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화 제 사람입니다
“우선 용기를 내 신분을 밝히고 진술해주시는 점, 감사드립니다. 검찰 내 라인, 그 부분에 대해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구요?”
공차돌 의원의 목소리가 인사청문회 회의실 내에 울려 퍼졌다.
잠시 후,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가 연이어 들려왔다.
“…예. 맞습니다.”
“그 라인 때문에, 본인이 인사상 불이익을 받은 적이 있습니까?”
“예.”
“이 자리에서 그 얘기를 한다는 것은, 라인이 여기 있는 후보자와 연관이 있다는 뜻이겠지요?”
“잠깐만요, 공의원!”
공차돌의 물음에 맞은편에 앉아 있던 평화당 문성기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후보자는 현재 서울지검장이고, 직전 소속지 또한 대검이었습니다. 그런데, 부산에 있는 일개 평검사가 어떻게 후보자의 라인을 운운할 수 있단 말입니까!?”
부드러운 인상과 어울리지 않게, 목에 핏대를 세운 문성기가 재차 큰 소리로 외친다.
“후보자! 혹시, 통화 중에 있는 검사와 인사 접전지가 있었습니까?”
“…처음 듣는 목소리입니다.”
정승만이 조용한 목소리로 대답하자, 그때서야 정신을 차린 공차돌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아직 제 질의 안 끝났습니다!”
“공 의원도 내 질의 시간에 끼어들었지 않습니까!?”
“지금 애들 싸움이라도 하자는 겁니까!?”
“뭐요? 애들 싸움?”
문성기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반문하자, 청문회 위원장인 박수갑이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그만, 그만!”
“…….”
자신의 제지에 아랑곳하지 않고 싸울 거라 생각한 두 사람이 입을 다물자, 박수갑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후보자의 청문회 자리입니다. 두 위원, 착석하세요.”
조용히 자리에 앉는 공차돌과 문성기를 보며, 박수갑이 마이크에 대고 말을 잇는다.
“박 검사님, 청문회 위원장입니다. 내 말 들립니까?”
“예. 잘 들립니다.”
“혹시, 후보자와 같이 근무했던 경험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일초의 망설임도 없는 답변이 수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그 답변에, 미간을 살짝 찌푸린 박수갑이 재차 묻는다.
“그렇다면 박 검사님이 얘기한 라인, 도대체 무슨 근거로 이 자리에서 그런 얘기를 하는 것인지, 설명해주시겠습니까?”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정승만 검찰총장 후보자님의 라인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
“뭐요? 청문회 자리에서 후보자의 얘기가 아니라니, 지금 장난합니까!?”
분을 삭이고 있던 문성기가 순간 발끈했다.
“문 위원. 기다리세요.”
“…….”
박수갑의 조용한 목소리에 문성기가 움찔했다.
“박 검사님. 조금 더 설명이 필요할 것 같은데, 계속해주시겠습니까?”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도 검찰 내 라인이니 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아는 바가 없습니다. 제가 검사라서가 아니라, 확신을 가질 정도로 어떤 라인을 인지한 적은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마지막 ‘하지만’이라는 단어를 힘주어 말한 박봉준이 계속 말을 잇는다.
“한 가지, 분명히 인지하고 있는 것은 있습니다.”
“…….”
“현재, 국민들을 기만한 명성 사건의 수사를 맡고 있는 담당 검사이자, 정승만 후보자님과 같은 서울중앙지검 소속… 강도윤 검사.”
“……!”
의외의 인물의 입에서, 마찬가지로 의외의 인물이 거론되자 정승만이 눈을 크게 떴다.
자신의 기억에 없는 직원이라면, 분명 지방의 평범한 검사가 맞을 것인데, 왜 굳이 이 자리에서 이런 얘기를 하는지 궁금했다.
찔리는 것 또한 전혀 없었다.
아니, 스스로 떳떳했다.
자리에 대한 욕심이야 누구보다 강했지만, 정의롭지 못한 일에는 단칼에 선을 그으며 살아왔으니까.
그 때문에 동기들 중에서도 승진이 가장 늦지 않았던가.
‘아무래도 이 자리는, 내가 아닌 도윤이 인사청문회인 것 같은데…….’
상념에서 벗어난 정승만이 쓰게 미소 지었다.
“그러니까 강도윤 검사가 제 라인이다, 그 말씀이십니까?”
“정확히는, 강도윤 검사의 라인에 후보자님이 포함되어 있으신 거겠죠.”
묘하게 돌려 말하는 박봉준의 목소리에 정승만이 슬쩍 미간을 찌푸렸다.
“저는 후보자님과 같이 근무를 한 경험은 없지만, 강도윤 검사와는 같이 근무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 친구가 실습생일 무렵이었죠.”
“…….”
“그때, 당시 부장검사님이 유독 그 친구만을 편애하신 기억이 있습니다. 실습생 신분인 그 친구에게, 교육을 위한 수사 참여 수준을 넘어 특정 부분에 대해서는 직접 수사를 하게 할 정도로 말이죠.”
한차례 목을 가다듬은 박봉준이 계속 말을 잇는다.
“이상했습니다. 기분 탓일지도 모르겠지만, 다른 실습생은 다 제쳐두고 그 친구만 감싸시려 하는, 그런 느낌이 들었거든요.”
“…….”
“그런데… 그 친구가 정식으로 발령받고 난 이후, 그 생각은 확신으로 바뀌었습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공차돌이 고개를 갸웃하며 반문했다.
“위원님들이 아시는지는 모르겠지만, 서울중앙지검은 신임검사들에게 꿈이라 불릴 정도로, 초임지로는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는 곳입니다. 물론, 강도윤 검사뿐만 아니라 다른 친구도 그곳에 함께 발령을 받아 이 정도까지는 어느 정도 납득이 가능하지만…….”
“…….”
“고작 몇 년도 채 지나지 않은 신임검사가 특수부로 발령받았을 뿐만 아니라, 이번 일과 같은 큰 사건을 맡는다는 건 이례가 없던 일입니다.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가 않습니다.”
“그 얘기를 말씀하시는 거였군요.”
공차돌이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주변을 둘러보던 공차돌이 입을 열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검찰 출신인 저도 의문이었습니다. 이슈화되어 사회적인 이목이 집중된 이런 사건의 경우 최소 수십 년 이상의 경력을 가진, 소위 고참 검사들이 사건을 맡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박 검사는 지금 그 부분을 지적하고 있는 거구요.”
말을 잇던 공차돌이 정승만을 돌아본다.
“후보자. 이래도 라인이니 특혜니 하는 것이 검찰 내에 없다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입을 다문 채 침묵을 지키던 정승만이 이내 대답한다.
“…물론입니다.”
“검찰 선배님이시기도 한! 위원장님께 여쭙고 싶습니다. 이게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정승만의 대답에 아랑곳하지 않고, 공차돌이 이번에는 박수갑 위원장을 돌아보며 외쳤다.
“음…….”
가만히 듣고 있던 박수갑 위원장이 한차례 침음을 삼켰다.
검찰 내 라인은 생각보다 훨씬 더 민감한 문제다.
물론 조금 과하기는 했지만, 이 부분에 대해서는 확실히 하고 넘어갈 필요가 있었다.
생각을 정리한 박수갑 위원장이 정승만을 바라보며 말한다.
“후보자. 본인이 특정 인물에게 특혜를 주었는지, 주지 않았는지를 떠나서,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저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
“검찰 내 라인 문제는 이미 오래전부터 문제시되던 부분 아닙니까? 저 질의에 대한 답변과 더불어, 차기 검찰총장으로서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그에 대한 고견도 부탁드립니다.”
“…….”
박수갑 위원장의 말에도 정승만은 묵묵부답이었다.
그 의외의 반응에 일부 사람들이 조금씩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누가 봐도 깊은 생각에 잠겨 있는 듯한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후보자?”
박수갑 위원장의 중얼거림에 회심의 미소를 지은 공차돌이 목청을 높이기 시작했다.
“후보자! 위원장님이 묻고 계시지 않습니까!? 이게 그토록 고심해서 대답해야 할 문제입니까!?”
“…….”
“침묵은 긍정의 또 다른 표시라고 했습니다. 특혜, 분명 준 것이지요?”
머리를 숙이고 있던 정승만이 고개를 들어 공차돌과 눈을 마주했다.
그 서슬 퍼런 눈빛에, 공차돌이 움찔 몸을 떨었다.
침묵을 지키고 있던 정승만이 마침내, 천천히 입을 열기 시작한다.
“강도윤 검사는…….”
* * *
“나는 우선 다시 한 번 아버지를 만나 뵙고 올게. 돈 문제가 아니라도, 명성물산을 인수하는 데는 아버지 도움이 꼭 필요하니까.”
“부탁할게.”
자리에서 일어나는 호식을 향해 도윤이 옅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아참! 그 아가씨 문제는 어떻게 할 생각이야?”
“아가씨?”
도윤이 고개를 갸웃하며 반문하자, 호식이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알면서 모르는 척하기는… 귀여운 짜식.”
“뭔 소리야?”
도윤이 살포시 미간을 찌푸렸다.
“박보윤 검사 말이야.”
“…….”
“계산은 확실히 해야지. 이번 건은 분명히 그 아가씨 공이 컸잖아?”
이어지는 호식의 말에 도윤이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호식의 말대로였다.
실제 박보군 총리가 어떤 조치를 취했는지 취하지 않았는지를 떠나서, 그의 의중을 알 수 없었다면 이토록 추진력 있게 일을 추진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 모든 공은 박보윤, 그녀의 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고작 전화 한 통이었지만, 그 전화로 모든 일을 시작할 수 있었으니까.
“…이번 일만 마무리되면, 한번 만나볼 생각이야.”
“오……!”
호식이 살짝 감탄사를 터뜨렸다.
“네 말대로 감사 표시도 해야 하고, 긴히 따로 할 얘기도 있으니까.”
“긴히 따로 할 얘기라… 그거 참 궁금하네.”
“…네가 지금 생각하고 있는 그런 것만은 절대 아닐 거다.”
“흐응~”
묘한 콧소리를 낸 호식이 이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조만간 국수 한번 거하게 먹을 수도…….”
자신이 중얼거리는 소리를 애써 무시하는 도윤을 보며, 호식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나 진짜 간다. 그리고… 그거 시작했어.”
“그거?”
“검찰총장 인사청문회.”
“……!”
도윤이 ‘아차’ 한 표정으로 눈을 크게 떴다.
갑작스러운 호식의 방문에 까맣게 잊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창 이곳저곳에서 공격받고 계실 텐데, 케어 좀 잘해드려. 뭐, 그분이라면 청문회 정도는 문제도 안 되겠지만 서도…….”
말을 마친 호식이 이내 도윤의 검사실을 나섰다.
잠시 그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도윤이 급히 TV 전원 버튼을 눌렀다.
예상대로, 청문회는 한창 진행 중에 있었다.
그리고,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가 TV 스피커를 타고 귀청을 때리자, 도윤이 굳은 표정을 지었다.
“박봉준 검사…….”
박봉준의 목소리가 이어질수록, 도윤의 표정은 점점 더 굳어가기 시작했다.
자신의 기억 속에 있는 박봉준은 누구보다 권력에 대한 욕망이 강한 인물이었다.
고작 사적인 원한 때문에 차기 검찰총장이 유력시되는 사람을 전면에서 들이받을 정도로, 무식하고 어리석은 인물이 아니었다.
그 모습에, 도윤은 묘한 불안감을 느꼈다.
‘숙여야 할 타이밍에, 하수인을 내세워 모습을 드러낸다…….’
속으로 중얼거린 도윤이 살며시 입술을 깨물었다.
박봉준뿐만 아니라, 청문회에 자리하고 있는 다른 위원들도 이때다 싶어 정승만을 물어뜯고 있었다.
그 대부분이 야당 쪽 인물들이었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저 모든 것이 오롯이 자신 때문에 생긴 문제라는 것.
그것이 못내 도윤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바로 그때, 묵묵부답 침묵을 지키고 있던 정승만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강도윤 검사는…….”
일순간 인사청문회 회의실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그 고요한 분위기 속에, 정승만이 낮은 목소리로 말을 잇는다.
“……제 사람이 맞습니다.”
“……!”
이윽고 정승만의 목소리가 회의실 내에 조용히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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