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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잡는 회귀검사-102화 (102/174)

102화 준비

“도윤이!”

지금 막 지검장실 안으로 들어서는 도윤을 보며, 버선발로 뛰쳐나온 정승만이 도윤의 몸을 와락 끌어안았다.

“참 보기 힘들구만. 전화로만 얘기하지 말고, 자주 보고 하자고. 응?”

“하하하…….”

정승만의 품에 안긴 채 도윤이 멋쩍은 웃음을 터뜨렸다.

사실 도윤이 안겨 있다는 표현도 이상했다.

170센티미터가 겨우 넘는 정승만이 180센티미터가 훌쩍 넘는 도윤을 안고 있는 모습은, 오히려 정승만이 도윤에게 안겨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자, 자. 일단 앉자고. 뭐 줄까? 커피? 녹차?”

“차는 괜찮습니다. 많이 마시고 왔거든요.”

옅은 미소를 입에 문 채, 조용히 고개를 젓는 도윤을 보며, 정승만도 그 맞은편에 털썩 주저앉았다.

잠시 도윤의 얼굴을 요모조모 뜯어보던 정승만이, 말을 잇는다.

“어째 볼수록 이렇게 이뻐 보이는지. 너는 내 보물이야, 보물. 인물도 날이 갈수록 살아나는구먼. 허허허.”

너털웃음을 터뜨리는 정승만을 보며, 피식 웃음을 터뜨린 도윤이 말한다.

“자꾸 금칠만 하시면 부담스러워서 도망갈 겁니다.”

“어허, 금칠이라니. 실체적 진실만을 추구하는 검사가, 없는 말을 막 지어내겠나? 다 팩트야, 팩트.”

“이만 일어나 보겠습니다.”

도윤이 진짜 일어날 기세를 보이자, 정승만이 급히 손을 내저었다.

“에헤이, 그 친구 참. 농담도 못 하겠군. 그만할 테니까 앉아. 얼른.”

“…….”

다시 제자리에 주저앉는 도윤을 보며, 정승만이 말한다.

“그래, 며칠 안 남았지? 이제 진짜 돌아오는군.”

“제 자리, 이미 치우신 것 아닙니까?”

“무슨 그런 섭섭한 소리를. 없는 자리를 만들어 내서라도 줘야 할 인재에게. 니 자리는 내가 딱 만들어 놨으니, 군말 말고 그쪽으로 가.”

“…….”

정승만의 말에 무언가 말하려던 도윤이 다시 입을 다물었다.

묘한 눈초리로 자신을 바라보는 정승만의 시선을 느꼈기 때문이다.

“…뭡니까, 그 눈빛은?”

“그래, 자리 얘기하니까 갑자기 생각났는데…….”

정승만이 음흉한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잇는다.

“그 또라… 아니, 아니지.”

짐짓 고개를 흔들던 정승만이 곧이어 묻는다.

“박 검사는, 어떻게 꼬셨나?”

“박 검사라면…….”

도윤이 고개를 갸웃하며 말끝을 흐리자, 정승만의 미소가 한층 짙어졌다.

“이미 보고 들은 게 있는데 발뺌할 생각은 말아.”

“대체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건지…….”

“어허.”

짐짓 턱을 곧추세운 정승만이 곧장 도윤에게 으름장을 놓았다.

“박보윤이 말이야. 무언가 썸씽이 있었을 것 아닌가? 우리 사이에 뭘 계속 모른 척이야? 낱낱이 고해 봐.”

“예?”

잠시 멍한 표정으로 정승만을 바라보던 도윤이 이내 입을 열었다.

“설마 제가 아는 그 박보윤 검사 말씀이십니까?”

“아, 니가 알고, 내가 아는 박보윤이가 하나밖에 더 있겠어? 아니면, 뭐 동명이인이라도 알고 있는 거야?”

애가 타는지, 제 가슴을 탁탁 두드리며 말하는 정승만을 보며, 도윤이 말한다.

“왜 박보윤 검사를 저한테 찾으십…….”

“아, 너 진짜 계속 그럴래!?”

도윤이 채 말을 잇기도 전에 정승만이 고함쳤다.

외부에 알려진 사실은 아니지만, 정승만이 가장 관심 있어 하는 분야 중 하나가 이런 사내 연애사였다.

누구누구가 누구누구와 사귀네, 하는 소식들은 무료하고 딱딱한 정승만의 공직 생활에 소소한 즐거움을 주곤 했기 때문이다.

“그 박보윤이가 너랑 같은 특수부에 가고 싶다고 하잖아. 이래도 계속 모르는 척할 거야?”

“박보윤 검사가… 특수부에요?”

“너, 정말…….”

순간 도윤이 정색을 하며 말한다.

“제가 정말 박보윤 검사를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이십니까?”

“…….”

도윤의 물음에 정승만이 입을 다물었다.

잠시 미심쩍은 눈초리로 도윤을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던 정승만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정말 모르나?”

“모릅니다. 정말로.”

“…….”

슬쩍 미간을 찌푸리는 정승만을 보며 도윤이 말을 잇는다.

“대한민국 사람들 중에 박보윤 검사를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저도 딱 그뿐입니다. 같은 건물에 있으면서, 마주친 적도 없는데요.”

“음…….”

아무래도 도윤이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아 보이는지, 잠시 침음을 흘리던 정승만이 아쉬운 탄성을 내질렀다.

“아쉽군. 오랜만에 사마귀 짝짓기를 볼 수 있었는데…….”

“예?”

“아니.”

도윤의 반문에 또 한 번 한숨을 내쉰 정승만이 순간 고개를 갸웃한다.

“그런데, 걔는 너를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

“아니, 실은… 니가 갑작스럽게 휴직을 하고, 니 자리가 공석이 되었을 때 그쪽에 박보윤이를 보냈거든. 아무리 신임 검사들이나 하는 자리라지만, 비워만 둘 수는 없는 자리니까.”

“…박보윤 검사에게 지게꾼 노릇을 시켰다구요?”

도윤이 놀라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럼 어쩌겠나? 부서 티오 배분, 검찰 짬밥. 그 모두를 고려해도 박보윤이 말고는 답이 안 나오는데.”

“…….”

이어지는 정승만의 말에 도윤이 입을 다물었다.

사실 지게꾼 검사가 초임 검사들이 주로 하는 보직이기는 하지만, 절대 공석이 되어서는 안 되는 보직이기도 했다.

특수부니, 공안부니 하는 곳이야 소위 ‘한철 장사’라고, 기획 중인 수사 1건만 제대로 마무리 짓고 나면, 곧바로 자체 휴식기에 돌입하기 때문에 때에 맞춰 바짝 조여 주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지게꾼 검사들은 아니다.

검찰에서 취급하는 사건들의 구십 퍼센트 이상은 그쪽에서 처리된다.

술값을 떼였다든지, 인터넷 사기를 당했다든지 하는 소소한 고소 사건부터 폭행, 절도, 단순 살인 사건까지.

현장을 나가 보기는커녕, 그야말로 사무실 의자에 앉아 서류 더미에 파묻혀 산다.

그런 상황에서 검사 한 명이 빠진다?

그렇게 되면, 아마 남아 있는 검사들마저 모조리 제집으로 도망갈 것이다.

“…박보윤 검사가 가만히 있던가요?”

“너도 소문 들어서 알고 있을 텐데?”

“…….”

오히려 정승만이 되묻자, 도윤이 ‘끙’ 앓는 소리를 내며 입을 다물었다.

“저, 미움 많이 받겠군요.”

“미움만? 인사발령 초창기 때만 해도, 돌아오면 사지 하나는 분질러 놓겠다고 이를 바득바득 갈고 있었는데?”

“…….”

정승만의 말에 도윤이 움찔 몸을 떨었다.

“그래서, 더더욱 이해가 안 간단 말이야.”

“……?”

의문스러운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도윤을 보며, 정승만이 말을 잇는다.

“박보윤이도 이번에 특수부에 지원했어.”

“박보윤 검사가… 특수부에요?”

“그래. 그동안 고생한 것도 있고, 웬만하면 원하는 대로 보내 줄 생각인데, 문득 궁금해져서 왜 특수부에 가고 싶은 건지 물었더니…….”

힐끗 도윤의 위아래를 훑어보던 정승만이 계속 말한다.

“…너 때문이라는군.”

“…예?”

도윤이 더더욱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한숨을 내쉰 정승만이 말한다.

“니가 그러니까, 더 혼란스럽다. 이 얘기는 여기까지 하지. 니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건 아닌 것 같으니까. 뭐, 조금 지켜보면 될 테지.”

“…….”

“그보다…….”

정승만이 한층 낮아진 목소리로 말한다.

“이렇게 얼굴이나 보자고 찾아온 건 아닐 테고, 복직 얘기 말고, 나한테 할 말 없나?”

“…….”

정승만의 두 눈에 서린 강렬한 열망을 읽었을까?

잠시 그 두 눈을 바라보던 도윤이 곧바로 입을 열었다.

“탄핵 결과. 어떻게 예상했는지 알고 싶으신 거죠?”

“그래.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뭐 단순히 감이 좋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니 성격을 봤을 때 단순히 감에 의존하는 스타일은 아닐 것 같아서 말이야.”

사실 이번 대통령 탄핵 결과는 정승만에게도 상당히 중요했다.

검찰총장의 임기는 2년.

다시 말해, 현 검찰총장인 김관우의 임기는 곧 끝이 난다.

사실, 대통령이 바뀌게 되면 남은 임기에 상관없이, 검찰총장은 물론이고, 대부분의 정부기관장들 얼굴 또한 바뀐다.

가시밭길을 걷고, 또 걸어, 마침내 권력을 쥐게 된 대통령이 그동안 자신에게 반기를 들었던 유력인사들을 가만히 놓아둘 리가 없다.

자신의 입맛대로 정책을 펼쳐 내기 위해, 자신의 측근들을 곁에 두는 것은 필수이기도 했고 말이다.

그런 이유로, 작년, 대통령이 바뀌고 나서 다른 대부분의 유력기관장들의 얼굴이 갈아 치워졌지만, 검찰총장 자리만큼은 예외였다.

김관우가 워낙 검찰 내 신임이 두터운 인물이었기도 했지만, 정치판에 전혀 관심이 없는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여당 입장에서도, 물론 자신 쪽 사람을 앉히면 좋기야 하겠지만, 굳이 임기가 1년이나 남은 총장을 건드려 검찰 내에 불협화음을 일으킬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검찰총장이나 되는 자리에, 여당 쪽 사람을 앉히려 하는 것을, 야당에서 가만히 보고만 있지도 않을 것이고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정승만은 이번 탄핵소추결과가 예상대로 흘러간 것에, 가슴 깊이 안도했다.

만약 탄핵소추안이 가결되어, 대통령이 바뀌게 되었더라면…….

차기 검찰총장 후보자들 또한, 전혀 새로운 인물들로 채워졌으리라.

생각을 마친 정승만이 도윤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며 묻는다.

“얘기하기 곤란한가?”

그냥 탁월한 감각과 머리가 좋아서, 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검사로서 수십 년간의 경험이 정승만 스스로 그 사실을 납득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한 가지 추측할 만한 건…….

도윤에게, 정치권 내에 숨은 조력자가 있다.

그리고, 그 정보를 바탕으로 대략적인 흐름을 유추해 낸다.

이것 또한 불가능할 정도로 쉽지 않은 일이지만, 단순히 감이라고 하는 것보다는 납득이 갔다.

정승만의 눈빛을 느낀 도윤이 쓰게 웃었다.

상대방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느 정도 짐작이 갔기 때문이다.

“부모님도 없는 고아에, 고졸 출신. 줄도, 빽도 없는 제가 뭐 대단한 걸 숨기고 있겠습니까?”

“…….”

“아무래도 안 믿으시나 보네요.”

짧게 한숨을 내쉰 도윤이 무언가 곰곰이 고민하는 듯하더니, 이내 말을 잇는다.

“제 입으로 이런 말씀 드리긴 뭐하지만… 또 한 번 제 능력을 증명해 보여야겠네요. 마침, 그 일 때문에 지검장님을 뵈러 온 것이기도 하고.”

“그 일?”

이어지는 도윤의 말에 정승만이 고개를 갸웃했다.

“예. 건수 하나 물었거든요.”

말을 마친 도윤이 씨익 웃으며 품에서 카메라를 꺼내 좌우로 흔들었다.

“지금 재계와 정치판에 벌어진 혼란을, 어느 정도 분산시킬 수 있는 카드입니다. 수사, 허락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들어는 보지.”

고개를 끄덕인 도윤이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정부로부터 연체이자 지급을 명령받은 대기업들의 갑질과 횡포.

하청업체 사장이 겪은 일들과 자신들이 보고 들은 일들.

그 모든 것을 촬영하게 된 경위까지.

이윽고 도윤이 모든 설명을 마쳤을 때, 정승만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쉰다고 휴직계 낸다더니, 할 짓은 다 하고 다니는군.”

“허락해 주시는 겁니까?”

“…조금 생각은 해 보지.”

무언가 심술 맞은 표정으로 입을 다무는 정승만을 잠시 바라보던 도윤이 말을 잇는다.

“지검장님한테도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는데요?”

“뭐, 그게 무슨…….”

“얼마 안 남으셨잖아요?”

재차 되물으려던 정승만보다 한 박자 앞서, 도윤이 곧바로 마지막 말을 잇는다.“인사청문회.”

“……!”

“그 전쟁터에서, 살아남으셔야 하잖아요?”

지검장실 내부에 침묵이 내려앉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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