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잡는 회귀검사-133화 (133/174)

133화 제가 가지고 싶습니다.

서울중앙지검 313호 검사실.

이곳은 서울중앙지검 전체에서도 제법 특별한 의미를 지닌 곳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과거 이곳을 자신의 사무실로 이용했던 검사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검찰의 별이 되었다.

검찰의 별.

혹은 검찰의 꽃이라고도 불리는, 검사장을 지칭하는 말이다.

현 검찰총장인 김관우뿐만 아니라, 서울지검 검사장인 정승만 또한 과거, 이곳을 거쳐 갔다.

그리고 현재.

이곳의 주인은, 특수부로 막 복직한 검사이자, 한창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는, 도윤의 검사실이기도 했다.

“…….”

지금 막 정리한 서류들을 손에 들고 자리에서 일어난 도윤이 곧바로 옆방으로 향했다.

옆방 출입문 상단에는 큼지막한 글씨로 진술녹화실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진술녹화실.

경찰서뿐만 아니라, 각 지검 검사실에도 이 진술녹화실이 만들어져 있었다.

만들어진 목적은 분명했다.

고문으로 인한 강압수사를 사전에 예방하고, 피의자의 진술에 대한 자의성을 확보하기 위함이다.

각 진술녹화실마다 CCTV는 물론, 녹음 장치, 마이크까지 설치되어 있었기 때문에 불법수사는 불가능하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따위 방법으로 취득한 증거를 법원에 있는 판사들이 인정해 줄 리가 없었으니까.

안에서는 밖이 보이지 않는 투명한 유리를 통해, 내부에 홀로 앉아 있는 인물을 잠시 바라보던 도윤이 이내 걸음을 옮겼다.

철컥.

짧은 소음과 출입문이 부드럽게 열렸다.

도윤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테이블 위.

비닐조차 뜯어지지 않은 채, 완전히 식어 버린 설렁탕 한 그릇이었다.

“밥은 먹고 하지.”

“…….”

자신의 말에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 사내를 보며 도윤이 쓰게 웃었다.

깔끔한 정장 차림과 어울리지 않게, 보기에도 묵직해 보이는 쇠고랑을 양 손목에 차고 있는 사내.

마음고생을 많이 했는지 한층 더 수척해진 얼굴을 하고 있는 사내는,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남부럽지 않은 생활을 하던 명성의 부사장, 박건우였다.

“우리나라가 분명히 실질적 사형폐지국가는 맞지만, 혼자 굶어 죽겠다는 놈까지 뜯어말릴 정도로 착한 검사는 여기 없어.”

“…….”

“뭐, 원한다면 데워 줄 수도 있으니까, 한술 들고…….”

타악!

고개를 숙이고 있던 박건우가 갑작스레 자세를 바로 하더니, 그대로 두 팔을 휘둘렀다.

쨍그랑!

단단해 보이던 업소용 뚝배기가 바닥과 충격하며 박살이 났다.

“…….”

쏟아지는 설렁탕을 도윤이 잠시 가만히 바라보고 있자, 이윽고 박건우가 입을 열었다.

“꺼져. 너 따위 놈이랑 하고 싶은 말 없으니까.”

“…….”

“설령 내 변호사가 이곳에 도착하더라도, 너한테는 단 한 마디도 하지 않겠다. 묵비권을 행사하겠다는 말이다.”

말을 마친 박건우가 그대로 고개를 돌렸다.

그런 박건우를 바라보며, 도윤이 조용한 목소리로 묻는다.

“삐졌나?”

움찔.

그 한 마디에 박건우의 몸이 눈에 띌 정도로 들썩했다.

홱 하고 고개를 돌린 박건우가 죽일 듯이 도윤을 노려보기 시작했다.

만약 눈빛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면, 도윤의 온몸은 갈기갈기, 형체조차 남지 못하고 난도질당할 기세였다.

끓어오르는 화를 애써 삭인 박건우가 씹어 내뱉듯 중얼거린다.

“…니가 이겼다고 생각하나?”

“…….”

“너는 큰 실수를 했다. 오춘화 회장. 일개 평검사인 니가 정말로 그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나?”

여전히 도윤의 얼굴을 노려보며, 박건우가 말을 잇는다.

“너는 아무것도 모른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방식으로 지금의 명성을 만들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지금의 위치에 올랐는지.”

“큰 실수라… 그거라면, 너를 명성의 회장으로 밀어주지 않은것을 말하는 거겠지?”

도윤의 물음에 박건우가 멈칫했다.

역시나, 남 속을 긁는 데는 도가 튼 놈이다.

하지만, 이제 상관없다.

놈은 결국 자신의 옛 주인 앞에 무릎을 꿇게 될 것이고, 썩은 독방에서나마 그 모습을 볼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했다.

놈은 절대로, 오춘화 회장을 이길 수 없다.

한차례 비릿한 미소를 지은 박건우가 대답한다.

“그 자신감이 언제까지 갈 수 있을지, 두고 보겠다.”

“…….”

“한 가지 충고하자면, 오 회장은 니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위험한 사람이다.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렸는지, 너는 절대로 알지 못할 것이다.”

박건우가 한층 짙어진 미소로, 손가락으로 제 목을 톡톡 두들겼다.

“부디 이것만은 달아나지 않길 작게나마 빌어 주지. 물론,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니 여동생의 몫까지.”

다시 입을 다문 채, 침묵을 지키는 박건우를 한참이나 바라보던 도윤이 순간 유리창을 향해 손짓했다.

밖에서 내부 상황을 가만히 지켜보던 도윤의 수사관이 화들짝 놀라 그쪽을 바라보자, 도윤이 손가락 두 개로 x표시를 내보였다.

녹화 중지 사인.

잠시 카메라를 꺼 달라는 표시였다.

작게 고개를 끄덕인 도윤의 수사관이 이내 컴퓨터 녹화 중지 버튼을 눌렀다.

카메라에서 깜빡이던 새빨간 불이 나가는 것을 확인한 도윤이 이윽고 입을 열었다.

“그토록 위험한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알면서, 너는 왜 그를 배신했지?”

“…뭐?”

“니 야망. 회장이 되겠다는 니 욕심 때문에, 너도 그런 위험부담을 감수했던 것 아니었나?”

“닥쳐라! 그건 니가…….”

“남 핑계는 대지 말고.”

“이, 이……!”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지는 박건우를 보며, 도윤이 피식 웃었다.

“니가 하는 말들은 전부 모순덩어리라, 이제는 상종할 가치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서류들을 집어 든 도윤이 말을 잇는다.

“묵비권? 얼마든지 행사해도 좋아. 하지만 나도 너처럼, 충고는 하나 하지.”

“충고라고?”

어이가 없는 표정으로 반문하는 박건우를 향해, 도윤이 천천히 다가가기 시작했다.

이내 박건우의 코앞까지 얼굴을 바짝 가져다 댄 도윤이 낮은 목소리로 말한다.

“앞으로 죽을 때까지, 차가운 교도소 바닥에 앉아 기어다니게 될 버러지 따위의 걱정을 받을 정도로, 나는 무르지 않아.”

“뭐? 버러지? 이……!”

도윤이 박건우의 멱살을 틀어쥐었다.

깜짝 놀라는 박건우를 보며, 도윤이 낮게 으르렁거린다.

“사형은 불가능하겠지만, 여죄까지 확실히 털어서 다시는 바깥 공기를 마시지 못하게 해 줄게. 나는, 내 가족을 건든 사람까지 용서할 정도로 자비롭지 못하거든.”

“이, 이…….”

숨이 막히는지 얼굴을 붉힌 채, 수갑을 찬 손으로 버둥거리는 박건우를 보며 도윤이 말을 잇는다.

“기대해도 좋아. 거기에 니 진술 따위는 필요 없으니까.”

말을 마친 도윤이 손에 쥔 멱살을 거칠게 내려놓았다.

“컥, 컥……!”

빠르게 숨을 몰아쉬는 박건우를 잠시 바라보던 도윤이 이내 몸을 돌렸다.

어느 순간부터, 서류를 들지 않은 도윤의 남은 한 손은 손톱이 파고들 정도로 꽈악 주먹 쥐어져 있었다.

‘박건우. 그리고, 오춘화…….’

박건우를 홀로 남겨 두고 출입문을 나서며, 도윤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제는 저쪽에서도 자신에 대한 위협을 확실히 인지했을 것이다.

그리고, 설령 오춘화 회장까지 구속시키는 데 성공하더라도, 그 위협은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국민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더러운 방법으로 항상 생로(生路)를 찾아 빠져나오는 것이 바로 재벌이라는 족속들이었으니까.

그들의 기득권을 유지하는 근본적인 객체.

명성이라는 거대한 괴물을 완전히 무너뜨리지 않는 이상, 자신에 대한 위협은 물론, 일반 국민들 사이에서도 제2, 제3의 피해자가 끊임없이 발생할 것이다.

‘조급해하지 말자. 하나씩, 차근차근.’

이내 상념에서 빠져나온 도윤이 걸음을 빨리하기 시작했다.

* * *

오래간만에 느껴 보는 긴장감에 호식은 목이 탈 지경이었다.

자신이 지금 있는 곳은, 이 넓은 본가의 저택에서도 오로지 자신의 아버지만을 위한 공간이었다.

자신의 아버지이자, 현 KS그룹의 수장이기도 한 장학수 회장.

분명히 호식 또한 그 피를 이어받은 KS그룹의 식구가 맞건만, 그와 별개로 아버지와의 독대는 호식을 항상 긴장하게 만들었다.

“연락도 없이 니가 본가에는 어쩐 일이냐?”

“저, 그게…….”

높낮이 없는 장학수의 음성에 호식이 잠시 머뭇거렸다.

사실, 호식이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변호사가 된 이후, 본가에 방문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가뜩이나 어렵고 불편한 아버지인데, 그런 일까지 있었으니 아무리 낙천적인 호식이라도 이 상황이 매우 불편했다.

‘…얘기해야 해.’

생각을 정리한 호식이 한차례 입술을 꾸욱 하고 깨물고는 입을 열었다.

“부탁드릴 일이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부탁?”

호식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고 신문을 들여다보던 장학수가 잠시 멈칫하더니, 반문했다.

고개를 들어 마침내 자신을 바라보는 장학수를 보며, 호식이 말을 잇는다.

“예. 꼭 들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부탁, 부탁이라…….”

호식이 하는 말을 잠시 곱씹던 장학수가 다시 신문을 향해 시선을 돌리곤 말한다.

“얘기해 보거라.”

“이번 일로, 정부사업에서 명성물산이 완전히 발을 빼는 것으로 들었습니다.”

“……!”

어떤 말에도 크게 반응을 보이지 않을 것 같던 장학수가 순간 눈에 띌 정도로 움찔 몸을 떨었다.

천천히 호식을 향해 시선을 돌린 장학수가 묻는다.

“그 얘기는 어디서 들었지?”

“…관심이 있어서 조금 알아봤습니다.”

“언론에도 아직 알려지지 않은 사실인데, 회사 일에는 신경도 쓰지 않는 니가 관심이라…….”

미묘하게 미간을 찌푸린 장학수가 말끝을 흐렸다.

같은 집에 있으면서도 1년 동안 보는 횟수가 손에 꼽을 정도인 자신의 아버지였지만, 아버지가 어떨 때 저런 반응을 보이는지, 호식은 잘 알고 있었다.

‘분명 마음에 들지 않으신다는 뜻이겠지.’

하지만 말할 수 없었다.

정보의 출처가 다름 아닌 도윤이었기 때문이다.

외부인의 간섭을 받는 것을 끔찍이 싫어하고, 알고자 하는 것은 반드시 알아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 자신의 아버지다.

만약, 회장과 있었던 모종의 거래가 외부로 유출되었다는 사실을 아버지가 알게 되면, 어떤 일을 하실지 호식조차 짐작할 수 없었다.

생각을 정리한 호식이 입을 열었다.

“이미 수 시간 전에 명성에서 발표가 있었습니다. 사업체 선정이 유력시되었던 명성물산에서, 능력 부족으로 스스로 사업권을 포기하겠다는 발표가요.”

“…….”

“물산만 놓고 봤을 때, 아직도 대한민국에서 수위를 다투는 명성물산에서 능력 부족을 운운하는 것이 이상했습니다. 그래서, 나름대로 추측해 봤을 뿐입니다.”

호식의 말에도 장학수는 말없이 그 얼굴을 빤히 바라보기만 했다.

마치 진위 여부를 확인하려는 듯한 그 모습에 호식은 발가벗겨진 기분이 들었다.

‘…피하면 안 돼.’

호식도 지지 않겠다는 듯 그 두 눈을 마주 바라봤다.

잠시 후, 이내 시선을 거둔 장학수가 말한다.

“그 눈치를, 회사를 위해 활용하면 더 좋을 것을…….”

작게 혀를 차는 장학수를 보며, 호식이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부탁은 뭐지?”

장학수의 물음에 호식이 한차례 깊게 심호흡했다.

이제부터가 진짜 본싸움이다.

아버지의 성격을 생각하면, 빙빙 둘러말하는 것보다는, 본론만 간략하게 주지시키는 게 나았다.

눈을 빛낸 호식이 대답한다.

“명성물산.”

“…….”

“제가 가지고 싶습니다.”

“……!”

장학수의 두 눈이 찢어져라 부릅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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