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화 위기의 오씨 도련님
“똥인지 된장인지 구분도 못 하고 날뛰는 깡패 새끼들, 모조리 쓸어버려.”
“와아아아아아아아!”
지휘관의 명령에 방패와 경찰봉으로 중무장한 경찰들이 함성을 지르며 뛰어나가기 시작했다.
“미친…….”
귀를 먹먹하게 하는 함성 소리에 오성춘은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막아! 막으라고! 이 개 같은 짜바리 새끼들!”
오성춘의 수행 보좌관 역할을 하던 남자가, 바로 옆에서 큰 소리로 고함쳤다.
사방에서 경찰들이 물밀 듯이 조여 오고 있었다.
일개 서 단위의 경찰 인원이라고 해 봐야 뻔하다.
지구대, 파출소에 있는 인원까지 다 끌고 와 봐야, 여기 있는 인원과 얼추 비슷할 것이다.
그런데…….
‘일개 경찰서 단위가 아니다.’
속으로 중얼거린 오성춘이 이를 악물었다.
눈에 보이는 경찰 인원만 최소 500명은 넘어 보였다.
이 정도면, 인근에 있는 기동대 인원까지 모조리 끌어왔다고 봐야 했다.
“이런 씨발…….”
부지불식간 오성춘이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어느새 수십 명이나 되는 이쪽 인원이 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사방에서 쏟아지는 경찰봉 세례를 조금이라도 덜 고통스럽게 맞기 위해 최대한 몸을 웅크리기까지 했다.
“일단 피하셔야 합니다! 현장에서 경찰력에 직접적으로 맞서봐야, 득 될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승산은 말할 것도 없구요!”
다급하게 외치는 보좌관 남자의 목소리가 귀청을 때리자, 오성춘이 정신을 차렸다.
처음에는 경찰들에게 맞서던 일부 조폭들도 어느새 사방으로 뿔뿔이 흩어져 도망가기 바빴다.
애초에 특정한 구심점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개개인들의 목적에 의해 여기저기서 중구난방 모인 인원이었다.
이런 일이 발생했을 때, 의리 따위가 생길 턱이 없었다.
“이… 이…….”
오성춘이 푸들푸들 떨리는 얼굴근육을 애써 움직여, 저 멀리 한 곳을 향해 홱 하고 고개를 돌렸다.
현장의 지휘관인 경찰서장.
근엄한 표정을 짓고 있는 대머리 중년 사내 바로 옆에 오도카니 서 있는, 씹어 먹어도 모자랄 익숙한 얼굴.
“강도윤……!”
오성춘이 절규하듯 외쳤지만, 주위의 함성 소리에 곧바로 묻혀 버렸다.
“강도윤!!!!!!!!!!!”
오성춘이 다시 한 번 발악하듯 고함쳤다.
땅을 울리는 함성 사이로 파고든 목소리가, 그쪽까지 닿았을까?
흠칫한 표정을 짓던 도윤이 시선을 돌렸다.
그 순간, 새하얀 마스크를 쓴 오성춘과 도윤의 시선이 정면에서 마주쳤다.
“이 개새끼!!!!!!”
속에서 부글부글 끓어오르던 무엇인가가 폭발이라도 한 듯, 격분한 오성춘이 바닥에 떨어져 있는 쇠파이프를 집어 들었다.
“이쪽에도 강도윤, 저쪽에도 강도윤! 가는 곳마다 네놈은 내 앞길을 막아섰지! 오냐, 이 씹어 먹어도 모자랄 벌레 같은 새끼. 오늘 바로 이 자리에서 끝을 보도록 하자.”
이성을 잃은 오성춘이 도윤이 보이는 곳을 향해 곧바로 뛰쳐나가려 했다.
“안 됩니다!”
보조관 역할을 하는 남자가 급히 오성춘의 앞을 막아섰다.
“비켜! 오늘은 기필코 저 새끼, 내 손으로 직접 죽인다!”
“정신 차리십시오! 이 인파를 뚫고, 저곳까지 갈 수 있을 거라 보십니까!? 지금은 피해야 할 때입니다!”
“닥쳐! 나한테 명령하는 거냐?”
오성춘이 손에 쥔 쇠파이프를 마치 휘두르려는 듯 위협했다.
“내 눈앞에서 꺼져라! 이후의 일은 내가…….”
“회장님!”
순간 남자가 외치는 소리에 오성춘이 멈칫한다.
“…뭐?”
“만약에, 도련님이 목적을 이루었다고 쳐도, 이미 그때에는 저기 있는 경찰들에게 붙잡히는 건 절대 피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회장님이 가만히 계실 거라 생각하십니까?”
“…….”
남자의 말에 오성춘이 입을 다물었다.
오춘화 회장.
남자의 말대로 자신이 아는 할아버지라면, 아무리 친손자라도 이번에는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두 번은 없다.’
출입문을 나서기 직전, 오춘화 회장이 마지막으로 했던 말이 마치 메아리처럼 머릿속에 웅웅 울려 댔다.
“…젠장!”
쨍그랑!
욕지거리를 내뱉은 오성춘이 쇠파이프를 바닥에 집어던졌다.
순식간에 표정이 밝아진 남자가 다급하게 오성춘의 소매를 이끌었다.
“이미 반절 이상이 당했습니다. 지금 가셔야 됩니다!”
“…….”
이를 앙다문 채, 도윤이 있는 방향을 바라보던 오성춘이 이내 입술을 꽈악 깨물며 몸을 돌렸다.
“너만은… 너만은 반드시……!”
낮게 중얼거리는 오성춘의 목소리가 조용히 울려 퍼졌다.
* * *
“지원에 감사드립니다, 서장님.”
상황이 어느 정도 정리되어 가자, 도윤이 중년의 일산경찰서장을 향해 짧게 고개를 숙였다.
“하하. 뭐, 협조할 건 당연히 협조해야죠. 서울지검 소속 검사라고 하셨나요?”
“예.”
도윤이 옅게 미소 지으며 대답하자, 중년 사내가 감탄한 표정을 짓는다.
“기껏해야 제 아들뻘 정도 되어 보이는데… 대단합니다.”
중년 사내가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웠다.
“아닙니다.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겸손까지…….”
잠시 말끝을 흐리던 중년 사내가 조용히 말을 잇는다.
“사실, 오랜만에 서울지검장님에게 직접 전화가 와서 깜짝 놀랐습니다. 그분, 제 대학교 선배거든요.”
“아! 정말입니까?”
그것까지는 몰랐는지 도윤이 잠시 눈을 크게 떴다.
“같은 대학에 같은 과 선배였지. 그 형님, 술에 떡이 되어서 길거리에 널브러져 있으면 몇 번이고 나를 데려다주곤 했었는데…….”
잠시 추억을 회상하듯 아련한 표정을 짓던 중년 사내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뭐, 결론적으로 그 형님은 사시 패스해서 영감님이 되었고, 나는 경찰 간후보로 들어와 요 모양 요 꼴이지만…….”
“대단하신 겁니다.”
도윤이 정색하며 말했다.
“…응?”
“검사든, 경찰이든, 똑같은 대국민 봉사자 아니겠습니까? 국민들을 위해 일하라고 만들어 놓은 직업 사이에 높고 낮음 따위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도윤의 말에 중년 사내가 뒤통수라도 한 대 맞은 듯 멍한 표정을 지었다.
한차례 헛웃음을 터뜨린 중년 사내가 입을 열었다.
“이거, 젊은 검사님에게 오히려 내가 하나 배우게 되는군요. 처음 봤을 때부터 느끼는 거지만, 그 나이 때 친구들 같지가 않아요.”
“제가 애늙은이 같다는 소리는 제법 듣는 편입니다.”
“큭, 그거 참 어울리는 별명이군요. 그 형님, 관운(官運)뿐만 아니라, 부하운도 좋아, 참 부러워요.”
도윤이 옅게 미소 지은 채 살포시 고개를 숙였다.
그런 도윤을 잠시 바라보던 중년 사내가 다시 주변을 휘휘 둘러본다.
“깡패 놈들, 이제 어느 정도 정리가 된 것 같은데, 전부 우리 경찰서로 연행하면 되겠죠?”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어이구, 우리 관내에서 일어난 일인데 당연히 우리가 해야 할 일이지, 부탁은요. 그보다…….”
“……?”
“도망간 놈들이 제법 되는 것 같은데, 다 안 잡아들여도 괜찮겠어요?”
“아, 그 부분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애초에 저희들의 주된 목적은, 범죄의 예방 아니겠습니까? 지금 여기 있는 상황에 대해, 소문만 잘 내 놓으면 될 거라 생각합니다.”
“소문이라면……?”
중년 사내의 물음에 도윤이 씨익 웃으며 한쪽 구석에 있는 무리를 가리켰다.
“제가 잘 아는 친구를 불러 뒀거든요.”
“아……!”
중년 사내가 감탄사를 터뜨렸다.
도윤이 가리키는 곳에는, 어느 방송국에서 나왔는지, 일단의 무리가 현장의 상황을 열심히 카메라로 촬영하고 있었다.
그 순간, 도윤과 중년 사내의 시선을 느꼈는지 무리들 사이에서 한 기자가 이쪽을 향해 손을 흔들며, 꾸벅 고개를 숙였다.
이제는 승진까지 하여, 수습기자까지 데리고 다니는 배영준이었다.
피식 웃음을 터뜨린 도윤이 중년 사내를 향해 말한다.
“참고로 저거, 전국 방송입니다.”
“이런… 너무 강압적인 공권력으로 비치지 않게, 수위 조절에도 좀 신경 써야겠네.”
“놈들이 한 행동들이 촬영된 폐쇄회로 녹화 영상이 먼저 보도 자료로 나갈 겁니다. 그런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거, 이거.”
중년 사내가 졌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젊은 검사님이 일 처리가 너무 깔끔해서, 그저 숟가락만 얹는 거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별말씀을. 다른 놈들은 제쳐 두고, 이 일의 주모자는 반드시 잡아들여야겠죠.”
“주모자라면……?”
중년 사내가 고개를 갸웃하며 반문했다.
그런 중년 사내를 바라보는 도윤의 미소가 한층 짙어진다.
“뭐, 기대하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생각보다 거물이거든요.”
말을 마친 도윤이 어느 한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오성춘이 사라진, 바로 그 방향이었다.
* * *
“젠장! 젠장!”
뛰다시피 걸음을 옮기고 있는 오성춘의 숨이 점차 가빠 오기 시작했다.
기분 나쁜 끈적한 땀이 등 뒤를 적셨고, 자욱한 흙먼지로 옷 곳곳이 더러워져 있었다.
“씨발!!!!!”
“조금만, 조금만 더 가면 됩니다. 첫 집결지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차를 세워 뒀습니다. 거기까지만…….”
절규하듯 욕지거리를 내뱉는 오성춘을 향해 남자가 어린애 달래듯 중얼거렸다.
“저기, 보입니다!”
시야에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는 검은색 승용차를 발견하고는, 남자가 기쁜 얼굴로 소리쳤다.
그제야 흉신악살처럼 일그러져 있던 오성춘의 얼굴 표정도 조금은 펴졌다.
“일단 복귀한다. 그리고…….”
도윤의 얼굴을 떠올린 오성춘이 이를 악물었다.
청부살인까지 생각하고 있던 오성춘이 순간 멈칫한다.
“…저건 뭐야?”
어느새 오성춘보다 한발 앞서 발 빠르게 걸음을 옮기고 있던 사내도 멈춰 서 있었다.
승용차 주위로 일단의 무리가 모여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쪽 애들인가? 왜 아직 여기에…….”
남자가 조금 천천히,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자 저쪽에서도 이쪽을 발견했는지, 움직일 기세를 보이고 있었다.
잠시간의 시간이 지나, 이제는 서로 얼굴이 식별될 정도로 가까워졌을 때, 남자와 오성춘이 걸음을 멈췄다.
“이봐, 뭐야? 왜 여기 있어?”
“…….”
오성춘의 보좌관 역할을 하는 남자의 물음에도, 사내들은 서로 눈치만 볼 뿐 묵묵부답이었다.
대략 10명 정도 될까?
그 기묘한 분위기에 남자가 와락 인상을 구겼다.
“이 새끼들… 이 상황에 여기 앉아서 꿀만 처빨고 있었단 말이지…….”
남자가 낮은 목소리로 으르렁거리자, 그때서야 상황을 이해했는지 오성춘도 슬쩍 미간을 찌푸렸다.
그 순간.
“어이, 어이. 혼자 오해하는 건 좋은데, 남의 집 애들 혼내는 건 자제해 달라고.”
“……!”
무리들 사이를 헤치며 나오는 중년 사내를 발견한 남자가 눈을 크게 떴다.
유독 그 중년 사내만은 기억에 또렷하게 남아 있는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너는 분명히 20세기 파의…….”
“오. 날 아나?”
씨익 웃은 중년 사내가 자신을 소개한다.
“박판섭이라고 해. 잘 부탁하지.”
중년 사내, 박판섭의 말에 남자가 홱 하고 고개를 돌렸다.
“도련님, 뭔가 잘못되었습니다. 제가 신호를 주면…….”
남자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던 중, 멈칫한다.
적으로 보이는 10여명의 깡패들이 나타났음에도, 오성춘은 뒤를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도련……!”
저벅, 저벅.
“……!”
큰 소리로 외치려는 그 순간.
그제야 뒤쪽에서 들려오는 발걸음 소리에 남자가 또다시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
“오랜만이다, 오성춘.”
이윽고 나타난 젊은 사내.
도윤이 새하얗게 미소 지으며 오성춘을 향해 중얼거렸다.
“강… 도윤……!”
씹어 내뱉듯 중얼거리는 오성춘의 목소리가 장내에 조용히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