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잡는 회귀검사-113화 (113/174)

113화 몰락

기자회견이 끝난 직후.

대한민국 전역이 또 한 번 분노로 들끓기 시작했다.

“저런 똥물에 튀겨 죽일 놈들……!”

“건강한 보수정당을 자처하는 놈들이 저따위 짓거리를 해!?”

“캬악, 퉤! 더러운 놈들!”

거리에 나온 사람들은 온종일 자유당의 행태를 욕하기 바빴다.

물론, 자유당에서 또한 가만히 앉아 있지는 않았다.

자유당 대표인 박태산이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곧바로 당에 대한 입장표명을 밝혔다.

“국민 여러분, 자유당 대표 박태산입니다. 불미스러운 일로 심려를 끼쳐 드린 점, 대단히 죄송합니다. 왜곡된 생각을 가진 일부 극성 의원들이, 당에 대한 과도한 충성으로 말미암아, 이번 사태를 만들어 낸 것으로 보입니다. 저희 자유당에서는 시시비비를 명백히 가려, 책임자를 엄벌하겠으며…….”

이후 박태산 의원의 입장 표명은 한 시간가량 지속되었으나, 그 핵심은 한 가지였다.

이번 사태를 주도한 것은 자유당 전체의 생각이 아닌, 김문성 의원을 포함한 일부 극성 세력들의 작전이었다는 것.

당연히, 당으로부터 꼬리 자르기를 당한 김문성 의원과 일부 의원들은 즉각 반발했다.

당으로부터 팽당한 김문성 의원은 ‘일은 자신들이 모두 벌려 놓고, 일이 잘못되자 나 몰라라.’ 하는 당의 행태에 환멸을 느낀다는 이유로 당을 탈퇴했고, 곧바로 ‘한우리당’이라는 이름의 정당을 새로 창당했다.

자연스럽게 자유당으로부터 내쳐진 다른 의원들 또한 한우리당에 합류했고 말이다.

자유당 박태산 대표는 이에 대해 유감을 표하며, 보다 건강한 보수정당으로 다시 태어나겠다는 이름 아래, 자유당에서 신자유당으로 당명을 변경했다.

으레 있던 자유당과 평화당의 진흙탕 싸움에서, 이제는 신자유당과 한우리당의 집안싸움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국민들의 비난이 커지면 커질수록, 그 집안싸움은 점점 절정으로 치닫고 있었다.

* * *

초상집 분위기인 곳은 자유당 의원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었다.

명성그룹의 중요한 대소사를 논의하는 장소인, 오춘화 회장 저택 대서재.

이곳 분위기 또한 그와 다르지 않았다.

숨 막힐 듯한 침묵 속에, 명성그룹 오너 일가 사람들이 긴장된 표정으로 자리에 앉아 있었다.

“…건우야.”

긴 침묵을 깨고, 마침내 오춘화 회장이 입을 열었다.

“예, 회장님.”

“이번 사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

오춘화 회장의 물음에도 박건우는 아무런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자신 또한, 상황이 이런 극단적인 방향으로 흘러갈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으니까.

이 모든 게 단 한 사람으로 인한 결과물이라고 생각하니, 박건우는 치가 떨렸다.

‘강도윤…….’

속으로 중얼거린 박건우가 제 입술을 콰득 깨물었다.

그놈 때문이다.

그놈만 아니었어도, 명성은 이번 일로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었다.

물론, 자신 또한 마찬가지이고 말이다.

어쩌면, 명성의 핏줄이 아닌 인물이 최초로 그 자리에 앉을 수도 있었을지도…….

그렇게 생각하니, 박건우는 화가 치밀어 올라 미칠 것만 같았다.

“건우야.”

“…예.”

“이제, 내가 어떻게 하면 좋을까?”

“……!”

오춘화 회장의 물음에 박건우뿐만 아니라, 명성의 다른 식구들 또한 두 눈을 크게 떴다.

어떠한 감정조차 표출하지 않고, 앞으로의 진행 방향에 대해 묻는다.

가족에게조차 냉정한 오춘화 회장이 저런 류의 반응을 보이는 데는 항상 이유가 있었다.

그리고, 오랫동안 오춘화 회장을 보필한 박건우는 그 의미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토사구팽(兎死狗烹).

쓸모가 없어진 사냥개를 삶아 먹는다.

지금 이 순간, 오춘화 회장은 자신을 버리기로 확실히 마음을 먹었다는 뜻이리라.

설마 오춘화 회장이 박건우 마저 내칠 줄은 예상하지 못했는지 오창원을 비롯한 명성의 식구들 또한 크게 놀랐다.

박건우가 손톱이 파고들 정도로 주먹을 꽈악 말아 쥔 채 부르르 떨고 있는 모습을 발견한 오창원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화가 나겠지. 밑바닥에서부터, 이곳까지 기어 온 놈인데…….’

한때 박건우를 경쟁자로까지 생각한 오창원은, 그의 분노가 얼마나 커다랄지 어렴풋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명성의 핏줄인 자신 또한 언제든지 저런 신세가 될 수 있다는 것도…….

침중한 표정을 짓고 있던 박건우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지금 상황에서는, 저희도 자유당을 따라가는 것이 최선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유당을 따라간다, 라…….”

오춘화 회장이 턱을 쓰다듬으며 말끝을 흐리자, 박건우가 말을 잇는다.

“그동안 쌓아 올린 모든 인맥들, 회사 브랜드 가치, 막대한 금전적 피해까지. 폭탄은 이미 터졌고, 이제는 돌이킬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 피해라도 최소화하여 회사가 무너지는 것만은 막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위해서, 자유당과 같은 방식을 이용한다?”

“…….”

오춘화 회장의 반문에 박건우가 잠시 입을 꾹 다문 채 침묵을 지켰다.

오춘화 회장이 원하는 대답을 내놓는다면, 아마 자신의 파란만장했던 삶도 여기서 올 스톱이 될 터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답변을 내놓을 수는 없다.

일단 마음먹은 것은 반드시 실행해야만 하는 성격의 소유자가 오춘화 회장이다.

자신을 버린다는 카드보다 더 나은 카드를 쥐고 있지 않다고 판단했기에, 지금 이런 말들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나름… 괜찮은 인생이었지.’

이윽고 결심을 굳힌 박건우의 두 눈빛이 시릴 정도로 차갑게 내려앉았다.

‘하지만, 혼자는 가지 않는다.’

누군가의 얼굴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그놈만 없었다면, 어쩌면…….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오춘화 회장을 인식한 박건우가 가슴속 깊은 곳에 분노를 묻어 두고, 입을 열었다.

“예. 계열사 두 개 정도는 버린다고 생각하셔야 할 겁니다. ‘부하 직원들의 과잉 충성으로 국민들에게 심려를 끼쳐드려, 대단히 죄송합니다.’ 정도의, 회장님 직접 사과문도 함께라면 더 좋겠지요.”

“일전에 있었던 일들도 있는데… 과연 국민들이 수긍을 할까?”

“…….”

오춘화 회장은 역시나 능구렁이다.

마치 확답이라도 받겠다는 듯, 확인사살까지 하려고 한다.

그래도 수십 년을 보필해 왔는데, 회사와 관련된 부분에 있어서는 가차없었다.

“…흘러가는 시국 자체가 꼬리 자르기의 연속이고, 그때와 달리 이번에는 비난받을 대상이 분산되어 있으니, 피해를 줄이는 데는 최적이라 생각합니다.”

“책임의 분산이라…….”

“…대외적으로 나선 사람이 저였고, 매스컴을 타고 전국에 얼굴을 드러낸 사람도 저였기에, 책임자로 제가 나선다면 조금 더… 효과적일 것입니다.”

오춘화 회장의 입가에 흐릿한 미소가 스쳐 지나갔다.

오춘화 회장이 박건우의 두 눈을 똑바로 마주 바라보며 묻는다.

“괜찮겠나?”

“…….”

“건우 니가 그동안 회사를 위해 얼마나 헌신했는지, 누구보다 내가 더 잘 안다. 그래서, 길태 놈 때와는 달리 제법 마음도 불편한 게 사실이야.”

입을 다문 채 침묵을 지키는 박건우를 바라보며, 오춘화 회장이 조용한 목소리로 말을 잇는다.

“만약, 니가 싫다고 한다면 다른 차선책도 생각해 볼 것이다.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그룹의 장기적인 미래를 생각하면 여기서 너를 잃을 수야 없지.”

이어지는 오춘화 회장의 말에 박건우가 멈칫했다.

지금 오춘화 회장이 하고 있는 말이 입에 발린 가식적인 위로일 뿐이라는 것을, 머리로는 확실히 인지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속에서 묘하게 요동치는 이 감정은 무엇일까?

상념을 떨쳐 낸 박건우가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입을 열었다.

“전면에 나선 제가 뒤로 숨으면, 그 누구도 납득하지 않을 겁니다.”

“…….”

“부탁이 있습니다, 회장님.”

박건우의 말에 오춘화 회장이 말없이 그의 두 눈을 바라봤다.

잠시간의 침묵 후, 오춘화 회장이 입을 열었다.

“말해 보거라.”

“빚을 갚을 수 있게 해 주십시오.”

“…….”

“개인적인 원한 때문만은 아닙니다. 사사건건 그룹의 앞길을 방해하는 그놈, 앞으로도 계속되겠지요.”

말을 마친 박건우가 타오르는 듯한 시선을 들어 오춘화 회장을 바라본다.

“어차피 파멸만 남은 인생, 길동무라도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악의에 가득 찬 박건우의 중얼거림이 대서재 내부에 조용히 울려 퍼졌다.

* * *

대서재를 빠져나온 박건우가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명성의 박건웁니다.”

수화기 너머의 누군가가 무어라 중얼거리는지, 잠시 휴대폰을 귀에 대고 있던 박건우가 말을 잇는다.

“의뢰, 하겠습니다.”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린 박건우가 계속 말한다.

“20대 남자, 현직 검사입니다. 선수금으로 10억, 무사히 작업을 마치면 20억을 더 드리겠습니다. 물론, 작업에 필요한 비용은 이쪽에서 모두 제공하는 걸로.”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를 잠시 듣고 있던 박건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작업 전, 미리 이쪽 번호로 미리 연락 주셨으면 합니다. 그럼…….”

통화가 끊긴 것을 확인한 박건우가 주먹을 꽈악 말아 쥐었다.

돈으로도, 명성의 엄청난 라인으로도 회유도, 협박도 통하지 않는 인물.

이제는 자신마저 끝이 보이지 않는 나락으로 떨어질 일만 남았다.

하지만, 그 구렁텅이에 혼자 떨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역사 속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했던, 비장의 한 수가 남아 있었으니까.

“벼랑 끝까지 몰린 인간이 어떤 짓까지 할 수 있는지, 확실히 보여 주마.”

마치 귀곡성과도 같은 박건우의 목소리가 주변으로 조용히 퍼져 나갔다.

* * *

자유당이나 명성그룹과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가 다른 곳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미안합니다.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으면서, 한때 민 의원을 의심했던 내 자신이 한심스럽습니다.”

평화당 박영동 대표가 눈앞에 있는 민수성 의원의 두 손을 꽈악 붙잡으며 말했다.

“아닙니다. 대표라는 자리라는 것이, 원래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이해합니다.”

민수성 의원의 말에 박영동 대표가 따뜻한 미소를 지었다.

박영동 대표가 민수성 의원의 옆쪽으로 시선을 던지며 말을 잇는다.

“이 모든 게, 모두 강 검사님의 덕분이군요.”

“부정할 수 없군요. 강 검사가 아니었으면, 저도 꼼짝없이 당했을 겁니다.”

갑작스레 두 사람의 시선을 한 몸에 받게 된 도윤이 미소 지었다.

“특별히, 제가 한 것은 없습니다. 그저 검사로서, 잘못된 것을 당연히 바로잡았을 뿐인걸요.”

도윤의 말에 박영동 대표가 작게 고개를 저었다.

“때로는 당연한 것이, 아주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강 검사는 그 어려운 일을 해낸 것이구요. 장합니다.”

“…….”

박영동 대표가 옅게 미소 지은 채 계속 말한다.

“평화당 대표로서,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향후 어려운 일이 생긴다면, 언제든지 말씀해 주세요. 성심성의껏 도울 것입니다.”

“말씀만이라도 감사합니다.”

고개 숙이는 박영동 대표를 향해 도윤 또한 마주 고개를 숙이며 미소 지었다.

“이제 정말 끝이군요”

두 사람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민수성 의원이 입가에 미소를 입에 문 채, 조용히 말했다.

“아직 끝이 아닙니다.”

“…예?”

순간 작게 중얼거리는 도윤의 말에 민수성 의원과 박영동 대표가 고개를 갸웃한다.

“아직 끝이 아니라니… 강 검사, 그게 무슨 소리…….”

“…이제 시작일 뿐입니다.”

알 수 없는 말을 이어 나가는 도윤의 얼굴은 어느 때보다 심각하게 굳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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