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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잡는 회귀검사-105화 (105/174)

105화 계좌 추적

똑똑똑.

10평이 조금 넘어 보이는 크지도, 작지도 않은 사무실 내부에 노크 소리가 조용히 울려 퍼졌다.

“네, 들어오세요.”

나무로 된 고풍스러운 책상 앞 의자에 앉아, 한참 신문지를 들여다보고 있던 노년의 사내가 고개를 들어 출입문을 향해 말했다.

환갑이 넘은 나이임에도 꼿꼿하게 바로 선 체격과 부드럽게 흘러내린 가르마 머리, 쳐진 눈꼬리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상당히 선한 인상을 심어 주게 만드는 인물.

사내의 이름은 민수성.

현직 국회의원이자 제1집권여당의 차기 당 대표로 거론되는 정치계의 또 다른 거물 중 한 사람이었다.

“실례하겠습니다, 의원님.”

민수성 의원이 말을 마치자, 출입문 밖에서 곧바로 반응이 왔다.

잠시 후 조심스럽게 출입문이 열리더니, 중년의 사내가 사무실 내부를 향해 들어온다.

“의원님, 손님이 찾아오셨습니다.”

민수성 의원을 향해 한차례 깊게 허리를 숙인 중년 사내가 말했다.

일반적으로 국회의원 1명당 4급 보좌관이 2명, 5급 비서관이 2명, 6·7·9급 비서 각 1명에, 유급 인턴 2명.

총 9명의 보좌진을 둘 수 있는데 지금 말하고 있는 중년 사내가 바로, 민수성 의원의 수석 보좌관이었다.

“손님이요? 오늘 일정이 따로 있었던가요?”

아랫사람에게도 꼬박꼬박 반공대를 하는 것으로 유명한 민수성 의원이 고개를 갸웃했다.

“아닙니다. 예정되어 있던 일정은 아닌데…….”

수석 보좌관이 곤란한 표정으로 말끝을 흐렸다.

“음…….”

수석 보좌관인 중년 사내의 반응에 민수성 의원이 잠시 침음을 삼켰다.

현직 국회의원의 수석 보좌관 정도 되는 직급의 인물이면, 어지간한 사람들은 그 선에서 처리할 수 있다.

굳이 이렇게 미리 약속조차 하지 않고 찾아온 불청객에 대해, 자신에게 통보할 필요조차 없다는 말이다.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수석 보좌관이 이런 얘기를 한다는 것은, 분명 자신의 선에서 처리할 만한 인물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문득 호기심이 동한 민수성 의원이 묻는다.

“누가 찾아왔죠?”

“서울지검 정승만 검사장입니다.”

“승만이?”

민수성 의원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정승만이 자신을 찾아왔다는 사실 자체가 놀라운 게 아니었다.

문제는 정승만이 자신을 찾은 시기.

인사 청문회를 며칠 남겨 두지 않은 검찰총장 후보자가 현직 국회의원을 만나기 위해 찾아왔다.

설령 당사자가 아무런 의도가 없다 하더라도, 글 쓰기 좋아하는 기자들은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청문회 전까지는, 사소한 행동 하나까지 조심하라고 그렇게 일렀거늘, 쯧…….”

민수성 의원이 가볍게 혀를 찼다.

“그래서 저도 어지간하면 청문회 이후에 찾아뵙는 게 나을 것 같다고, 말은 했습니다만…….”

수석 보좌관의 말에 민수성 의원이 미간을 찌푸렸다.

잠시 고민하는 듯하던 민수성 의원이 들여보내라는 듯 손짓한다.

“이미 온 걸 어쩌겠어요. 꼭 하고 싶은 말이라도 있는 모양이지. 들여보내 주세요.”

“알겠습니다.”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인 수석 보좐이 출입문 밖을 향해 걸어 나갔다.

잠시 후, 수석보좌관과 함께 두 명의 사내가 사무실 안으로 들어온다.

“…응?”

먼저 들어오는 정승만을 바라보고 있던 민수성 의원이, 뒤이어 들어오는 젊은 사내를 발견하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의원님.”

정승만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하자, 다시 그쪽으로 시선을 돌린 민수성 의원이 인자한 미소를 짓는다.

“어서 오게.”

정승만은 민수성 의원이 말을 놓는 몇 안 되는 인물 중 하나였다.

그만큼 두 사람 사이에 특별한 친분이 있다는 뜻이리라.

“처음 뵙겠습니다, 의원님.”

자신이 화답함과 거의 동시에 정승만을 따라 들어온 젊은 사내가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그쪽은……?”

“아, 이쪽은…….”

정승만이 대신 대답하려는 순간, 젊은 사내가 한 박자 빨리 대답한다.

“정승만 검사장 밑에서 일하고 있는 강도윤이라고 합니다.”

도윤의 대답에 순간 민수성 의원의 눈빛 사이로 이채가 스쳐 지나간다.

“강도윤? 강도윤 검사라면…….”

잠시 고민하는 듯하던 민수성 의원이 살짝 눈을 크게 떴다.

서울지검 검사 강도윤.

최근 몇 년 사이에, 법조계와 재계뿐만 아니라 정계에까지 그 이름을 널리 알린 인물.

특히나, 재계의 거물 중 하나인 명성의 오길태를 구속시키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워, 신임 검사임에도 차기 검찰총장으로 유력한 정승만의 신임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인물.

평소 정승만을 포함한 주변 사람들을 통해 그 활약상을 들으면서, 다 늙어 문드러진 가슴이 참으로 오래간만에, 얼마나 설레었던가?

개인적으로 꼭 한 번 만나고 싶었던 인물이 눈앞에 있다는 사실을 인지한 순간, 민수성 의원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 번 만나봤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하셨던 게 생각이 나서… 같이 왔습니다.”

“그건 참 잘했군. 유명 인사를 앉아서 맞이할 뻔했어.”

도윤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선 민수성 의원이 곧바로 손을 내밀었다.

“혹시… 날 아나요?”

“물론입니다, 의원님. 현 여당의 정신적 지주이신 민수성 의원님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허허허…….”

자신의 손을맞잡으며 작게 고개를 숙이는 도윤을 보며, 민수성 의원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분명 입에 발린 소리임에도, 썩 기분이 나쁘지 않다.

그만큼 도윤의 첫인상이 자신의 마음에 들었다는 반증이리라.

“아무튼 잘 오셨어요. 두 사람 다, 일단 앉지요.”

정승만과 도윤이 곧바로 자리에 착석하자, 한차례 고개를 숙인 수석 보좌관이 이내 출입문 밖으로 걸어 나갔다.

쿵!

작은 소음과 함께 출입문이 완전히 닫히자, 자리로 가 앉은 민수성 의원이 입을 열었다.

“그래, 어쩐 일이지? 이런 시기에 나를 찾아오는 게 썩 좋은 선택은 아니라는 거, 승만이 너도 잘 알 텐데…….”

공(公)은 공이고, 사는 사(私)다.

이런 부분에 있어 확실한 성격인 민수성 의원이 반가운 기색을 지우곤, 말을 잇는다.

목소리에는 다분히 책망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혹시나 그럴 일은 없겠지만, 만약 안부차 들른 거라면…….”

민수성 의원이 말끝을 흐리자, 맞은편에 앉아 있던 정승만이 쓰게 웃었다.

“이거 말도 제대로 꺼내 보기 전에 숨이 막혀 죽겠습니다, 의원님.”

정말로 답답하다는 듯 목에 멘 넥타이를 살며시 풀어헤치는 정승만을 민수성 의원이 빤히 바라보기 시작했다.

무언의 압박을 받은 정승만이 결국 한숨을 내쉬곤 입을 열었다.

“실은 여기 이 친구가, 의원님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해서, 같이 왔습니다.”

“…강 검사님이?”

힐끗 도윤을 바라본 민수성 의원이 여전히 의문이 가시지 않은 표정으로 묻는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런 거라면 굳이 자네가 오지 않았어도 전화 한 통이면…….”

“저와도 관련된 일이라고 얘기를 해서요.”

정승만의 대답에 민수성 의원이 입을 다물었다.

이제는 두 사람의 시선 모두가 도윤의 입으로 모여들자, 잠시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던 도윤이 입을 열었다.

“말씀대로… 제가 의원님을 뵙고 싶어 이렇게 무례를 무릅쓰게 되었습니다.”

“무례라니, 가당치도 않아요. 나는 단지 이 친구가 걱정이 되어서…….”

정승만을 향해 진심으로 걱정 어린 눈빛을 보내는 민수성 의원을 보며, 도윤이 옅게 미소 지었다.

“말씀 편하게 하셔도 됩니다, 의원님.”

“아, 나는 이게 편해서…….”

가볍게 손사래 치는 민수성 의원을 보며, 작게 고개를 끄덕인 도윤이 말을 잇는다.

“검사장님의 동행 또한 제가 부탁드린 일입니다.”

“강 검사님이요?”

“예.”

“왜…….”

“그 전에, 한 가지 꼭 질문드리고 싶은 것이 있는데,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

민수성 의원이 입을 다문 채, 도윤의 두 눈을 바라본다.

“…제가 대답할 수 있는 것이라면…….”

민수성 의원이 묘한 분위기 속에 조용히 대답하자, 감사하다는 듯 짧게 고개를 숙인 도윤이 곧바로 입을 열었다.

“탄핵소추안이 기각된 지금, 상대측에서 이대로 물러날 거라 생각하십니까?”

“……!”

갑작스럽게 훅 하고 들어오는 도윤의 모습에, 당황감을 감추지 못하고 민수성 의원이 더듬더듬 말한다.

“그, 그게 무슨…….”

“질문 그대로입니다. 상대 당에서, 정말 이대로 물러날 것으로 보십니까?”

“…….”

민수성 의원이 멍한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한참이나 도윤을 바라보던 민수성 의원이 어느 정도 냉정을 되찾고 말한다.

“…탄핵이 기각되고, 여론마저 완전히 돌아선 지금, 딱히 신경 쓸 문제는 없다고 생각하는데…….”

민수성 의원의 말대로 이번 탄핵소추 기각으로 국민들의 여론은 완전히 돌아섰다.

아니, 이미 탄핵소추안이 기습적으로 발의되던 그 순간부터 여론은 돌아서 있었다.

물리적으로 여당의 의원들을 차례로 끄집어내고 기습적으로 감행한 탄핵소추안을 국민들이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을 리가 없었다.

자그마한 촛불이 대한민국 전역을 뒤덮었고, 국민들의 분노는 바로 다음 달 4월에 치러진 제17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명백히 드러났다.

여당이 과반이 넘는 152석을 차지했고, 제1당이 121석, 제2당은 9석이라는, 역사에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총선 결과가 발생한 것이다.

여소야대 현상이 극명하게 나타난 현재, 민수성 의원이 상대 당들의 반응 따위를 걱정할 리가 없었다.

이미 승부는 완전히 기울었기 때문이다.

“생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는 말이 있습니다.”

“생쥐라…….”

도윤의 말을 따라 중얼거리던 민수성 의원이 순간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아무리 세가 기울었다지만, 상대는 제1당에 소속된 현직 국회의원들이었다.

민수성 의원은 그런 인물들을 생쥐라고 칭하는 도윤이 재미있었다.

“무슨 말씀을 하고 싶은 건지, 가감 없이 얘기해 보세요.”

어느새 자세를 바로 한 민수성 의원을 보며, 고개를 끄덕인 도윤이 말을 잇는다.

“여론이 자신들에게서 완전히 등을 돌린 현재, 저쪽에서는 어떻게 해서든 그 여론을 돌리려 할 겁니다. 이미 지난 총선에서 크나큰 출혈을 겪은 만큼, 실수 따위도 없겠죠.”

“…….”

“아마 생각지도 못한 더러운 수를 들고 나올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리고… 그 수는 고스란히 이번 인사청문회에도 영향을 미치겠죠.”

“인사 청문회라… 이제 정말 며칠 남지 않았는데, 그 며칠 사이에 저쪽에서 그 비장의 수를 가지고 나올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나요?”

“예.”

도윤이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며칠도 아니다.

바로 내일, 또 한 번 대한민국을 발칵 뒤집어엎을 사건이 벌어질 것이다.

“…강 검사님이 그렇게 확신하는 근거. 있나요?”

“…….”

민수성 의원의 물음에 도윤이 입을 다물었다.

자신이 이렇게 확신하는 이유.

어떻게 설명해야 눈앞에 있는 사람을 납득시킬 수 있을까?

아니, 도윤 자신은 그 사실을 어떻게 이리 확신하고 있는 것인가?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 때문에, 도윤 또한 직접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이 자리에 왔고 말이다.

잠시 민수성 의원의 두 눈을 마주 바라보던 도윤이, 이윽고 입을 열었다.

“한 가지만, 확인해 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한 가지?”

민수성 의원이 고개를 갸웃하며 반문했다.

민수성 의원의 두 눈에 시선을 고정한 채, 도윤이 말을 잇는다.

“통장.”

“…….”

“의원님 명의로 된 통장들을, 지금 확인해 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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