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5화 딜
웅성, 웅성.
인사청문회 회의실 분위기가 어수선해지기 시작하자, 위원장인 박수갑이 인상을 찌푸리며 소리친다.
“정숙, 정숙하세요!”
“…….”
귀청을 때리는 위원장의 목소리를 한 귀로 흘린 정승만이 슬며시 미간을 찌푸렸다.
자신도 눈과 귀가 있었기 때문에, 지검 내에서 은밀하게 도는 소문들은 모두 듣고 있었다.
특히나, 도윤이 자신의 사람이라는 얘기는 이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박보윤이 자신을 직접 찾아왔을 때도, 그런 얘기를 하지 않았던가?
‘그렇다고, 청문회 자리에서 이런 얘기를 들을 줄은…….’
부정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다.
도윤이 얼마나 뛰어난 인물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자신이었다.
능력만 놓고 봤을 때는, 절대 일개 검사로 끝낼 인재가 아니었다.
그런 인재가 바로 자신의 사람이라고 하는데, 어느 누가 싫어하겠는가?
정승만은 오히려, 그 얘기를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 생각을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밝혀, 괜히 불협화음을 만들 필요는 없겠지.’
생각을 정리한 정승만이 이내 입을 열었다.
“강도윤 검사가 제 라인이라니, 저는 처음 듣는 얘기입니다만…….”
“뭐요?”
공차돌이 당황한 표정으로 반문했다.
“애초에 라인이니 뭐니 따위의 이유로 누군가에게 특혜를 준 기억은 전혀 없습니다. 어디서, 무슨 얘기를 듣고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보세요, 정승만 후보자! 아는 사람들은 다 알고 있는 사실을, 지금 거짓이라 말하는 겁니까!?”
공차돌이 얼굴을 붉히며 소리쳤다.
자세를 바로 한 정승만이 조용한 목소리로 묻는다.
“근거가 무엇입니까?”
“뭐요?”
“위원님이 그 소문을 믿는 근거 말입니다. 설마 이런 자리에서, 아무런 근거도 없이, 그저 들리는 소문에… 라는 이유만으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건 아니시지 않습니까?”
“하? 좋습니다. 위원장님! 전화 한 통 사용해도 되겠습니까?”
순간 공차돌이 위원장을 돌아보며 외쳤다.
“…허락합니다.”
분위기를 탄 박수갑 위원장이 짧게 대답했다.
회심의 미소를 지은 공차돌이 곧바로 휴대전화를 들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기 시작한다.
잠시간의 시간이 지나, 수화기 너머로 목소리가 들려오자 공차돌이 곧바로 준비된 마이크에 휴대폰을 연결했다.
“아, 아. 들립니까, 박 검사님?”
공차돌이 마치 테스트하듯 수화기에 대고 말하자, 이내 스피커를 타고 사내의 목소리가 회의실 내부에 조용히 울려 퍼진다.
“…예, 잘 들립니다.”
“전국에 실시간으로 생중계되고 있는 인사청문회 자리입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국민들이 알 수 있게, 소개를 좀 해 주시겠습니까?”
수화기 너머로 잠시 침묵을 지키는 듯하던 사내가 잠시 후 대답한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현재 부산동부지검에서 근무하고 있는…….”
“…….”
“…박봉준 검사라고 합니다.”
사내의 목소리가 조용하지만 또렷하게, 사람들의 귀에 박혀 들었다.
* * *
똑, 똑.
검사실에서 한참 서류를 들여다보고 있던 도윤이 순간 들려오는 노크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네.”
“검사님, 손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손님요?”
짧게 고개를 숙이며 사무실로 들어서는 자신의 담당 실무관을 바라보며, 도윤이 고개를 갸웃했다.
“따로 약속 같은 건 잡은 게 없는데…….”
“그게, 약속은 하지 않았는데, 오랜 친구라고 하면 알 거라고?”
“친구요?”
“네.”
잠시 머리를 긁적이던 도윤이 실무관을 바라봤다.
“그런데… 신분도 제대로 밝히지 않은 사람이, 이곳까지 출입을 할 수가 있나요?”
“아……!”
이제야 이상함을 깨달았다는 듯, 실무관이 눈을 크게 떴다.
어느 지검, 어느 지청을 가든, 검사실을 가기 위해서는 로비에서 신원 확인을 철저히 받아야 했다.
도윤이 회귀하기 전에는, 등록된 지문이나 출입증이 없으면 검사실이 모여 있는 층에 출입 자체가 불가능했다.
검사라는 직업의 특성상, 해코지를 당할 위협이 높기에, 그런 상황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제가 다시 한 번 더 알아보고 말씀드리겠…….”
“아니, 아니에요. 그냥 들여보내 주세요.”
도윤이 손을 휘휘 저으며 말했다.
이곳까지 왔다는 것 자체가, 신원 자체는 확실하다는 것 아니겠는가?
“오랜 친구라면 대충 짐작은 되니…….”
“친구 만나는데 무슨 시간이 이렇게 걸려?”
순간 실무관 뒤쪽 출입문 사이로 삐죽 고개를 내민 사내가 불만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역시…….”
도윤이 역시나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예상대로, 평소와 달리 깔끔한 정장 차림의 호식이 그곳에 서 있었다.
“제 친구 맞아요. 괜찮으니까 나가 보세요, 실무관님.”
“아, 예. 그럼…….”
도윤과 호식을 번갈아 바라보던 실무관이 이내 한차례 고개를 숙이곤, 출입문을 빠져나갔다.
“요즘은 일감도 안 들어오는데, 왜 이렇게 바쁜가 몰라.”
답답한지 넥타이를 풀어 헤친 호식이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이러다가 데이트 비용까지 걱정해야 하는 것 아닐까.”
“대한민국 변호사가 고작 데이트 비용 걱정이라니… 돌 맞아 죽기 딱 좋은 말인데?”
“야! 변호사 쇼핑시대, 몰라? 요즘은 변호사들도 경쟁이야, 경쟁. 워낙 머릿수가 많아야지.”
입을 삐죽이 내밀며 투덜거리는 호식을 보며 도윤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서, 바쁘신 분이 여긴 웬일이야?”
“뭐, 일이 있어야 오나…….”
“표정에서 다 보이는데? 얘기해 봐.”
“…….”
도윤의 말에 호식이 입을 다물었다.
잠시 머뭇거리던 호식이 도윤을 바라보며 조심스레 묻는다.
“니 목적. 분명, 명성을 완전히 무너뜨리는 데 있는 거겠지?”
“…그래.”
“그거, 내가 조금 도움을 줄까 하는데, 어때?”
“도움?”
“명성물산. 아마 내가 인수할 수 있을 것 같거든.”
“……!”
도윤이 눈을 크게 떴다.
명성물산이라면 명성그룹 내에서도 외식업과 함께 주력으로 밀고 있는 분야다.
명성에서 물산을 포기한다는 사실도 놀라웠지만, 만약 그렇게 되면 명성에서 최소 20퍼센트는 몸집을 줄이는 것과 다름없었다.
그 정도로, 그룹 내에서 물산 분야가 차지하는 비중이 컸으니까.
“알맹이까지 다 빼앗아 오는 것이 아닌, 가죽뿐인 물산이지만… 성명병원 때처럼 이렇게 하나하나 빼앗아 오다 보면, 자연스레 니 목적도 이룰 수 있지 않을까 해서…….”
“…….”
“미안하다. 머리가 나쁜 나는, 이 정도 생각밖에 못 하겠네.”
“아니, 아니야.”
고개를 저은 도윤이 호식의 어깨를 툭 하고 쳤다.
“아주 멋진 계획인데?”
“…….”
“이렇게 어렵게 얘기를 꺼내는 것을 보니, 인수하는 데 제법 많은 돈이 필요한 거지?”
도윤의 물음에 호식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 선에서 나름대로 해결 보려고 했는데, 명성에서도 워낙 다이가 큰 놈이라 쉽지가 않아.”
“얼마나 필요한데?”
“대충 5,000억 정도…….”
호식의 대답에 도윤이 한숨을 내쉬었다.
예상은 했지만, 성명병원 때보다 더 많은 돈이 필요했다.
“딱히 현금이 필요한 건 아니야. 니가 가진 병원과 포털 사이트 지분. 그 일부면 충분할 거야.”
“음…….”
도윤이 상념에 빠져들었다.
사실 포털 사이트와는 비할 바 아니지만, 최근 들어 비단으로 이름이 바뀐 병원의 가치 또한 예상을 훌쩍 뛰어넘었다.
도윤과 호식이 썩은 성명병원에 대한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해, 특단의 조치를 취했기 때문이다.
이른바, 노이즈 마케팅(noise marketing).
도윤이 선택한 방법은 명성그룹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의사들뿐만 아니라, 이를 방조하고 묵인한 의사들까지, 기존의 모든 의사들을 내보내는 것이었다.
인턴까지 합치면, 3차병원인 성명병원에 속해 있는 의사는 100여 명이 훌쩍 넘었다.
그 의사들이 하나도 남김없이 모조리 해고 아닌 해고통지를 받은 것이다.
병원의 구조와 운영 방식을 생각하면 절대 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
병원뿐만 아니라, 어떤 직장을 가든 파산 직전인 상황이 아닌 이상, 직원들을 한 번에 모두 내보내는 경우는 없다.
최소한 기존의 업무에 대한 인수인계를 할 수 있는 인력들은 반드시 있어야 하니까.
각 부장검사들이 사전에 작심을 하고, 전원 사직서를 제출하면 정부에서 골머리를 앓는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였다.
업무 자체가 돌아가질 않을 테니까.
한순간 직장을 옮겨야 하는 상황을 맞이하게 된 의사들은 당연히 격렬하게 반발했다.
의사들 또한 대한민국 최상위 엘리트를 자부하는 사람들 아닌가.
노동자들에게 자신들을 위한 노조가 있다면, 의사들에게는 협회가 있었다.
협회 차원에서 움직임을 보이려 하였지만, 이는 도윤이 나서기도 전에 자연스레 무산되었다.
다름 아닌 국민들이 열광하였기 때문이다.
누구보다 바르고 건강한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어야 할 의사들이 내 자신, 내 가족의 생명을 가지고 장사를 했다는 사실.
더 나아가 온갖 악행과 만행을 저질렀음에도, 평소와 다름없는 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그 의사들을 보는 국민들 대부분이 분노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국민들의 반응에 협회는 눈에 띌 정도로 당황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던 그때, 도윤이 나선 것이다.
“설마 그 상황에서 먼저 협회에 손을 내밀 줄은 상상도 못 했다니까? 뭐, 그 덕분에 상황도 잘 풀렸고, 병원 가치도 훌쩍 뛰어오른 거지만…….”
호식의 중얼거림에 도윤이 상념에서 벗어났다.
“자존심보다는, 상황을 안정화시키는 게 중요했으니까.”
“…….”
“혼란스런 상황이 지속될수록, 치료가 필요한 환자들의 고통은 더욱 커졌을 거잖아?”
이어지는 도윤의 말에 호식이 옅게 미소 지었다.
“역시 멋있어.”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운 호식이 말을 잇는다.
“물론,병원 내 파벌이 형성되었다는 부작용이 생겼긴 하지만, 그 정도는 감수해야겠지.”
“어쩔 수 없지.”
도윤이 쓰게 미소 지었다.
도윤이 협회 측에 제안한 것은 두 가지.
하나는, 차후 또다시 이런 상황이 발생했을 때 반드시 협회 측과 논의하여 일을 처리할 것.
사실 이 부분은 크게 의미가 없었다.
어디까지나, 도윤이 먼저 협회에 손을 내밀었다는 사실이 더 큰 의미가 있었으니까.
문제는 두 번째.
새로운 의사들 중 20퍼센트는 협회 측의 추천을 받아, 채용을 진행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재채용 문제는 전적으로 KS병원과 호식의 도움을 받았기에, 당연히 병원 내 파벌 아닌 파벌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사이다 병원이라는 별명까지 생기면서, 비단의 가치가 껑충 뛰었어. 이 정도면, 내가 아버지와 딜을 해 볼 만하거든. 물론, 니가 허락해야겠지만…….”
“딜?”
도윤이 고개를 갸웃하며 반문했다.
“이번 일에, 필요하면 아버지가 자금을 대출해 주기로 했거든. 워낙 돈 욕심이 많은 분이라, 이자가 좀 세긴 하지만…….”
“…….”
“무상으로 빌렸다간 나중에 무얼 요구할지 모르시는 분이니, 이걸 가지고 적당히 딜을 볼 생각이야. 돈이나 회사 일 앞에서는, 가족도 없는 분이시니까.”
호식의 말에 잠시 턱을 쓰다듬으며 고민하던 도윤이 씨익 미소 지으며 대답한다.
“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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