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화 딥 웹
“이곳이야.”
“음…….”
박판섭의 말에 도윤이 작게 침음을 삼켰다.
“이런 곳에서 암시장이 열린다고?”
도윤이 눈앞에 있는 고층 건물을 바라보며 물었다.
영등포 도심 한복판에 자리한 지상 8층, 지하 3층짜리 건물.
각종 의류매장과 식당, 회사 사무실 등이 모두 같은 건물에 위치해 있었기에, 누가 봐도 평범한 일반 상가 건물처럼 보였다.
그런데 척 보기에도 유동인구가 상당히 많아 보이는 이런 곳에서 암시장이 열릴 예정이라고 한다.
도심에서 제법 떨어진 폐공장이나 컨테이너 박스 정도를 예상하고 있던 도윤은 당황스러웠다.
‘아직 딥 웹(deep web)이나 다크 웹(dark web) 따위가 많이 활성화되지 않은 시절이라고는 하지만, 오프라인으로 진행되는 암시장이 도심 한복판에서 이리 대담하게 운영되고 있을 줄이야…….’
당황스러운 감정을 얼굴에 그대로 드러낸 채, 도윤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도윤이 회귀하기 전에도 분명 마약이나 무기 거래, 장기 거래나 아동포르노와 같은 불법 암거래가 암암리에 활발하게 행해지고 있었다.
물론, 이처럼 오프라인으로 행해지는 방식은 아니었다.
딥 웹 혹은 다크 웹이라 불리는 인터넷 공간.
대형 포털사이트에서조차 검색되지 않는 이 인터넷 공간은, 별도로 암호화된 네트워크에 존재하기 때문에 특정한 인터넷 브라우저를 통해서만 접속이 가능했다.
이런 인터넷 암시장의 가장 큰 장점은 은밀성.
추적당하기 쉬운 컴퓨터 IP는 여러 차례 우회하여 흔적을 남기지 않으며, 우회 통로마다 암호화된 장벽도 있다.
거래 또한 가상화폐인 비트코인을 통해 행해지기 때문에, 사실상 검찰이나 경찰에 적발될 가능성이 매우 낮았다.
세계적인 규모의 인터넷 공간이었기 때문에, FBI와 같은 미국 수사기관에서도 특히 주의하고 있기도 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딥 웹과 같은 인터넷 공간의 경우에서 알 수 있듯, 암시장의 특성상 보안과 안전이 확보되지 않으면 아무도 이 암시장을 이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이런 곳에 암시장이 버젓이 존재하는 것도 놀라웠지만, 그 암시장을 이용하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은 도윤을 더욱 더 놀라게 만들었다.
“등잔 밑이 어두운 법이거든.”
도윤의 표정을 읽은 박판섭이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말을 마친 박판섭이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자, 도윤이 재빨리 그 뒤를 따랐다.
“어디로 가는 거야?”
승강기에 몸을 싣는 박판섭을 보며, 도윤이 물었다.
“지하 4층.”
“지하 4층?”
박판섭의 대답에 도윤이 더더욱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지금 박판섭과 도윤이 있는 건물의 지하 층들은 모두 주차장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무엇보다, 이 건물은 지하 3층까지밖에 없다.
도윤이 승강기 내에 표시되어 있는 지하 층 수를 다시 한 번 확인하고는 입을 열었다.
“이 건물에 지하 4층이 있어?”
“영감님, 오늘따라 궁금한 게 상당히 많은 모양이네.”
“…….”
이어지는 박판섭의 말에 도윤이 입을 다물었다.
“일단, 따라오라고.”
이내 승강기가 지하3층에 도착하자, 박판섭이 그대로 승강기 밖으로 내려섰다.
주차장 구석으로 이동하는 박판섭을 뒤따르기를 잠시.
한참 걸음을 옮기던 박판섭이 특정 지점에서 우뚝 걸음을 멈췄다.
“통제구역……?”
주차장 기둥 뒤편에 가려져, 교묘하게 숨겨져 있던 철문이 이윽고 모습을 드러냈다.
얼핏 보기에 여느 지하 주차장에나 있는 환풍 시설쯤으로 되어 보였기에, 설령 발견하더라도 그냥 지나칠 만한 평범한 철문이었다.
품 안을 뒤적이던 박판섭이 편지 봉투 하나를 꺼내 들더니 씨익 미소 지었다.
“이게 있어야 들어갈 수 있거든.”
박판섭이 봉투 안에 들어 있던 자그마한 열쇠를 꺼내 흔들었다.
“…가자.”
“영감님, 정말 괜찮겠어?”
“…….”
“영감님의 생각대로, 암시장에는 분명 ‘정보’ 자체도 거래가 되고 있어. 하지만, 영감님이 생각하는 그런 건전한 정보 거래상 따위는 절대 아니야.”
“…….”
“놈들이 하는 양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노라면, 어지간한 일들은 모두 겪어 본 나조차도 피가 거꾸로 솟아오를 때가 있어. 그런 곳에서, 정의감 넘치는 젊은 검사님이 과연 가만히 있을 수 있을지…….”
심히 걱정된다는 표정으로 잠시 도윤을 바라보던 박판섭이 한차례 한숨을 내쉬었다.
“노파심에 하는 얘기지만, 그곳에서는 섣불리 행동하면…….”
“아직 나를 잘 모르는군.”
“……?”
자신의 말을 끊고 입을 여는 도윤을 보며, 박판섭이 순간 고개를 갸웃했다.
“잘 모른다니……?”
“나는 절대 정의감 넘치는 검사 따위가 아니야.”
‘복수심이라면 모를까.’
뒷말은 속으로 삼킨 도윤이 박판섭의 두 눈을 바라본다.
“걱정 안 해도 돼. 사고 칠 생각 따위, 눈곱만큼도 없으니까.”
“…좋아.”
고개를 끄덕인 박판섭이 이내 문고리에 열쇠를 꽂아 넣었다.
“영감님, 아까 얘기하다 말았는데, 정의감이라는 것. 무슨 거창한 영웅들이나 갖고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야.”
“…….”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내가 지금까지 봐 온 영감님은, 충분히 정의감이 넘쳐흐르는, 이 나라에 이런 사람이 한 명쯤은 꼭 있어야 될 것 같은…….”
“…….”
“그런 검사님이야.”
도윤이 입을 다문 채 침묵을 지키자, 박판섭이 멋쩍게 미소 지었다.
“그럼, 연다.”
말을 마친 박판섭이 꽂아 넣은 열쇠를 그대로 돌렸다.
철컥.
짧은 소음과 함께 숨겨져 있던 공간이 이내 모습을 드러낸다.
“……!”
잠시 후, 내부 공간이 환히 드러나 눈앞에 펼쳐지자 도윤이 눈을 크게 떴다.
* * *
황보신혜가 집으로 돌아간 지 3시간이 훌쩍 지났다.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 가고 있을 때, 한참 머리를 숙이고 있던 배영준이 번쩍 고개를 치켜들며 소리친다.
“완성이다!”
“뭐, 뭐야!?”
소파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던 호식이 화들짝 놀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변을 휘휘 둘러보던 호식이 이내 종이를 손에 쥐고 있는 배영준을 발견하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심장 출타하시는 줄 알았네. 기사 다 썼어요?”
호식의 물음에 잠시 온몸을 잘게 떨던 배영준이 대답한다.
“네. 이제 데스크에서 오케이 사인만 떨어지면, 제가 쓴 이 기사가 나라 전체에 퍼져 나가겠죠.”
설레는 감정을 숨기지 못한 채, 배영준이 한층 높아진 목소리로 말했다.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기자로서의 배영준은 지금 이 순간이 가장 행복했다.
수 시간 동안 골머리를 싸매 가며 마침내 하나의 기사를 완성하게 되었을 때.
그 희열감은 겪어 본 사람이 아니면 결코 알 수 없다.
데스크의 통과 여부를 떠나서, 오롯이 하나의 기사를 완성해 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기자로서 제 몫을 다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반증했으니까.
배영준의 등 뒤로 빼꼼 고개만 내밀어 호식이 지금 막 완성된 기사를 들여다본다.
“오, 제목이 상당히 자극적인데요?”
가장 상단에 큼지막하게 ‘제1야당의 대국민 사기극. 대한민국, 이대로 괜찮은가?’라는 글씨를 발견한 호식이 작게 감탄사를 터뜨렸다.
“집안싸움이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면, 강제로 뜯어말리는 게 저희들의 역할 아니겠어요?”
“자고로 말 안 듣는 개들에게는, 몽둥이가 약이라는 말이 있죠.”
“네? 개요?”
“자기네들이 저지른 일들은 생각조차 하지 않고, 서로 짖어만 대고 있으니, 개랑 다를 바 뭐 있겠어요?”
호식의 입에서 의외의 말이 나오자, 배영준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뭐예요, 그 표정은. 그렇게 생각 안 해요?”
“아니, 그게 아니라… 이럴 때 보면 진짜 변호사님은 변호사님이구나, 싶어서요.”
“……?”
“비판의식 따위는 눈곱만치도 없고, 그저 생각 없이 하루하루를 사시는 분이라 생각했거든요.”
“…….”
이어지는 배영준의 말에 호식이 입을 다물었다.
한차례 관자놀이를 손가락으로 꾸욱 하고 누른 호식이 말한다.
“왜 또 슬슬 발동을 거실까, 우리 배 기자님.”
“이런! 한시가 바쁜데, 내가 뭐 하고 있는 건지, 참. 아하하하.”
위기감을 느낀 배영준이 어색한 웃음을 터뜨리며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는 우선 회사부터 다녀오겠습니다. 데스크 마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
주섬주섬 서류들을 챙긴 배영준이 황급히 출입문을 나서기 시작했다.
“끙…….”
이내 혼자 남게 된 호식이 앓는 소리를 내며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배 기자, 의외로 나랑 천적이란 말이지.”
제 관자놀이를 살살 문지르던 호식이 곧이어 컴퓨터 전원 버튼을 눌렀다.
“스트레스 받을 때는 이게 최고지.”
호식이 컴퓨터 마우스를 조작하기를 잠시.
이윽고 화면에 떠오른 주가그래프를 확인하고는 씨익 미소 지었다.
수십 억이나 되는 거금을 투자한 프렌차이즈 치킨집.
얼마 전 프렌차이즈 대상을 따낸 이후, 주가 또한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었다.
“사장님 소리 듣게 될 날도 얼마 남지 않았구나. 크크크.”
자그마한 사무실 내부에, 원대한 꿈을 품은 호식의 낮은 웃음소리가 조용히 울려 퍼졌다.
* * *
툭.
배영준에게 넘겨받은 서류를 검토한 지 채 10초도 지나지 않아, 사내가 손에 쥔 서류를 테이블 위로 던지듯 내려놓았다.
“안 돼.”
“……!”
짧은 사내의 한 마디에 배영준이 눈을 크게 떴다.
“왜 안 된다는 겁니까!?”
배영준이 흥분을 감추지 못한 채, 소리쳤다.
눈앞에 있는 사내가 바로, 배영준이 소속된 언론사의 데스크를 담당하는 총 책임자였다.
중요한 것은, 그런 사내가 자신이 쓴 기사를 제대로 읽어 보지도 않고, 자신의 기사를 낼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설마 자신이 쓴 기사가 국장은커녕, 데스크 선에서 거부될 줄은 예상하지 못했던 배영준이 목에 핏대를 세우고 고함친다.
“편집자님! 제가 쓴 기사, 제대로 읽어는 보셨습니까?”
“…….”
배영준의 말에도 사내는 묵묵부답이었다.
형사나 검사와 마찬가지로, 기자들에게도 기자들만의 촉이라는 것이 있다.
이미 이쪽 바닥에 구를 대로 구른 배영준은 이런 경우를 수도 없이 봐 왔다.
“설마, 외압이라도 있었던 겁니까?”
“…….”
무언은 긍정의 표시라고 했던가.
사내의 침묵이 이어지자, 배영준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을 잇는다.
“하, 이런 작은 언론사에조차 외압이라니… 아니, 그보다 왜 이제 와서 이러는 겁니까?”
“…….”
“ 지금까지 저희가 해낸 일들. 국민들에게 ‘신뢰할 수 있는 언론사’라는 이미지를, 확실히 새겨 넣었습니다. 그런데, 왜 이제 와서 외압에 굴하는 것입니까?”
“…….”
여전히 침묵을 지키는 사내를 한참이나 바라보던 배영준이 이내 홱 하고 몸을 돌렸다.
“…말하기 싫으신 거군요. 데스크에서 거부하더라도, 저는 제 기사를 세상에 알릴 겁니다. 국민들 또한 당연히 알 권리가 있으니까요.”
“…잠깐.”
말을 마친 배영준이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자, 마침내 사내가 조용한 목소리로 배영준을 불러 세웠다.
“아마, 이 얘기를 듣게 되면 자네 생각도 달라질 거네.”
“…….”
배영준이 몸은 그대로 둔 채, 살짝 고개만 돌리자, 이윽고 사내가 무어라 중얼거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마침내 사내의 설명이 모두 끝이 났을 때.
“……!”
배영준의 두 눈은 더 이상 커질 수 없을 정도로 커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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