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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잡는 회귀검사-138화 (138/174)

138화 총리와의 만남

수 시간이 지나, 자리를 옮긴 한식집.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자리에 앉아 있는 도윤을 보며, 박보윤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뭘 그렇게 굳어 있어요? 누가 보면 우리 할아버지가 먼저 당신을 보자고 한 줄 알겠네요.”

“그게, 부탁한 당일에 이렇게 갑자기 만나게 될 줄은…….”

“그건 그래요.”

보윤이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예상외로, 보윤은 총리를 만나게 해 달라는 도윤의 부탁을 흔쾌히 수락했다.

물론, 어디까지나 의사를 전달하는 것까지만.

결정은 할아버지 스스로 하는 것이라, 실망은 하지 말라며 도윤에게 미리 신신당부했다.

‘그런데, 그렇게 쉽게 수락하실 줄은…….’

속으로 중얼거린 보윤이 무언가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는 도윤을 보며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려운 부탁일수록 상대방의 고마움 또한 배가되는 법 아니겠는가.

만약 자신의 할아버지가 도윤의 부탁을 거절하였다면, 직접 나서 두 사람의 만남을 성사시키려 했다.

그렇게 되면, 도윤은 자신에게 훨씬 더 큰 고마움을 느꼈을 테니까.

“그렇게 굳어 있지 말아요. 우리 할아버지, 딱딱하고 어색한 거 별로 안 좋아하세요.”

보윤이 여전히 굳어 있는 도윤을 향해 말했다.

“그, 그래요?”

더듬거리며 반문하는 도윤을 보며, 보윤이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어쩌다 보니 점심, 저녁을 다 나랑 같이 먹게 되었네요? 이럴 줄 알았으면 어디 분위기 좋은 술집이라도 알아보는 건데…….”

“…저도 술 한잔 생각이 간절합니다.”

“흐응~”

보윤이 묘한 콧소리를 냈다.

사실, 보윤은 지금 도윤의 모습이 상당히 신선했다.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을 것 같은 남자가 아니던가.

상념을 떨쳐 낸 보윤이 짓궂은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사람 입맛은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바뀐다는데, 할아버지는 한결같이 한식집만 좋아하시거든요. 뭐, 여기서 소주라도 한 병 시킬까요?”

“…농담하시는 겁니까?”

“농담처럼 들리세요?”

보윤이 정색을 하며 반문했다.

그런 보윤을 잠시 멍하니 쳐다보던 도윤이 이내 픽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술은… 총리님을 뵌 이후가 좋겠습니다.”

“약속한 거예요?”

보윤의 미소가 한층 짙어졌다.

안 그래도 예쁜 얼굴에 평소에 하지 않던 화장까지 한 보윤이 미소 짓자 마치 등 뒤에서 후광이 비춰지는 듯했다.

“…예.”

마주 미소 지은 도윤이 대답하던 그때.

‘똑, 똑’ 하는 노크 소리가 들리더니 미닫이문이 부드럽게 열렸다.

“늦었네.”

반백머리를 깔끔하게 뒤로 넘긴 초로의 노인이 방에 들어서자, 도윤과 보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할아버지!”

“우리 손녀, 자주 보니까 좋구나.”

큰 소리로 외치는 보윤을 향해 인자한 미소를 지어 준 노인은 바로, 보윤의 할아버지이자 현 총리인 박보군이었다.

“가만 있어 보자, 이쪽 분이……….”

“서울중앙지검에 근무하고 있는 강도윤 검사라고 합니다, 총리님.”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예?”

멍하니 반문하는 도윤을 보며, 묘한 미소를 지은 박보군이 손을 내밀었다.

도윤이 황급히 제 손을 뻗어 그 손을 맞잡았다.

“인사는 이만하면 됐고, 일단 앉을까요?”

겉옷을 벗은 박보군이 자리에 앉자, 도윤과 보윤도 다시 자리에 착석했다.

“바로 음식 준비하겠습니다.”

가만히 대기하고 있던 직원이 한차례 고개를 숙이곤 밖으로 빠져나갔다.

“호오…….”

다른 사람의 시선 따위는 신경조차 쓰지 않고, 도윤의 이모저모를 뜯어보던 박보군이 연신 감탄사를 터뜨리기를 잠시.

“…할아버지!”

보다 못한 보윤이 옅게 얼굴을 붉히며, 작게 소리쳤다.

이내 정신을 차린 박보군이 ‘허허’ 하며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얼굴은 전혀 안 본다더니, 그건 또 아닌 것 같은데…….”

자세를 바로 한 박보군이 작게 중얼거렸다.

물론, 그 목소리는 바로 옆에 있던 보윤의 귀에만 들렸다.

자리 위치가, 상 하나를 두고 도윤이 보윤과 박보군을 마주보는 형태였기 때문이다.

보윤의 얼굴이 더욱 더 새빨개지기 시작할 때, 박보군이 도윤을 바라보며 말한다.

“강 검사님, 물론 국민들의 영웅인 강 검사님을 내 한번 꼭 만나 보고 싶어, 있던 스케줄도 취소하고 이 자리에 나온 것이지만…….”

“영웅이라뇨, 가당치도 않습니다. 어려운 부탁을 들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겸손도 하고… 하기야, 나랑 밥 먹자는 게 어려운 부탁이긴 하지.”

박보군이 순간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내가 뭐 주제에 과분한 총리 자리에 있어서는 아니고, 자식 놈은 대한민국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신문사 주인에, 손녀딸은 모르는 사람이 없는 유명 검사지… 어디 하나 부족한 게 없잖아요, 안 그래요?”

“아, 물론입니다.”

“그래서 말인데… 강 검사, 혹시 여자 친구 있어요?”

“할아버지!”

결국 참지 못한 박보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왜 그러니? 첫 느낌이 워낙 좋아서, 없으면 내가 주변에 괜찮은 아가씨나 소개시켜 주고 싶어 물어본 건데…….”

“…실례예요. 첫 만남이잖아요. 곤란해할 거예요.”

“저는 괜찮습니다, 검사님.”

보윤이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눈치 없이 끼어드는 도윤을 잠시 노려봤다.

“……?”

그 시선에 도윤이 고개를 갸웃하자, 이윽고 보윤이 팩 하고 고개를 돌리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일적인 면에 있어서는 그토록 완벽해 보이더니, 이런 쪽은 영 젬병인 듯했다.

‘멍청이…….’

보윤이 속으로 중얼거리고 있을 때, 박보군이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검사님? 두 사람, 존칭하나?”

“예? 그야…….”

“…쯧.”

도윤의 대답에 박보군이 가볍게 혀를 찼다.

하나둘 테이블 위로 음식들이 들어서자, 더 이상 두 사람을 놓아두면 안 되겠다고 판단한 보윤이 중간에서 끼어들었다.

“밥부터 먹고, 바로 본론이나 얘기해요. 쓸데없는 얘기는 이만하구요.”

“일단 들지.”

이내 모든 음식이 들어서자, 박보군이 도윤을 향해 손짓했다.

직원들이 모두 빠져나가고, 수저 부딪히는 소리만 간간히 들리던 그때, 박보군이 말한다.

“그래, 날 보자고 한 이유는 뭔가?”

음식을 들던 도윤이 멈칫했다.

잠시 머뭇거리던 도윤이 이윽고 무언가 결심한 표정으로 대답한다.

“총리님께… 여쭙고 싶은 게 있습니다.”

“얘기해 보게. 내가 대답해 줄 수 있는 부분이라면, 대답해 주지.”

“다른 게 아니라… 명성 사건을 수사하면서, 몇 가지 걸리는 게 있어서 말입니다.”

도윤의 입에서 명성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박보군의 얼굴 표정도 조금 굳었다.

“…명성 사건에 대해서라… 그걸 굳이 나한테 물을 필요가 있나?”

“예?”

“수사는 전적으로 검찰에서 할 일이 아닌가. 그저 원칙대로, 자네 소신껏 수사하면 되는 것을…….”

“아, 그건 물론입니다.”

박보군의 말에 도윤이 옅게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예상외로, 조금 쉽게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번 사태가, 명성그룹뿐만 아니라 정계 인사와도 밀접한 연관이 있어서 말입니다.”

“그 얘기는…….”

“야당 전체와 연관되어 있다는, 그런 얘기가 아닙니다.”

“응……?”

순간 고개를 갸웃하는 박보군을 보며, 눈을 빛낸 도윤이 말을 잇는다.

“야당 중에서도 특정인사. 한 사람이 이번 일 대부분을 주도했을 정도로, 깊숙이 개입하고 있었습니다.”

“……!”

박보군이 눈을 크게 떴다.

비밀리에 당론으로 결정된 사항이겠지만, 분명 당 대표든, 원내대표든, 그게 아니면 또 다른 영향력 있는 당원이든, 일을 주도한 사람은 있었을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당원들이 똑같은 생각을 가지고 뚝딱 일을 추진하지는 않았을 테니까.

굳이 도윤이 얘기하지 않아도 그 정도쯤은 박보군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문제는, 지금 이 얘기를 하고 있는 사람이 사건 주 담당 검사인 도윤이라는 것이었다.

몰라서 책임자를 엄벌하지 않는 것이겠는가.

증거가 없으니, 처벌도 못할 뿐이다.

하지만, 증거가 있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민낯과도 같은 그 부끄러운 것들이 세상천지에 알려지게 되면, 민심이 가만히 있지 않을 테니까.

“증거… 나왔나?”

박보군의 물음에 옆에서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보윤도 꿀꺽 하고 마른 침을 삼켰다.

“일단은요.”

“…….”

도윤의 짧은 대답에 박보군이 입을 다물었다.

“아직 수사 중인 사안이라 자세한 건 알려 드릴 수 없지만… 세상에 알려지게 되면, 그 파급력이 만만치는 않을 겁니다. 현직 검사와도 연결고리가 있는 듯하니까요.”

“그런…….”

“해서, 여쭙고 싶습니다. 총리님의 의중을요.”

도윤이 고개를 들고, 박보군의 두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묻는다.

“제가 이분에 대한 수사를 진행하게 되면, 그것만으로 당론이 분열되고 혼란이 가중될 확률이 상당히 높습니다. 어쩌면, 총리님이 우려하는 그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겠지요.”

“음…….”

박보군이 낮은 침음을 삼켰다.

가뜩이나 야당의 힘이 상당히 약해져 있는 상황이었다.

여당에서 추진하는 어지간한 정책들은 국민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이는데, 야당 쪽 발의 정책들은 화두만 던져도 고개를 젓는다.

아무리 자업자득이라지만, 이런 상황이 지속되어서는 곤란했다.

견제 없는 권력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박보군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총리님은… 대를 위한 소의 희생이, 당연시되어도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

“전체를 위해, 그 한 사람의 죄를 눈감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

“저는… 그건 아니라고 봅니다. 그 한 사람으로 인해, 이 나라의 악순환은 계속해서 반복될 테니까요.”

입을 다문 채 침묵을 지키던 박보군이 잠시 도윤의 두 눈을 마주 바라보더니, 결국 한숨을 내쉬었다.

“이거야… 내 의중을 묻고 싶은 게 아니라, 그냥 나한테 통보하고 싶었던 거구먼.”

“아, 아니… 그건 아닙니다.”

도윤이 당황하여 재빨리 고개를 저었다.

“악순환의 반복. 변화가 없다면, 이 나라의 정치판은 절대 바뀌지 않겠지. 한 번 겁을 줄 때도 되었고…….”

“그럼……!”

도윤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런 도윤을 보며, 한참이나 굳은 표정을 짓고 있던 박보군이 마침내 옅게 미소 지었다.

“대한민국 검사가 자기 사건을 소신껏 수사하겠다는데, 어느 누가 감히 이견을 제기하겠는가?”

“…….”

“자네 뜻대로 하게.”

“감사합니다, 총리님!”

도윤의 인사에 박보군의 표정이 한층 짙어졌다.

대화가 좋게 끝났다고 생각한 보윤이 도윤을 바라보며 묻는다.

“그런데, 야당 쪽 인물이라는 그 사람이 대체 누구예요? 설마, 그것도 비밀로 할 건 아니죠?”

“아, 그건…….”

잠시 머뭇거리던 도윤이 대답한다.

“…입니다.”

“뭐라구요!?”

도윤의 대답에 보윤이 눈을 크게 떴다.

큰 표정 변화를 보이지 않던 박보군도 눈을 동그랗게 떴다.

거물일 거라 예상은 했지만, 생각보다 더 엄청난 거물 아닌가?

“맙소사… 정말로 그 사람이라면, 당 전체가…….”

보윤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이내 방 내부에 고요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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