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화 인사청문회
“니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 알고 하는 소리냐? KS물산도 아니고, 명성물산을 달라?”
장학수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반문했다.
“그 말 그대로입니다.”
“누가 들으면 명성물산이 어디 우리 쪽 계열사라도 되는지 알겠구나. 내가 무어라고…….”
“이번 건으로 따낸 정부사업. 다른 사업들과 달리 1년짜리 단기사업은 아닌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보통 정부에서 주관하여 다른 기업들과 하는 정부사업 계약들은 1년 단위 단기계약이 일반적이다.
해마다 공정한 선별 과정을 거쳐,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함이었다.
특히나, 물산 쪽은 그 선별 기준이 다른 분야보다 훨씬 더 엄격했다.
급식이나 식자재들은 건강과 직결되는 민감한 부분이었으니 말할 것도 없었고, 최소 수만에서 수십만 벌은 찍어 내는 근무복도 한두 푼짜리 사업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물산 쪽 분야는 업체들 간, 해마다 불꽃 튈 정도의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곤 했다.
그런데, 이번 KS그룹이 따낸 정부사업 건은 최소 4년짜리 중장기 계약이었다.
최후의 최후까지 경쟁을 벌인 KS그룹 또한 이번 사업에 사활을 걸었기에, 만약 계약에 실패했다면 타격이 상당했을 것이다.
최소 1년치 적자는 감수해야 할 정도로 말이다.
반대로 말하면, 이번 사업에서 발을 떼게 된 명성물산 또한 그 여파를 피할 수 없었다.
“그게 뭐? 명성물산에서 이번 사업을 우리에게 양보했기 때문에, 그쪽이 망하기라도 한다는 소리냐?”
“예.”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짧게 대답하는 호식을 잠시 멍하니 바라보던 장학수가 말을 잇는다.
“오춘화 회장은 니가 생각하는 것만큼 쉬운 상대가 아니다. 제 것을 빼앗기는 것을 죽기보다 더 싫어하는 사람이란 말이다.”
“…….”
“그런 사람이, 제 스스로 자기 계열사를 포기한다? 웃기는 소리.”
장학수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호식이 반문한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뭐?”
“최근에 있었던 일들을 생각하면, 명성에서는 할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할 수가 없다니…….”
“몸집 줄이기.”
“…….”
호식의 짧은 대답에 장학수가 입을 다물었다.
“이번 명성물산 건을 제외하고서라도, 이미 명성그룹은 부도를 걱정해야 할 정도로 위기 상황입니다. 많은 비리들이 세상에 드러났고, 그로 인해 그룹 회장이 구속될 뻔하였으며, 실제 부사장은 구속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으니까요.”
“…….”
“이미 주가 또한 바닥을 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그룹 임원진, 더 나아가 회장이 할 수 있는 선택이야, 뻔하지 않습니까?”
“그거야…….”
장학수가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장학수를 보며, 호식이 힘주어 말한다.
“아마 명성은 물산을 포기할 겁니다. 아니, 반드시 포기할 겁니다. 누구보다 자기 회사에 대한 애정이 강한 오춘화 회장이라면, 더더욱……!”
입을 다문 채, 굳은 눈빛을 보이는 호식을 가만히 바라보던 장학수가 이내 조용한 목소리로 묻는다.
“하나만 묻자.”
“…….”
“그렇게까지 명성물산을 가지고 싶은 이유가 뭐지?”
“…….”
“나는 그룹 경영에는 관심조차 없던 니가, 이렇게 갑자기 회사의 일. 그것도, 우리 계열사도 아닌 다른 회사의 계열사를 욕심내는 이유를 모르겠다. 이해도 가지 않고.”
“…….”
“내가 납득할 만한 이유가 아니라면, 니 부탁은 들어줄 수 없다.”
장학수의 마지막 말에 호식이 멈칫했다.
호식이 이토록 명성물산을 원하는 이유.
당연히, 도윤을 도와주기 위함이었다.
몰랐다면 모를까, 친구의 목적이 무엇인지 뻔히 알고 있는 상황에서, 친구로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 얘기를 자신의 아버지에게 곧이곧대로 얘기할 수는 없다.
회사의 일에 있어서는, 오춘화 회장만큼이나 끔찍이 생각하는 것이 자신의 아버지, 장학수였다.
모든 인간관계를 비즈니스로 생각하고, 행동 하나하나가 계산적이며, 사람 냄새라고는 전혀 나지 않는 자신의 아버지가 ‘친구’라는 이유를 받아들일 리가 없었다.
상념에서 벗어난 호식이 이내 눈을 빛내며 대답한다.
“…저 또한, 아버지의 피를 이어받은, KS그룹의 식구니까요.”
“……!”
호식의 대답에, 표정 변화를 보이지 않고 있던 장학수가 눈을 크게 떴다.
“너…….”
“회사 경영권에는 여전히 관심이 없지만, 기업인으로서 제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시험은 해 보고 싶습니다.”
“…….”
“무엇보다, 나중에 능력이 안 돼서 경영권 승계 경쟁에서 배제되었다느니, 하는 말은 듣고 싶지 않거든요.”
장학수 본인은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어느새 그의 입에는 묘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막내로 태어난 것도 모자라, 스스로 그룹 경영권에는 눈곱만큼도 관심을 갖지 않아 식구들 사이에서 애물단지 취급을 받던 아이였다.
장학수는 그게 항상 아쉬웠다.
두뇌로만 치면 식구들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아이다.
어린 시절부터 호식을 봐 온 장학수는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스스로 조금만 욕심이 있으면, 막내라는 핸디캡 따위는 뒤집어 낼 수 있을 정도의 능력을 가진 아이.
능력만큼이나 고집이 센 그 아이가 지금, 제 능력을 시험해 보고 싶다고 말하고 있다.
장학수가 입에 미소를 문 채, 묻는다.
“그러니까, 형제들이 눈독 들이고 있는 회사 내 애꿎은 계열사를 건드려 미움 받고 싶지는 않고, 적당한 외부 회사를 주물러, 능력을 시험해 보고 싶다?”
“예.”
“혹시, 성명병원 건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나?”
호식이 잠시 눈을 크게 떴다.
‘역시, 알고 계셨군.’
그룹 내에서도 정보가 가장 빠른 아버지가 모르고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직접 들으니 기분이 또 이상했다.
“…성명병원은 제 것이 아닙니다.”
“강도윤. 그 친구의 것이지?”
“…….”
“회사 이름에 직원까지 빌려 간 거야 그렇다 치고, 그 큰돈을 니가 어디서 융통한 건지 궁금해서, 조금 알아봤다.”
“…….”
“이번 일도, 그 친구와 관련이 있나?”
마치 떠보듯이 물어오는 장학수를 보며, 호식이 속으로 쓰게 웃었다.
역시나, 자신의 아버지는 쉬운 상대가 아니었다.
“…부정은 하지 않겠습니다.”
“부정은 하지 않겠다?”
“반짝반짝 빛나는 그 친구. 그 친구의 영향을 받아, 저 스스로도 조금씩 변하고 있는 것을 항상 느끼고 있으니까요.”
말을 마친 호식을 한참이나 바라보던 장학수가 이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좋은 친구군.”
“…….”
“니 부탁, 들어주지.”
“그럼……!”
“내가 해 줄 수 있는 건 어디까지나 자리 마련 정도야. 나머지는, 모두 니가 알아서 해야 할 거다.”
“충분합니다!”
“뭐, 자금이 부족하다면, 그 정도는 해 줄 수 있다. 물론, 이자까지 쳐서 갚아 줘야겠지만.”
“필요하면 말씀드리겠습니다.”
호식이 밝은 미소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랜만에 왔는데, 조금 더 놀다 가는 것도 좋지 않나?”
“자주 찾아뵙겠습니다.”
짧은 인사와 함께 몸을 돌린 호식이 그대로 출입문을 빠져나갔다.
널따란 집무실에, 이제는 홀로 남게 된 장학수.
“강도윤이라…….”
옅게 미소 지은 채, 중얼거리는 장학수의 목소리가 집무실 내에 조용히 울려 퍼졌다.
* * *
인사청문회.
대통령이 임명한 고위 공직자의 자질과 능력을 국회에서 검증받는 제도를 말한다.
인사청문회의 본 취지는 쉽게 말해, 고위 공직에 지명된 사람이 그 자리에 걸맞은 업무 능력과 인성을 갖추었는지, 국회에서 검증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취지가 어느 순간부터 본래의 목적을 잃고 변질되기 시작했다.
정치싸움.
인사청문회를 거쳐야 하는 고위 공직자들은 대통령이 임명한다.
야당에서 일반 공무원도 아닌, 정계에도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고위 공직자들을 대통령 입맛대로 임명하는 것을 두고만 보고 있겠는가?
청문회가 시작되기 전부터, 야당의 당원들은 치열한 수 싸움에 들어간다.
후보자의 뒷조사는 기본이다.
학력이나 경력사항, 병역관계, 소득세나 재산세 조사는 기본이고, 어린 시절 저지른 사소한 도덕적 문제까지.
청문회가 시작되면, 자신들이 조사한 정보를 바탕으로, 후보자를 집요하게 물어뜯기 시작한다.
그 와중에, 문제가 불거지면 후보자 스스로 자진 사퇴하기도 하고 말이다.
수천 검사들의 수장인 검찰총장 또한 이 인사청문회를 피할 수 없다.
바로 오늘이, 검찰총장 단독 후보자인 정승만 서울지검장의 인사청문회가 있는 날이었다.
* * *
“지금부터 정승만 검찰총장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시작하겠습니다. 후보자께서는 소신 있는 본인의 철학을 피력해 주시기 바라고, 각 위원님들은 가급적 논점에서 벗어난 공격적인 질의는 지양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이번 인사청문회의 위원장을 맡은 자유당 박수갑 의원의 목소리가 스피커를 타고 회의장 내부에 울려 퍼졌다.
“…성심성의껏 청문회에 임하도록 하겠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난 정승만이 한차례 고개를 숙이곤, 다시 착석했다.
그것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인사 청문회가 시작되었다.
“평화당 문성기 의원부터, 후보자에게 질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예, 위원장님.”
위원장석 바로 우측에 앉아 있던 인상 좋은 중년 의원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얇은 두께의 종이들을 힐끗 바라본 문성기 의원이, 이내 그곳에서 시선을 거두곤 말한다.
“평소 후보자님의 활약에 대해서는 익히 들어 왔습니다. 바로 질의하도록 하겠습니다.”
“경청하겠습니다.”
“대한민국의 법과 질서를 누구보다 앞장서 수호해야 할 검사. 그리고, 그 검사들의 수장인 검찰총장. 저는 그런 검찰총장이 평소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행여나 그릇된 판단으로 잘못된 길로 접어들지는 않을지, 그 부분이 우려스럽습니다.”
“…….”
“해서, 현재 후보자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그 부분에 대해 묻고 싶습니다.”
말을 잇던 문성기 의원이 잠시 주변을 둘러보고는, 다시 정승만에게 시성을 고정한 채 말을 잇는다.
“최근, 몇 가지 불미스러운 일로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가 밑바닥까지 추락했다는 것. 후보자님도 잘 알고 계시겠지요?”
문성기의 말에 자리하고 있던 몇몇 의원들이 움찔 몸을 떨었다.
물론 그 대부분이 야당 측 의원들이었다.
“알고 있습니다.”
“떨어진 국민들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다른 무엇보다 사후 조치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방법이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관련 책임자들을 엄벌하는 것 또한 가장 먼저 선행되어야 할 일 중 하나겠죠.”
문성기가 부드러운 미소로 정승만에게 묻는다.
“수천 검찰의 수장으로서, 이 부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후보자님의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이보세요, 문 의원님!”
순간 맞은편에 앉아 있던 다소 젊은 사내가 소리쳤다.
30대 나이에 당선된 신자유당 공차돌 의원이었다.
“후보자가 과연 검찰총장이라는 자리에 걸맞은 인성과 능력을 갖추었는지, 그 부분에 대해 검증하는 자리입니다! 싸움이나 하자고 만든 자리가 아니란 말입니다!”
“아니 저는 단지…….”
“위원장님! 문성기 위원은 논점에서 벗어난 질문으로 이 자리에 앉아 있는 위원들을 불편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제가 후보자에게 질문하겠습니다.”
“아직 문성기 위원의 발언권이 끝나지 않았…….”
박수갑 위원장이 채 말을 잇기도 전에, 공차돌이 소리쳤다.
“검찰 내 라인! 검찰이 만들어진 이래, 썩은 고인 물처럼 꾸준히 문제되고 있던 것입니다. 후보자는 이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공 의원!”
“소문에, 후보자 또한 검찰 내 라인을 만들어 두고 있다는 얘기가 있던데, 사실입니까!?”
“……!”
순간 회의실 내에 정적이 흘렀다.
그런 분위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공차돌 의원이 마지막 쐐기를 박았다.
“강도윤 검사! 부하 직원들 중에서도 유독 그 직원에게만 특혜를 주고 있다는 소문에 대해, 답변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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