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잡는 회귀검사-93화 (93/174)

93화 의외의 인물

호텔을 나서는 보윤은 신이 나 미칠 것만 같았다.

단단히 혼꾸멍을 내 줄 거라 마음먹은 건방진 신임 놈에게 스스로 위기가 찾아왔다.

일반 공무원들에게도 범법 행위에 대한 처벌을 함에 있어, 매우 엄격한 잣대를 적용한다.

국가의 녹을 먹고 사는 공무원들은, 일반 시민들에 비해 더욱 높은 청렴성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하물며, 법을 집행하는 주체인 검찰이나 경찰, 수사 공무원들은 말할 것도 없다.

만약 저 상태로 도윤이 입건된다면, 법적인 처벌은 물론 내부적인 징계와 문책도 피할 수 없으리라.

“강남 경찰서로 가 주세요!”

보윤이 실룩이는 안면 근육을 억지로 눌러 참으며, 호텔 앞에 대기하고 있는 택시 하나를 골라 타며 소리쳤다.

세상일이라는 게, 내 일보다 남 일이 재미있는 법.

일상이 무료함으로 찌든 보윤에게, 통쾌함까지 선사할 이런 기회는 절대 놓쳐서는 안 될 것이었다.

“자, 너는 어떤 더러운 방식으로 그곳에서 빠져나올 건지, 내가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봐 줄게.”

힘을 가진 일반적인 놈들이라면, 자신의 신분을 스스로 밝히고, 줄을 이용하여 아무렇지도 않게 빠져나올 것이다.

입건이 되면 어차피 밝혀질 신분.

차라리 미리 떳떳하게 밝히고, 자신들이 가진 힘을 이용하여 그 자리를 모면하는 것이다.

보윤의 생각대로라면 도윤 또한 분명히 그렇게 할 것이다.

지금까지 보아 온 권력자라는 놈들은 열이면 열, 전부 그랬다.

자신의 아버지를 포함해서 말이다.

특히나 이런 종류의 일에 있어서는 더 그렇다.

분명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을 지켜본 보윤에게도 도윤의 행동은 결코 잘못된 것은 아니었지만.

기사라는 것이, 펜대를 굴리는 글쟁이들이 쓰기 나름이다.

‘아’ 다르고 ‘어’ 다르듯 같은 내용으로도 어떻게 쓰는가에 따라 그 내용이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언론계 집안에서 나고 자란 보윤은 이런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실제로 조금 과했기도 하고.”

분명, 미리 알아채고 칼을 막아 낼 수 있었다.

이미 제압까지 한 상황에서, 굳이 그토록 무식하게 사람 뼈를 부러뜨릴 필요가 있었을까?

아마 이 나라의 법은, 꼰대 같은 판사들은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도윤에게 남은 방법은 그 알량한 권력과 줄을 이용하여, 빠져나오는 것밖에 없다.

“그건 내가 용납 못 하지.”

빠르게 뒤바뀌는 바깥 풍경을 느끼며, 보윤이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만약 도윤이 정당한 방법으로 그 상황을 빠져나온다면, 그 즈음 조용히 물러날 것이다.

아니, 직접 나서서 증언도 해 주고 도와줄 용의까지 있다.

인정하기는 싫었지만, 대낮에 그 많은 사람이 있는 곳에서 흉기를 휘두르는 범죄자 놈의 팔을 거리낌 없이 부러뜨리는 도윤의 행동을 보며, 분명 가슴속에서 통쾌함을 느꼈으니까.

하지만 만약 정당하지 않은 방법으로 그 상황을 모면하려 한다면…….

“완전히 매장시켜 줘야겠지. 이건 개인적인 원한 따위가 아니야. 나란 년이, 날 때부터 그렇게 나고 자란 걸 어쩌겠어? 부디… 내 기대를 실망시키지 말아 줘.”

좁은 택시 내부에서, 보윤이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 * *

“협조에 정말 감사드립니다. 간단한 조사만 마치고 곧바로 돌려보내 드릴 테니, 너무 걱정은 하지 마십시오.”

맞은편에 앉은 도윤을 보며, 말을 잇는 강종필의 태도가 이전과 달리 매우 공손해져 있었다.

방금 자신이 출동한 자리가 어떤 자리였는지, 지금 막 언질이 있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최고의 권력자들이 자리한 곳에 있던 인물.

강종필은 눈앞에 있는 도윤이 분명 평범한 사람은 아닐 것이라 생각했다.

“혹시 신분증 가지고 계십니까? 기본적인 인적 사항은 확인해야 해서요.”

“아, 형사님. 그냥 대충 조서 하나 쓰고 보내 주시지요. 당장 그 자리에 있던 사람 몇 명만 골라잡고 물어봐도, 상황 파악 다 될 건데, 뭘 번거롭게 신분증까지…….”

도윤을 대신하여 박판섭이 입을 열자, 강종필이 슬쩍 미간을 찌푸렸다.

손가락으로 미간을 살짝 누르고, 싱긋 미소 지은 강종필이 말한다.

“절차라서요. 뭐, 이쪽 분 말대로 딱히 켕길 게 없으시다면, 그냥 마음 편하게 조사받으시면 됩니다. 조사받는다고 바로 감옥에 간다든가, 그런 건 아니라…….”

“아니, 이 양반이! 이 양반이 어떤 사람인 줄 알고 감옥 운운……!”

발끈한 박판섭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그 순간.

벌컥!

형사팀 사무실 출입문이 거칠게 열렸다.

도윤과 강종필이 대화를 나누고 있는 곳은 출입문에서 가장 가까운 장소로 강종필이 속한 형사1팀 전용 테이블이 위치해 있었다.

자연스럽게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출입문을 향해 집중되었다.

“어머…….”

형사팀 사무실에 막 발을 들이던 보윤이 순간 당황한 표정으로 입을 가리며 ‘호호’ 웃었다.

“조사 중이신데, 제가 방해를 했나 보네요.”

두꺼운 뿔테 안경에, 깊게 눌러쓴 모자가 누가 봐도 ‘나 수상한 사람이오.’라는 듯한 보윤의 모습을 잠시 바라보던 강종필이 묻는다.

“…어떻게 오셨죠?”

“아, 그게…….”

무언가 생각하는 듯 잠시 고민에 잠겨 있던 보윤이 짝 하고 손뼉을 치며 대답한다.

“방금 형사님이 출동하신 자리에, 저도 같이 있었거든요. 혹시나 목격자 증언이 필요하실까 싶어서요.”

보윤이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강종필이 옅게 미소 지었다.

“따로 부탁드린 것도 아닌데, 이렇게 스스로 진술해 주시겠다고 찾아와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유독 ‘스스로’라는 말을 강조하며, 강종필이 힐끗 눈앞에 있는 도윤을 바라본다.

“아니요, 당연히 도와드려야…….”

“그거 지금 우리 영감… 아니, 이 친구 들으라고 하는 소리요!?”

보윤의 말을 중간에서 끊고, 박판섭이 다시 한 번 흥분하여 고함쳤다.

“아, 아. 언성 높이지 마시구요. 자꾸 이러시면, 그쪽 분은 내보내고 따로 조사하겠습니다.”

“뭐라고!? 이…….”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박판섭이 씩씩대기 시작하자, 순식간에 주변 분위기가 차갑게 가라앉기 시작했다.

험악해진 분위기 속에, 눈치가 빠른 몇몇 형사가 슬금슬금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한다.

그 순간.

“됐어.”

지금까지 입을 다문 채 침묵을 지키고 있던 도윤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박판섭을 향해 한차례 손을 휘휘 내저은 도윤이, 눈앞에 있는 강종필을 바라본다.

“신분증이 필요하다고 하셨죠?”

“예? 아, 예.”

마치 어두운 밤하늘을 빨아들인 듯, 깊고 짙은 도윤의 두 눈을 정면에서 마주 바라본 강종필이 얼떨결에 대답했다.

‘무슨 놈의 눈빛이… 아니, 그보다 분위기가…….’

강종필이 당황한 표정을 숨긴 채, 속으로 중얼거리고 있을 때, 도윤이 품 안에서 신분증을 꺼내 내밀었다.

“여기 있습니다.”

“아, 협조 감사드립니다.”

재빨리 도윤에게서 신분증을 건네받은 강종필이 그것을 들여다봤다.

“성함이… 강도윤 씨?”

“예.”

도윤의 짧은 대답에 고개를 끄덕인 강종필이 키보드 위에 손을 올려놓았다.

“간단하게 인적 사항만 입력하고, 바로 조사 시작하겠습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

도윤이 입을 다문 채 고개를 끄덕이자, 이내 강종필이 키보드 위로 빠르게 손가락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타다닥, 타다다다닥.

사무실 내부에 강종필이 타이핑을 치는 소리만이 조용히 울려 퍼졌다.

어느새 사무실 한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은 보윤은 흥미로운 미소를 입에 문 채, 그 모습을 응시하고 있었다.

‘자, 어떤 더러운 수작질로 그 상황을 모면할지, 나한테 보여 줘. 부디 날 실망시키지 않길 바랄게.’

공무원들 사이엔, 옆 테이블에서 싸움만 나도, 뒤도 돌아보지 말고 도망가라는 말이 있다.

자신에게 죄가 있든, 없든 이런 일에 휘말리게 되면 단지 공무원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상당히 골치 아픈 일이 생길 위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일이 벌어지기 전에 미리 발을 빼는 것이 이쪽 바닥에서 정석 아닌 정석으로 통용되고 있었다.

“그럼 먼저, 그때 당시의 상황부터…….”

벌컥!

본격적인 조사를 시작하려는지 강종필이 입을 여는 순간, 또 한 번 출입문이 강하게 열렸다.

“…아, 정말. 다들 문을 왜 이렇게 쎄게…….”

출입문을 향해 시선을 돌리며 인상을 찌푸리던 강종필이 순간 눈을 크게 떴다.

중년 사내 한 명과 젊은 사내 한 명이 사무실로 들어오고 있었다.

문제는, 그중 중년 사내가 강종필에게 아주 익숙한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더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강종필이, 지금 막 출입문으로 들어오는 중년의 사내를 향해 직각으로 허리를 숙였다.

“반갑습니다, 서장님!”

“반갑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서장님!”

강종필을 시작으로, 사무실 내부에 앉아 있던 형사들이 자리에서 분분히 일어나 중년 사내를 향해 인사했다.

직원들의 인사를 본 체, 만 체한 사내가 사무실 내부를 휘휘 둘러보기 시작했다.

사내의 움직임에 따라 몇 가닥 남지 않은 머리카락이 바람에 휘날렸다.

이내 바로 앞에 앉은 도윤을 발견한 중년 사내가 옆에 있는 젊은 사내의 귀에 대고 무어라 속삭인다.

이내 젊은 사내가 작게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을 확인한 중년 사내가, 도윤을 향해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강도윤 검사님?”

이어지는 중년 사내의 말에, 주변에 있던 형사팀 직원들의 눈이 찢어질 듯 부릅떠졌다.

“검, 검사님?”

“팀장님, 방금 서장님이 분명히 검사님이라고……?”

“조용히! 호들갑 떨지 말고 가만히 좀 있어 봐!”

주변의 웅성거리는 소리를 한 귀로 흘린 중년 사내가, 도윤을 향해 재차 묻는다.

“맞습니까?”

“…제가 강도윤은 맞습니다만…….”

이어지는 도윤의 대답에, 중년 사내의 표정이 순식간에 밝아졌다.

“이거, 이거, 실례가 많았습니다. 일단 자리를 좀 옮기시죠. 혹시나 저희 직원들이 검사님한테 실수한 건 없는지 모르겠습니다.”

등 뒤에서 들려오는 중년 사내의 말에 자리에 앉은 도윤이 힐끗 뒤를 돌아본다.

그 순간, 도윤의 두 눈이 크게 떠졌다.

잠시 그 상태로 멍하니 뒤를 바라보던 도윤이,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분위기를 보니, 강남서 서장님이신 것 같은데…….”

“아, 황성필이라고 합니다. 초면이지예?”

자신을 황성필이라 소개한 중년 사내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지만, 도윤의 시선은 그쪽을 향해 있지 않았다.

잠시 한곳을 응시하던 도윤이,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서장님은 초면이지만, 이쪽은 초면이 아닌 것 같군요.”

“…….”

도윤의 시선을 느낀 젊은 사내가 가볍게 목례를 하자, 황성필이 ‘허허’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뭐, 당연히 아시겠지예. 이분이 검사님이 여기 계신 것, 저한테 말씀해 주지 않았으면 아마 지금도 모르고 있었을 겁니다.”

“…이 사람이 말해 줬다, 제가 검사라는 것도, 겠지요?”

도윤의 말에 황성필이 멋쩍게 웃었다.

“자세한 얘기는 제 방에 가서 하지예. 딱히 남한테 알려져서 좋을 일도 아니고…….”

말끝을 흐리던 황성필이 제자리에 서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강종필을 향해 말한다.

“엎어.”

“…알겠습니다.”

황성필의 말에, 강종필이 책상 위에 올려놓은 서류들을 주섬주섬 말아 넣기 시작했다.

“하?”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보윤이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 더 지켜보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뭐, 딱히 기대도 안 했다.”

작게 중얼거린 보윤이 슬슬 나서야겠다고 생각하고 걸음을 옮기려는 순간.

“…설명이 먼저일 것 같은데.”

“그게 무슨……?”

도윤의 말에 황성필이 고개를 갸웃한다.

그런 황성필을 쳐다보지도 않고, 젊은 남자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도윤이 말한다.

“왜 당신이 여기에 있고, 이따위 개수작을 부리는 건지.”

“…….”

“그것부터 설명하는 게 우선 아닐까? 명성그룹의 부사장, 박건우 씨.”

“……!”

도윤의 말이 끝나자, 사무실 내부에 있던 사람들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