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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잡는 회귀검사-86화 (86/174)

86화 죽음?

덜컥.

전복(顚覆)된 차량의 조수석 차 문이 열리더니, 도윤이 머리에 피를 흘리며 기어 나왔다.

“…끅.”

도윤이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뱉었다.

대체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어느덧 시꺼멓게 변한 밤하늘을 보니, 아무래도 생각보다 오래 기절해 있었던 듯하다.

‘분명히, 마지막 기억은…….’

오성춘의 총구를 떠난 총알은 그대로 운전석을 관통했다.

그 와중에 차량은 앞서 달리던 오성춘의 차량과 충돌했고, 그 직후 자신이 탄 차량은 좌측으로 핸들이 급격히 꺾이며 포장되지 않아 험한 산길 위를 연신 구르기 시작했다.

차체가 이리저리 흔들리는 와중에 정신을 잃었는데, 깨어 보니 이 모양 이 꼴이다.

“추… 추워.”

가까스로 몸을 일으킨 도윤이 순간 온몸을 와들와들 떨기 시작했다.

해가 빨리 지는 2월의 밤, 야산이다.

안 그래도 낮은 기온에, 출혈까지 있으니 체온이 급격하게 떨어졌다.

도윤이 덜덜 떨리는 고개를 들어, 힐끗 뒤를 돌아봤다.

밑바닥을 드러낸 채 완전히 뒤집힌 차량.

그리고 그 안쪽으로 신체 여기저기가 기이한 각도로 꺾인 망치파 조직원들이 한데 뒤엉켜 있었다.

항상 안전벨트를 매는 습관이 아니었다면, 아마 자신도 저 사이에 끼어 있었을 것이다.

스르륵 감기려는 눈꺼풀을 억지로 들어 올려, 덜덜 떨리는 손을 주머니에 넣었다.

그대로 휴대폰을 움켜쥔 도윤이 느릿느릿 버튼을 누르기 시작했다.

다행히 통화가 불가능한 구역은 아니었는지, 곧바로 수화기 너머로 신호음이 들려왔다.

“네, 119입니다.”

귀에 또렷하게 박혀 드는 남자의 목소리를 들으며, 도윤이 새파랗게 질린 입술을 달싹이기 시작한다.

“여… 여기…….”

“네? 뭐라구요?”

“일산, 3, 38번 국, 국도 출, 출구에 야산… 중턱… 쯤…….”

“네? 야산이요? 실례지만 신고하시는 분은 누구시죠? 지금 상황은 어떤가요? 불이 난 거예요, 아니면 조난당하신 거예요?”

쉼 없이 귀청을 때리는 남자의 목소리를 들으며, 도윤이 온몸에 통증이 느껴지는 와중에 미간을 찌푸렸다.

“빨… 리 좀! 와, 와 줘요!”

“아……! 네, 네. 일단 지금 저희 대원들 출동하고 있으니까, 조금만 기다려 주시구요. 정확한 위치를…….”

투욱.

도윤이 손안에서 휴대폰이 그대로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바닥에 떨어진 수화기 너머로 연신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도윤은 휴대폰을 주워 들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휴대폰을 주워 들기 위해 몸을 굽혔다간, 그대로 쓰러져 수마에 빠져들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의 도윤에게는 반드시 확인해야만 할 일이 있었다.

도윤이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억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터벅, 터벅, 터벅.

간간히 새가 지저귀는 소리만 들려오던 산길에, 도윤의 힘없는 발걸음 소리가 섞여 조용히 울려 퍼졌다.

“허억, 허억, 허억.”

흐릿해지는 시야를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애써 바로 한 도윤이 숨을 몰아쉬며 천천히, 천천히 목적지를 향해 다가갔다.

“…큭, 허억, 허억.”

느릿느릿 걸음을 옮겨, 마침내 낭떠러지 바로 앞에 도착한 도윤이 잠시 하늘을 바라봤다.

아름답다.

시내에서 벗어난, 야산에서 바라보는 밤하늘은 상당히 아름다웠다.

마치 당장이라도 별들이 지상에 쏟아져 내리려는 듯, 반짝이는 밤하늘을 바라보며 도윤이 깊은 숨을 들이마셨다.

“…스읍~ 후우~”

숨을 한차례 몰아 내쉰 도윤이 이내 아래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시꺼먼 어둠 속에서도 도윤이 찾고자 하는 물체는 또렷하게 보였다.

낭떠러지 아래의 작은 공터.

그리고, 그곳 한가운데에 뒤집혀 완전히 반파(半破)된 차량 한 대.

꺼지지 않은 불길 사이로 오성춘이 타고 있던 바로 그 차량이 보였다.

흐릿한 시야 사이로 있는 힘껏 안력을 돋운 도윤이 무언가를 발견하고는 마침내 눈을 크게 뜬다.

“……!”

눈가를 두 번 비비고, 세 번 비벼도 자신이 본 것이 맞는 듯했다.

도윤이 허탈한 미소를 지은 채, 제자리에 그대로 털썩 주저앉았다.

“…….”

얼마나 그곳을 바라보고 있었을까?

무어라 입을 달싹이던 도윤이 이윽고 모로 쓰러지며, 완전히 의식을 잃었다.

* * *

마치 허공을 나는 듯, 붕 떠오르는 감각 속에 도윤이 눈을 떴다.

‘여기는……?’

순간 도윤이 눈을 크게 떴다.

육성으로 말하려고 했는데, 생각대로 입이 벌어지지 않았다.

아니, 마치 잠을 자는 듯, 깨어 있는 듯, 모호한 기분이었다.

도윤은 경험으로 이런 기분을 언제 느끼는지, 잘 알고 있었다.

‘…꿈?’

도윤이 주변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아무것도 없는 새하얀 공간.

여기를 둘러봐도, 저기를 둘러봐도, 온통 새하얬다.

방 안이 온통 하얀색으로 도배가 되어 있는, 정신병원의 벽면을 보는 듯했다.

문제는, 도윤에게 지금 이 공간은 처음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여기는…….’

쿵!

그 순간, 낮고 묵직한 소리가 바로 등 뒤에서 들려왔다.

그리고, 도윤이 고개를 돌렸을 때.

‘……!’

눈앞에 자리한 거대한 주사위를 보며 도윤이 경악했다.

자신이 익히 알고 있는, 마치 영화처럼 굴릴 때마다 초능력을 주는 레인보우 주사위.

그런데, 그 크기가 지금까지 봐 온 주사위들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했다.

“이게 무슨…….”

무심결에 입을 연 도윤이 화들짝 놀랐다.

그 거대한 주사위가 시야에 들어옴과 동시에, 거짓말처럼 입이 벌어졌다.

멍하니 주사위를 바라보던 도윤이 순간 옆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에 흠칫 놀랐다.

홱.

고개를 돌린 도윤의 두 눈이 또 한 번 찢어질 듯 부릅떠졌다.

“아, 아버지……!”

깔끔하게 쳐낸 스포츠머리에, 정장을 차려입은, 여전히 살아생전 그 모습 그대로의 아버지가 주사위 옆에 가만히 서 있었다.

도윤이 그곳을 향해 주춤주춤 다가가자, 사내가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왜… 왜…….”

무어라 말하려던 도윤이 멈칫한다.

자신의 아버지가 조용히 턱짓으로 주사위를 가리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도윤은 자신의 아버지가 무얼 얘기하고자 하는지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었다.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 도윤이 다시 주사위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집채만 한 크기의 주사위가 스스로 붕 떠오르더니, 도윤의 시선을 따라 이리저리 움직였다.

굳이 누군가에게 직접 듣지 않아도 도윤은 느낄 수 있었다.

지금 이 주사위를 던지면, 이 공간을 빠져나갈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 새로운 능력이 생길지도 모른다.

주사위에서 잠시 시선을 뗀 도윤이 옆을 바라본다.

“아버지…….”

작게 중얼거리는 도윤의 목소리를 들었을까?

사내가 인자한 미소로 도윤을 향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사내의 모습을 바라보던 도윤은 왈칵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또래보다 이른 나이에 결혼을 하여 가족을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산 아버지였다.

작은 포장마차로 시작하여, 두 자식들 입에 하나라도 더 넣어 주기 위해 쉼 없이 달렸고, 십수 년 만에 요식업계의 큰 손으로 세상의 인정을 받은, 자랑스러운 자신의 아버지였다.

사실 그 당시의 도윤은 그런 아버지의 노력은 생각조차 하지 않았었다.

아니, 못 했었다.

어린 자신과 동생을 바쁜 시간을 쪼개 가며 사랑으로 돌보던 사람은 다름 아닌 어머니였고, 같은 지붕 아래에 살면서도 아버지의 얼굴은 본 횟수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단지 일찍 잠들었을 때면, 한밤중에 곤히 잠들어 있는 자신의 머리를 조용히 쓰다듬고 가던 그 투박한 손길만을 간간히 느끼곤 했을 뿐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와 친해질 기회 자체가 많지 않았다 보니, 나이가 들어 자연스레 서먹한 부자가 되어 버렸다.

비교적 집안에 어느 정도 여유가 생겼을 때 늦둥이로 태어난 단비야 아버지의 사랑을 한껏 받을 수 있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이제 도윤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아버지는, 그 누구보다 자신을 사랑했었단 사실을 말이다.

감사 인사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는데, 부모님이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셨을 때,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던가?

그때의 기억은, 지금까지도 가시가 되어 가슴 한곳에 박혀, 자신을 괴롭히고 있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났을까?

하염없이 사내를 바라보던 도윤이 이내 푹 하고 고개를 숙였다.

도윤은 이미 알고 있었다.

앞에 있는 저 사내는 다시 보기를 꿈에도 바라 마지않던 자신의 아버지가 아니다.

그저 자신이 상상으로 만든, 이제는 두 번 다시 보지 못할 가상의 인물일 뿐이다.

있을 때 잘 하라는 말은 괜히 생긴 게 아닌 듯하다.

제 입술을 질끈 깨문 도윤이 이내 홱 하고 고개를 돌렸다.

여전히 하늘에 둥둥 떠 있는 거대한 주사위.

이내 결심을 굳힌 도윤이 있는 힘껏 땅을 박찼다.

파아아아아아앗!

오색빛깔 찬란하게 빛나는 주사위.

그 밝은 빛 안으로 도윤이 천천히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 * *

“…다시 말해 보거라.”

숨 막힐 듯한 침묵 속에 노년의 남자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마음만 먹으면, 대한민국 내의 어지간한 중소기업쯤은 단번에 집어삼킬 수 있는 재계 인사이자, 10대 그룹 중 일좌인 명성의 주인.

오춘화 회장의 목소리가 조용히 울려 퍼지자, 좌중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마른침을 꿀꺽 하고 삼켰다.

모처럼 활짝 개방된 대서재에 모인 명성의 식구들이 하나같이 긴장된 표정으로 한곳에 시선을 집중시켰다.

그 시선을 느끼며, 박건우가 다시 한 번 침중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도련님이, 돌아가셨습니다.”

콰직!

박건우가 말을 마치는 순간, 오춘화 회장의 손에 쥐어져 있던 연필이 반으로 두 동강 났다.

팔십이 넘은 나이에도 오춘화 회장의 악력은 웬만한 성인 못지않았다.

“그러니까, 오성춘이가 깽판이라는 깽판은 있는 대로 다 치고, 빌어먹을 총질까지 하더니, 결국 교통사고로 죽었다, 이 말이냐?”

“…….”

박건우가 입을 다문 채 침묵을 지키자 오춘화 회장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대답을 해, 이 새끼야! 그게 맞냐고!?”

오춘화 회장의 고함 소리가 대서재 내부에 쩌렁쩌렁 울리자, 결국 박건우가 마지못해 대답한다.

“…예.”

“끄… 끄으으윽.”

“아, 아버지!”

순간 뒷목을 잡는 오춘화 회장을 보며 명성그룹의 장남, 오창원이 급히 다가섰다.

그런 오창원의 손길을 오춘화 회장이 거칠게 손을 뿌리쳤다.

“놔!”

잠시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내쉬기를 반복하던 오춘화 회장이 타오르는 듯한 눈빛으로 박건우에게 시선을 돌렸다.

“…보고할 게 그게 다는 아니겠지?”

“…직접적인 사인은 두개골 파손입니다. 차량 충돌 직후, 산 아래로 떨어지는 와중에 강한 충격이 있었던 것 같습…….”

“그따위 것 말고, 거기 다른 놈도 있었을 거 아니야!?”

“…….”

다시 입을 다문 박건우가 잠시 후,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현장에, 도련님과 그 보좌관을 포함하여 사망자는 총 5명. 나머지 셋은 아시다시피 깡패들이고, 그중 하나가 머리에 총을 맞고 즉사했습니다. 생존자는… 한 명입니다.”

“생존자가 있기는 있다는 말이군. …누구냐?”

오춘화 회장이 씹어 내뱉듯 묻는다.

“서울중앙지검의…….”

잠시 말끝을 흐리던 박건우가 눈을 빛내며 말을 잇는다.

“강도윤 검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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