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화 언론인
자리에 앉아 신문을 펼친 호식이 메인 페이지의 기사를 확인하고는 화들짝 놀랐다.
“이거 뭐야!?”
“…깜짝이야!”
무언가 생각에 잠겨 있던 배영준 기자도 호식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며, 그쪽으로 다가갔다.
“왜? 무슨 일 있어?”
“아니, 이거. 이것 좀 봐요, 형.”
“뭐야, 조국일보잖아? 우리 회사 거나 좀 봐줄 것이지…….”
“형,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이거요!”
호식이 신문 첫 페이지의 특정 부분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이건?”
기사 첫머리를 읽은 배영준의 두 눈이 조금씩 커지기 시작했다.
이내 부릅떠진 두 눈으로 신문을 낚아챈 배영준이 빠르게 기사를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강, 강 검사님.”
이내 기사를 모두 확인한 배영준이 떨리는 목소리로 도윤을 불렀다.
자신의 부름에도 아무런 반응이 없자, 배영준이 재차 큰 목소리로 외쳤다.
“강 검사님!”
“…예?”
얇은 서류 몇 장을 꼼꼼히 들여다보고 있던 도윤이, 그제야 고개를 들어 올렸다.
마침 앞으로 수사할 사항과 이미 수사한 것들을 흰 종이에 정리하고 있던 참이라, 한참 집중하고 있던 도윤이었다.
원칙적으로, 수사 서류들을 검찰청 밖으로 가지고 나가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
혹여나 외부로 유출되면, 개인정보뿐만 아니라 갖가지 중요 수사 사항이 만천하에 공개될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설령 검사라도 징계는 피할 수 없었다.
그 때문에, 도윤은 밖에만 나오면 습관처럼 빈 종이에 이런 내용들을 끄적거리곤 했고 말이다.
“김재욱 검사. 분명히 강 검사님 쪽 식구 아닙니까?”
“…김재욱 검사요?”
도윤이 잠시 고민하듯 고개를 갸웃했다.
“한우리당 김문성 대표의 아들 말입니다.”
“……!”
순간 도윤이 눈을 크게 떴다.
워낙 흔한 이름이라, 금방 떠오르지 않았다.
그런데, 배영준의 말을 들으니 머릿속에 확 하고 떠올랐다.
새하얀 피부에 큰 키를 가진, 서울중앙지검 형사부 소속 검사.
분명 몇 번인가 마주친 기억도 있는 검사다.
문제는 그가, 도윤의 수사 대상자인 김문성의 자식이라는 사실이다.
“무슨 일 있습니까?”
“이것 좀 잠깐 보세요.”
빠르게 다가간 도윤이 배영준에게서 신문을 건네받았다.
그리고, 이내 메인 페이지의 커다란 글씨체가 도윤의 눈에 한 번에 들어왔다.
<한우리당 김문성 대표의 子, 김재욱 검사. 불상의 이유로 자택에서 쓰러져 현재 의식불명.>
“이게 무슨……?”
도윤이 멍하니 중얼거렸다.
“신체 건강한 젊은이가 아무런 이유도 없이, 그것도 집에서 쓰러져 의식불명. 심지어 그 집안은 누구나 알아주는 정계의 거물. 스스로 죽겠다고 번개탄이라도 피우지 않는 이상, 현직 검사에게 이런 일이 생길 수가 있겠습니까?”
“…….”
“더군다나, 조국일보의 단독 보도입니다. 현재 국민들의 관심을 가장 많이 받고 있는 정계의 거물. 그의 자식이 생사가 불투명한데, 이런 사실을 독점할 수 있다는 게 이상하지 않습니까?”
“…….”
“앰뷸런스만 불렀어도 눈치 빠른 기자들은 모조리 알아낼 수 있었을 겁니다. 무언가 있어요, 이거.”
말을 마친 배영준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진위 여부를 확인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우선 회사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형, 영준이 형! 진위 여부라니? 기사 자체는 팩트 아니야? 회사보다는 차라리 병원으로 가 보는 게…….”
호식이 급히 배영준을 불러 세우며 말끝을 흐렸다.
그런 호식을 향해 배영준이 고개를 저었다.
“기사 내용 자체의 진위 여부도 물론 중요하지만, 우선은 그보다 더 먼저 알아봐야 할 것이 있어.”
“더 먼저 알아봐야 할 거라니?”
“기사의 출처.”
“아……!”
배영준의 대답에 호식이 작게 감탄사를 터뜨렸다.
“군부 시절의 땡전뉴스나 보도지침 따위의 것들은, 그 이름과 지시 주체만 바뀌었을 뿐, 여전히 은연중에 존재하고 있으니까.”
“…….”
“가능성은 낮지만, 이게 만약 누군가의 오더로 만들어진 또 하나의 상황이라면 우선은 그것부터 확인해야겠지.”
말을 마친 배영준이 이내 출입문을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뭔가 있으면 바로 연락드리겠습니다, 강 검사님. 그리고…….”
잠시 주저하던 배영준이 이내 결심한 표정으로 묻는다.
“조국일보 쪽은,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도윤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럼…….”
이윽고 배영준이 사무실을 완전히 빠져나가자, 호식이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확실히, 김문성 대표가 요주의 인물이긴 한가 보네. 본인의 일도 아닌, 그 아들의 일이 신문 첫 페이지를 장식할 정도라니…….”
“…….”
“이게 만약 또 다른 모략을 위한 밑밥이라면, 어떻게 할 생각이야?”
“…아예 거짓은 아닐 거야. 당장 병원만 가 봐도, 김재욱 검사의 상태는 확인할 수 있으니까.”
“음…….”
침음을 삼키는 호식을 보며 도윤이 굳은 얼굴로 말을 잇는다.
“문제는 따로 있어.”
“……?”
“조국일보와 김문성 의원.”
“아……!”
“분명 그 사이에, 무언가 말이 오갔을 거야. 일단은 그걸 확인하는 게 먼저겠지.”
“또 그 아가씨한테 신세를 져야겠구나.”
조국일보의 주인이 다름 아닌 박보윤의 아버지, 박성준 회장이라는 사실을 떠올린 호식이 ‘끙’ 앓는 소리를 내며 중얼거렸다.
그런 호식을 보며, 도윤이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 이번에는 박보윤 검사의 손을 빌리지 않을 거야.”
도윤은 바보가 아니다.
상대방이 호감을 품고 있는 것쯤은, 눈치만으로도 짐작할 수 있었다.
자존심 강하기로 유명한 박보윤이 먼저 친구가 되자며 손을 내민 사실만 봐도 충분했다.
회귀 이후, 숨 가쁘게 살아온 도윤에게 ‘친구’로서 먼저 손을 내밀어 준 사람은 호식 이후로 보윤이 처음이었다.
겉으로 표현은 하지 않았지만, 그래서 도윤은 보윤에게 더욱 고마운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이미 친구라는 이름으로, 몇 차례 도움도 받지 않았던가.
하지만, 그게 계속되고 당연시되어서는 안 된다.
그런 관계는 절대 친구라고 말할 수 없다.
그저 필요에 따라, 서로 이용을 하는 비즈니스 관계가 될 뿐이다.
도윤은 그런 관계를 결코 원하지 않았다.
“그럼 뭐, 총리님이라도 또 직접 만나시게?”
호식이 반 장난식으로 비아냥거렸다.
“아니. 이 경우에는, 당사자를 직접 만나는 게 가장 좋겠지.”
“당사자라면…….”
호식이 설마 하는 표정으로 두 눈을 크게 떴다.
“박성준 회장!?”
“…….”
입을 다문 채 침묵을 지키는 도윤을 보며, 긍정의 의미라고 판단한 호식이 펄쩍 뛰었다.
“야! 신문사 회장이, ‘나 검사요.’ 한다고 막 만나 주고, 그런 위치에 있는 사람인 줄 알아!?”
“…….”
“퍽이나! 어떤 면에서는, 썩어 빠진 재벌들보다도 더한 인간들이 언론인들이야. 글로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그런 인간들이라고! 그 사람들 자존심이 얼마나 센 줄 알아?”
호식이 연신 고개를 저으며, 도윤의 손을 꼬옥 붙잡았다.
“제발, 부탁이다. 이번에도 무데뽀로 나가진 말자. 깡패 놈들 때려잡을 때처럼, 주먹 세다고 장땡이 아니야. 까딱하면 사회적으로 완전히 매장당할 수 있다고!”
“…….”
“그냥 박보윤, 그 예쁜 검사 아가씨한테 부탁하자. 어? 딸 친구로 한 번 뵙고 싶다는데, 설마 해코지라도 하겠…….”
“어차피, 박성준 회장의 의중은 반드시 확인하고 넘어갈 필요가 있어.”
“야, 강도윤!”
자신의 말을 중간에서 끊고 말하는 도윤을 보며, 호식이 버럭 고함쳤다.
도윤이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잇는다.
“김문성 의원은 내 사건 피의자야. 그 피의자와 모종의 거래가 있었다면, 그 또한 중요 참고인, 아니… 어쩌면 또 다른 피의자가 될 수도 있겠지.”
“너, 진짜 미쳤어!? 야당 대표에, 이제는 조국일보 회장!? 너, 조국일보가 어떤 곳인지 몰라서 그래!?”
“알아. 알기 때문에, 더욱 확실히 확인해 볼 필요가 있는 거야.”
“뭐? 하……!”
호식이 기가 차다는 표정을 지었다.
물론 도윤도 알고 있었다.
조국일보가 어떤 곳인지, 국민들에게 얼마나 큰 파급력과 영향력을 갖고 있는 곳인지.
십수 년이 지난 이후에도, 국민들이 신뢰할 수 있는 신문사 상위권에 항상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곳이 조국일보였다.
그렇기 때문에 더 확실히 해야만 한다.
편파보도와 여론몰이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국민들의 눈과 귀를 틀어막아 버렸을 때, 어떤 현상이 벌어지는지 도윤은 아주 잘 알고 있었으니까.
“자신의 소신과 양심을 누구보다 더 확실히 관철시켜야 하는 사명을 가진 사람들이 언론인들이야. 그만큼 국민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어마어마하니까. 그 때문에, 과거의 독재자들 또한 가장 먼저 언론부터 장악하고 탄압하려 했던 것이고.”
“알아! 나도 아는데! 너, 혹시 박성준 회장의 가족이 누구인지, 잊은 건 아니지?”
호식의 물음에 도윤이 멈칫했다.
그런 도윤을 보며, 한차례 한숨을 내쉰 호식이 말을 잇는다.
“불과 얼마 전에 니가 얘기했지. 새로운 친구가 생겼다고. 어울리지도 않는 멋쩍은 웃음까지 흘리면서. 새 친구가 되자마자, 도움을 받아서 엄청 미안했었다고.”
“…….”
“그 친구의 아빠야. 그 아버지는 어떻고!? 현 상황에서, 어쩌면 지금 막 탄핵소추가 기각된 대통령보다도 더 막강한 힘을 가진 사람이 총리. 그 아버지라고!”
“…….”
“친구? 친구 좋지. 그런데, 그 친구가 제 가족을 조사하겠다는데, 그때에도 과연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여전히 입을 다문 채 침묵을 지키는 도윤을 보며, 호식이 간절한 표정을 지었다.
“제발. 하지 말자는 게 아니잖아. 하나씩, 차근차근하게, 중간 과정을 좀 거쳐서! 부탁이다.”
“…걱정하지 마. 나도 이번에는, 그냥 무작정 밀어붙이기만 할 생각은 없으니까.”
“그럼……!”
호식의 표정이 한층 밝아졌다.
“아니, 부탁 없이 박성준 회장을 직접 만나겠다는 생각은 변함없어. 다만… 저쪽에서 나를 직접 만나고 싶어 하도록 만들 생각이야.”
“그게 무슨…….”
“언론인들이 어떤 때에는 금덩이보다도 더 반기는 것. 뭔지 알아?”
멈칫한 호식이 무언가 생각하는 듯하더니, 곧바로 대답한다.
“…정보?”
도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정보. 그것도, 출처가 신빙성 있는, 특종거리라면 지구 끝까지도 찾아갈 의향이 있는 사람들이 언론인들이야.”
“그러니까, 박성준 회장조차 탐낼 만한 정보로, 그를 직접 테이블에 앉히겠다?”
호식의 반문에 도윤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도윤을 보며, 침묵을 지키던 호식이 조용한 목소리로 묻는다.
“…그게 뭔데?”
“현 상황에서, 국민 대부분이 관심을 가질 만한 특종거리라면, 뻔하잖아?”
“설마…….”
호식이 무언가 짐작이 간다는 표정으로 말끝을 흐렸다.
신문사 회장을 직접 불러들일 수 있는, 도윤이 가진 패.
호식이 아는 한, 한 가지밖에 없었다.
멍하니 입을 벌리고 있는 호식을 보며, 도윤이 옅게 미소 지으며 말한다.
“딜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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