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화 박보윤 (2)
박보윤은 그 아름다운 미모와 뛰어난 두뇌로 처음 서울중앙지검에 발을 들일 때부터 주변 사람들의 많은 관심을 받았다.
20대 초임 검사부터 나이가 지긋한 4~50대 부·차장 검사까지.
나이를 불문하고 박보윤을 한 번이라도 보기 위해 그녀 사무실 주변을 기웃거리기 바빴다.
이는 비단 검찰 내부적인 현상만이 아니라, 외부적으로도 마찬가지였다.
대한민국에서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톱스타 연예인, 3선 의원을 거쳐 훗날 대권까지 바라보고 있는 정치인의 아들, 잘나가는 벤처기업의 젊은 사장까지.
소위 잘나간다 하는 사람들은 모두가 박보윤의 눈에 한 번쯤 들기 위해 발버둥 쳤다.
사실, 대한민국 검사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이토록 세상에 알려지는 것은 결코 흔치 않다.
유명 연예인과 결혼하여 자식을 낳은 판사.
그 자식들이 주인공이 되어 TV 프로그램에 방영되고, 대중들의 인기를 끌면서도 정작 그 어머니인 판사는 단 한 번도 TV에 나오지 않는다.
말 한 마디로 특정 사람의 자유를 뺏을 수도 있고, 심지어 목숨까지 빼앗을 수 있는 일.
누구보다 공정하고, 청렴해야 하며, 외부의 압력에 휘둘리지 않아야 하는, 그런 막중한 책임감이 부여되어 있는 일.
이런 일을 하는 판사들의 얼굴이 만약 언론을 통해 세상에 알려지게 되면, 사건 관계자의 위협이나 특정 권력자들의 압력을 받을 위험성이 매우 커지기 때문이다.
신변 보호 차원에서라도 담당 판사의 개인 인적사항 보안 관리는 법원에서 가장 신경 쓰는 일 중 하나다.
같은 이유로, 검사도 마찬가지였고 말이다.
그런데, 박보윤의 얼굴은 이런 여타 다른 법조인들과 달리 매우 많이 세상에 알려져 있었다.
TV나 뉴스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100만 관객 배우라 불리는 연예인들의 얼굴은 알지 못하면서도, 박보윤의 이름과 얼굴은 한 번쯤 들어 봤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단순히 예쁜데 똑똑하기까지 해서?
물론 그 영향도 컸지만, 그것은 박보윤을 더욱 유명하게 만드는 부가적인 이유 중 하나일 뿐이었다.
* * *
시원하게 뚫린 고속도로 위에, 누가 봐도 감탄을 자아낼 고급스러운 검은색 대형 세단이 질주하고 있었다.
앞 좌석에는 ‘억’ 소리가 나는 차량 수준에 맞게, 운전기사로 보이는 깔끔한 정장 차림의 중년 남자가 열심히 핸들을 조작하고 있다.
그리고, 그 뒷좌석에는…….
마찬가지로 깔끔하게 머리를 올백으로 넘긴 중년 사내와, 커다란 눈이 매우 아름다운 여자가 말없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일은 할 만하니?”
고요한 침묵을 깨고, 뒷좌석에 앉은 중년 사내가 조용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사내의 입에서 나온 것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부드러운 목소리.
시원시원한 이목구비와 짙은 눈썹을 가진 미남형 얼굴을 가진 중년 사내는, 젊었을 적 뭇 여성들의 심금을 떨리게 만들었을 듯하다.
“그럭저럭요.”
그런 사내에게 시선조차 돌리지 않은 채, 옆 좌석에 앉은 젊은 여자가 대답했다.
남자의 얼굴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는 아름다운 얼굴.
서울중앙지검의 ‘예쁜 또라이’라는 별명으로 더욱 유명한, 박보윤이었다.
“오라고 얘기는 했지만, 정말로 온다고 할 줄은 몰랐는데, 신기하구나.”
“누구 말씀이신데, 제가 감히 거부할 수나 있겠어요?”
박보윤이 여전히 창가에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빈정댔다.
그 모습에 한차례 쓰게 웃은 중년 남자가 말을 잇는다.
“너무 그러지 말거라. 오랜만에 가족들 얼굴도 보고, 좋지 않니? 그보다, 듣기로는 이번에 부서 이동이 있었다고 하던데…….”
그 순간 미동조차 하지 않던 박보윤의 고개가 홱 하고 돌아간다.
“그걸 아버지가 어떻게 알고 계시죠?”
“…….”
날카롭게 눈을 빛내며 묻는 박보윤을 보며, 중년 사내가 입을 다물었다.
잠시 후, 중년 사내가 조용한 목소리로 말을 잇는다.
“애비가 딸 소식을 알고 있는 게, 그렇게 이상하니?”
“자식에게 거는 기대감 말고는, 가족에 대한 관심 따위와는 거리가 머시잖아요? 당장 산더미같이 쌓인 일 처리하시기에도 바쁘실 테니까요. 이해해요. 대조국일보의 주인이신데.”
새빨간 앵두 두 개를 붙여 놓은 듯 앙증맞은 박보윤의 입에서 ‘조국일보’라는 단어가 나왔다.
조국일보.
대한민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신문사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신문사다.
특히나, 현재의 조국일보는 여타 다른 신문사들 중에서도 첫 번째 손가락에 꼽힐 정도로 그 영향력이 강했다.
물론, 이유는 분명히 있었다.
박보윤을 이토록 유명 인물로 만든,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한 그것.
현 정부의 국무총리인 박보군.
조국일보의 바로 직전 주인이자, 보윤의 할아버지이기도 한 그가 있었기 때문이다.
언론인 출신 정치인의 성공 모델이라고도 불리는 박보군은, 그 출신에 걸맞게, 잘못된 길로 나아가면 설사 대통령이라도 호되게 꾸짖기로 유명하였다.
정계의 촌철살인(寸鐵殺人)으로 불리는 그는, 국민들의 신임마저 얻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도 그를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
그런 인물의 하나밖에 없는 손녀가 바로 박보윤이다.
연예인 뺨칠 정도의 외모와 대한민국 최고 명문대를 수석으로 졸업한 수재, 직업마저 그 대단한 검사였으니 오히려 세상에 알려지지 않는 게 이상할 것이다.
그리고, 그녀의 아버지이자 박보군의 아들이기도 한 눈앞의 중년 사내.
현 조국일보의 실질적 주인인 박성준 또한 결코 평범한 사람은 아니었다.
찬바람이 쌩쌩 부는 박보윤의 얼굴을 잠시 바라보던 박성준이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이해해 준다니 다행이구나.”
“뭐라구요?”
박보윤이 순간 어이가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박성준에게 시선을 돌린다.
분명 진심으로 한 말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을 텐데, 저런 반응이라니…….
무어라 쏘아붙이려던 박보윤이 이내 크게 한숨을 내쉬며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런 박보윤의 옆모습을 잠시 바라보던 박성준이 조용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원한다면 지금 부서, 다시 원상 복귀시켜놓을 수도 있다.”
“…….”
“뭐, 특별히 가고 싶은 곳이 있다면, 그것도 좋겠지.”
힐끗 박성준에게 시선을 돌리려던 보윤이 결국 창가에 시선을 고정한 채, 다시 한 번 긴 한숨을 내쉬었다.
보윤에게 지금 가고 있는 그 자리는 억만금을 준다고 해도 절대 가고 싶지 않은 장소다.
만찬에 참석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대한민국에서 힘깨나 쓴다는 권력자들.
막 나가는 성격의 소유자인 보윤이라도 행동거지가 조심스러워질 수밖에 없다.
하고 싶은 말은 꼭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보윤에게, 움직이지 않는 입꼬리를 억지로 올려붙이며 얼굴마담 노릇이나 해야 하는 그따위 자리가 반가울 리가 없었다.
그런 보윤이 자발적으로 모임에 참석하고 있었다.
아무런 목적이 없다면 거짓이리라.
그리고, 그 목적 중에는 분명 방금 박성준이 말한 이유도 있었다.
잠시 고민하는 듯하던 보윤이 다시 한 번 한숨을 내쉬었다.
“됐어요.”
“…….”
“…제 일은, 제가 알아서 할게요.”
“흠…….”
박성준이 잠시 턱을 쓰다듬으며 침음을 삼켰다.
“알았다. 굳이 내가 나서는 것을 싫어하는 듯하니, 니 일에 참견하지 않으마.”
“그건 고맙네요.”
“단.”
박성준이 조금 굳은 목소리로 말을 잇는다.
“한 가지는 확실히 해야 할 것 같구나.”
“……?”
박성준의 목소리 톤이 변한 것을 느낀 보윤이 이내 창가에서 시선을 떼고는, 그를 바라본다.
“너도 알다시피, 이번 모임에는 예년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참가 의사를 밝혔다. 그리고, 그중에는 야당의 차기 대표로 거론되는 김문성 의원도 있지.”
“…….”
“현 시국은 대통령이 언제 탄핵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 만약 흐름에 따라 현 대통령이 자리에서 물러나, 1년 만에 다시 대선을 치르게 된다면… 집권여당 또한 뒤바뀔 확률이 상당히 높다.”
창밖으로 시선을 돌린 박성준이 빠르게 뒤바뀌는 풍경에 시선을 고정한 채, 말을 잇는다.
“물론 상황을 봤을 때, 대통령이 탄핵될 확률은 낮아. 지금까지 끊임없이 서로를 향해 으르렁거리던 여당과 야당이, 마치 담합이라도 한 듯 하나가 되어 대통령을 물어뜯고 있지만… 여론조사 결과는 정반대니까. 뭐, 그게 아니라도 당장 매일같이 벌어지는 탄핵 반대 시위만 봐도 그렇고.”
“무슨 말씀이 하시고 싶은 거예요?”
박보윤이 슬쩍 미간을 찌푸리며 반문하자, 박성준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성격 급한 건 제 엄마를 쏙 빼닮았군.”
“당신…….”
“…….”
순간 마치 죽일 듯한 표정으로 박성준을 바라보던 보윤이 굳은 목소리로 말을 잇는다.
“…엄마 얘기는 하지 마요. 그럴 자격 없는 거, 알잖아요?”
“…….”
잠시 보윤의 두 눈을 마주 바라보던 박성준이 작은 목소리로 대답한다.
“…그래.”
박성준의 대답에 보윤이 다시 창밖으로 홱 하고 고개를 돌렸다.
박성준이 씁쓸한 미소를 입에 문 채, 말을 잇는다.
“…누군가, 민중은 개, 돼지라고 했지. 당장 이쪽을 지지하는 여론이라도, 하루아침에 보잘것없는 이유 하나만으로 손바닥 뒤집 듯 말과 행동을 바꾸는…….”
“…….”
“…여론이 뒤바뀌어, 현 대통령이 탄핵되면, 다시 한 번 대선이 치러질 것이다. 그때, 집권여당 또한 바뀔 확률이 매우 높겠지. 지금이야 서로 같은 편이지만, 그때가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서로 물고 뜯을 테니까. 한 번 신뢰를 잃은 여당이 또 한 번 여당으로 살아남는 건 불가능하다고 봐야 될 거야.”
“…….”
“그렇게 되면, 지금 야당 대표 또한 차기 대권의 유력한 후보자야. 그 말은… 바로 다음 대표는 김문성 의원이 된다는 거지. 그게 무얼 의미하는지 아니?”
“하? 하고 싶은 말씀이 그거였어요?”
코웃음을 친 보윤이 박성준의 두 눈을 정면에서 바라본다.
“그러니까, 그 대단하신 의원님의 아들, 김재욱. 그 머저리 싸이코를 잘 꼬셔라, 이 말씀이 하고 싶으신 거잖아요?”
“…….”
입을 다문 채 침묵을 지키는 박성준을 보며, 보윤이 제 입술을 꽈악 깨물었다.
보윤은 알고 있다.
단순히 그 머저리 놈을 꼬시는 것만으로는 자신의 아버지가 만족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사실, 보윤이 꼬시고 말고 할 것도 없다.
놈이 자신에게 호감이 있는 것은 둘째치고, 자신의 할아버지.
박보군과 김문성 의원은 매우 막역한 사이였기 때문이다.
자신이 성인이 된 이후, 할아버지는 입버릇처럼 그 머저리 놈과 결혼 얘기를 하곤 했다.
“참고로…….”
박성준이 조용한 목소리로 말끝을 흐렸다.
“이번 모임에는… 할아버지도 참석하실 거다.”
“뭐라구요!?”
두 눈이 찢어질 듯 부릅떠진 보윤의 하이 톤 목소리가 차량 내부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 * *
“야, 야. 거기 주름졌잖아. 각 좀 잡아서 쫙쫙 펴 봐. 칼 각 몰라? 이 쉐끼, 이거. 군대 안 갔다 왔나…….”
어울리지 않는 이대팔 머리에 깔끔하게 정장을 차려입은 중년 사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제 옷을 내려다보던 중년 사내가, 이내 고개를 들자 그 얼굴이 드러났다.
쫙 찢어진 두 눈이 인상적인 박판섭이었다.
박판섭의 말에 한참 그 옷매무새를 매만지고 있던 작은 체구의 남자가 발끈한다.
“아, 형님! 저 방위 나온 것 아시지 않습니까?”
“아차, 너 똥방위였지?”
“똥방위라뇨! 신성한 병역의 의무를 마친 참국민이지! 솔직히, 저희 식구들 중에 방위라도 나온 애들이 어디 있습니까? 다 빵에 살다 나와서…….”
“아, 알았어! 알았어!”
사내의 말이 길어질 것 같은 낌새를 보이자, 박판섭이 재빨리 손을 휘휘 내저었다.
“옷이나 제대로 만져 봐. 높으신 분들 다 나오는 자리라잖아. 우리 통합 20세기파의 첫 걸음이야. 초빼이 취급은 당할지언정, 근본 없는 깡패 새끼들이라고 손가락질은 당하지 말자.”
“에이, 형님 또 별걱정을 다 하신다. 그렇게 생각했으면 그 높으신 분이 굳이 그 자리에 우릴 불렀겠어요? 자고로, 깡패와 권력자들은 공생관계 아니겠습니까? 뭐, 이렇게 양지에 불러들이는 건 처음 있는 일이긴 하지만, 그만큼 저쪽에서도 우릴 인정한다는 거겠죠.”
“그 권력자들이 얼마나 능구렁이 같은 놈들인지, 너는 잘 모를 거다. 나는 아직도 그 양반들이왜 우릴 불러들였는지, 도무지…….”
박판섭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끝을 흐리고 있을 때,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고 있던 사무실 출입문 밖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뚜벅, 뚜벅, 뚜벅.
또렷하게 귀에 박혀 드는 구둣발 소리를 들으며, 사내가 씨익 미소 지었다.
“뭐, 고작 능구렁이가 무섭답니까? 이쪽에는…….”
사내가 말을 잇고 있을 때, 벌컥 하고 출입문이 열린다.
“…킹코브라가 있는데.”
출입문이 열리고, 지금 막 들어서는 인물을 보며, 사내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사무실 안으로 들어서는 젊은 사내.
시원시원한 이목구비와 약간의 체크 무늬가 들어간 올 블랙 정장이 매우 잘 어울리는 남자.
“왔어?”
박판섭이 씨익 웃었다.
“…가자.”
젊은 남자, 1년 사이 이제는 앳된 티를 완전히 벗어던진 도윤이 짧게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