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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잡는 회귀검사-81화 (81/174)

81화 격변기, 제5공화국

“뭐야!?”

한참 도윤과 대화를 나누고 있던 박판섭이, 어디선가 걸려 온 전화를 받고 잠시 대화를 나누는 듯하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 새끼들, 그 정도 일에 투입할 인원은 없을 텐데? 뭐!? 용역 깡패?”

심상치 않은 대화 내용이 나오자, 이 부분에서 도윤도 박판섭의 입에 시선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합류한 깡패들은 어디 쪽 식구들이야?”

잠시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던 박판섭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알았다. 일단 지금 바로 나가 보지.”

이윽고 휴대폰을 내려놓는 박판섭을 보며 도윤이 묻는다.

“무슨 일이야?”

“…조금 심각한 일이 발생했어.”

“심각한 일?”

도윤이 고개를 갸웃하며 반문했다.

그런 도윤을 보며, 박판섭이 말을 잇는다.

“망치파, 그러니까 이제는 구 망치파군. 그놈들이 다른 조직 식구들을 이끌고 일산 재개발 단지에 공사를 쳤다는군.”

“공사라면…….”

도윤이 설마 하는 표정으로 말끝을 흐리자 박판섭이 고개를 끄덕였다.

“영감님이 예상하는 대로… 용역을 한 모양이야. 눈에 보이는 건 모조리 때려 부수고, 주민들을 전부 내쫓아 보내고 있다고 해.”

“……!”

두 눈을 부릅뜬 도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당장 그쪽으로……!”

“이미 늦었어. 일단 진정해.”

“뭐?”

“지금은 공사를 끝내고 철수하는 단계라고 해. 그쪽에 있는 우리 식구한테서 직통으로 온 소식이니까 아마 정확할 거야.”

“…식구가 그쪽에 있다고?”

도윤이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반문하자, 박판섭이 급히 손사래 쳤다.

“오해는 하지 말라고? 최근 들어 누군가 목적을 알 수 없는 놈이, 전국에 있는 조직들을 상대로 은밀하게 용역 깡패들을 끌어모으고 있다고 해서 밑에 애를 하나 보내 둔 것뿐이니까.”

“…보통 용역은 특정 조직을 지정해서 맡기지 않나? 굳이 왜…….”

“나도 그게 이상해서 조치를 취해 둔 거야. 좋은 일도 아니고, 일반적인 경우라면 굳이 여러 곳에서 애들을 끌어다 써 정보를 유출시킬 필요가 없으니까.”

“음…….”

도윤이 낮은 목소리로 침음을 삼켰다.

“비슷한 경우로, 선례가 아예 없었던 건 아닌데…….”

“……?”

잠시 턱을 쓰다듬으며 고민하는 듯하던 박판섭이 곧바로 말을 잇는다.

“떡밥 뿌리기야.”

“떡밥 뿌리기?”

“저 위에 계신 높으신 분들이, 먼저 나서서 우리 같은 하빠리 깡패들에게 손을 빌리기에는 자존심이 상하니까, 떡밥, 다시 말해 일거리를 던지는 거지.”

“…내가 일거리를 줄 테니 붙을 놈들은 알아서 붙어라?”

박판섭이 고개를 끄덕였다.

“굳이 돈이 필요한 조직이 아니라도, 어떻게든 윗선에 줄을 대고 싶어 하던 놈들은 모두 움직일 거야. 높으신 분들도 바로 그 점을 노리는 거고.”

“…프라이드 하나는 구역질이 날 정도로 넘치는 놈들.”

작게 중얼거린 도윤이 입을 다문 채 상념에 빠져들었다.

그런 도윤을 보며 박판섭이 조심스럽게 말을 잇는다.

“하지만… 그래도 이해가 안 가.”

“……?”

“아까 말한 정보 유출 문제 때문에, 보통 그렇게 떡밥을 뿌려서 믿을 만한 특정 조직 한 군데만 선정을 하는 게 일반적인 경우야. 적당히 큰 곳만 골라잡아도, 우리 같은 애들 수백 명 정도는 우습게 움직일 수 있으니까. 지금처럼 일거리를 원하는 놈들을 모조리 데려다 쓰는 방식은…….”

잠시 말끝을 흐리던 박판섭이 미간을 찌푸렸다.

“마치… 전국에 있는 모든 조직을 자신의 발아래에 두려는 사람 같은…….”

“뭐?”

도윤이 순간 눈을 크게 떴다.

“이권 다툼이라는 이름으로 매일같이 칼부림이나 하며 서로 으르렁거리는 놈들을, 같은 그늘 아래에 둔다고? 무슨 말도 안 되는……!”

“전혀 억측은 아니야. 이런 시도가 아예 없었던 건 아니니까.”

“그게 무슨…….”

도윤이 말끝을 흐리자, 박판섭이 무언가 떠올리듯 먼 곳을 응시한다.

“한… 20년도 더 된 이야기야. 내가 막 정식으로 이쪽 바닥의 조직원으로 인정받았을 때였으니까.”

“…….”

“제5공화국이 막 시작하던 시기. 12.12사태를 일으켜 군부 권력을 장악한 전두환 전 대통령이 이듬해 쿠데타를 일으켰을 때야. 거리에 나가면 온통 시위에 데모가 끊이지 않았던 시절이었지.”

“…….”

“사람들은 그 시절을 민주화의 대격변기라 평가하지. 그와 더불어… 우리 조직들에게도 그 시절은 큰 변화를 맞이하게 되는 대격변기였어.”

“그게 무슨……?”

“국가적 위기였지만, 우리 조직들에게는 또 다른 기회였거든.”

말을 잇던 박판섭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세상에 나처럼 정의로운 깡패들만 있는 건 아니라서 말이야.”

장난스럽게 중얼거리는 박판섭을 보며, 도윤이 실소했다.

“하, 그래서 구체적으로 어떤 기회를 말하는 건데?”

“뭐… 그 시절에는 흔히 있던 얘기들이야. 평화롭고 합법적인 시위를 순식간에 불법 시위로 바꿔 놓는다든지. 예를 들어 시민들 사이에 끼어 경찰들에게 화염병 따위를 던지는 방식 같은 걸로 말이야.”

“……!”

“양심을 버린 작은 행동 하나하나가 곧바로 돈이 되어서, 조직의 또 다른 힘이 되어 돌아왔으니, 다들 아무런 거리낌 없이 그런 일들을 했지. 그걸 바탕으로 많은 조직들이 비약적으로 성장한 게 현실이기도 하고.”

“…그래서?”

도윤이 조금 굳은 목소리로 되물었다.

“몇 년 사이에 전국에 있는 이름깨나 날리는 조직들이 급격히 덩치를 불렸어. 많은 조직이 사라지고, 없어지고, 통합되기를 반복했고, 중소조직들을 제외하고 가장 큰 조직들인, 흔히 탑 파이브라 불리는 5개의 조직들이 나타났지.”

“물론 그중에 망치파도 있었겠지?”

박판섭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당시에는 공구리파였어. 망치파의 전신인 셈이지. 영남의 공구리파와 육성파, 서울의 양동이파와 동방파, 마지막으로 호남의 구상사파.”

“음…….”

익히 들어 온 이름들이었기에 도윤이 낮게 침음을 삼켰다.

형사 시절, 조폭 계보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조직들이 방금 박판섭이 말한 다섯 조직이었다.

“내가 말한 조직들… 하나같이 조직원이 수백 명은 훌쩍 넘는, 심지어 보스 자리 또한 그 지역에서 가장 주먹을 잘 쓰는 사람들이 앉아 있는 곳들이야. 온갖 더러운 일을 서슴치 않고 해 왔기에, 그 자금력 또한 상상을 초월하지. 그런데… 그 거대한 다섯 조직을 한 번에 집어삼키려는 사람이 나타난 거야.”

“……!”

놀라운 사실을 처음 접하게 된 도윤이 순간 눈을 크게 떴다.

“다섯 조직을… 한 번에 집어삼킨다?”

도윤이 멍하니 중얼거렸다.

“뭐, 우리 입장에서야 수천 명이나 되는 식구를 한 번에 발아래에 두려는 인간이 정상처럼 보이지는 않았지만… 사실 진짜 힘 있는 사람들에게, 이쪽 세계의 사람들은 한낱 벌레만도 못해 보일 거야.”

박판섭이 쓰게 웃었다.

“벌레가 수백 마리가 모이든, 수천 마리가 모이든, 권력자들 입장에서는 별 감흥도 없었겠지. 그게 아니라면, 절대 한 하늘 아래에 있을 수 없는 구상사파와 육성파를 한 번에 품을 생각은 절대 하지 못했을 테니까.”

박판섭의 말을 도윤이 중간에서 끊었다.

“그래서, 그걸 시도한 사람이 대체 누군데?”

“영감님도 잘 아는 사람.”

“…뭐?”

도윤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자, 박판섭이 잠시 입을 다문 채 침묵을 지켰다.

대략 찻물이 끓어오를 시간이 지났을 때쯤.

침묵을 지키던 박판섭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수많은 정계 인사와 그에 못지않은 재계 인사들이 얽혀 있었지만, 이쪽 바닥에 알려진, 가장 중심이 되었던 인물은…….”

박판섭이 도윤의 두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을 잇는다.

“…….”

“…누구라고?”

도윤이 멍하니 반문하자, 박판섭이 다시 한 번 또박또박 말한다.

“…라고.”

“……!”

도윤의 두 눈이 찢어질 듯 부릅떠졌다.

* * *

똑, 똑, 똑.

“회장님, 박건우입니다.”

“들어와.”

방 안에서 들려오는 오춘화 회장의 목소리에 박건우가 곧바로 출입문을 열어젖혔다.

한참 서류 더미에 얼굴을 파묻고 있던 오춘화 회장이 지금 막 들어서는 박건우를 힐끗 바라보던 중, 멈칫한다.

“…너도같이 왔냐?”

“…예, 회장님.”

박건우를 뒤따라 들어온 오성춘이 깊이 허리를 숙였다.

“재개발단지 건과 관련하여 보고드릴 겸, 같이 왔습니다.”

박건우가 재빨리 대답하자, 힐끗 오성춘에게 시선을 돌린 오춘화 회장이 다시 서류 더미로 고개를 돌렸다.

“뭐, 나쁘지 않지. 얼굴은 좋아 보이는구나.”

“…….”

입을 다문 채 침묵을 지키는 오성춘을 잠시 바라보던 박건우가 입을 열었다.

“일은 도련님과 용역 깡패들이 깔끔하게 처리해 줬습니다. 예상대로, 재개발단지의 주민들이 당장 나갈 것 같지는 않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버티는 사람들은 줄어들 겁니다.”

“그러겠지. 그 사람들한테는 수십 년간 살아온 삶의 터전일 테니까. 쉽게 나갈 거라 생각하진 않았어. 옛날부터 그랬으니까.”

박건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하지만 시간문제입니다. 관건은… 정부의 시선을 얼마 동안이나 저쪽으로 돌릴 수 있냐는 건데…….”

“최소 몇 개월은 저쪽에서도 정신없을 게다. 당장 자신들의 목에 칼이 들어왔는데, 놈들도 숨기랴, 빼돌리랴, 정신없을 테지. 반대로 정부 쪽에서는 어떻게든 놈들을 엮어 넣기 위해 칼을 갈 테고.”

“…….”

“새로운 대통령, 새 정부가 들어선 직후에 발생한 대형 사건이야. 이번 일을 어떻게 처리하는가에 따라,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도가 결정될 테니, 정부 쪽에서도 독기를 품고 덤벼들겠지.”

“…….”

“힘이 최고조에 달해 있는 새 정부와 수십 년간 힘을 축적해 온 비리 권력자들의 싸움. 쉽사리 끝날 리는 없겠지. 우리는 그 틈에… 신도시 건설을 모두 마무리 짓는다.”

“무슨 말씀이신지 잘 알겠습니다, 회장님.”

박건우가 짧게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오성춘이.”

“예, 회장님.”

오춘화 회장이 자신을 부르자, 오성춘이 곧바로 대답했다.

“듣기로, 소속에 상관없이 전국에 있는 깡패들을 끌어모은 게, 니 작품이라고 들었는데…….”

오춘화 회장이 오성춘의 두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묻는다.

“맞나?”

“…맞습니다, 회장님.”

“음…….”

자신의 물음에 긍정하는 오성춘을 보며, 오춘화 회장이 잠시 침음을 삼켰다.

도무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얼굴로, 한참 상념에 빠져 있던 오춘화 회장이 이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핏줄은 핏줄이다, 이건가.”

“…예?”

들릴 듯 말 듯 중얼거리는 오춘화 회장을 보며, 오성춘이 멍한 표정으로 반문했다.

“…아니.”

그런 오성춘을 향해 가볍게 손사래 친 오춘화 회장이 서류 더미에서 시선을 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부터가 가장 중요한 것, 잘 알고 있지?”

“알고 있습니다, 회장님.”

“박태봉이. 그놈 처리하려고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손을 뻗칠 거다. 검찰 내부에 신병이 있다고 안심하지 말고… 그쪽 라인 동원해서 목숨만은 철저히 지켜. 혹여나 그놈이 잘못되면… 흐지부지 사건이 무산될 수도 있는 일이니까.”

“예.”

“이만 나가 봐.”

오춘화 회장의 축객령에 박건우와 오성춘이 다시 한 번 깊게 허리를 숙였다.

이윽고 박건우가 출입문 밖으로 나서고, 오성춘마저 그 뒤를 막 따라 나가려던 순간.

“오성춘이.”

“…예, 회장님.”

“범의 핏줄을 타고 태어났다면… 그에 걸맞게 행동하거라. 두 번은 없다.”

의미 모를 말을 중얼거리는 오춘화 회장을 보며, 한차례 고개를 숙인 오성춘이 이내 출입문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쿵.

이내 작은 소음과 함께 출입문이 완전히 닫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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