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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잡는 회귀검사-78화 (78/174)

78화 화류계, 스토리 오브 호식 (5)

쫙 찢어진 눈매에 작은 체구.

짧게 친 스포츠머리에, 30대 후반쯤 되어 보이는 얼굴은 분명 도윤의 기억 속에 있는 인물이었다.

‘칼을 잘 써서, 분명…….’

속에 있는 말을 도윤이 그대로 뱉어 낸다.

“…칼치?”

도윤이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은 사내의 눈이 또 한 번 커졌다.

“어떻게… 아니, 너는 누구냐!?”

“…….”

반응을 보니, 아마 그때 격렬히 싸우는 와중에도 얼굴은 보지 못했던 모양이다.

‘후드를 뒤집어쓰고 있었으니…….’

무언가 고민하는 듯하던 도윤의 표정이 서서히 굳기 시작한다.

부산에서 유동 인구가 가장 많은 시내 한가운데 위치한 룸살롱에서 버젓이 마약을 유통하고 있다.

심지어 룸살롱의 실장이라는 놈은 전 망치파의 부두목이다.

도윤의 머릿속으로 불길한 예감이 스쳐 지나갔다.

‘설마…….’

도윤이 속으로 중얼거리고 있을 때, 남자가 또 한 번 버럭 고함쳤다.

“누구냐고 물었다!”

찰칵.

기묘한 소음과 함께 남자, 칼치가 품 안에서 꺼낸 잭나이프를 들이밀었다.

도윤이 그런 칼치를 가라앉은 눈빛으로 바라본다.

“…뒤에 버티고 있는 놈이, 설마 명성… 아니, 오성춘이었나?”

도윤의 말에 칼치가 순간 몸을 움찔 떨었다.

물론, 도윤은 그 모습을 놓치지 않았다.

추측이 확신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무, 무슨 소리냐!? 아니, 그보다 너는 누구냐고 물었다!”

허탈한 표정을 짓고 있던 도윤이 이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어떻게 된 게, 자신 주변에서 벌어지는 범죄란 범죄는 모두 오성춘과 명성을 중심으로 일어나고 있었다.

굳이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악의 근원이라고 해야 할까?

이쯤 되면 운명이라는 말로도 부족한 듯싶었다.

‘이번에는 확실히 짓밟아 주마.’

입술을 콰득 깨문 도윤이 정면에서 칼치를 바라본다.

“내 목소리… 기억 안 나나?”

“무슨…….”

잠시 고개를 갸웃하던 칼치가 순간 눈을 크게 떴다.

어느새 빠르게 접근한 도윤이 자신의 몸 쪽으로 파고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개새끼가!”

욕지거리를 내뱉은 칼치가 손에 쥔 잭나이프를 그대로 찔러 넣으려고 했으나, 그 뜻을 이룰 수 없었다.

도윤의 움직임이 예상보다 훨씬 빨랐기 때문이다.

“이, 미친……!”

칼치가 또다시 입을 여는 순간, 손에 쥔 칼이 그대로 바닥에 떨어졌다.

미처 칼을 휘두를 틈도 없이, 도윤이 칼치의 팔을 쳐냈기 때문이다.

칼을 쥔 상대를 가장 효과적으로 제압하는 방법을, 도윤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퍼억!

경쾌한 타격음과 함께 칼치의 고개가 확 하고 뒤로 재껴졌다.

“…컥!”

콧잔등을 정면으로 얻어맞은 칼치가 또다시 복부에서 느껴지는 충격과 동시에 뒤로 발라당 넘어졌다.

쿠당탕!

쓰러진 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칼치에게 달려든 도윤이, 그대로 움직이지 못하게 찍어 눌렀다.

“이 개새끼! 안 놔!?”

미친 듯이 발버둥 치는 칼치를 향해 도윤이 조용히 중얼거린다.

“왼팔… 또 부러지고 싶나?”

“……!”

아직도 통증이 남아 있는 왼쪽 손목 관절이 조금씩 기이한 각도로 꺾이기 시작하자, 칼치의 행동이 귀신처럼 딱 하고 멈췄다.

“너, 너…….”

칼치가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제야 기억이 났다.

눈앞에 있는 놈은…….

분명 자신의 기억 속에 있는 사람이었다.

“이런 씨발……! 대체 너, 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 또 박판섭이가 시켰나?”

“아직 정신 못 차렸군.”

피식 웃음을 터뜨린 도윤이 서서히 손에 힘을 주기 시작했다.

“잠깐, 잠깐, 잠깐만!”

칼치가 다급하게 외쳤다.

아직 칼치는 손목 관절이 끔찍하게 부러지던 그때의 고통을 잊지 않았다.

그때만 생각해도 아직 손목 관절이 시큰거렸다.

“원, 원하는 게 뭐야! 질문이 있어야 답변도 있을 거 아니야!”

“…그래?”

칼치가 다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물어보라고! 내가 대답할 수 있는 선에서, 전부 얘기해 줄 테니까!”

“…니가 사실대로 말할 거라는 걸 내가 어떻게 믿지?”

“그럼 어쩌라고! 어차피, 이 상황에서는 너도 방법 없잖아! 무언가 캐낼 거 있어서 여기 온 것 아니야!?”

“그야 뭐…….”

도윤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사실 칼치가 거짓말을 할 걱정 따위는 하지 않아도 된다.

심문의 달인.

처음 칼치를 본 순간부터 스킬 사용을 시도하고 있었고, 오래간만에 ‘스킬 사용에 실패했다’는 홀로그램이 떠올라, 그 재사용 대기시간을 기다리고 있던 참이었다.

“좋아. 그럼 질문하지.”

“일단 이것 좀 놓고…….”

“질문부터.”

“…….”

도윤의 단호한 말에 칼치가 입을 다물었다.

“물어야 할 게 많은데… 일단 이것부터 묻지.”

“……?”

잠시 뜸을 들이던 도윤이 굳은 목소리로 묻는다.

“장춘만이 다시 새로운 망치파를 조직했나?”

도윤의 물음에 칼치가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 큰 형님은 정말 그날 이후 중국 상해로 갔어. 다른 부두목이던 춘배와 형님을 계속 따르길 원하는 일부 인원을 데리고. 망치파는 이제 없어!”

“…그런데, 너는 지금 이곳에서 뭘 하고 있는 거지?”

“일부라고 했잖아! 한국에 계속 있기를 원하는 애들은 나를 따라왔어! 그리고… 이곳에 다 같이 자리 잡은 거야. 배운 것 하나 없는 우리도 먹고는 살아야 할 거 아냐! 이 짓 말고는 할 수 있는 일도 없다고!”

발작하듯 외친 칼치가 잠시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조직 같은 건, 만들지도 않았다고. 그냥 돈을 벌 길이 없으니까 이런 일을 하고 있는 거지, 우리도 평범하게, 평범하게 살고 있다고. 그렇게 살도록 노력하고 있고…….”

“우습군.”

“뭐, 뭐?”

차가운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도윤을 보며, 칼치가 반문했다.

“남들 눈에 피눈물 흘리게 하면서 등골이란 등골은 다 빼먹고 사는 게 평범하게 사는 거냐?”

“뭐……!”

“당장 시장 바닥에 가 봐라. 나이 팔십도 훌쩍 넘은 할머니들이 이 추운 겨울에 시린 손 부여잡고, 상추 한 장, 마늘 한 쪽이라도 더 팔아 보려고 추위를 참고 계신다. 그런데…….”

도윤이 주머니에 곱게 접어 넣어 둔 종잇장을 칼치의 눈앞에 툭 하고 집어던졌다.

“아직도 이따위 짓을 하고 있는 놈들이 ‘노력’이라는 단어를 아무렇지도 않게 쓰는 것. 정말 그렇게 살고 있는 사람들을 욕보이는 거다.”

“……!”

팔을 움직일 수 없어 눈으로만 도윤이 던진 종잇장을 열심히 살피던 칼치가, 이내 두 눈을 부릅떴다.

“피해자 코스프레 하지 마라. 쓰레기가…….”

“이, 이건…….”

“너희들… 아직 술장사하고 있나?”

이어지는 도윤의 물음에 칼치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우득.

“…큭!”

“움직이지 마라. 정말 꺾어 버리기 전에.”

“이, 망할……!”

“이쪽으로 붙은 망치파 식구들이 총 몇 명이냐? 그리고… 배후에는 오성춘이 있는 게 맞나?”

“…….”

잠시 침묵하던 칼치가 비릿한 미소를 짓는다.

“모른다.”

“모른다?”

“그래! 모른다! 그 잘나신 머리로 한번 잘 생각해 봐라, 개자식아!”

도윤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때마침 도윤의 두 눈빛 사이로 초록빛 광채가 스쳐 지나갔다.

“그러지.”

그 서늘한 목소리에 칼치가 순간 몸을 움찔 떨었다.

‘무슨…….’

“다시 묻지.”

칼치가 꿀꺽 침을 삼켰다.

“배후에, 오성춘이가 있나?”

* * *

룸살롱 내부에 위치한 밀실에 들어온 도윤이 주변을 휘휘 둘러보기 시작했다.

“이봐, 영감님!”

뒤따라 들어온 박판섭이 도윤을 향해 소리쳤다.

“…….”

“아, 그런 눈빛으로 보지 마라고. 애들이 확실히 그놈 지키고 있으니까. 아가씨 안전은 걱정할 것 없어.”

눈치 빠른 박판섭이 재빨리 말하자, 이내 도윤이 다시 고개를 돌렸다.

밀실 겸 칼치의 개인 방인 약 10평이 채 되지 않는 내부는 생각보다 단출했다.

2인용 침대에 TV, 책상과 의자, 그리고 벽에 걸린 커다란 호랑이 액자가 전부였다.

“거, 새끼. 생긴 거랑 달리 사는 건 깔끔하게 사네.”

낮게 휘파람을 분 박판섭이 벽면에 걸린 액자를 바라본다.

“저 호랭이 새끼, 당장이라도 뛰쳐 나올 것 같은 게, 아가리에 품고 있는 게 많을 것 같은데?”

“…아니.”

박판섭의 묘한 어조에 도윤이 고개를 저었다.

“응?”

“…당연히 있을 거라 생각한 곳은 페이크.”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린 도윤이 침대 매트리스를 확 하고 집어 당겼다.

그러자 매트리스와 침대 받침대 사이의 빈 공간이 드러났다.

“오……!”

박판섭이 감탄사를 터뜨렸다.

매트리스에 가려져 있던 수십 개의 비닐 팩이 시야에 들어왔다.

하나같이 백색 알갱이로 가득 들어차 있는 비닐 팩.

필로폰이었다.

“이 정도면… 그냥 내다 팔아도 최소 수십억 원어치는 되겠는데……?”

“이것도 페이크.”

“뭐?”

도윤이 비닐 팩들을 침대 옆 바닥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혹시나 비닐 팩이 터져 내용물들이 쏟아지는 대형 참사가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해, 그 손짓 하나하나가 상당히 조심스러웠다.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던 박판섭도 도윤을 돕기 시작했다.

“페이크라니? 뭐가 또 숨겨진 게 있다는 거야?”

“…….”

묵묵히 비닐 팩을 옮기는 도윤을 보며 박판섭이 말을 잇는다.

“이걸로도 충분할 거 같은데? 아가씨들한테서 백 퍼센트 뽕 검출될 거고, 여기 이 현장 증거까지. 칼치 저 새끼만 여기서 확실히 조져서 배후를 불게 만들면, 이번에야말로 그 후레자식들에게 제대로 물 먹일 수 있다고?”

“…그걸로는 부족하지.”

“어?”

고개를 갸웃하는 박판섭을 보며 도윤이 말을 잇는다.

“놈이 순순히 불 리도 없겠지만… 고작 이 정도 증거들만으로는, 또다시 꼬리 자르기를 시도할 거야.”

“…….”

순간 눈을 빛낸 도윤이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이번에야말로… 모으고 모아서, 결정적인 순간 한 번에 터뜨린다.”

어느새 침대 받침대 위에서 비닐 팩들을 모두 치워 낸 도윤이 그대로 그 위로 올라섰다.

“뭐 하려고……?”

박판섭의 물음에 대답이라도 하듯 도윤이 오른발을 힘껏 위로 추켜들었다.

콰직!

도윤의 발길질에 나무로 된 얇은 받침대가 박살이 났다.

곧이어 받침대 밑으로 숨겨져 있던 비밀 금고도 모습을 드러냈다.

“……!”

박판섭이 눈을 크게 떴다.

“…멋진데?”

박판섭이 멍하니 중얼거렸다.

침대 밑바닥에는 딱 비밀 금고에 들어갈 만한 홈이 자리하고 있었고, 금고 입구가 천장을 향해 있었다.

마치 침대 나무판과 금고 입구가 이중으로 자리하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는데, 도윤은 그 나무판을 그대로 부숴 버린 것이다.

“그런데… 그건 안 부숴질 것 같은데?”

보기에도 상당히 견고해 보이는 철제 금고를 보며, 박판섭이 중얼거렸다.

피식 웃음을 터뜨린 도윤이 품에서 금고 열쇠를 꺼내더니, 그대로 열쇠 홈에 꽂아 돌렸다.

“와우!”

순간 금빛 광채가 방 내부에 번쩍이자, 박판섭이 감탄사를 터뜨렸다.

현금은 물론, 골드바가 금고 가득, 빽빽이 들어차 있었다.

“이게 다 얼마야?”

박판섭이 감탄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마지막 페이크.”

“엥?”

금고 내부에 가득 들어차 있던 현금과 골드바들마저 도윤의 손에 딸려 나오기 시작했다.

“야, 야! 살살 좀 던져! 흠이라도 나면 어쩌려고……!”

도윤이 아무렇지도 않게 집어던지는 물건들을 박판섭이 재빨리 받아 내며 외쳤다.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마침내 모든 물건들을 끄집어낸 도윤이 가장 바닥, 어두운 곳에 위치한 철제 덮개를 확 하고 들어 올렸다.

은밀하게 위장되어 누가 봐도 금고 바닥처럼 보였음에도 도윤의 손길은 거침이 없었다.

“…찾았다.”

놈을 엿 먹일 수 있는 마지막 퍼즐 조각.

도윤이 씨익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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