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화 화류계, 스토리 오브 호식 (1)
부산진구에 소재한 법률 타운.
한 건물 앞에서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자가 연신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옅은 브라운 톤이 들어간, 자연스럽게 웨이브 진 머리.
170센티미터는 되어 보이는 키에, 늘씬하게 쭉 뻗은 다리.
커다랗고 또렷한 이목구비가 마치 서양인을 연상시키는, 이국적인 미모의 여자였다.
여자의 이름은 황보신혜.
도윤이 찾고 있는 바로 그 여자였다.
무언가 고민하는 듯하던 황보신혜가 이내 건물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김변대 법무사무실’이라 적힌, 투명한 유리문을 열고 들어서자 가장 먼저 층층이 쌓인 서류 더미가 여자를 반겼다.
“어서 오세… 어머, 얼마 전에 오셨던 그……?”
한참 서류를 뒤적이고 있던 여자 직원이 지금 막 들어서는 황보신혜를 발견하고는 잠시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워낙 이국적인 인상의 미인(美人)이었기 때문에, 여자 직원도 기억을 하고 있던 참이었다.
“아, 네. 안녕하세요.”
황보신혜가 수줍게 인사하자, 변호사 사무실 여자 직원이 싱긋 미소 지었다.
“저번에 그 일 때문에 오셨죠? 변호사님이랑 얘기가 잘 안 되신 것 같아서 신경 쓰였는데… 다시 오셨네요.”
“그래도… 수임료 전부를 당장 받지 않겠다는 분은, 김변대 변호사님밖에 없어서요.”
황보신혜의 말에 여자직원이 다시 한 번 미소 지었다.
“저희 변호사님이 인권 변호사도 도맡아 하고 있으니까요. 잘 오셨어요.”
“이쪽 소파에 앉으세요. 그런데 어쩌죠. 지금 변호사님이 잠깐 자리를 비우셔서…….”
“괜찮아요. 조금 기다릴게요.”
“그럼, 잠시만요.”
말을 마친 여자 직원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네, 변호사님. 얼마 전에 오셨던 여성분… 네, 네. 알겠습니다.”
이내 전화기를 내려놓은 여자 직원이 황보신혜를 돌아보며 말한다.
“한 5분만 기다리시면 오실 거예요. 차? 아니면 커피로 드릴까요?”
“저… 괜찮은데…….”
“어제 괜찮은 유자가 들어왔는데, 향이 좋거든요. 유자차로 드릴게요.”
“아… 네, 네. 감사합니다.”
싱긋 미소 지은 여자 직원이 총총히 걸음을 옮기더니, 차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여자직원 또한 학창 시절에 제법 남자들에게 대쉬를 받아 봤을 법한, 귀여운 인상의 소유자였다.
그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던 황보신혜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런데… 혼자 일하시나 봐요.”
“아, 한 명 더 있는데… 지금 휴가를 갔거든요.”
일반적으로 개인 변호사 사무실에는 한 명의 변호사가 두 명의 직원을 채용하여 함께 근무한다.
변호사의 이름값에 따라 직원 수가 증가하지만, 기본적으로 한두 명 정도는 두고 있는 실정이다.
“남자 변호사님이랑 둘이서 근무하시면… 조금 불편하실 수도 있겠네요.”
황보신혜의 말에 한참 차를 준비하고 있던 여자 직원이 멈칫한다.
순간 여자 직원이 자르르 몸을 떨었다.
“저기……?”
그 모습을 용케 발견한 황보신혜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
“어디 아프신 건……?”
“아, 아니에요. 잠깐 다른 생각을 하느라…….”
이내 준비한 차를 집어 든 여자 직원이 옅게 웃으며 황보신혜에게 다가온다.
“뭐라고 하셨었죠?”
“…….”
“아, 변호사님이랑 둘이 근무하면…….”
잠시 말끝을 흐리던 여자 직원이 제 머리를 탁 하고 쳤다.
“죄송해요. 요즘 일하다가도 잡생각에 정신이 팔릴 때가 많네요.”
“아니요. 그럴 수도 있죠.”
“변호사님은…….”
여자 직원이 무언가 말하려고 할 때, 사무실 출입문이 벌컥 열렸다.
“이런, 늦어서 죄송합니다. 많이 기다리셨나요?”
깔끔한 정장 차람의 30대 남자가 사무실 안으로 들어섰다.
얇은 무테 안경에 이 대 팔로 올려붙인 머리가 인상적인 남자였다.
남자의 이름은 김변대.
이곳 사무실의 주인인 변호사였다.
황보신혜와 여자 직원이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니에요. 얼마 기다리지도 않았는데요.”
“하하, 감사합니다. 자리에 앉으시죠.”
정장 마이를 벗어던지며, 남자가 황보신혜에게 자리를 권했다.
“아, 네.”
황보신혜가 자리에 앉는 것을 확인한 김변대가 어색하게 서 있는 여자직원을 향해 카드를 내밀었다.
“법카(법인카드) 가지고 가서 커피나 한잔하고 와. 얘기가 좀 길어질 것 같으니까.”
“예? 아…….”
여자 직원이 힐끗 황보신혜를 보더니, 잠시 망설이는 기색을 보이자 김변대가 슬쩍 미간을 찌푸렸다.
“뭐 하고 있어?”
“아… 알겠습니다, 변호사님.”
짧게 고개를 숙인 여자 직원이 의자에 걸어 둔 자신의 코트를 재빨리 집어 들었다.
“실례하겠습니다.”
잠시 황보신혜에게 시선을 던진 여자 직원이 사무실 밖을 향해 후다닥 뛰쳐나갔다.
이내 10평이 조금 넘어 보이는 사무실에 두 사람만 남게 되자, 김변대가 싱긋 미소 지었다.
“다시 오실 줄 알았습니다.”
“네? 아, 네…….”
“사실 변호사라는 족속들이 조금 냉정해요. 돈 있는 사람들한테는 고객님이라며 간이라도 빼 줄 것처럼 행동하지만, 돈 없는 사람들과는 말도 섞지 않으려고 하거든요.”
말을 잇던 김변대가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전화기를 가리켰다.
“그래서, 직접 만나는 것도 아닌 단순히 통화상의 법률 상담도 돈을 받고 하고 있는 거예요. 기본적으로 자기 시간을 금이라 생각하고, 돈 안 되는 일에 그 시간을 허투루 쓰려고 하지 않으니까요.”
“아…….”
황보신혜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최초 5분은 무료, 이후부터 분당 얼마가 부과된다느니 하는 법률 상담 유료서비스 얘기는 충분히 들은 바 있었으니까.
잠시 묘한 눈빛으로 황보신혜의 얼굴을 요리조리 뜯어보던 김변대가 말을 잇는다.
“아무튼… 그에 비해 저는 나름대로, 자칭 인권변호사라는 직함을 달고 있어서 어려운 분들에게는 이렇게 무료로도 상담해 드리고 있으니, 그 부분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감, 감사합니다.”
황보신혜가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이려고 하자, 김변대가 손을 휘휘 내저었다.
“에이,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인걸요. 그보다… 오늘 제 사무실에 방문해 주신 건, 역시 먼젓번에 그 일 때문이시죠?”
“아, 네.”
“일단 앉으세요.”
김변대의 말에 황보신혜가 자리에 앉았다.
“분명… 서면에 있는 주점에서 일하신다고…….”
김변대가 조심스레 묻자, 황보신혜가 침울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아요.”
“정확히 말하면 룸싸롱이겠죠? 방이 있고, 아가씨들이 소위 사장님들을 접대하는…….”
황보신혜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야 뭐 그런 곳에 가 본 적은 없지만… 주변에 있는 변호사들에게 들은 얘기가 제법 있으니, 편하게 말씀하시면 됩니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상담은 무료니까요. 그리고…….”
잠시 말끝을 흐리던 김변대가 말을 잇는다.
“먼젓번에는 본론도 들어가기 전에 수임료 얘기에 기겁을 하고 그냥 돌아가셨는데… 이번에는 그러지 마세요. 사정 다 들어 보고, 충분히 깎아 드릴 수 있으니까요.”
“아,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황보신혜가 옅게 얼굴을 붉히며 대답했다.
옅게 미소 지은 김변대가 말한다.
“그럼, 제가 뭘 도와드리면 될지, 얘기해 주세요.”
“그게…….”
잠시 말을 잇기를 주저하던 황보신혜가 이내 결심을 굳힌 듯, 굳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제가 일하는 곳에는 크게 세 부류의 아가씨가 있어요.”
“세 부류의 아가씨라…….”
“첫 번째는 단순히 아르바이트 개념으로 접대만 해 주는 어린 대학생들이나 20대 초반의 젊은 아가씨들. 이쪽은 말 그대로 값비싼 학비 충당이나 용돈 벌이 정도를 생각하고 온 친구들이 대부분이라 큰 문제가 되지 않아요. 그냥 순수하게, 접대만 하니까요.”
“순수하게, 접대만이라. 그 말은…….”
의미심장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김변대를 보며, 황보신혜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제가 일하는 곳도, 여느 집과 마찬가지로 2차, 불법 성매매를 합니다.”
“…신혜 씨가 말씀하신 첫 번째 부류의 아가씨들은, 2차를 가지 않는다는 말이군요.”
황보신혜가 고개를 끄덕였다.
“업소 측에서도 그쪽 아가씨들에게 2차를 강요하지는 않아요. 어떤 목적으로 왔는지 뻔히 알고 있을 뿐더러, 혹여나 안 좋은 소문이라도 퍼졌다간, 젊은 아가씨들의 수급이 힘들어질 테니까요.”
“이해했습니다.”
“문제는… 두 번째, 세 번째 부류의 아가씨들이에요.”
“두 번째, 세 번째요?”
김변대의 반문에 황보신혜가 고개를 끄덕였다.
“두 번째 부류의 아가씨들은 2차를 전문적인 업으로 삼고 있는 아가씨들, 그리고… 순수하게 접대만 하던 첫 번째 아가씨들 중, 돈맛을 본 아가씨들.”
“…….”
“한 번 자 주면 수십만 원, 졸부나 흔히 말하는 ‘스폰’만 잘 잡아도 수천만 원짜리 차가 뚝딱 생기니까, 기존의 아가씨들도 눈이 돌아가지 않을 수가 없죠. 이게 업소 측에서 굳이 2차를 강요하지 않는 이유기도 하구요. 어차피 할 아가씨들은 하니까…….”
“흐음…….”
김변대가 턱을 쓰다듬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업소 측에서 이렇게 2차를 가는 아가씨들을 상대로 과다한 수수료를 청구하기 시작했어요.”
“과다한 수수료요?”
“사실 2차를 가는 아가씨들에게는 수수료를 떼지 않는 게 이쪽 업소들의 관례로 자리해 왔었어요. 접대 비용만으로도 업소 측은 충분히 돈이 되었고, 굳이 아가씨들이 몸을 팔아 가며 받는 돈에는 크게 욕심을 내지 않았었죠.”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업소 측에서 2차 수수료까지 붙이기 시작했다는 말이군요. 그것도 과할 정도로.”
황보신혜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네. 사실 스폰을 노리는 아가씨들은 기본적으로 평소에 쓰는 돈이 일반인들의 상상을 초월해요. 피부 관리에 몸매 관리, 남들에게 꿀리지 않는 명품 백, 성형… 자신의 가치를 높일수록, 더욱 많은 부자들의 관심을 끌 테니까요. 심지어, 그 일을 위해 낮에는 공부를 해서 명문대에 입학하려는 아가씨들도 있구요. 만약 그런 아가씨들에게 과다한 수수료를 붙여 버리면, 남는 게 전혀 없게 돼요.”
“업소의 갑질을 당하고 있다… 이 말씀이시군요.”
“…네. 아가씨들은 아무런 힘이 없으니까요. 애초에 불법적인 일이기 때문에 신고도 못 할 뿐더러, 그런 짓을 했다간…….”
“무슨 말씀이신지 잘 알겠습니다.”
한참 종이 위에 펜을 끄적이던 김변대가 손에 쥔 볼펜을 탁 하고 내려놓았다.
“그보다 더 심한 세 번째 부류는…….”
“아. 됐습니다. 이 정도 정보만으로도 충분하니까요.”
“예? 아…….”
“신혜 씨도 힘드셨겠군요. 그런 얘기를 하기 위해 변호사 사무실들을 돌아다니는 게 쉽지는 않으셨을 텐데…….”
“아니에요. 저는…….”
말을 잇던 황보신혜가 순간 눈을 크게 떴다.
맞은편에 앉아 있던 김변대가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바로 옆자리에 앉았기 때문이다.
“무슨……?”
“신혜 씨도 많이 힘드셨겠군요. 낮에는 도와줄 변호사들을 찾으러 돌아다니고, 밤에는 그런 일로 시달리고…….”
“아니, 저는…….”
무언가 말을 이으려던 황보신혜가 더더욱 두 눈을 크게 떴다.
갑작스레 김변대가 손을 뻗더니 자신의 허벅지를 쓰다듬기 시작했다.
마치 온몸에 벌레들이 기어 다니는 듯한 그 소름 끼치는 기분에, 황보신혜가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런 황보신혜를 보며, 김변대가 징그러운 미소로 입을 열었다.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어려운 사정 다 들었으니, 수임료 또한 필요없구요.”
말을 잇는 김변대의 미소가 점점 짙어지기 시작했다.
“제가 신혜 씨의 ‘스폰’이 되어 드리겠습니다.”
황보신혜의 두 눈이 찢어져라 부릅떠졌다.
김변대의 징그러운 손이 조금씩 위로, 위로 타고 올라오기 시작했다.
허벅지에서 복부.
복부에서 조금 더, 조금 더 위로…….
황보신혜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 순간.
“이런 개씨발람이.”
변호사 사무실 출입문이 벌컥 열리더니 험악한 인상의 박판섭이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들이닥쳤다.
“뭐, 뭐야!?”
김변대가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그런 박판섭의 뒤로…….
도윤이 가라앉은 눈빛으로 뒤따라 들어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