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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잡는 회귀검사-108화 (108/174)

108화 음해(陰害)

“민 의원!”

지금 막 회의실 내로 들어서는 민수성 의원과 그를 뒤따르는 도윤과 정승만을 발견한 평화당 대표, 박영동이 소리쳤다.

“늦었습니다.”

“아니 그게 지금……!”

무어라 고함치려던 박영동 당 대표가 멈칫했다.

자신의 눈앞에 있는 민수성이 은은한 미소를 입에 물고 있었다.

마치, 이번 일에 대해 모두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여유로운 자세로 말이다.

“…알고 있었소?”

“예, 대표님. 여기 이 친구 덕분에요.”

민수성이 뒤를 가리키며 말하자, 순간 박영동 대표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쪽은……?”

생전 처음 보는, 상당히 젊고 잘생긴 사내가 민수성의 뒤에 서 있었다.

아무리 많이 잡아도, 서른은 넘지 않았을 것 같은 사내.

정치 인생만 30년이 넘는 박영동 대표의 입장에서는, 도윤이 그야말로 머리에 피도 마르지 않은 어린아이로 보였다.

그런데, 이런 아이의 도움으로 지금 이 엄청난 사실들을 미리 알 수 있었다?

박영동 대표는 그 말의 의미가 선뜻 이해가 가지 않았다.

자신의 시선에 가볍게 고개를 숙이는 도윤을 잠시 묘한 눈초리로 바라보던 박영동 대표가 또 한 번 멈칫한다.

“정승만 검사장……?”

“오래간만에 뵙습니다, 대표님.”

도윤의 옆에 서 있던 정승만이 옅게 미소 지은 채 고개를 숙였다.

“그래요. 이런 자리에서 맞이해야 할 분이 아닌데, 미안합니다. 아시다시피, 상황이 상황인지라…….”

“이해합니다.”

시원스러운 정승만의 대답에도 박영동 대표는 불안한 기색을 지울 수 없었다.

이번 일과 관련하여, 검찰에 수사 의뢰가 접수된 직후이다.

그런 상황에서, 차기 검찰 총장으로 유력한 서울 지검 검사장 정승만이 이곳을 방문했다.

당 전체를 책임져야 하는 박영동 대표의 입장에서, 상당히 부담스러운 상황이었다.

정승만을 빤히 바라보던 박영동 대표가 조심스레 묻는다.

“그런데, 이곳은 어쩐 일이십니까? 설마…….”

“대표님이 걱정하시는 그런 일은 아닙니다. 단지…….”

“……?”

정승만이 말끝을 흐리자, 박영동 대표가 조금 긴장된 표정을 지었다.

그런 박영동 대표를 바라보며, 희미하게 미소 지은 정승만이 바로 옆에 있는 도윤을 가리킨다.

“제가 여기 이 친구의 직속상관입니다. 아끼는 부하가 걱정되어서, 보호자 노릇이라도 할까, 동행했을 뿐입니다. 저는 크게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음…….”

이어지는 정승만의 말에 박영동 대표가 침음을 삼켰다.

앞서 민수성 의원도 그렇고, 정승만 검사장도 마찬가지로, 눈앞에 있는 젊은 남자를 가리키고 있다.

‘도대체…….’

다시 도윤에게 시선을 돌린 박영동 대표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쩌면, 이번 일의 해결사 노릇을 할, 황금 열쇠를 쥐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인물.

“가만… 정승만 검사장의 부하 직원이라면…….”

“반갑습니다, 대표님. 서울중앙지검 소속, 강도윤 검사라고 합니다.”

“……!”

이어지는 도윤의 대답에 박영동 대표가 눈을 크게 떴다.

서울중앙지검 검사 강도윤.

언론에서 몇 번인가, 분명히 들어 본 기억이 있는 이름이다.

하루에도 수십, 수백 명의 사람들을 만나는 자신의 위치를 생각하면, 기억 속에 남아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범상치 않은 인물이리라.

“강도윤 검사라면, 혹시…….”

곰곰이 생각에 잠겨 있던 박영동 대표가 이내 정신을 차리곤 말끝을 흐리자,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민수성 의원이 입에 미소를 문 채 입을 열었다.

“대표님 생각이 맞으실 겁니다. 일전에, 몇 번이나 오춘화 회장을 물 먹였던…….”

“아!”

이윽고 생각이 났다는 듯 박영동 대표가 감탄사를 터뜨렸다.

이제야 기억이 났다.

정식으로 임용도 되기 전에 마약, 납치, 장기 매매 등 국내에서 연이어 발생한 충격적인 사건들을 해결하는데 결정적인 공을 세웠을 뿐만 아니라, 숨은 배후까지 밝혀낸 인재 중의 인재.

특히나, 검사라는 직업의 특성상 세간의 이목을 끄는, 스케일이 큰 사건을 오롯이 해결해 내면, 단번에 스타급 검사로 발돋움할 수 있다.

모래시계 검사 따위와 같은 별명도 얻고 말이다.

도윤 본인은 모르고 있었지만, 이쪽 바닥에서 도윤은 더 이상 이름 없는 신임 검사가 아니었다.

국민들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고, 저 거대한 명성이라는 괴물과 당당히 맞선 영웅이었다.

그런 인물이 이번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

짐짓 표정을 바로 한 박영동 대표가 도윤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젊은 영웅을 여기서 보는군요. 반갑습니다, 여러 모로 부족하지만, 평화당 대표를 맡고 있는 박영동이라고 합니다.”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대표님.”

도윤이 공손한 자세로 고개를 숙였다.

그런 도윤을 바라보는 박영동 대표의 입가에 어느덧 기분 좋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

저 나이 때, 저 정도 능력과 명성이면 충분히 자만심을 가질 만하건만, 그런 기색 따위는 전혀 없었다.

최소한, 박영동의 눈에 비친 도윤의 첫인상은 그랬다.

“어디 좋은 곳에 앉아서 담소라도 나누고 싶지만,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강 검사님이 이해해 줬으면 좋겠군요.”

박영동 대표가 힐끗 뒤쪽에 시선을 주며 말했다.

묘한 기대감이 서린 눈빛으로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는 평화당 의원들을 발견한 도윤이 한차례 쓰게 웃었다.

자신에게 보내오는 저 눈빛.

과연 여기서 ‘몰래 카메라였습니다!’ 따위의 말을 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갑작스럽게 떠오르는 실없는 생각에 도윤이 피식 미소 지었다.

아무래도 자신이 담이 많이 커지긴 했나 보다.

당 대표를 포함한 현직 국회 의원 십수 명을 눈앞에 두고, 이런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상념을 떨쳐 낸 도윤이 이내 입을 열었다.

“이해합니다. 짐작은 했지만, 설마 이 정도 파상 공세일 줄은 저도 예상하지 못했으니까요.”

도윤의 말에 박영동 대표가 멈칫한다.

“짐작이라… 마치, 이번 일이 벌어지기 전부터, 강 검사님은 예상을 하고 있었다는 것처럼 들리는데, 맞습니까?”

“어느 정도는요.”

“…….”

도윤의 대답에 박영동 대표가 입을 다문 채 그 두 눈을 빤히 바라보기 시작했다.

옆에 가만히 서 있던 민수성 의원 또한 그 모습을 흥미롭게 바라봤다.

어떻게 그 사실을 알게 되었는지, 워낙 일이 숨 가쁘게 돌아가 자신 또한 미처 물어 보지 못했던 문제였으니까.

이미 예상하고 있던 질문이었기에 도윤의 대답이 막힘없이 흘러나온다.

“검찰 내에서, 제가 명성그룹에 대한 집중적인 수사를 맡고 있는 것은 알고 계십니까?”

“뭐, 그렇겠지요. 일전에 있었던 일도 있고, 아무래도 여죄까지 파헤치는 건, 하던 사람이 쭉 계속 하는 게 나을 테니까요.”

박영동 대표가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박영동 대표 또한 수십 년을 검찰 조직에 몸담은 바 있는, 엘리트 코스만 밟아 온 검찰 출신 국회 의원이다.

검찰 내부의 관례라던가, 수사 방식 따위는 누구보다 빠삭하게 알고 있다는 말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명성그룹은 왜…….”

말을 잇던 박영동 대표가 순간 눈을 크게 떴다.

“설마…….”

“삐라나 투서 따위는 얼마든지 조작할 수 있습니다. 출근길에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것이 북측에서 살포하는 삐라이고, 누가 썼는지도 모를 투서 따위는 더 말할 것도 없죠. 중요한 것은…….”

“통장의 입수 경로. 설마, 명성그룹에서 민수성 의원의 통장을 가지고 있었단 말입니까?”

눈치 빠른 박영동 대표가 도윤의 말을 중간에서 끊고 물었다.

“10여 년 전, 기업 차원에서 전국 단위로 고아원 설립을 지원하는 사업을 시행했던 적이 있습니다.”

“아, 기억나는군요. 명성에서 이례적으로 수백 억이나 되는 돈을 무상으로 내놓았던 일이라, 그 무렵 명성에 대한 국민들의 이미지가 상당히 좋아졌던 때였죠.”

박영동 대표가 말을 마치자, 잠자코 있던 민수성 의원이 말한다.

“워낙 취지가 좋아서 저도 그때 작은 돈이나마 보탰던 적이 있습니다. 물론, 제 명의의 통장에 넣어서 도장과 함께 전달했죠.”

“그럼 그때…….”

잠시 말끝을 흐리던 박영동 대표가 으득 이를 갈았다.

“명성, 네 이놈들을…….”

“중요한 건, 당시 명성그룹 혼자서 그 일을 추진하지는 않았다는 겁니다.”

이어지는 도윤의 말에 박영동 대표가 멈칫했다.

“혼자서 일을 추진하지 않았다니, 그건 무슨……?”

“손뼉도 짝이 있어야 소리가 나는 법입니다. 사업을 추진하는 곳이 있으면, 그 사업에 대한 지원을 받을 곳도 있어야지요.”

“아, 보육원!”

박영동 대표가 감탄사를 터뜨렸다.

“지금 이 시점에서 필요한 사람은, 명성의 사람들을 제외하고 이번 일에 대한 내막을 모두 알고 있어 증언해 줄 수 있는 사람.”

도윤이 마지막 말을 마치자, 숨소리조차 내지 않고 있던 몇몇 의원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렇게까지나 얘기했는데도 도윤이 말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지 못하면, 감투만 쓴 멍청이 의원이다.

완전히 뒤바뀐 회의실 분위기 속에, 도윤이 조용하지만 힘 있는 목소리로 말을 잇는다.

“이제, 반격 시작입니다.”

* * *

“뭐라고……?”

휴대폰을 집어 든 박태산의 얼굴이 심각할 정도로 굳어 있었다.

“그게 무슨 소리냐. 강종팔이 사라졌다니!?”

이미 명성과 김문성을 통해 사건에 대한 내막을 모두 들은 박태산이었기에, 지금 상황에서 강종팔이라는 인물이 얼마나 중요한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전 대한보육원장 강종팔.

전국에 있는 보육원들을 관리했던, 10여 년 전 명성그룹과 고아원 추가 설립 사업을 진행했던 인물.

자리에서 물러난 지 벌써 5년 이상 지났고, 이제는 나이가 들어 병원에서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던 늙은이였기에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보좌관 3명을 병원 근처에 보내 놓은 게 취한 조치의 전부였으니까.

그런데, 그 늙은이가 갑작스레 병원에서 자취를 감췄단다.

심지어 지금은 그 위치조차 확인되지 않는단다.

“그걸 지금 말이라고 지껄이고 있는 거야!?”

박태산이 목에 핏대를 세우며 고함쳤다.

이미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낀 자유당 의원들은 동작을 멈추고 있던 상태였기에, 삽시간에 긴장된 분위기가 내부를 가득 채웠다.

“찾아! 무슨 수를 써서라도 찾아내, 이 새끼들아! 못 찾으면 서울로 돌아올 생각도 하지 마! 만약, 노망난 늙은이가 입이라도 잘못 벌렸다간…….”

우우웅, 우우웅.

예의 박 의원이라 불렸던 남자가 품 안에서 울리는 진동음에, 조심스레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어, 나야. 지금 좀 바쁘니까, 조금 있다가…….”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어 나가던 자유당 의원이 멈칫한다.

“뭐, 뭐라고?”

남자의 목소리가 제법 컸기 때문에 일순간 자유당 의원들의 시선이 남자에게 집중되었다.

그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박 의원이 회의실 한편에 비치된 TV를 향해 뛰어 갔다.

전원 버튼을 누르자, 곧바로 커다란 현수막이 스크린을 가득 채운다.

이내 박태산의 시선도 TV를 향해 홱 하고 돌아갔고…….

“이, 이, 미친……!”

그와 동시에 박태산이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천장 바로 아래에 멋들어지게 걸려 있는 현수막의 정체.

명성그룹과 자유당 김문성 의원의 음해(陰害)를 규탄한다는 내용의 현수막이다.

그리고 그런 현수막 아래로, 칠십은 훌쩍 넘은 듯한 노인이 휠체어를 타고 등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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