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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잡는 회귀검사-111화 (111/174)

111화 격파

마침내 단상 위에 올라선 도윤이 굳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반갑습니다. 서울중앙지검 강도윤 검사라고 합니다.”

마이크에서 입을 땐 도윤이 가볍게 허리를 숙이자, ‘찰칵’ 거리는 셔터 소리가 간헐적으로 들려왔다.

잠시 주변을 둘러보던 도윤이 조용한 목소리로 말을 잇는다.

“앞서 총장님의 말씀대로, 저희 검찰은 이번 일련의 사태에 대해 미리 인지를 하고 수사를 진행 중에 있었습니다.”

“미리 인지를 했다니요? 검찰에서 민수성 의원의 통장에 출처를 알 수 없는 돈이 입금되리라는 사실을, 사전에 알고라도 있었다는 말씀이십니까?”

성격 급한 한 기자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반문했다.

도윤이 그 기자를 향해 시선을 돌리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대체 무슨 근거로…….”

기자가 황당한 표정으로 말끝을 흐렸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표정으로 보니 다른 기자들 또한 그와 생각이 같은 듯했다.

기자들의 이런 의문은 당연했다.

민수성 의원의 통장에 그 출처를 알 수 없는 돈이 입금된 것이 불과 며칠 전 일이다.

김문성 의원의 말대로라면, 익명의 투서가 자신에게 도착한 것 또한 그와 비슷한 시각.

그런데, 검찰 쪽에서 이런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다?

민수성 의원의 통장을 감시라고 하고 있었다는 말인가?

현직 국회 의원들의 통장들에 대한 은행 전체에 압수 수색 영장을 집행하지 않고서야, 불가능한 일이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같은 방식으로 자신이 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상대 쪽에서 과연 어떤 표정을 지을지…….’

피식하고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애써 참은 도윤이 입을 열었다.

“투서는 김문성 의원만 받은 것이 아닙니다.”

“김문성 의원만 받은 것이 아니라니……?”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반문하는 기자를 보며, 도윤이 품 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들었다.

“저희 검찰에도, 민수성 의원의 통장에 입금된 돈과 관련한 투서 한 장이 접수되었습니다.”

“……!”

도윤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기자들이 눈을 크게 떴다.

“투서라니요? 민수성 의원을 포함한 일부 의원들이 정부를 전복시키려 한다는 투서가, 검찰에도 접수되었다는 말씀이십니까!?”

흥분하여 소리치는 기자를 보며 도윤이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그보다 훨씬 더 전에 투서가 접수된 것은 맞지만, 그 내용은 김문성 의원의 투서와는 상당히 다릅니다.”

“내용이 다르다니…….”

“추후, 이 투서의 복사본 또한 모든 언론사에 참고 자료로 배포할 예정이며, 그 핵심 내용은…….”

도윤이 굳은 얼굴로 잠시 말끝을 흐렸다.

몇몇 기자들이 긴장된 표정으로 꿀꺽 하고 마른침을 삼켰다.

지금까지의 상황만으로도 대단한 특종이다.

정부 전복이라는 엄청난 내용의 투서가 접수된 와중에, 이와 상반되는 내용의 증언이 등장했다.

단순히 한 사람의 증언일 뿐이라서, 직접적으로 눈에 보이는 증거를 손에 쥐고 있는 상대측에 비해서는 그 파급력이 약했지만, 이것만으로도 기삿거리는 충분했다.

단순한 사실을 하나의 스토리로 만들어 내는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바로 기자들이었으니까.

그런데, 그런 자신들에게 손수 종이와 펜까지 대령해 주겠다고 한다.

기자들 눈빛 사이의 반짝거림이 극에 달했을 때, 마침내 도윤이 입을 열었다.

“이 투서에는, 자유당 의원들이 민수성 의원을 정치적으로 추락시키기 위해, 어떠한 모략을 꾸미려 한다는 내용이 기재되어 있습니다. 물론…….”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오도카니 서 있는 박건우에게 잠시 시선을 던진 도윤이 말을 잇는다.

“전 대한보육원장 강종팔 씨의 증언과 마찬가지로, 민수성 의원의 통장을 쥐고 있는 명성그룹의 누군가가, 자유당 일부 의원들과 결탁하여, 이번 일을 계획하고 있다는, 그런 내용이었습니다.”

“……!”

기자들의 두 눈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콰앙!

삐이이이이이이.

순간 바로 옆에서 들려오는 굉음에 도윤이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소리가 난 진원지에는, 박건우가 손에 쥔 마이크를 바닥으로 집어던진 채, 죽일 듯한 눈초리로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마이크에서 듣기 싫은 기계음이 울려 퍼지자, 내부에 있던 사람들이 미간을 찌푸리며 귀를 틀어막았다.

어느새, 주변의 집중된 시선을 느끼며 박건우가 고함쳤다.

“모함입니다!”

“…….”

입을 다문 채 빤히 자신을 바라보는 도윤을 보며, 박건우가 재차 고래고래 고함치기 시작한다.

“익명의 투서 따위, 얼마든지 조작할 수 있습니다! 지금 검찰에서는, 누가 썼는지조차 모를, 정체를 알 수 없는 투서 한 장으로 저희를 마치 죄인인 양 몰아세우고 있습니다!”

“얼마든지 조작이 가능한 익명의 투서, 라고 하셨죠?”

잠자코 있던 도윤의 반문에, 박건우가 멈칫한다.

그 모습에 한 차례 피식 웃음을 터뜨린 도윤이 말한다.

“명성그룹의 부사장님은, 한 가지 착각하고 계신 것이 있습니다.”

“…….”

유난히 명성이라는 이름을 힘주어 말한 도윤이, 박건우의 두 눈을 빤히 바라보며 말을 잇는다.

“투서에 조작이 가해졌는지, 통장의 입수 경로는 어떻게 되는지, 혹은 이번 일련의 사태가 누군가의 모략인지, 정말로 정부를 전복시키려 하는 세력들의 치밀한 계획인지.”

“…….”

“어떤 것이 진실한 것인지 밝히기 위한 수사는 저희 검찰에서 합니다. 그런 일을 하라고 국민들이 피 같은 세금으로 저희들에게 월급을 주시고 있죠.”

입을 다문 채, 온몸을 부들부들 떠는 박건우를 잠시 바라보던 도윤이 이내 기자들을 향해 시선을 돌린다.

“누군가의 모략인지, 그게 아니면 명성그룹 부사장님의 말씀대로 모함인지. 실체적 진실을 밝히기 위해, 저희 검찰에서는 이번 일련의 사태에 대해 보다 면밀히 수사할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수사에 진전은 있었습니까!?”

한 기자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이제 검찰에서 이번 사태를 미리 인지할 수 있었던 이유나 수사 경위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기소편의주의(起訴便宜主義) 원칙 상, 특정 사건에 대한 수사를 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면 얼마든지 그 일을 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것이 검찰이었으니까.

지금 이곳에 모인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것은 단 한 가지.

과연 이번 사태의 진실은 무엇인가?

짐짓 자세를 바로 한 도윤이 기자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

눈을 크게 뜨는 기자를 보며 도윤이 말을 잇는다.

“투서들은 급이 한 단계 떨어지는 전문 증거(傳聞證據)였기 때문에, 저는  수사의 포커스를 맞춰야 될 곳은 민수성 의원 명의의 통장이라 생각했습니다.”

도윤의 말에 대부분의 기자들이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민수성 의원의 통장을 빼 버리고 나면, 애초에 성립할 수 없는 문제다.

검찰 입장에서는 통장에 대한 관계만 명확히 밝혀내면, 수사의 80퍼센트 이상은 해결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 사실을 기자들 또한 아주 잘 알고 있었다.

“통장에서 무엇인가, 특별한 단서라도 발견하셨습니까?”

또 다른 기자의 물음에 도윤이 옅게 미소 지었다.

일반적인 기자회견이라 함은, 발언자의 얘기가 모두 끝난 후에, 청자(聽者)인 기자들의 질의응답 시간이 이어지는 순서가 일반적이다.

그런데, 지금은 자신의 발언이 한창 이어지고 있는 와중에도, 스스럼없이 질문을 던져 댄다.

그만큼 기자들의 몸이 달아오를 대로 달아올랐다는 말이리라.

“예. 수사에 진척은 있었습니다.”

“진척이라면…….”

“우선, 통장에 돈을 입금하는 방식. 저희 예상대로 은행에 확인한 결과, 통장을 이용한 계좌 이체였습니다. 사방이 CCTV인 은행에 10억 원이나 되는 돈을 직접 가지고 가, 통장에 바로 입금시키기에는 방법을 이용하기에는 위험부담이 컸겠죠.”

“…….”

“여기서 문제는 모함이든, 모략이든, 이 10억 원은 뒤가 구린 일에 사용될, 시꺼먼 돈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돈을 이용하는데, 과연 정상적인 계좌를 사용했을까요?”

“대포 통장이었다는 말씀이십니까?”

기자의 반문에 도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말씀대로입니다. 이미 정체를 숨길 명분이 대외적으로 충분히 알려진 상황에서, 대포 통장을 이용하는데 거리낄 것은 없다, 라고 생각했겠죠.”

“…….”

“대포 통장의 명의자는 공상기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서울역 노숙자였습니다. 물론, 만 원짜리 지폐 몇 장을 받고, 통장을 넘겨준 그 사람은 자신의 통장이 이런 일에 이용된 사실을 전혀 모르죠.”

기자들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범죄자들, 특히나 조직을 갖춘 집단 단위의 범죄자들이 흔히 사용하는 수법이다.

IMF 이후, 길거리에 나앉은 노숙자들이 족히 수만, 그 이상은 되는 시대다.

소주 몇 병을 살 수 있는 푼돈만 쥐여 줘도, 제 명의의 통장이나 휴대폰을 개설, 개통해 줄 사람들이 지천에 널려 있다는 소리였다.

이렇게 매입한 통장이나 휴대폰은 위험 부담 또한 상당히 적다.

얇은 신문지를 이불 삼아, 차가운 바닥에 몸을 뉘인 채, 소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세상일에 무슨 관심이 있겠는가?

오히려 자신의 통장이 범죄에 이용되었다는 사실을 듣게 되면, 제발 교도소에 보내 달라고 비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였다.

살을 에는 한겨울에, 그곳만큼 추위를 피하기 좋은 곳도 없었으니까.

아마 지금 이 사태를 즐거운 마음으로 감상하고 있는 놈들도, 분명히 이 점을 생각하고 진행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놈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

이런 일을 대비하여, 지난 1년에 걸쳐 도윤이 해 온 일이 있지 않은가?

도윤이 자신감 넘치는 자세로 말을 잇는다.

“대포 통장이라는 사실이 확인되자마자, 저는 대포 통장을 매입하는 국내 모든 조직에 대한 정보를 뒤지기 시작했고, 수사를 진행하였습니다. 이용할 수 있는 모든 정보망을 가동했죠.”

“……!”

몇몇 기자들이 작게 입을 벌렸다.

지금 도윤이 하고 있는 말.

말이야 쉽다.

수사하는 사람 입장에서야, 이러이러한 사항을 수사했고, 그 결과 어땠다, 라고 말해 주면 그뿐이다.

전국에 대포 통장을 매입하는 모든 조직들을 수사했다.

대한민국에 그런 조직들이 한둘이겠는가?

최소 수십, 개인 매입자까지 합치면 수백까지도 될 수 있다.

그 모든 조직들을 검찰에서 확인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 도윤의 태도로 봐서는, 수사 중 무언가 확실한 단서를 발견한 것으로 보였다.

‘놀랍겠지. 이렇게 단시간에, 수사가 그 정도까지 진행되었다고 하면…….’

속으로 중얼거린 도윤이 힐끗 옆쪽에 서 있는 박건우를 돌아봤다.

아직까지는 긴장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지만, 한줄기 불안한 기색만은 역력히 드러났다.

자신의 시선을 느꼈는지 짐짓 여유로운 표정을 짓는 박건우를 보며, 도윤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그 여유로움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놈들은 모른다.

지난 1년 동안 자신이 무슨 일을 해 왔고, 어떤 일을 이루어 냈는지.

치밀한 계획 하에, 절대 들키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 아래에 얻어 낸 대포 통장.

이제, 그들의 확신을 깨부숴 줄 차례다.

“들어오세요!”

순간 도윤이 출입문을 향해 커다란 목소리로 고함쳤다.

“……?”

갑작스러운 도윤의 행동에 건물 내부에 있던 사람들이 의아한 얼굴로 출입문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기자회견이 한참 진행되는 와중에, 다른 사람을 불러들인다?

이 경우에는…….

기자들의 의문이 극에 달할 무렵, 이윽고 출입문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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