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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잡는 회귀검사-75화 (75/174)

75화 화류계, 스토리 오브 호식 (2)

도윤이 부산에 도착한 것은 불과 1시간 전이었다.

도윤이 이렇게 급하게 부산에 내려온 이유는 단 한 가지였다.

조금이라도 빨리 호식과 그 아가씨를 만나게 해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사실 처음에는 도윤도 많은 고민을 했다.

어떻게 보면, 지금 만나게 될 이 아가씨로 인해 회귀 전 호식의 인생은 조금씩 망가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무일푼인 가난한 일반인의 사건을 의뢰받았고, 사랑에빠져, 결국 집안의 반대도 무릅쓰고 결혼까지 감행했다.

재벌과 일반인의 결혼이 물론 흔치 않는 일이긴 하지만, 겨우 그따위 일로 KS그룹에서 호식 같은 인재를 내친 이유가 항상 궁금했었다.

그리고, 이제야 그 내막을 알 수 있었다.

일반인도 그냥 평범한 일반인이 아닌, 화류계에 종사하는 아가씨.

결혼 자체를 비즈니스로 생각하는 재벌가 사람들이, 회사 이미지에 막대한 타격까지 줄 수 있는 그런 결혼에 찬성할 리가 없다.

아마 KS그룹뿐만 아니라, 한차례 데인 바 있는 호식의 아버지 또한 격렬히 반대했을 것이다.

호식은 그런 반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결혼식을 올렸을 것이고 말이다.

이런 사정을 뻔히 다 알면서, 과연 호식에게 이 아가씨를 소개시켜 주는 게 옳은 일인가, 도윤은 수도 없이 고민을 했다.

결론은…….

호식의 선택에 맡기자는 것이었다.

자신이 고민하고, 결정할 문제가 아니었다.

만약 자신만 아니었다면, 호식은 회귀 전처럼 부산에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했을 테고, 결국 두 사람은 만나게 될 운명이었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결론적으로 그 운명이 자신으로 인해 틀어지게 되었다.

자신에게 두 사람이 일평생 만날 기회마저 빼앗아 버릴 자격 따위는 없었다.

운명에 따라, 두 사람이 만날 수 있는 기회만 주고, 선택은 호식에게 맡기면 될 터였다.

부산에 도착한 도윤은 곧바로 박판섭과 만났고, 한 변호사 사무실 앞에서 서성이는 황보신혜를 발견할 수 있었다.

한참을 망설이던 황보신혜는, 이내 건물 안으로 들어갔고, 도윤과 박판섭 일행은 곧바로 그 뒤를 밟았다.

얇은 벽을 사이에 두고, 사무실 출입문 앞에서 기다리기를 잠시…….

막 사무실에서 나오는 여자 직원과 마주쳤다.

“저… 무슨 일로……?”

출입문 밖으로 나오자마자, 장정 네 사람이 눈앞에 보이자, 여자 직원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 뭐. 떼인 돈이 있어 가지고요. 법률 상담? 그거 한번 받아 보고 싶어서 왔소.”

박판섭이 당황한 표정을 숨기며, 침착하게 대답했다.

“…떼인 돈이요?”

여자 직원이 더더욱 눈을 크게 떴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박판섭의 인상에 떼먹은 돈도 아닌, 떼인 돈이 있다고 하니 황당해하는 눈치였다.

‘이런…….’

쓰게 웃은 도윤이 중간에 끼어들었다.

“상담은 제가 받을 겁니다. 안에 벌써 와 계신 손님이 계셔서, 조금 기다렸다가 들어가려구요. 어디 가시는 길인 것 같던데, 신경 쓰지 마시고 다녀오세요.”

“아…….”

말끔한 차림의 잘생긴 젊은 남자가 말하니 그제야 여자 직원도 옅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 그럼 안에서 기다리세요. 제가 안에다 말을…….”

“괜찮습니다. 저희도 잠깐 어디 갔다가 나중에 다시 오려구요.”

“아, 네…….”

여자 직원이 아쉽다는 듯 대답하더니, 싱긋 미소 지었다.

“그럼 나중에 뵐게요. 저도 볼일이 있어서, 아마 오실 때쯤이면 들어오겠네요.”

“아, 저기… 잠시만요.”

“네?”

순간 도윤이 붙잡자, 여자 직원이 기대감 어린 눈빛으로 대답했다.

“…몇 가지만 물어봐도 될까요?”

말을 잇는 도윤의 두 눈빛 사이로 순간 초록빛 광채가 스쳐 지나갔다.

이제는 성공 확률이 60퍼센트 이상에 육박하는 심문의 달인.

그 스킬이 발동되었다.

“네? 아, 물론이죠.”

여자 직원이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자, 짧게 고개를 숙인 도윤이 이내 입을 열었다.

‘우선 가벼운 것부터…….’

“안에 있는 변호사님, 나이가 젊어 보이는데 혹시 사무실은 개업한 지 얼마나 되었나요?”

도윤의 물음에 잠시 고민하는 듯하던 여자 직원이 곧바로 대답한다.

“이곳에 자리 잡으신 건 5년 정도 되었을 거예요. 저는 작년부터 여기서 일하기 시작했구요. 승소율도 나쁘지 않아, 제법 많은 분들이 찾아 주세요. 특히 여자분들이…….”

“여자분들요?”

도윤의 반문에 여자 직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일단은 남자 변호사님인데도 특이하게, 여성 인권 변호사시기도 하고, 특히나 이혼 관련 소송에서 많은 위자료를 받아 내곤 하시거든요.”

“음…….”

설명을 듣는 와중에도 도윤의 시선은 사무실 안쪽에 가 있었다.

“인권 변호사시면, 어려운 사람들도 많이 도와주곤 하겠군요. 공짜가 아니라도, 조금 낮은 수임료를 받는다든가…….”

일반적인 인권 변호사라 함은, 같은 법률 서비스를 제공해도 금전적인 수익보다는 사회적인 약자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힘쓰는 변호사를 말한다.

그 사실을 상기한 도윤이 묻자, 여자 직원이 잠시 멈칫했다.

“네… 많이 도와주시죠. 그런데… 그렇게 도와주는 사람들은 전부 여자분들이에요. 그중에서도 젊은 여자분들만.”

“예? 그게 무슨…….”

“사실 저도 처음에는 어떤 계기가 있어서 여성분들만 주 대상으로 도와주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이곳에서 일을 하면 할수록, 그게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죠.”

“거, 속 시원하게 말해 보시오. 답답해 죽겠네.”

순간 끼어드는 박판섭을 향해 도윤이 손을 들어 제지했다.

“자세히 말씀해 주실래요?”

잠시 초점 없는 멍한 표정을 짓고 있던 여자 직원이 도윤의 물음에 다시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저 이전에… 이곳에서 일했던 직원들은 모두 여자였어요. 그리고… 그 여자 직원들은 채 1년을 채우지 못하고, 일을 그만뒀죠.”

“왜……?”

도윤의 반문에 한차례 쓰게 웃은 여자 직원이 대답한다.

“변호사님의 성희롱을 참을 수 없었거든요.”

“……!”

“사소한 터치는 예사였어요. 처음에는 애를 잘 낳겠네, 못 낳겠네……. 엉덩이를 툭툭 건드리는 수준에서, 시간이 지날수록 강도를 더해 갔죠. 회식 자리에서는 한 번 자 주면 월급을 인상시켜 주겠다는 얘기도 서슴치 않고 했구요.”

“저런 미친 새끼!”

박판섭이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아니, 아가씨. 그걸 가만히 참고 있소? 뭐 성추행으로 고소를 하든가. 저 새끼, 콩밥 한번 먹이든가 할 것이지!”

“할 수 없었겠지.”

여자 직원 대신 도윤이 대답했다.

“할 수 없다니!?”

“이쪽 바닥, 니가 생각하는 것보다 좁아. 같은 사무실 여자 직원이 바로 위에 있는 변호사를 성추행으로 고소했다는 소문이 업계에 퍼지면, 과연 누가 더 큰 피해를 볼까?”

“…….”

“변호사? 하나같이 법률 전문가들이야. 가지고 있는 힘도 일개 법률 사무소 직원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세지. 만약 성추행 죄가 인정되더라도… 기껏해야 벌금은 나올까?”

도윤의 말에 박판섭이 입을 다물었다.

“그에 비해 여자 직원은… 더 이상 이쪽 업계에서는 일하기가 힘들 테지. 변호사를 상대로 고소나 하는 직원을 쓰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테니까. 저기 있는 변호사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을 테고.”

“저 개… 씹어 먹어도 못 할 새끼…….”

박판섭이 낮은 목소리로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순간 도윤이 여자 직원을 돌아보며 묻는다.

“그렇죠?”

“…네. 잘 알고 계시네요. 아마 직원들뿐만 아니라 사건 의뢰인들도 저런 식이었을 거예요.”

“그건 무슨……!”

박판섭이 홱 고개를 돌렸다.

“돈이 없는 사람들에게 수임료 대신 지속적인 성 상납을 받았을 거예요. 몇 번인가 변호사님이 대낮부터 인근에 있는 모텔에서 여자분과 나오는 걸 봤거든요. 그런데… 그때마다 다른 사람이었어요.”

박판섭이 와락 인상을 구겼다.

바로 그 순간.

“……!”

도윤이 두 눈을 크게 떴다.

때마침 자리에서 일어난 문제의 변호사 놈이, 황보신혜에게 접근하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도윤을 따라 시선을 돌린 박판섭도 두 눈을 크게 떴다.

“저, 저……!”

씹어 먹어도 모자랄 변호사 놈이 눈앞에 있는 여자의 몸을 더듬고 있었다.

더 이상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박판섭이 출입문을 박차고 들어갔다.

“이런 개씨발람이.”

“뭐, 뭐야!?”

“야, 카메라 있는지 빨리 확인해 봐.”

박판섭의 물음에 뒤따라 들어온 망치파 조직원이 주변을 잠시 휘휘 둘러보더니 곧바로 대답한다.

“CCTV 없습니다, 형님”

“그래?”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린 박판섭이 그대로 김변대에게 다가간다.

“뭐냐고, 이 새끼들아!”

순간 위기의식을 느낀 김변대가 버럭 고함쳤다.

“알 거 없고.”

박판섭이 씹어 내뱉듯 중얼거린다.

“어금니 꽉 깨물어라, 씹새야.”

욕지거리를 내뱉는 박판섭의 관자놀이가 툭툭 불거져 올라와 있었다.

마침 박판섭은 이제 한 식구가 된 불곰의 과거가 생각이 나 화가 치밀어 올랐던 참이었다.

자칭 인권 변호사라며,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겠다는 놈이, 그 어려움을 이용해 성 접대를 요구하고, 아가씨의 몸을 더듬기 시작했을 때, 속에서 무언가 툭 하고 끊어졌고, 마침내 폭발했다.

박판섭이 그대로 오른발을 추켜올리더니, 김변대의 복부를 걷어찼다.

퍼억!

“컥!”

경쾌한 타격음과 함께 김변대가 발라당 뒤로 나자빠진다.

“망 잘 봐라. 일하는 아가씨 시선 확실히 가리고.”

“예, 형님!”

어느새 출입문을 단단히 틀어막은 나머지 망치파 조직원이 힘차게 대답했다.

“너, 너 이 새끼, 내가 누군지 알아!?”

김변대가 다시 한 번 버럭 고함쳤다.

“알지. 아주 잘 알지. 그 대단하신 변호사님 아니신가?”

“이… 이……! 미친 깡패 새끼! 이러고도 무사할 것 같아!? 콩밥 먹고 싶어!?”

“콩밥?”

옆에서 가만히 보고 있던 도윤이 차가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하고 싶은 대로 한번 해 봐. 강제추행 현행범으로 체포해 줄 테니까. 현직 변호사가 강제추행 현행범. 볼만하겠는데?”

“뭐, 뭐, 뭐?”

김변대가 목에 핏대를 세우고 고래고래 고함치기 시작했다.

“현행범 체포!? 니가 뭔데? 뭐, 경찰이라도 돼!?”

“일반 사인도 눈앞에서 범죄가 저질러지고 있는 것을 목격하면 범죄자를 현행범으로 체포할 수 있다. 이때, 체포한 현행범은 곧바로 경찰관서에 인계한다.”

“……!”

김변대가 두 눈을 부릅떴다.

“법도 배우신 분이, 그 정도는 기본으로 알고 계실 텐데?”

“이런 씨발……!”

욕지거리를 내뱉던 김변대가 순간 멈칫하더니, 잠시 후 비릿한 미소를 짓는다.

김변대의 고개가 황보신혜를 향해 천천히 돌아간다.

“이봐, 아가씨.”

김변대의 부름에 흠칫한 황보신혜가 떨리는 눈동자로 시선을 돌렸다.

“아가씨가 한번 대답해 봐. 내가 언제 아가씨 몸을 더듬었나?”

“……!”

“우리는 분명히 아가씨가 의뢰한 사건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아닌가?”

유난히 ‘사건’이라는 단어를 강조하는 김변대를 보며, 황보신혜가 입술을 꽈악 깨물었다.

그 모습을 발견한 김변대가 피식 미소 지었다.

박판섭과 도윤을 향해 시선을 돌린 김변대가 비아냥거리기 시작했다.

“이봐, 이봐. 어? 이 또라이 새끼들, 갑자기 사람을 강제추행범으로 만들질 않나, 뭐 강제추행? 현행범 체포? 어디 한번 해 봐. 누가 피 보게 될지, 한번 두고 보자고.”

“도저히 상종 못 할 쓰레기 새끼구나.”

성큼 한 걸음 앞으로 나서는 박판섭을 도윤이 손을 들어 제지한다.

“……?”

“저 아가씨 진술이 없으면, 피해를 보는 건 우리야.”

“그게 무슨 개법 논리……!”

“아가씨.”

발끈한 박판섭이 무어라 고함치려고 할 때, 도윤이 조용한 목소리로 황보신혜를 불렀다.

고개를 들어 떨리는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황보신혜를 보며, 도윤이 올곧은 목소리로 말한다.

“저를, 믿으세요.”

“……!”

황보신혜가 두 눈을 크게 떴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났을까?

무언가 결심을 굳힌 듯 황보신혜가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대답한다.

“…했어요.”

“예?”

“…강제추행, 했어요.”

이내 도윤이 옅게 미소 지었다.

“그렇다는데?”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박판섭도 씨익 웃으며 김변대를 돌아본다.

“이… 이……!”

얼굴이 시뻘개진 김변대가 황보신혜를 죽일 듯이 노려보기 시작했다.

“반쯤 죽여 버려.”

“말 안 해도, 그렇게 하려고 했어.”

박판섭이 김변대를 향해 뚜벅뚜벅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오, 오지 마. 오지 마, 이 깡패 새끼야!”

김변대가 주춤주춤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오지 마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잠시 후, 변호사 사무실 내부에 김변대의 비명 소리가 메아리처럼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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