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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잡는 회귀검사-77화 (77/174)

77화 화류계, 스토리 오브 호식 (4)

“아 진짜, 이 바쁜 시기에!”

차량 조수석에 몸을 실은 호식이 입을 삐죽 내밀며 투덜거렸다.

한참 일 처리를 하던 중에 도윤의 호출을 받은 터라, 기분이 상당히 좋지 않았다.

“안 갈 수도 없고. 어휴, 내 팔자야. 이러려고 변호사가 되었나, 자괴감이 들어…….”

“그래도 두 사람 사이, 나는 엄청 부러운데?”

순간 바로 옆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호식이 발딱 고개를 쳐들었다.

“이게 친해 보인다고요? 형이 그놈을 몰라서 하는 소린데, 친구가 아니라 완전 나를 종으로 안다니까요?”

“물론 나는 그분을 몇 번 보지 못했지만…….”

호식의 변호사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는 금창호가 잠시 말끝을 흐리더니, 옅은 미소를 지었다.

“툭 터놓고 일상적인 일에 대해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가, 행복한 것 아닐까?”

“예?”

호식이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 반문했다.

그런 호식을 보며 금창호가 말을 잇는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학창 시절과 직장을 가진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다르잖아. 그때야 운동장에 공 하나만 던져 줘도 즐거웠고, 밤에는 몰래 소주도 까고, 선생님 몰래 담배도 태우면서, 돈이 없어도 아무런 걱정 없이 재미있게 놀 수 있었지. 친구들과 속에 있는 얘기도 툭 터놓고 맘껏 얘기할 수 있었고. 하지만…….”

금창호가 씁쓸한 얼굴로 말을 잇는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군대를 갔다 오고, 취직을 하고. 나이가 들어 갈수록 그게 힘들어져. 다들 저 살기 바쁘니까. 한 번 만나기가 참 힘들고, 친구들이 한자리에 모이기는 하늘에 별 따기보다 힘들지. 그러다가 결혼을 하고, 애기가 생기면 친구한테 안부 전화 한 통 하는 것도 잘 안 돼.”

“…….”

“그런데, 다들 그러려니 하고 살아. 서로 바쁜 것 잘 아니까. 나도 이런데, 친구들이라고 안 그러겠어? 이해를 하는 거야. 그리고 그렇게 조금씩 늙어 가는 거지.”

말을 마친 금창호가 호식을 돌아보며 싱긋 웃었다.

“하지만 최소한 너는 아니잖아? 언제든지 만나서, 소주잔이라도 기울일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사실. 그 자체가 행복한 것 아닐까, 나는 그렇게 생각해.”

“…….”

한참을 침묵을 지키던 호식이 이내 머리를 벅벅 긁었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형이랑 얘기하면 내가 어린애처럼 느껴진다니까?”

피식 웃음을 터뜨린 금창호가 말한다.

“그런 걸 떠나서, 이번 일은 니가 좋아서 가는 거잖아? 그 강 검사님이 여자를 소개시켜 준다는데.”

호식도 마주 웃음을 터뜨렸다.

“하긴… 그 강도윤이 여자를 소개시켜 준다라… 참 기대되네요.”

호식이 들뜬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보다 네이비 주식은 조금 더 매입이 되겠어요?”

“매입이야 되겠지만… 주가가 많이 올랐어. 너도 알다시피, 재작년에 시작한 지식아웃 서비스가 작년부터 대박을 치면서, 지금도 주가가 꾸준히 올라가고 있거든. 아마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포털사이트 자체가 바뀔 수도…….”

“음…….”

호식이 잠시 턱을 쓰다듬었다.

“지금 매입한 양이 총 얼마나 되죠?”

“20퍼센트는 넘고, 30퍼센트는 안 돼.”

“제법 되네요?”

호식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뭐, 강 검사님이 주신 돈이 제법 되니까.”

“그럼 추가 매입 문제는 일단 그놈 만나서 얘기해 보고 처리하는 걸로 해요.”

“그래.”

“운전, 부탁 좀 할게요, 형.”

“맡겨 둬.”

싱긋 웃으며 말하는 금창호를 잠시 바라보던 호식이 짧게 고개를 숙이고, 스르륵 눈을 감았다.

최근 일주일간 골치 아픈 고소 사건을 처리하느라, 상당히 몸이 무거웠다.

‘부산이라…….’

실습 때 일을 떠올리던 호식이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이내 잠에 빠져들었다.

* * *

부산 서면에 위치한 고급 룸살롱.

부산 시내 전체에서 가장 잘나가는 곳이자, 황보신혜가 말한 그 업소 앞에 도윤이 서 있었다.

아직 해가 중천에 떠 있는 대낮이었기 때문에, 업소 출입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혹시 아가씨들만 따로 출입하는 뒷문이라든가, 그런 곳 있습니까?”

“예? 아, 있어요.”

곧바로 대답한 황보신혜가 도윤을 한쪽으로 이끌었다.

“이쪽이에요.”

이내 건물 뒤편 골목길에 위치한 자그마한 쪽문 앞에 선 황보신혜가 도윤을 돌아본다.

“들어가죠.”

도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황보신혜가 잠시 출입문 주변을 뒤적이기 시작한다.

“…아! 찾았다.”

이내 쇠로 된 휴지통 바로 아래에 자석처럼 붙어 있는 열쇠를 찾아 집어 든 황보신혜가 그대로 그 열쇠를 끼워 돌려, 출입문을 열어젖혔다.

“지금 시간이라면… 아마 아무도 없을 거예요. 이쪽으로…….”

어두컴컴한 계단을 따라 내려가기를 잠시, 이내 또 하나의 쪽문이 도윤의 눈앞에 나타났다.

“이걸 열면……!”

이음새가 뻑뻑한지 잠시 낑낑거리던 황보신혜가 이내 출입문을 열어젖혔다.

덜컹.

짧은 소음과 함께 쪽문이 열리자, 도윤이 그대로 빠져나왔다.

쪽문은 룸살롱 내부에서도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발견하기 힘든 구석에 위치해 있었다.

그리고 이윽고 도윤의 눈앞에 기다란 복도가 펼쳐졌다.

대낮임에도 그 위치 탓인지, 건물 내부는 상당히 어두웠다.

“잠시만요. 어딘가 불이…….”

“됐습니다.”

손을 들어 황보신혜를 만류한 도윤이 낮은 목소리로 묻는다.

“아가씨들 대기방이 어디에 있습니까?”

도윤의 물음에 황보신혜가 복도 양옆의 수많은 방 중 한 곳을 가리켰다.

“보통 다른 곳에 있다가 호출을 받고 오지만… 건물 내부에서 대기할 땐 주로 1번 방을 이용해요.”

“안내해 주세요.”

도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황보신혜가 조심조심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어두우니까 천천히 따라오세요. 저는 길이 눈에 익어서 괜찮으니까…….”

“네.”

이내 하나의 방 앞에 도착한 황보신혜가 그대로 문을 열어젖혔다.

“여기예요.”

“음…….”

방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짙은 화장품 냄새가 코를 찔렀다.

잠시 미간을 찌푸린 도윤이 룸 내부의 불을 켜고, 여기저기를 뒤적이기 시작한다.

“뭘 하시려고……?”

그 모습에 황보신혜가 의문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했다.

책상이나 소파 밑뿐만 아니라, 양주 통 안까지 샅샅이 살피던 도윤이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없군요.”

“네? 뭐가 없…….”

“청소는 영업 끝나고 하겠죠?”

도윤이 황보신혜의 말을 끊고 물었다.

“…청소요?”

잠시 고개를 갸웃한 황보신혜가 곧바로 대답한다.

“저희 업소는 보통 영업시간보다 조금 일찍 와서 청소도 하고, 영업 준비를 해요. 대략적인 테이블 정리나 설거지 같은 건 미리 해 놓고 퇴근하지만, 그 외 바닥이나 화장실 청소는 영업 전에…….”

순간 도윤이 눈을 빛냈다.

“여자 화장실로 가 봅시다.”

“여자 화장실요?”

도윤의 말에 황보신혜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 오해는 마시구요.”

도윤이 급히 손사래 쳤다.

“찾을 게 있어서요.”

“아, 네…….”

미심쩍은 눈빛으로 잠시 도윤을 바라보던 황보신혜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내 복도를 따라 조금 더 걷자, 도윤이 찾고 있던 장소가 나타났다.

도윤이 거침없이 그곳으로 들어갔다.

“잠… 잠깐……!”

자신이 말릴 틈도 없이 여자 화장실로 들어가 버리는 도윤을 보며, 황보신혜가 옅게 얼굴을 붉힌다.

“아무리 사람이 없다지만…….”

작게 중얼거린 황보신혜가 이내 도윤을 따라 화장실 안으로 들어갔다.

총 5개나 되는 용변 칸을 갖춘 화장실은 역시나 고급 룸살롱답게 내부가 상당히 넓었다.

빠르게 걸음을 옮긴 도윤이 용변 칸 안에 있는 화장실 휴지통들을 하나하나 끄집어내기 시작했다.

“저… 저기…….”

붉은빛과 황갈색(?)이 언뜻언뜻 비치는 내용물들을 발견한 황보신혜가 순간 당황했다.

그에 아랑곳하지않고 마침내 모든 휴지통들을 끄집어낸 도윤이, 화장실 정중앙에 그 내용물들을 전부 쏟아 냈다.

“저… 전, 나가 있을게요!”

황보신혜가 당황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더니, 그대로 화장실 밖으로 뛰쳐나갔다.

출입문 방향은 쳐다보지도 않고, 바닥에 엎어 놓은 내용물들을 유심히 들여다보던 도윤이, 두 손을 이용해 거침없이 내용물들을 뒤지기 시작했다.

대략 찻물이 끓어오를 시간이 지나, 마침내 도윤이 눈을 반짝였다.

도윤이 휴지 더미 사이에서 새하얀 종이 하나를 집어 들었다.

“…찾았다.”

도윤이 그 종이를 엄지와 검지 사이에 끼워, 잠시 비벼 대자 종이에 붙어 있던 반짝이는 알갱이 가루들이 붙어 나왔다.

그대로 손가락을 입으로 가져다 댄 도윤이, 그 흰 가루를 혀끝에만 살짝 찍어 맛을 음미했다.

“역시…….”

도윤이 심각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예상대로 메스암페타민, 필로폰(히로뽕)이 맞았다.

팔에 직접 투약하는 방식인 정맥주사야, 그 증거품인 주사기를 남기는 경우가 잘 없지만, 이렇게 필로폰을 보관하는 데 사용한 종잇장 같은 경우, 별생각 없이 이렇게 버리곤 한다.

“술이나 음료에 타, 서서히 중독시킨 다음, 어느 정도 물이 올랐을 때 직접 투약하는 방식으로 꼬셔 댔겠지. 정맥주사와 그냥 타 먹는 건, 그 환각 효과 자체가 차원이 다르니까.”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린 도윤이 입술을 꽈악 깨물었다.

분명 먼젓번 사건으로 마약 조직들의 활동이 대거 위축되었을 거라 생각했다.

부산과 인천.

국내에서 가장 큰 항구도시들이다 보니, 마약 밀매 양도 다른 도시들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지만 가장 큰 마약 조직이었던 망치파가 역풍을 맞아, 완전히 와해되었다.

정확히 말하면 새롭게 탈바꿈했다는 표현을 써야 옳겠지만, 어쨌든 대외적으로는 성명 사건에 더해, 국내에서 가장 큰 마약 조직인 망치파가 순식간에 소탕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연히 몇 년간은 다른 조직들도 숨을 죽이고 생활할 거라 생각했는데, 상황을 보니 아무래도 그 반대인 듯했다.

“이걸 기회로 삼는 놈들이 있을 줄이야…….”

도윤이 혼자 중얼거리고 있을 때, 갑자기 화장실 바깥에서 들려오는 뾰족한 목소리가 귀청을 때렸다.

“시… 실장님!?”

“뭐야, 신혜? 왜 벌써 여기 나와 있어?”

연이어 굵직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도윤이 눈을 크게 떴다.

‘이런……!’

주변을 휘휘 둘러봤지만 숨을 만한 곳은 보이지 않았다.

아마 화장실 내부에 널브러진 휴지 더미를 보면, 분명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다.

‘일 났군.’

“아, 저 그게… 주변을 지나가다가 화장실이 너무 급해서요.”

말을 잇는 황보신혜의 목소리는 누가 들어도 어색해 보였다.

마치 부모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는 아이 같은 느낌이었다.

“…화장실?”

“네, 네. 너무 급해서 미처 생각할 틈도 없이 들어왔네요.”

“…그래?”

남자가 묘한 목소리로 반문했다.

“네, 네.”

“볼일은 다 봤나?”

“아, 네. 이제 가려구요.”

“그래? 그럼… 비켜 봐.”

“네?”

황보신혜가 화들짝 놀랐다.

“…뭘 그렇게 놀라? 숨기는 거라도 있는 사람처럼. 화장실 청소해야 하니까 비켜 보라고.”

“시, 실장님이 직접요?”

“뭐 어때서? 서류 하나 가지러 왔는데, 온 김에 내가 청소도 하고 가면, 밑에 애들도 좋아할 거 아냐.”

“제, 제가 할게요!”

“…….”

이내 바깥에서 묘한 침묵이 길어지자, 화장실 안에 있던 도윤이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바깥의 실장이라는 남자와 마주치는 건 피할 수 없을 듯했다.

‘차라리 잘됐다. 실장쯤 되는 놈이면…….’

결심을 굳힌 도윤이 화장실 밖으로 저벅저벅 걸어 나갔다.

“……?”

갑작스럽게 화장실 안쪽에서 들려오는 발걸음 소리에 남자가 눈을 크게 떴다.

잠시 후, 눈앞에 도윤이 나타나자 남자의 눈은 더 이상 커질 수 없을 만큼 커졌다.

“웬 놈이냐!?”

사내의 외침에 바깥으로 걸어 나온 도윤도 그의 얼굴을 바라봤다.

그리고…….

도윤의 눈도 사내 못지않게, 화등잔만 하게 커지기 시작했다.

“너는……!”

도윤이 놀라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복도 내부에 조용히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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