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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잡는 회귀검사-100화 (100/174)

100화 국면(局面)

“아버지.”

“재욱이 니가 기별도 없이 웬일이냐?”

지금 막 사무실 안으로 들어서는 김재욱을 보며, 신문을 들여다보고 있던 중년 사내가 반가운 얼굴로 맞이했다.

중년 사내의 이름은 김문성.

김재욱의 아버지이자, 탄핵소추 이후 가장 유력한 차기 야당 대표로 거론되고 있는, 3선 의원이었다.

흔히 대한민국 정치 1번지라고 불리는 종로구 당선자였기 때문에, 실제 정치권에서 김문성이라는 이름이 미치는 영향력 또한 결코 적지 않았다.

김재욱은 그런 대단한 사람을 아버지로 둔, 서울지검 검사였고 말이다.

“자식이 제 부모님을 찾는 게 이상한가요?”

“안 하던 짓을 하는구나.”

썩 기분이 나쁘지는 않은지, 김문성이 옅게 미소 지은 채 말했다.

“한창 바쁘시죠?”

“뭐, 이 바닥이 개싸움인 거야, 온 국민이 다 알고 있는 사실 아니냐. 너도 혹여나, 퇴직 이후에 정치권에 진출할 생각이라면 미리미리 준비해 두거라. 운동도 열심히 하고.”

“운동요?”

김재욱이 고개를 갸웃하며 반문하자, 김문성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말했지 않느냐. 매일이 개싸움이라고. 국회라는 곳. 겉보기에는 옛 궁궐처럼 으리으리해 보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정반대라는 것, 너도 이미 알지 않니?”

“뭐, 가끔 TV에서 의자 집어 던지고, 주먹도 예사로 날아가는 건 몇 번인가 보긴 했죠.”

“그게 일상이야.”

김문성의 말에 김재욱이 어이가 없다는 듯 반문한다.

“그런 곳에 지금,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집어넣으시겠단 말씀이세요?”

김재욱은 아래로 여동생만 둘이다.

자신과 달리 여동생들은 썩 공부를 잘하는 편이 아니었고, 자신의 아버지인 김문성은 더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두 여동생을 외국으로 유학 보냈다.

소위 있는 집 자식들 입장에서야, 머리가 나빠도 유학 관련 커리어만 있으면 국내로 돌아와 그 경력만 가지고도 좋은 자리를 꿰차곤 했으니까.

워낙 외국 경력에 대해 환상에 사로잡혀 있던 시절이고, 집안이 가진 힘 또한 충분하다 못해 넘쳤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뭐, 내가 입문하라고 얘기하지 않아도, 어차피 이쪽 바닥에 발을 들일 것 아니냐?”

“…….”

이어지는 김문성의 물음에 김재욱이 입을 다물었다.

아버지의 말을 부정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김재욱을 보며, 씨익 미소 지은 김문성이 말을 잇는다.

“나는 니 야망을 잘 안다. 내 아들이라서가 아니라, 너는 어린 시절부터 갖고 싶었던 건 모두 가져야 했고, 하고 싶은 건 전부 다 해야 직성이 풀렸으니까. 고작 검사만으로 만족하지는 않겠지.”

“…제가 아버지처럼 국회의원이 되려고 한다, 이 말씀이신가요?”

“아니.”

김문성이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너는 그보다 더 높은 곳을 꿈꾸고 있지 않느냐?”

“……!”

순간 김재욱이 눈을 크게 떴다.

“고시를 패스한 인재들치고, 정치권 생각 안 하는 사람 없고, 정치인들치고 봉황을 꿈꾸지 않는 사람이 없다. 내가 지금까지 봐 온 열에 아홉은, 모두 그랬지. 나머지 하나는… 흔히 말하는 조금 특이한 놈들.”

“…….”

“나는 니가 그 하나일 거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개인의 능력도, 집안의 힘. 이 모든 걸 갖춘 니가, 다른 사람보다 수십 배는 욕망이 많은 니가, 과연 검사로 만족할 것인가.”

잠시 입을 다문 채, 김재욱의 두 눈을 똑바로 바라보던 김문성이 말을 잇는다.

“나는 절대 아니라고 확신한다.”

“…누가 들으면 제가 권력의 욕망에 사로잡힌 하이에나쯤 되는 줄 알겠네요.”

작게 한숨을 내쉬며 대답하는 김재욱을 바라보며, 김문성이 피식 미소 지었다.

“범의 새끼 중에, 하이에나는 없지.”

“정말, 아들한테 한 마디도 안 져 주시네요.”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김재욱이, 아버지인 김문성의 두 눈을 마주 바라본다.

언제나 활화산같이 타오르는 듯한 눈빛.

그 눈빛 사이에는 항상 자신감이 넘쳐흘렀다.

자신은 그런 아버지의 눈빛이 항상 부러웠고 말이다.

무언가 고민하는 듯하던 김재욱이 이내 조용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아버지.”

“갑자기 그렇게 목소리 내리깔고, 그러지 말거라. 애비가 요즘 늙어서 심장이 썩 좋지가 않다.”

농담조로 중얼거리는 김문성에 아랑곳하지 않고, 김재욱이 말을 잇는다.

“저, 부탁드릴 게 있습니다.”

“부탁?”

김문성이 고개를 갸웃했다.

“니가 부탁이라, 첫 인사발령 이후로 아비한테 하는 부탁은, 이번이 처음인가?”

“…들어주실 겁니까?”

“일단 들어는 보지.”

김문성이 턱을 괸 채, 말해 보라는 듯 손짓했다.

그런 제 아버지를 잠시 바라보던 김재욱이, 조용히 말을 잇기 시작한다.

“아버지 말씀대로, 저는 가지고 싶은 것은 꼭 가져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었습니다. 아니, 지금도 마찬가지. 제가 가지고 싶은 것은 꼭 손에 넣어야만 성이 찹니다.”

“좋군.”

김문성이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그런 제가, 지금 꼭 가지고 싶은 것이 생겼습니다.”

말을 잇는 김재욱의 두 눈빛이 강렬한 욕망으로 뜨겁게 타오르고 있었다.

마치, 눈앞에 있는 중년 사내의 그것처럼.

그 사실을 스스로 느낀 김문성도 잠시 묘한 기분에 사로잡혀, 자세를 바로하고는 계속해 보라는 듯 손짓한다.

“그 가지고 싶은 게 뭔지, 참 궁금하구나.”

김재욱이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한다.

“박보윤.”

“……!”

김문성이 순간 눈을 크게 떴다.

박보윤.

대한민국 사람들 중 그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인사였지만, 그 점을 제외하고서라도, 박보윤이라는 이름이 김문성에게 가지는 의미는 특별했다.

현 국무총리인 박보군의 손녀이자, 재색과 미모를 겸비한 뛰어난 인재.

어린 시절부터 봐 왔고, 내심 며느리 감으로 점지해 두고 있던 아이.

그런 생각을 김재욱에게 표현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문제는 그때마다 자신이 알아서 하겠다며 손을 휘휘 젓는 아들이었기에, 제 생각이 있겠거니 하고, 최소한 20대가 끝나 갈 때까지는 풀어 줄 생각이었다.

주변에 돈 많은 친구 놈의 자식들은 하나같이 망나니들밖에 없었는데, 코피까지 쏟아 가며 사시를 패스하던 모습이 생생하게 떠올라, 기특한 생각도 들었고 말이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

제 스스로 그 아이를 가지고 싶단다.

지금 눈앞에 있는 아들의 눈빛.

그 눈빛이 결코 거짓이 아니라고 말해 주고 있었다.

그 눈빛을 가만히 응시하던 김문성이 마침내 옅게 미소 지은 채 입을 열었다.

“갑자기 왜 그러는 건지, 이유는 묻지 않으마.”

“…….”

“내가 뭘 도와주면 되지?”

“특별히 도와주실 건 없습니다. 사람 마음이라는 게, 남의 도움으로 살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으니까요.”

“그럼…….”

“딱 한 가지만.”

김재욱의 말에 김문성이 입을 다물었다.

잠시 주저하던 김재욱이 이내 말을 잇는다.

“제가 특수부에 갈 수 있도록, 조금 힘써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 *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연신 고개를 숙이는 하청업체 사장을 보며, 호식이 머리를 긁적였다.

“아니, 사장님. 정말 이러지 않으셔도 된다니깐…….”

“아닙니다. 두 분 모두 정말 감사합니다. 사실 이번에 세금까지 모조리 저희가 떠안게 되었으면, 저희 직원들 급여지급을 불가피하게 연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빚을 내서라도 모두 주고 싶은 심정이지만, 이미 한도 끝까지 차 있는 상황이라…….”

잠시 말끝을 흐리며, 하청업체 사장이 도윤에게 시선을 돌렸다.

“다시 한 번 정말 감사드립니다, 검사님.”

도윤이 옅게 미소 지었다.

“어려운 일 있으시면 언제든지 말씀하십시오. 수사에 필요한 증거는 제가 모두 가지고 있으니까요.”

말을 하던 도윤이 손에 쥔 카메라를 눈앞에 휘휘 흔들어 보였다.

“예. 정말 감사드립니다.”

눈물을 흘리며 연신 고개를 숙이던 하청업체 사장이, 이윽고 인사를 마치고 조금씩 멀어져 가기 시작했다.

그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던 호식이, 이내 입을 열었다.

“이걸로 첫 번째 목표는 클리어?”

“…그래.”

“지금에서야 하는 이야기지만…….”

“……?”

호식이 말끝을 흐리자, 도윤이 고개를 갸웃한다.

“넌 정말 대단한 놈이야.”

이어지는 호식의 말에 도윤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진심이야. 니가 내 친구라는 게, 정말로 자랑스러울 정도로…….”

“안 하던 짓 하지 마라, 소름 돋을 것 같으니까. 그보다…….”

잠시 자신의 팔을 문지르던 도윤이, 힐끗 하늘을 바라본다.

옅게 노을이 지고 있는 모습이,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허비한 모양이다.

“내일이었지?”

“뭐가?”

도윤의 물음에 호식이 고개를 갸웃했다.

“탄핵소추안.”

“아……!”

이내 알아들었다는 듯 짝 하고 손뼉을 친 호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나라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현직 대통령 탄핵 소추안이라니… 미쳐 돌아간다, 미쳐 돌아가.”

“한 번만 있을 일도 아닌데…….”

“응? 뭐라고?”

도윤이 들릴 듯 말 듯 작게 중얼거리자, 호식이 반문했다.

“아니.”

조용히 고개를 저은 도윤이 말을 잇는다.

“정치인들은 물론이고, 재계 인사들의 시선까지 모두 저쪽으로 쏠려 있어. 우선, 이번 건수로 명성뿐만 아니라, 이와 연관된 모든 대기업들이 함부로 움직이지 못할 거야.”

“응? 그게 무슨…….”

“내가 굳이 신분을 밝힌 이유. 뭐라고 생각해?”

도윤의 말에 호식이 제 머리를 톡톡 두들기며 말한다.

“그냥 속 시원하게 말해 주지?”

“가뜩이나 탄핵소추안 건으로 온 신경이 쏠려 있는 판국에, 자신들이 뒤에서 저지르던 더러운 횡포가 현직 검사에게 발각되었지. 내가 그 결정적인 증거를 쥐고 있다는 것도, 분명히 아까 그놈이 제대로 전달할 테고.”

“…….”

“제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할 놈들이 아니라는 것, 알잖아? 언론을 막든, 증거를 빼앗으려고 하든, 해결책을 찾을 때까지 최대한 몸을 수그리고 있을 확률이 커. 고작 며칠 사이에 몸을 움직일 정도로, 미련한 놈들은 아닐 테니까.”

“설마…….”

호식의 두 눈이 조금씩 커지기 시작했다.

그런 호식을 보며, 도윤이 씨익 미소 지었다.

“우리는 그 틈에 비룡을 인수한다.”

“……!”

“시간이 관건이야. 최대한 빨리 움직여야 해.”

“잠깐, 잠깐만.”

호식이 곧바로 움직이려는 도윤을 급히 멈춰 세웠다.

“아무리 비룡이 파산 직전이라지만, 우리는 그 사장을 단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잖아. 우리한테 회사를 매각할 거라고, 어떻게 그렇게 확신하는데?”

‘그야, 예지의 대가 능력으로 이미 봤으니까…….’

순간 머릿속에 떠오른 말을 지워 낸 도윤이 대답한다.

“제안을 해야지. 그 사람이 절대 거부할 수 없는 제안.”

“절대 거부할 수 없는 제안?”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는 호식을 보며, 도윤이 말을 잇는다.

“서로 윈윈할 수 있는 사업 전략이니까, 그쪽에서도 거부하지는 못할 거야. 그리고…….”

잠시 말끝을 흐리던 도윤이 옅게 미소 지었다.

“그 사람, 나랑 초면도 아니거든.”

“뭐라고?”

곧이어, 도윤의 말이 이어질수록 호식의 두 눈은 점점 커져 가기 시작했다.

이내 도윤이 모든 사정을 설명했을 때.

두 사람의 얼굴에는 똑같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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