미래전술실만큼은 아니지만, 우리 그룹도 그에 못지않은 부서가 있거든. 이쪽 정보도 빠삭하단 말이지.”

“아…….”

“뭐, 내 권한으로 접근할 수 있는 정보엔 한계가 있지만, 그래도 나름 법조인이라는 건 인정해 주셔서, 법조계 쪽 정보들은 요 머릿속에 대부분 다 들어가 있지.”

호식의 말에 도윤이 수긍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오성그룹의 미래전술실.

대외적으로는 사업 전략 수립과 조직 개편, 인사 등을 담당하는 그룹의 컨트롤 타워를 표방하고 있지만, 실제 이 부서를 설립한 목적은 따로 있었다.

현대사회에서 돈, 그 이상의 가치를 가지는 것.

‘정보.’

그리고, 보다 높은 질의 정보를 누구보다 빠르게 수집하기 위해 만든 사설 국정원.

대한민국 첫 번째라는 오성뿐만 아니라, 소위 대기업들은 암암리에 그와 유사한 부서를 운영하고 있었다.

‘투자를 하고 싶어도 정보가 필요하고, 정책을 입맛대로 바꾸고 싶어도 정보, 심지어 뇌물을 먹이고 싶어도 어떤 권력자가 돈을 날름날름 잘 받아먹는지, 기본적인 정보는 있어야 할 테니까.’

속으로 중얼거린 도윤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항상 생각하는 것이지만…….

회귀 전의 이 바닥이나, 십수 년 전의 이 바닥이나, 참으로 일관되게 썩어 빠졌다.

‘덕분에 내 선택 폭도 매우 넓어져서 땡큐지만.’

순간 눈을 빛낸 도윤이 호식을 바라본다.

“호식아.”

“응, 꺼져.”

“……?”

호식의 반응에 도윤이 멍한 표정을 짓는다.

“보나마나 거기 좀 써먹을 수 있나 물어보겠지. 내가 니 봉이냐?”

“…….”

뜨끔한 표정을 짓는 도윤을 보며 호식이 말을 잇는다.

“애초에 나조차도 들락거리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곳이야. 할아버지가 그래도 법조인이라면 그쪽 바닥은 꿰고 있어야 되지 않겠냐며, 법조계 쪽 정보들을 열어 줘서 그나마 이런 거라도 알고 있는 거지.”

“…….”

실망한 표정을 짓는 도윤을 보며 잠시 끙 앓는 소리를 낸 호식이 말한다.

“뭐, 그쪽 부서에 친한 형이 몇 명 있어서 아예 알 수 없는 것도 아니지만…….”

순간 눈을 빛낸 도윤이 호식의 손을 덥석 붙잡았다.

“친구야.”

“…….”

“다음번에, 부탁 좀 해도 되겠니?”

도윤의 가식적인 목소리에 호식이 그 손을 탁 하고 쳐냈다.

“약속부터 지켜.”

“…약속?”

도윤이 고개를 갸웃했다.

“이봐, 이봐. 내 이럴 줄 알았지. 강도윤을 믿은 내가 등신이지.”

“…….”

여전히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는 도윤을 보며 호식이 빼액 하고 소리를 질렀다.

“아, 여자 소개해 준다며!”

“아!”

이내 감탄사를 터뜨린 도윤이 픽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이번 달 지나기 전에 자리 마련할게.”

“정확히 언제? 확실히 말해.”

“음… 지금 확실히 얘기하긴 힘들 것 같고… 곧 찾을 것 같거든. 조금만 기다려 봐.”

“찾아? 누구를?”

“…….”

도윤이 입을 다문 채 침묵을 지키자, 호식이 인상을 굳힌다.

“너, 혹시…….”

“……?”

“어디 동남아 아가씨 구해다 친구 국제결혼 시키려는 거면 죽는다?”

“…큭.”

낮게 웃음을 터뜨린 도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걱정 안 해도 될 것 같다.”

“그럼 다행이고.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서…….”

호식이 말끝을 흐리며 가지고 온 서류 가방을 잠시 뒤적이기 시작한다.

잠시 후, 호식이 가방에서 서류 더미를 한 뭉치나 꺼내어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성명병원 인수 건, 곧 마무리될 것 같다.”

“……!”

순간 도윤이 눈을 크게 떴다.

“이렇게 갑자기?”

“사실 나도 좀 놀라워. 최근 며칠 사이, 갑자기 명성에서 언제 그랬냐는 듯, 병원을 다른 곳에 팔아넘기려고 안달이 났거든.”

“…….”

“사실 어느 정도 지역에서 알려진 유명 병원들은, 대형 의료사고 하나만 나도 폐원이 불가피해. 병원이라는 곳이, 특히 이미지라는 게 상당히 중요하게 작용하니까. 의사 실수로 사람이 죽어 나간 곳에, 불안해서 애기 감기 치료나 제대로 맡기겠어? 그런데…….”

호식이 손가락을 들어 서류 더미 한 곳을 가리켰다.

“성명과 같은 3차, 초대형 병원은 얘기가 달라. 의료진들과 병원 관계자들을 싸그리 물갈이하면 했지, 폐원은 안 해, 아니 못 해. 일반인들은 상상도 하지 못할 천문학적인 손해와 비용이 발생하니까.”

“그렇겠지.”

도윤이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얘기가 완전히 달라. 의료사고가 아닌 불법 장기매매니까. 최고 책임자 중 하나인 명성이 물러나도 병원 이미지를 회복하기 쉽지 않을 텐데, 무슨 생각인지 명성에서 성명병원을 절대 내놓고 있지 않았어. 바로, 얼마 전까지는 말이야.”

“…지금은 명성에서 오히려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그래.”

호식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잇는다.

“사실 명성에서 언제 성명병원을 포기해도 이상하지 않았어. 매해 적자를 떠안을 게 뻔한 폭탄을 굳이 가지고 있을 필요가 없으니까. 아니, 오히려 좋은 값에 떠안아 주겠다는 사람이 나타나면 쌍수를 들고 환영했어야 했던 게 옳아.”

“흠…….”

도윤이 잠시 침음을 삼켰다.

‘뭘 꾸미고 있는 거지?’

속으로 중얼거린 도윤이 잠시 상념에 빠져들었다.

차라리 처음부터 성명병원 매각에 적극적이었다면 이런 의문도 들지 않았겠지만…….

갑작스러운 명성의 저런 행동은 의문이 든다.

‘이번 대선 결과로 발생한 막대한 손해, 그걸 메꾸기 위한 카드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명성의 정확한 의중은 알 수 없었다.

이내 한숨을 내쉰 도윤이 고개를 들어 호식을 바라본다.

‘어차피, 명성의 손발을 자르기 위해서 성명병원의 인수는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과정 중 하나다.’

도윤이 무언가 결심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인수하자.”

도윤의 말에 호식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게 말할 줄 알았지. 타고난 도박꾼 자식, 대체 저 머릿속에 뭐가 들어 있는 건지…….”

“천재의 머릿속을, 범인(凡人)이 알 수 있을 거라 생각해?”

“진짜 재수 없다…….”

작게 중얼거린 호식이 서류 더미를 주섬주섬 챙기기 시작했다.

“뭐, 결정 내렸으면 가격은 최대한 후려쳐 볼게. 물론, 우리 전문가분들이 고생 좀 하겠지만…….”

“부탁 좀 할게.”

“아마 2,000억 이상을 쓰려는 곳은 없을 거야. 그 안쪽 선에서 최대한 후려쳐 보는 걸로.”

“그래. 전문가분들이 계신데, 어련히 알아서 하시겠지.”

“일은 지가 다 벌려 놓고, 뒤치다꺼리는 맨날 내가 다 하네. 썩을…….”

호식의 말에 도윤이 쓰게 웃었다.

사실 표현은 하지 않았지만, 도윤도 호식에게 상당히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미안하다.”

갑작스러운 도윤의 사과에 호식이 멈칫한다.

“뭐, 뭐냐, 갑자기? 어울리지도 않게 웬 사과?”

“그냥 이것저것, 미안해서…….”

“하, 됐네요. 강도윤한테 사과라니, 그런 거 바라고 한 말 아니거든.”

호식의 말에 옅게 미소 지은 도윤이 말한다.

“고맙다.”

“…….”

“내 친구가 되어 줘서, 정말 고맙다.”

이내 호식도 픽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급여는 이자까지 톡톡히 받아 낼 거다. 우리 직원들도 먹고살아야지. 물론 정보비도 포함이야. 세상에 공짜는 없으니까.”

“얼마든지.”

도윤이 시원스레 대답했다.

“아, 참!”

마주 미소 짓던 호식이 갑자기 무언가 생각났다는 표정으로 손뼉을 짝 하고 쳤다.

“나도 이번에 투자 하나 했어. 한 5억 정도…….”

“투자? 5억이나?”

도윤이 고개를 갸웃했다.

“나라고 못 할 것도 없잖아? 혹시 알아? 내가 투자한 곳이 나중에 대박을 칠지.”

“어디에 투자했는데?”

도윤의 물음에 호식이 거만한 표정으로 턱을 쳐들었다.

“치킨.”

“치킨?”

“시간이 지날수록 전국의 치킨들이 세를 불려 나갈 것이니라. 값은 싸고, 맛은 더 이상 말할 것도 없는! 치킨의 시대!”

“그야 뭐…….”

수긍한다는 듯 도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 수십 개의 프렌차이즈가 등장할 정도로 치킨업종이 성행하게 되는 것은 사실이었으니까.

“투자할 곳은?”

‘BOQ나 구워치킨, 하다못해 예예치킨 정도만 되어도…….’

호식이 자신감에 가득한 얼굴로 대답한다.

“호식이!”

“…뭐?”

“호식이 세 마리 치킨.”

“…….”

“두 마리 가격에 세 마리를 준다니, 완전 친고객적 아니냐? 이름도 정감 가고. 이런 데가 오래갈 거야. 이른바 착한 치킨!”

도윤이 멍한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시끄러운 까페 내부에, 도윤이 앉은 테이블에만 침묵이 내려앉았다.

* * *

똑, 똑, 똑.

박건우가 대저택 구석에 위치한 작은방의 출입문을 두드렸다.

한참이 지나도 아무런 반응이 없자, 박건우가 다시 한 번 출입문을 두드린다.

똑, 똑.

“도련님, 박건웁니다.”

“…….”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여전히 안쪽에서 아무런 소리가 들려오지 않자, 짧게 한숨을 내쉰 박건우가 그대로 출입문을 밀어 열었다.

덜컥.

작은 소음과 함께 출입문이 열리자 내부 전경이 환하게 드러났다.

여기저기 널브러진 옷가지에, 한구석에는 음식물이 덕지덕지 붙은 그릇들이 가득 쌓여 있었고, 깨진 유리 조각도 드문드문 눈에 띄었다.

그리고 그 사이.

방 안에서도 햇빛이 잘 들지 않아 가장 음침한 구석에 한 인영이 웅크리고 앉아, 고개를 파묻고 있었다.

“…도련님.”

박건우가 완전한 폐인의 몰골인 남자를 조용히 불렀다.

“…….”

“도련님!”

박건우가 재차 크게 외치자 이내 남자가 고개를 들어 올린다.

정리되지 않아 지저분한 수염에 퀭한 두 눈 아래로 짙게 내려앉아 있는 다크서클.

오성춘이 완전히 죽은 눈빛으로 박건우를 바라본다.

“…뭐야?”

오성춘의 입술 사이로 쩍쩍 갈라진 목소리가 새어 나온다.

그런 오성춘을 보며, 박건우가 입을 열었다.

“…이대로 계속 폐인처럼 지내실 겁니까?”

“…….”

“고작 한두 번의 실수로 계속 이렇게 지내실 거냐, 묻고 있는 겁니다.”

“…….”

여전히 입을 다문 채 침묵을 지키는 오성춘을 보며 박건우가 말한다.

“일어나십시오. 지금 모습, 전혀 도련님과 어울리지 않습니다.”

“…….”

한참이나 말이 없던 오성춘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무슨 속셈이냐?”

“예?”

“내가 이대로 무너지면, 가장 이득을 보는 사람 중 하나가 너일 텐데?”

“…….”

“혹시 아나? 총애해 마지않는 너에게, 할아버지가 계열사라도 하나 떼어 줄지.”

치기 어린 오성춘의 말에 박건우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웃어?”

오성춘이 씹어 내뱉듯 중얼거리자, 박건우가 입을 열었다.

“정말 망가지셨군요.”

“뭐?”

오성춘이 발끈했다.

“저는 제 주제를 잘 압니다. 명성의 핏줄이 아닌 한, 회장님은 결코 저에게 자신의 재산을 물려주지 않으실 겁니다. 욕심이 많으신 분이니까요.”

“…….”

말을 잇는 박건우의 두 눈에 기묘한 빛이 어린다.

“왕이 되지 못한다면 영의정(領議政)은 꿈꿔도 되지 않겠습니까?”

오성춘의 두 눈에도 힘이 들어갔다.

“내 편에 서겠다, 이 말인가?”

“도련님이 하시기 나름이겠죠.”

“큭.”

오성춘의 잇새로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크크크크크크크큭. 크하하하하!”

낮은 웃음소리가 방 안에 조용히 울려 퍼지기 시작하더니, 이내 오성춘이 광소(狂笑)를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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