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화 화류계, 스토리 오브 호식 (3)
10평이 조금 넘는 사무실.
한쪽 구석에는 눈두덩이에 시퍼렇게 멍이 든 남자가 속옷만 입고 무릎을 꿇은 채, 하늘을 향해 두 팔을 치켜들고 있었다.
“어? 귀에서 팔 떨어지지?”
박판섭의 말에 흠칫한 김변대가 팔을 바짝 귀에 올려붙인다.
그런 김변대의 모습을 박판섭이 낄낄 웃으며 카메라로 촬영한다.
“너, 협박 좋아하지? 혓바닥 잘못 놀리면 지금 니 꼬라지, 전국에 다 퍼질 줄 알아.”
“그, 그건……!”
“요즘 인터넷 전파력 장난 아닌 것, 알고 있지? 지금 이거 전국적으로 생중계하는 거, 일도 아니야.”
“안 돼, 절대 안 돼.”
김변대가 상상도 하기 싫다는 듯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몸서리쳤다.
“그러니까 잘해, 새끼야.”
피식 웃음을 터뜨린 박판섭이 힐끗 시계를 확인한다.
잠시 미간을 찌푸린 박판섭이 조용한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그런데 이놈은… 왜 이렇게 안 오는 거지?”
* * *
법률타운 인근에 자리한 커피숍.
불안한 표정으로 연신 주변을 살피고 있는 황보신혜를 보며, 도윤이 입을 열었다.
“걱정 마세요.”
“하지만…….”
잠시 말끝을 흐리던 황보신혜가 굳은 목소리로 말을 잇는다.
“…저는 도움이 필요해요. 만약 오늘 있었던 일이 소문이라도 나면, 저를 도와주려는 변호사는 아무도 없을 거예요.”
“…….”
황보신혜의 말에 도윤이 입을 다물었다.
잠시 주저하던 황보신혜가 이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역시… 안 되겠어요. 지금이라도 가서 사과를 해야…….”
“잠시만요.”
도윤이 조용한 목소리로 황보신혜를 제지했다.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예? 그게 무슨…….”
도윤이 잠시 무언가 고민하기 시작했다.
‘검사인 내가 직접 도와주는 것보다는 역시…….’
이내 씨익 미소 지은 도윤이 입을 열었다.
“제가 잘 아는 변호사가 한 사람 있거든요. 그 사람이라면 아마 신혜 씨를 도와줄 겁니다.”
“그게 정말인가요!?”
황보신혜가 눈을 반짝이며 소리쳤다.
“…….”
도윤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눈앞의 이 부끄럼쟁이 아가씨가 이렇게 하이 톤의 목소리를 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순간 주변에서 집중되는 시선을 느낀 황보신혜가 옅게 얼굴을 붉히며, 조심스레 제자리에 앉았다.
“…잠시만요.”
황보신혜에게 양해를 구한 도윤이 곧바로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이내 그 누군가가 전화를 받았는지, 도윤이 말한다.
“야, 지금 바로 부산으로 내려와.”
“뭐, 뭐? 밑도 끝도 없이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여자 소개시켜 달라며. 그 약속, 지킨다.”
“잠… 잠깐!”
재빨리 통화 종료 버튼을 누른 도윤이 입가에 미소를 물고 황보신혜를 돌아본다.
“오늘 안에 날아올 겁니다.”
“…….”
멍한 표정을 짓고 있던 황보신혜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변호사님이신 것 같은데… 많이 친하신가 보네요.”
“둘도 없는 불… 아니, 제일 친한 친구거든요.”
“아…….”
묘한 감탄사를 내는 황보신혜를 보며, 잠시 머뭇거리던 도윤이 묻는다.
“그런데… 한 가지 여쭤봐도 될까요?”
“네?”
황보신혜가 고개를 갸웃하자 도윤이 말을 잇는다.
“아까 그 쓰레… 아니, 그 변호사한테 하는 얘기를 제가 조금 들었거든요.”
도윤은 여자 직원과얘기를 나누면서도, 청각의 비술을 이용해 사무실 내부에서 들려오는 대화 소리에도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네? 그게 들렸다구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반문하는 황보신혜를 보며 도윤이 멋쩍게 웃었다.
“사무실이 방음이 잘 안 되더라고요. 제가 좀 귀가 밝은 편이기도 하고…….”
“정말…….”
손바닥을 얼굴 옆으로 갖다 붙이는 황보신혜를 보며, 도윤이 묻는다.
“대략적인 얘기는 모두 들었습니다. 첫 번째, 두 번째 부류의 아가씨들 얘기까지요. 그런데… 아직 세 번째 부류의 아가씨들에 대한 이야기는 듣지 못했거든요.”
“아……!”
도윤의 말에 황보신혜가 이해했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턱을 쓰다듬으며 고민하는 듯하던 도윤이, 이내 조금 가라앉은 목소리로 묻는다.
“제 생각에… 아마 세 번째 부류의 아가씨들은, 포주에게 약점을 잡혀 일을 그만두지도, 영업을 거절하지도 못하는, 말 그대로 업소에 종속된 불쌍한 아가씨들… 이라고 생각합니다만, 맞습니까?”
순간 황보신혜가 두 눈을 크게 떴다.
“그걸 어떻게…….”
황보신혜의 반응에 도윤이 역시나 하는 표정을 짓더니, 잠시 후 쓰게 웃었다.
회귀 전 형사 생활을 하면서 수없이 겪어 본 사건들이다.
일반적인 룸살롱의 조직 구조는 생각보다 상당히 체계적이다.
포주 겸 총책임자 아래에 매니저 겸 운영자인 실장이 있고, 그 아래로 다시 수십 명의 아가씨와 병풍들, 즉 내부 치안을 유지하는 떡대들이 있다.
여기서 보도, 즉 업소에서 아가씨를 보내 주는 서비스까지 겸하고 있는 곳들은 그 규모가 더욱 커진다.
물론 일반적인 룸살롱에서 보도까지 겸하고 있는 경우는 흔치 않았지만.
업계 사람들 중 스스로 원해서 이 일을 하고 있는 아가씨들은 누구나 에이스(가게에서 최고로 잘나가는 아가씨)를 꿈꾸는데, 일단 에이스가 되면 하루 공사(손님을 꼬셔 명품, 차, 집 등을 받는 것) 1건은 기본이다.
말 그대로 어지간한 연예인 부럽지 않은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실제 활동을 하고 있는 연예인들이 이쪽 업계에 용돈 벌이 겸 발을 담그기도 하고 말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아가씨에게 에이스는 그저 꿈일 뿐이다.
초장부터 캔슬이나 뺀찌, 쉽게 말해 손님이 아가씨가 마음에 들지 않아 퇴짜를 놓는 경우야 상관없지만, 일단 초이스가 된 아가씨들은 좋든 싫든 손님의 기분을 맞춰 줘야 한다.
설령 피아노(손님이 아가씨 몸을 질퍽대는 것)가 극도로 심한 진상이라도 말이다.
물론 이 모두는 황보신혜가 말한 두 번째 부류, 스스로 원해서 아가씨가 된 경우나 선택권 따위는 없는 세 번째 부류의 아가씨들에게 해당되는 이야기다.
용돈 벌이나 하기 위해 업소를 찾는 첫 번째 부류의 아가씨들은, 비교적 자신의 의사 표현을 확실히 한다.
심한 경우, 아가씨가 잠수를 타도 업소 측에서는 딱히 붙잡아 둘 명분도 없었고 말이다.
하지만 일단 이 일에 빠져, 업소 측에 약점이라도 잡히게 되면… 말 그대로 빠져나올 수 없게 된다.
전문적으로 이 일에 종사하고 있는 아가씨들이 평균적으로 쓰는 돈이 하루 수백만 원.
외모와 스타일 자체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극소수의 아가씨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아가씨들이 자신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업소 측의 도움을 받는다.
적게는 수백만 원에서 많게는 수천, 수억 원까지.
공짜도 아니다.
사채업자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이자를 붙이곤 했으니까.
이 정도까지 오게 되면, 아가씨들은 절대 자의로 이 일을 그만둘 수 없다.
업소 측에서 놓아주지 않는 것도 있겠지만, 하룻밤에 수백만 원씩 벌던 아가씨가 일반인들의 삶으로 되돌아가 하루 12시간, 한 달을 꼬박 일해 그 돈을 버는 것을 스스로 거부하기 때문이다.
이쪽 업계에 한 번 발을 잘못 들여, 신세를 망치는 아가씨들의 이야기는, 도윤에게 더 이상 흔치 않은 것도 아니었다.
“신혜 씨가 도와주고 싶어 하는 아가씨들이 스스로 원해서 일하고 있는 아가씨들은 아닐 테고…….”
잠시 말끝을 흐리던 도윤이 눈을 빛내며 황보신혜를 바라본다.
“업소 측의 위협으로 그만두고 싶어도 그만두지 못하고 있는 아가씨들. 그들을 돕고 싶은 것이겠죠?”
“…네, 맞아요.”
입술을 질끈 깨물고 있던 황보신혜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무언가 말하기를 주저하던 황보신혜가 이내 결심을 굳힌 듯 입을 열었다.
“사실 업소 측의 이런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 시작된 건 얼마 되지 않았어요. 1년? 아니, 그보다 더 짧을 수도…….”
“1년… 신혜 씨도 생각보다 그곳에 오래 발을 담그고 있었군요.”
도윤의 말에 황보신혜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굳이 부류를 나누자면 저는 첫 번째 부류예요.”
“…….”
“저는 그저 대학을 다니는 평범한 대학생이었고, 처음에는 몸이 아픈 친구의 부탁으로, 딱 한 번 대신 업소에 나갔던 게 계기가 되어 이쪽 업계에 발을 들이게 되었었죠. 그때 실장님 눈에 들어 종종 업소에 나가 일을 도와주곤 했던 거고…….”
“그렇군요…….”
“정말이에요. 물론 철모르던 그 당시에는, 일반 회사원들의 몇 배나 되는 돈을 받게 되니, 그게 좋아 계속 나갔던 거지만… 애프터는 단 한 번도 간 적이 없어요.”
마치 해명하듯 말을 이어 나가는 황보신혜를 잠시 바라보던 도윤이, 조심스럽게 묻는다.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다는 걸로 들리는데, 왜 아직도…….”
차마 뒷말을 잇지 못하는 도윤을 보며, 황보신혜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도와주고 싶었거든요.”
“네?”
“1년 가까이 이쪽 일을 하다 보니… 그저 평범한 대학생이었다면 상상도 하지 못했을 일들을 당하고 있는 불쌍한 친구들이 정말 많았어요. 그 친구들을… 도와주고 싶었어요.”
“…….”
“그 때문에 이 일을 계속하고 있는 거기도 하구요. 합법적인 방법으로 업소와의 관계를 청산하고, 새로운 일을 시작하려면 아무래도 돈이 많이 필요할 테니까…….”
잠시 황보신혜의 두 눈을 빤히 바라보던 도윤이 순간 피식 미소 지었다.
‘닮았군.’
눈앞에 있는 여자와 자신의 친구는, 상당히 닮은 점이 많은 듯했다.
“요점은, 업소 측이 쥐고 있는 아가씨들의 약점. 그걸 때려 부수는 거군요.”
“맞아요.”
“구체적으로 어떤 건지 얘기해 주실 수 있을까요? 말씀하시는 것만 봐서는, 금전적인 관계만 얽혀 있는 게 아닌 것 같은데…….”
“…….”
이 부분에서 황보신혜가 잠시 멈칫하더니, 무언가 골똘히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도윤이 고개를 갸웃한다.
‘뭔가…….’
도윤이 속으로 중얼거리고 있을 때, 황보신혜가 입을 열었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
“한 1년 전에, 아가씨가 아니라 업소 자체를 스폰해 주는 남자가 나타났어요.”
“업소를 스폰해요?”
도윤이 두 눈을 크게 떴다.
일반 아가씨 한 명만 고정적으로 스폰하는 데도 적게는 수천만 원에서 많게는 수억 원의 돈이 들어간다.
그런데, 업소 전체를 스폰한다니?
“문제는… 그 사람이 나타나고 나서부터, 일부 아가씨들이 조금씩 이상해지기 시작했어요.”
“이상해져요?”
황보신혜가 고개를 끄덕였다.
“갑자기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고 충동적으로 소리를 지른다든가, 초점 없는 눈으로 한곳만 바라보고 있다든가, 불안한 표정으로 연신 주변을 두리번거린다든가. 전체적인 행동들이 조금…….”
황보신혜가 하는 얘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도윤의 표정이 서서히 굳어 가기 시작한다.
“혹시…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손을 휘젓는다든가, 갑작스레 온몸을 벅벅 긁어 댄다든가 하는 행동들도 있었나요?”
“네! 맞아요! 그걸 어떻게…….”
“…그 업소, 어디에 있습니까?”
“예?”
완전히 굳은 얼굴로 말하는 도윤을 향해 황보신혜가 멍하니 반문했다.
“업소 위치 어디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