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화 용역깡패와 화류계
“일처리는?”
오춘화 회장의 오른팔, 박건우가 지금 막 들어서는 젊은 남자를 향해 묻는다.
“차질 없이 마무리했습니다.”
한차례 고개를 숙였다 드는 남자의 눈 밑에는 인상적인 칼자국이 자리하고 있었다.
박태봉을 협박했던 바로 그 남자였다.
“씹어 먹어도 모자랄 깡패 새끼들… 저 말을 믿을 수가 있나?”
이제는 말끔한 차림의 오성춘이 입을 열자, 남자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부정은 할 수 없었다.
자신이 속했던 망치파에 의해 오성춘이 어떤 일을 당했는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기회를 주기로 했으면 확실히 주시죠. 뭐, 여기서 서로 얼굴 붉힐 필요 있겠습니까?”
쓰게 웃은 박건우가 말하자, 오성춘이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홱 고개를 돌렸다.
“저기 있는 친구는 충분히 조직을 갈아타서 호의호식(好衣好食)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 친구가 제 발로 찾아와 충성을 바치겠다니, 한 번쯤 기회는 주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냥 맡겨 두진 않을 거야. 이번에는 내가 직접 움직인다.”
박건우의 말에 오성춘이 씹어 내뱉듯 중얼거렸다.
“좋으실 대로…….”
남자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이름이 장고환이라고 했나요?”
“예. 어려우시면 그냥 부랄이라고 불러 주셔도 됩니다.”
박건우의 물음에 자신을 장고환이라 밝힌 남자가 대답했다.
“얼굴만큼이나 이름도 인상적이네요.”
피식 웃음을 터뜨린 박건우가 말을 잇는다.
“당신을 포함해서, 이쪽으로 온 식구들이 얼마나 되나요?”
“정확히 21명입니다. 모두 손바닥 뒤집듯 적대 세력에 붙어먹은 윗대가리들에게 환멸을 느낀 애들이니, 이전번 일과 같은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장고환이 힐끔 오성춘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레 말을 잇는다.
“나는 깡패 새끼들을 믿지 않아.”
“이런, 이런.”
오성춘의 말에 못 말리겠다는 듯 한숨을 내쉰 박건우가 입을 열었다.
“21명이면… 애매하군요.”
잠시 턱을 쓰다듬으며 고민에 빠져 있던 박건우가 장고환을 바라본다.
“다른 조직 식구들 좀 알고 있습니까?”
“예?”
순간 고개를 갸웃하는 장고환을 보며, 오성춘이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찼다.
“멍청하긴… 용역 깡패를 끌어다 쓰겠다잖아. 그만큼 스케일이 큰 일이니까.”
오성춘의 말에 살포시 인상을 찌푸린 장고환이 힐끗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뭐, 씹새야. 불만이야?”
그 시선에 발끈한 오성춘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닙니다.”
“버러지 같은 새끼가…….”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걸음을 옮기려는 오성춘을 박건우가 급히 막아섰다.
“정말, 도련님. 자꾸 이러실 겁니까?”
“…….”
“시작도 전부터 이렇게 삐걱거리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도련님에게도 마지막 기회라는 것, 이미 알고 계실 텐데요? 만약 이번에도 실패했다간…….”
“니미…….”
박건우의 말에 오성춘이 바닥을 향해 침을 탁 하고 뱉었다.
“너! 조심해, 새끼야. 벌레 같은 목숨, 조금이라도 더 살아 보고 싶다면.”
“…예, 명심하겠습니다.”
주먹을 꽈악 말아 쥔 장고환이 대답하자, 오성춘이 제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또다시 쓰게 웃은 박건우가 말한다.
“장… 음. 그냥 편의상 장 실장님으로 부르겠습니다. 장 실장님이 하셔야 할 일을 지금부터 설명해 드리죠.”
박건우가 책상 위로 돌돌 말린 종잇장을 크게 펼쳤다.
일산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커다란 지도였다.
박건우가 빨갛게 동그라미 쳐진 한 곳을 가리켰다.
“이곳. 저희 쪽에서 재개발 사업을 준비하고 있는 지역입니다. 넓이로만 따지면 10만 평도 더 되죠. 그런데… 아직 계획보다 땅이 덜 매입되었습니다.”
“말 그대로 용역이 필요하시단 말씀이시군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곧바로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장고환을 보며, 박건우가 미소 짓는다.
“역시 전문가가 좋군요.”
박건우가 장고환의 두 눈을 바라보며 말을 잇는다.
“건물에 락카칠을 해서 겁을 주든, 건물 입구에 서서 오가는 사람들을 모조리 쫓아 보내든, 그것도 아니면 아예 내부 자체를 다 때려 부수든. 사람만 죽이지 않는다면 어떤 방식을 써도 좋습니다.”
“하지만 그랬다가는…….”
장고환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끝을 흐리자, 박건우가 곧바로 대답한다.
“모든 책임은 제가 집니다.”
“그러시다면야…….”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장고환이 말을 잇는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그쪽 분야는 저희 전문이거든요. 재작년에 있었던 부산시장 재개발 건도, 저희가 했던 일입니다.”
“그 고집스러운 시장 소상인들을 모조리 내쫓은 사건을 말씀하시는군요.”
박건우가 조금 놀라며 말하자, 씨익 웃은 장고환이 고개를 끄덕였다.
“허락만 해 주신다면… 포클레인에 불도저까지 동원해서, 모조리 밀어 버리겠습니다.”
“처음부터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겠지만, 상황에 따라 필요하다면 그 방법도 나쁘지 않지요.”
옅게 미소 지은 박건우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잇는다.
“좋습니다. 그 부분은 전적으로 장 실장님에게 위임하죠.”
“맡겨만 주십쇼.”
장고환이 허리를 깊게 숙였다.
잠시 그 모습을 바라보던 박건우가 오성춘에게 시선을 돌린다.
“도련님.”
“……?”
불만스러운 얼굴로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던 오성춘이, 박건우를 돌아본다.
“도련님이 해 주셔야 할 일이 있습니다.”
“뭐지?”
“아마 지금쯤이면 제가 준비한 작업이 끝났을 겁니다.”
말을 잇던 박건우가 힐끗 옆으로 시선을 돌리자, 장고환이 긍정의 의미로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준비?”
오성춘이 고개를 갸웃하며 반문하자, 박건우가 말한다.
“집 안에만 계시느라 모르고 계시겠지만… 회장님께서 성명을 버리기로 결정하셨습니다.”
“뭐……!?”
순간 오성춘이 눈을 크게 떴다.
성명병원을 버린다니?
아무리 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병원이라지만, 명성그룹에 있어 성명병원이라는 이름이 가지는 의미는 크다.
대한민국에서 공식적으로 일반 기업이 대형병원을 소유하고 있다는 의미는, 명실상부 자타가 공인하는 최상위 대기업 중 하나라는 의미였다.
그런데 회사를 누구보다 끔찍이 여기는 자신의 할아버지, 오춘화 회장이 성명병원을 버리기로 했다?
“믿을 수가 없군…….”
멍하니 중얼거리는 오성춘을 보며 박건우가 쓰게 웃었다.
“상징적인 의미도 분명 중요하지만… 기업의 기본은 이익, 즉 돈이니까요. 우리 선장님은 가라앉을 일만 남은 배를 계속 타고 계실 생각이 없으셨겠죠.”
“…….”
입을 다문 채 침묵을 지키는 오성춘을 보며 박건우가 굳은 눈빛으로 말을 잇는다.
“도련님이 당장 준비하셔야 할 일은 하나입니다. 성명으로 당한 일을, 똑같이 되갚아 주는 것.”
“…똑같이 되갚아 준다?”
한차례 고개를 끄덕인 박건우가 자신이 계획한 일들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박태봉의 일부터 이후의 계획까지.
설명이 이어질수록 오성춘의 두 눈이 점점 커지기 시작하더니, 종래에는 비릿한 미소가 자리했다.
“훌륭하군.”
오성춘이 감탄한 눈빛으로 박건우를 바라본다.
“니가 내 편이 되었다는 사실이 얼마나 든든한 일인지, 지금 이 순간 절실히 느낀다.”
“…아직 도련님 편에 완전히 서겠다는 말씀은 드리지 않았지만…….”
잠시 말끝을 흐리던 박건우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 칭찬은 기분이 썩 나쁘지 않군요.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말을 마친 박건우가 오성춘을 향해 짧게 고개를 숙였다.
그런 박건우를 오성춘이 묘한 미소를 지은 채, 바라보고 있었다.
* * *
“찾았어.”
“뭐!?”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말에, 도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게 정말이야?”
다급히 반문하는 도윤의 목소리를 들으며 수화기 너머의 사내, 박판섭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이쪽 바닥 일은 일수꾼이나 센터(심부름 센터) 애들 위에 있는 게 우리야. 이 정도는 일도 아니지.”
박판섭의 말에 도윤이 감탄한 표정을 지었다.
알려진 정보는 정말 많지 않았다.
기껏해야 20대 초, 중반의 여자라는 것과 이 무렵, 부산에 있는 법률사무소 단지들을 들락거리며 도움을 구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황보’라는 조금은 특이한 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
이마저도 회귀 전 도윤의 기억들로 겨우 알 수 있는 정보들이었다.‘지식의 대가가 없었다면 그것도 불가능했겠지. 하지만 고작 그 정도 정보만으로 이렇게 빨리 찾을 줄이야…….’
새삼 박판섭의 능력에 감탄한 도윤이 입을 열었다.
“거기가 어디야? 사는 곳이나 이름, 뭐 다른 거 확인되는 건 있어?”
“우리 젊은 영감님, 여자한테 이렇게 관심 가지는 건 처음 봤네. 이제야 딱 그 나이 때 친구들 같아?”
박판섭이 장난스럽게 중얼거리자, 도윤이 단호한 목소리로 말한다.
“정보만, 빨리.”
“재미없긴…….”
쯧 하고 한차례 혀를 찬 박판섭이 말한다.
“이름은 황보신혜. 워낙 특이한 이름이라 생각보다 빨리 찾을 수 있었어. 나이는 올해 23살. 내가 조금만 일찍 결혼했으면, 딱 이 나이 때 딸이 있었을 수도…….”
박판섭의 뒷말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정황상 도윤이 찾고 있는 여자가 확실한 듯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무언가 말하려는 듯 입을 열려던 도윤이 이어지는 박판섭의 말에 순간 멈칫한다.
“이 아가씨, 조금 복잡한 사연이 있는 것 같아.”
“복잡한 사연?”
잠시 무언가 고민하던 도윤이 이내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일반적인 저 나이 때 여자들이라면, 대학 생활을 하든 취업 준비를 하든, 한창 사회 초년생으로서 나아가기 위해 바쁠 시기다.
애꿎은 법률사무소들을 헤집고 다니는 건, 무언가 어색했다.
“그래. 조금 이른 나이부터 화류계에 몸을 담은 것 같더라.”
“화류계?”
도윤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화류계라니?
이건 또 무슨 말인가?
곧이어 수화기 너머로 박판섭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여기저기 변호사 사무실만 찾아다니고 있는 것도, 아마 자기 일하고 관련되었을 확률이 높아. 이쪽 바닥 일이야 스토리 없는 아가씨들이 없다지만, 조금 특이한 케이스이긴 한 것 같던데…….”
잠시 무언가 생각하던 도윤이 굳은 표정을 짓는다.
자신이 알고 있는 놈의 집안 내력과 화류계.
결코 관련성이 없지 않았다.
아마도 놈은…….
생각을 마친 도윤이 다급히 물었다.
“거기가 어디라고 했지?”
“부산 서면.”
박판섭이 곧바로 대답했다.
도윤이 잠시 달력을 힐끗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다.
‘성명 인수 건뿐만 아니라 급한 일은 모두 마무리되었다. 아직 휴가 기간도 많이 남았으니까…….’
도윤이 속으로 중얼거리며 결심을 굳히고 있을 때, 박판섭이 묻는다.
“올 거야?”
“주소 찍어서 문자 하나만 넣어 줘.”
박판섭이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말한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도련님. 아가씨 TC(Table Charge)값이나 두둑히 챙겨 오시죠. 저도 오랜만에 아가씨들 따라 주는 술이나 한 번…….”
“놀러 가는 것 아니야.”
단호하게 대답하는 도윤을 보며 박판섭이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쩝… 어쩔 수 없지.”
잠시 머리를 긁적이던 박판섭이 재차 묻는다.
“언제 올 예정인데?”
시계를 한차례 들여다본 도윤이 옅게 미소 지으며 대답한다.
“지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