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화 소동
“그러니까, 박건우는 꼭두각시였던 거고, 실질적인 배후는 오춘화 회장이었다. 그 사실을 만천하에 알리겠다는 거 아니야?”
호식의 물음에 도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미 대부분의 국민들도 짐작은 하고 있을 거야. 아무리 박건우라지만, 한낱 부사장 따위가 독단적으로 명성을 대표하여 자유당과 그런 짓을 벌이려 했다는 사실을 믿는 사람은 몇 되지 않아.”
“그야 그렇지만, 그 사실을 증명할 방법이 없잖아?”
호식의 물음에 도윤이 옅게 미소 지었다.
“그 일을 위해, 영장을 집행하지 않은 거야.”
“뭐라고……?”
“이번 일에는 박건우가 꼭 필요하거든.”
“박건우가 필요하다니……?”
계속되는 물음에 도윤이 박건우가 계획했던 일들을 호식에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모든 설명이 끝이 나자 호식이 와락 하고 인상을 구겼다.
“이 개자식이! 그따위 짓을 하려고 했다고!?”
“…….”
욕지거리를 내뱉는 호식을 보며 도윤이 입을 다물었다.
당연한 반응이었다.
자신, 더 나아가 가족이 일궈 놓은 회사가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질 뻔했는데, 화가 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했다.
이런 반응이 뻔히 예상되었기에, 처음에는 호식에게 말하지 않을까, 고민했지만 잠시뿐이었다.
그동안 호식이 자신을 위해 해 왔던 일들을 떠올리면, 호식 또한 당연히 이에 대해 알 권리가 있었다.
무엇보다, 다른 일도 아닌, 호식 자신과 관련된 일이 아닌가?
당장이라도 뛰쳐나가려는 기세를 보이는 호식에게 무어라 말하려는 순간, 호식이 한발 먼저 입을 열었다.
“킬러까지 고용해서 입막음을 하려 하다니, 정말 갈 데까지 간 쓰레기 새끼들! 야! 그렇다고, 설마 박건우 그 새끼만 끝까지 살려 놓을 생각은 아니겠지?”
“…….”
호식의 말에 도윤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야! 정신 차려! 너뿐만 아니라, 니 가족까지 해하려 했던 놈이야! 계획 마무리되는 대로, 그 새끼도 잡아 족쳐야지!”
“…….”
“니가 안 하면 내가 한다. 개새끼! 법으로 안 되면, 칼이라도 들고 찾아가 멱을 따 버릴 거야.”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씩씩대는 호식을 멍하니 바라보던 도윤이 입을 열었다.
“너…….”
“씹어 먹어도 시원치 않을 새끼! 사회 암세포 같은 놈!”
자신의 말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는지, 온갖 욕지거리를 내뱉는 호식을 보며, 도윤이 결국 픽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야, 지금 이 상황이 웃겨?”
그런 도윤을 바라보며, 호식이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새삼 고마워서…….”
“고맙긴, 개뿔이…….”
쑥스러웠는지 호식이 팩 하고 고개를 돌렸다.
어느새 도윤의 얼굴에는 따뜻한 미소가 자리하고 있었다.
엎드려 절이라도 하고 싶을 정도로, 고맙고 착한 놈이다.
자신보다 남을 먼저 생각해 주는 놈.
이런 놈이 자신의 친구라는 사실이 정말로 자랑스러웠다.
“그런데, 배후에 오춘화 회장이 있었다는 사실을, 어떻게 증명할 생각이십니까?”
두 사람의 모습을 가만히 보고만 있던 배영준이 묻자, 도윤이 곧바로 대답한다.
“간단합니다. 놈이 호식이 회사에 하려고 했던 것을, 그대로 이용하기만 하면 되니까요.”
“그대로 이용한다라…….”
배영준이 턱을 쓰다듬으며 말끝을 흐렸다.
“목에 칼이 들어왔을 때, 본인 스스로 자백. 그룹 회장의 강압에 의한 행동이었다며 반성하는 태도를 보인다면, 국민들도 모두 수긍하겠지요. 뭐, 그런다고 박건우의 죄를 용서하지는 않겠지만…….”
“그걸 박건우가 받아들일까요? 아무리 봐도, 이쪽에만 유리한 조건 같은데…….”
“그래서 박건우와 거래를 한 겁니다.”
“거래요?”
배영준이 고개를 갸웃하며 반문했다.
“박건우가 했던 꼭두각시 노릇이, 단순한 상사의 부당한 지시에 따른 것이 아닌, 어쩔 수 없이 명령에 따를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만들어야겠지요.”
도윤이 제 머리를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리며 말을 잇는다.
“간단하게 말해, 박건우를 강요죄의 피해자로 둔갑시킬 겁니다.”
“아……!”
배영준이 감탄사를 터뜨렸다.
“어지간한 이유로는, 똑같이 나쁜 놈들일 뿐이라며 국민들에게 손가락질 받을 게 뻔하니, 동정표까지 얻을 수 있는, 국민들이 수긍할 수밖에 없는 완벽한 이유를 만들어 낼 겁니다.”
도윤의 말에 배영준이 묻는다.
“그 이유, 지금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도윤이 씨익 미소 지었다.
“전과가 상당히 많은, 놈들의 주특기가 있잖아요?”
“…….”
“그걸 이용할 거예요.”
한참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던 배영준이 이내 마주 미소 지었다.
“하하하하. 그 오 회장님이 어떤 표정을 지을지, 상당히 궁금하네요.”
“뭐야, 뭔데? 치사하게, 나도 알려 줘!”
서로 미소 짓고 있는 두 사람을 보며, 호식이 외치는 목소리가 사무실을 가득 메웠다.
* * *
세 사람이 한참 머리를 맞대고 얘기를 나누고 있을 무렵.
서울 도심지 한가운데 위치한 명성그룹 본사는 난리가 났다.
“여보!!!!! 여보!!!!!!!!!!!”
한 중년 여성의 찢어지는 듯한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엄마… 아빠는? 아빠 이제 못 보는 거야?”
“으아아아아아앙!”
그런 중년 여성의 양옆에서, 이제 초등학생이 되었을 법한 어린 두 소녀가 울음을 터뜨리고 있었다.
“내, 내 남편이에요! 내 남편!”
“아니, 사모님. 일단 진정하시고…….”
건물 입구를 중심으로 폴리스 라인이 쳐져 있었는데, 현장에 나온 두 경찰관이 계속해서 안쪽으로 파고들려는 중년 여성을 필사적으로 막아서고 있었다.
어느새 소식을 듣고 달려온 기자들과 구경꾼들까지 모여들어, 주변은 그야말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거, 소생불가면 빨리빨리 통보해 줘요! 사람들 모여드는 거 안 보여요!?”
담당 형사팀장이 조급한 마음을 참지 못하고, 심폐소생술을 실시하고 있는 구급대원에게 고함쳤다.
“…안 되겠지?”
잠시 심폐소생술을 멈추고, 얼굴 사이로 흘러내리는 땀방울을 닦는 구급대원을 보며, 선임 소방관이 조심스레 물었다.
말없이 고개를 흔드는 부하 대원을 보며, 한숨을 내쉰 선임 소방관이 담당 형사팀장을 돌아보며 고함친다.
“형사님!”
“……?”
이내 좌우로 고개를 젓는 소방관을 발견한 담당 형사가 고함친다.
“주변 통제 확실히 하고! 시신은 빨리 운구해!”
“시, 시, 시, 시신…….”
제법 거리가 멀었던 중년 여성의 귀에 그 목소리가 용케 들렸다.
“이런…….”
중년여성을 막아서고 있던 경찰관이 무어라 말을 꺼내려고 하는 순간.
“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찢어지는 듯한 비명 소리와 함께, 중년 여성이 오열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한 여성의 처절한 절규가 하늘을 쩌렁쩌렁 울리기 시작했다.
* * *
명성그룹 본사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개인 집무실.
창가에 오도카니 서 아래를내려다보고 있는 한 남성을 향해, 그의 비서가 고개를 숙이며 말한다.
“…일이 예상대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
“설마 자살 소동까지 벌어질 줄은 몰랐지만, 이렇게 되면 목적 달성은 훨씬 수월해질 듯합니다.”
“대기업에서 단행한 구조조정과 정리해고, 그리고 사내 직원의 자살 사건까지…….”
조용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던 사내가 이내 몸을 돌렸다.
이내 드러나는 남성의 얼굴은.
오춘화 회장의 장남이자, 명성그룹 부회장이기도 한, 오창원의 것이었다.
“목적만을 생각하다가, 자칫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질 수가 있다. 무슨 말인지 알지?”
오창원의 말을 비서가 곧바로 이해했다.
“유족 보상금뿐만 아니라, 민상식의 두 딸에게 그룹 차원에서 평생 학비 지원까지 해 줄 수 있도록, 조치해 두겠습니다.”
“아끼지 말고, 지원할 수 있는 건 다 해 줘. 목적대로, 지금은 언론계뿐만 아니라, 국민들도 이곳에 이목을 집중하고 있을 테니까.”
“알겠습니다.”
비서의 대답을 들은 오창원이 자신의 자리로 돌아와 털썩 주저앉았다.
“노조는?”
“이번 일로, 파업을 하기로 확실히 마음을 굳힌 듯합니다. 정리해고 대상에서 제외되었던 직원들까지, 파업에 동참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미 노총(노동조합총연맹)에서도 사안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구요.”
“그건 좋지 않군. 적당히 몸집을 줄이고, 관심만 이쪽으로 돌려 놓길 바랐는데…….”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박건우 부사장이 혼자 죽기로 이미 마음을 굳혔지 않습니까?”
“박건우…….”
비서의 입에서 거론된 인물에, 오창원이 굳은 표정을 지었다.
“인지도가 상당한 만큼, 사내에서도 영향력이 큰 그가 직접 나서 총대를 멘다면, 정부에서도 어느 정도 수긍은 할 겁니다.”
“…….”
“추가적으로, 국민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톱스타 스캔들을 하나. 함께 던져 주면 더욱 좋겠지요.”
“…….”
“여기서 포인트는, 정신을 차릴 새도 없이 빠르게 일을 처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비서가 말을 마치자 오창원이 잠시 상념에 빠져들었다.
잠시간의 시간이 지나, 오창원이 눈을 빛내며 입을 열었다.
“계획한 대로 차질 없이 일을 진행하되, 중요한 문제뿐만 아니라 사소한 것들까지, 이번 일과 관련된 모든 것들은 나에게 직접 보고해.”
“예.”
“명심해. 여기서 또 한 번 미끄러지면, 우리 명성 또한 회생하기 힘들다는 것을.”
“명심하겠습니다.”
“나가 봐.”
말을 마치고 오창원이 손을 휘젓자, 깊게 허리를 숙인 비서가 출입문을 빠져나갔다.
홀로 남은 개인 집무실.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창가로 다가간 오창원이 시끄러운 사이렌 소리를 내며, 지금 막 떠나는 구급차로 시선을 돌린다.
“…한 사람의 위인이 수천, 수만 명도 족히 먹여 살리는 현실에서…….”
말을 잇던 오창원이 제 손을 활짝 펴 들여다본다.
“대(大)를 위한 소(小)의 희생은, 당연한 것이다.”
제 주먹을 꽈악 말아 쥔 오창원이 이내 창가에서 몸을 돌렸다.
* * *
호식의 사무실에서 나온 도윤이 곧바로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3번의 신호음이 채 가기도 전에, 상대방의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도윤이! 이 시기에 어쩐 일이야?”
“어쩐 일은요. 제가 뭐, 일이 있어야만 지검장님한테 전화드리나요?”
도윤의 말에, 수화기 너머의 서울지검장, 정승만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잠깐 안 본 사이에 더 능글맞아졌구만.”
“청문회 준비는 잘되어 가시죠?”
“뭐, 대통령님 직무 복귀랑 맞물려서, 어느 정도 시간이 주어진 덕분에 만족할 만큼 준비는 마쳤지.”
“잘되었네요.”
피식 웃음을 터뜨린 정승만이 말한다.
“안부 인사는 이쯤 하고, 무슨 일 있는 거지? 한창 수사로 바쁠 니가 나한테 연락했다는 건…….”
“이제 정말로 승진하셔야겠네요. 부하 직원의 말에, 척하면 척이라니… 밑에 직원들이 상당히 피곤할 것 같아요.”
“뭐, 시켜만 준다면 나야 당장이라도 떠나 줄 수 있지. 그래서, 무슨 일이야?”
정승만의 물음에 도윤이 잠시 머뭇거린다.
전화를 걸기 직전까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그리고, 고민이 이어질수록, 생각나는 것은 한 가지뿐이었다.
‘만나야 한다.’
이내 결심을 굳힌 도윤이 입을 열었다.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부탁? 얘기해 봐. 어지간한 건 모두 들어주지.”
“…사람을 한 명, 만나게 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사람? 무슨, 대통령님이라도 되나? 그런 일을 나에게 부탁하다니…….”
“아니요. 어쩌면 지검장님에게는, 그분보다 더 신경 쓰이실 수도…….”
“엥?”
수화기 너머로 황당한 기색이 역력한 정승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런 정승만을 향해, 이내 도윤이 누군가를 거론한다.
“박보윤.”
“……!”
“그녀를 만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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