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잡는 회귀검사-141화 (141/174)

141화 정치부 기자

“어떻게 된 거예요!?”

회사에 도착한 배영준이 출입문을 벌컥 열어젖히며 소리쳤다.

“차, 차장님.”

출입문에서 가장 가까이 있던 정치부 기자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일반적으로 각 신문사의 기자들은 두 부류로 나뉜다.

편집을 담당하는 편집기자와 현장을 뛰는 취재기자.

편집기자 위로 차장이 있고, 그 위에 편집부장, 그리고 다시 그 위가 편집담당 부국장이다.

이와 달리 취재기자들은 저마다 각 소속 부서가 있었다.

정치부, 사회부, 경제부, 문화부, 국제부, 체육부 등이 있었는데 편집부 계급과 마찬가지로, 기자 위에 각 부 차장이 있고, 그 위에 부장, 그리고 취재담당 부국장이 있는 구조였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두 부국장들 위로 편집국장이 있었고 말이다.

배영준의 경우 그동안의 공을 인정받아, 동기들에 비해 빠른 승진을 한 케이스였다.

더군다나, 각 부서들 중에서도 소위 끗발 좀 날린다는 정치부 기자.

그 기자들을 1차적으로 총괄하는 사람이 바로 배영준이었다.

“정치부 기자라는 사람들이, 이런 것도 미리미리 캐치해 내지 못해요!?”

“그, 그게 차장님, 조국일보의 단독 보도이다 보니, 저희뿐만 아니라 다른 신문사들도…….”

“그게 기자로서 할 수 있는 말이에요!?”

평소의 모습과 달리 배영준이 버럭 하고 고함쳤다.

이런 배영준의 반응에 나머지 기자들이 꿀이라도 먹은 것처럼, 입을 다물었다.

그런 기자들을 보며, 배영준이 재차 소리치기 시작했다.

“지금 당장! 이와 관련된 정보들, 싸그리 긁어모아 오세요! 나는 부장님부터 만나 뵙고 올 테니까.”

“알겠습니다!”

이내 기자들이 뿔뿔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 * *

박보군 총리의 본가이자, 이제는 주로 그의 아들인 조국일보 박성준 회장이 거주하고 있는 대저택.

작은 못을 낀 정원을 가로질러, 저택의 출입문을 통과한 박보윤이 어느 방문 앞에 이르러 벌컥 출입문을 열어젖혔다.

“아버지!”

“아, 아가씨, 회장님은…….”

큰 소리로 외치는 박보윤을 저택에 근무하는 아주머니가 제지하였지만, 소용없었다.

이내 출입문이 열리며 방 내부가 환하게 드러났고, 창가에서 햇살을 가만히 내리쬐고 있던 박성준 회장도 모습을 보였다.

보윤이 거침없이 그곳을 향해 걸어가자, 박성준 회장도 그제야 조용히 몸을 돌렸다.

“…소란이라는 소란은 다 내고, 무슨 일이냐?”

“재욱이 기사! 아버지 작품인가요?”

“…….”

이어지는 보윤의 물음에 박성준이 입을 다물었다.

그 반응에 확신한 보윤이 재차 쏘아붙였다.

“김문성 대표! 지금 우리 지검에 조사를 받아야 할 수사 대상자예요! 피의자라구요! 잠재적 범죄자와 타협이라도 하신 건가요?”

“잠재적 범죄자라… 그래도 어렸을 때부터 너를 이뻐해 주던 분인데, 말이 조금 과하구나.”

박성준 회장의 말에 보윤이 멈칫했다.

한차례, 낮게 한숨을 내쉰 보윤이 말한다.

“공은 공이고, 사는 사예요. 누구보다 공사를 확실히 구분해야 하는 게, 우리 검사들이죠. 그게 설령… 내 가족의 일일지라도요.”

“…마치 나도 니 수사 대상자가 될 수도 있다는 식으로 들리는구나.”

“…….”

보윤이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채 다시 묻는다.

“아버지 작품. 맞나요?”

“글쎄… 대체 무슨 작품을 묻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재욱이가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다는 기사를 메인 페이지에 올리는데, 결재를 해 준 기억은 있구나.”

“…아저씨. 아니, 김문성 대표. 곧 체포될 수도 있어요. 그건 알고 계세요?”

“체포?”

고개를 갸웃한 박성준이 반문했다.

“현직 국회의원, 그것도 거물 중에서도 거물인 야당의 대표를 체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니?”

“면책특권을 말씀하시는 거라면 소용없어요. 국회 밖에서 행한 일에 대해서는, 설령 국회의원이라도 그에 대한 책임을 피할 수 없으니까요. 이미 법으로도 보장되어 있구요.”

보윤이 굳은 얼굴로 대답했다.

그런 보윤을 바라보며, 박성준이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그따위 법을 논하려는 게 아니다.”

“…뭐라구요?”

“세상에는 법만으로 해결되는 게 생각보다 많지 않다. 더군다나, 온갖 이해관계가 얽히고설킨 정치판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지. 설령 그 사람의 죄질이 확실하더라도, 마찬가지다.”

“그게 신문사 대표로서, 할 수 있는 발언인가요?”

보윤이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반문했다.

박성준이 조용히 말을 잇는다.

“그게 아니라면, 어디 한번 직접 시험해 보거라. 과연 지검에서 김 대표를 체포할 수 있을지, 없을지. 내기를 해도 좋아.”

“…….”

이어지는 박성준의 말에 보윤이 입을 다물었다.

자신의 아버지가 저토록 확신을 가지고 말할 수 있는 이유.

분명, 무언가 있었다.

현직 국회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요구서는, 가장 먼저 검찰이 법무부에 접수를 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물론 민감한 부분이기 때문에 법관뿐만 아니라, 장관의 허가까지 득해야 한다.

그리고, 그다음은…….

순간 보윤이 눈을 크게 떴다.

“설마…….”

“여전히 머리는 잘 돌아가는구나.”

보윤의 반응에 박성준이 옅게 미소 지었다.

보윤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린다.

“할아버지가… 뒤에 계신 건가요?”

법무부를 거친 국회의원 체포동의요구서가 가장 먼저 가는 곳은, 다름 아닌 국무총리실이다.

그곳에서 국무총리의 결재를 득하고, 최종적으로 대통령의 재가를 받아야 비로소 국회로 요구서가 제출되는 것이다.

아무리 한 신문사의 대표인 자신의 아버지라지만, 한창 탄핵소추 건으로 바빴던 대통령과 직접 독대가 이루어져 대화가 오갔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렇다면, 남은 건 한 가지뿐이다.

“정말로, 할아버지가 지시하신 건가요?”

보윤이 떨리는 목소리로 재차 물었다.

할아버지와 도윤, 그리고 자신이 함께했던 그 식사 자리는 도대체 뭐였단 말인가?

아닐 것이다.

아마 그 자리를 가지기 전에 준비되어 있던 기사였을 것이다.

보윤은 그저 그렇게 믿고 싶었다.

하지만, 이성적으로 판단했을 때, 보윤은 그럴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사실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정말로… 할아버지의 오더냐구요!?”

보윤이 억눌린 음성을 터뜨리듯 내뱉었다.

이윽고 박성준이 입을 열었다.

“지금 상황에서, 그게 중요하니?”

“그건…….”

무어라 말하려던 보윤이 결국 다시 입을 다물었다.

아버지의 말이 맞다.

지금 상황에서 최종 오더자가 누구였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보다 먼저, 반드시 확인해야 할 문제는 따로 있었다.

생각을 정리한 보윤이 묻는다.

“…진실은 뭔가요?”

“진실?”

“바로 전날까지 저와 대화를 나눴던 그 재욱이가, 갑자기 이유도 없이 집 안에서 쓰러져 의식을 잃었다고는 절대 생각하지 않아요. 진실을 말씀해 주세요.”

“…….”

입을 다문 채, 침묵을 지키던 박성준이 보윤의 두 눈을 보며 대답한다.

“사고가 있었다.”

“사고요?”

“부자지간에 조금 언성을 높였던 것 같은데… 제 분을 참지 못한 김 대표가 물건을 집어던졌다. 그리고, 그게 그대로 날아가 재욱이 뒤통수를 그대로 가격한 것이고.”

“맙소사…….”

보윤이 저도 모르게 손으로 제 입을 가렸다.

“곧이곧대로 기사를 내었다간, 나라의 혼란만 더 가중될 거라 판단했다. 그래서…….”

“판단은 신문사의 대표나 기자들이 하는 것이 아니에요!”

보윤이 참지 못하고 버럭 고함쳤다.

얼굴까지 붉게 달아오른 보윤이 재차 외친다.

“그 판단은 국민들이 하는 거라구요! 아버지가 아니라요! 언론인들은 그저 단 한 톨의 가감도 없는, 객관적인 진실만 세상에 알리면 될 뿐이에요! 그게, 언론인들에게 주어진 사명이자 존재 이유니까요!”

“…….”

“글에 기자의 판단이 개입되는 순간, 그건 더 이상 기사가 아니에요. 그저, 사실이 일부 포함된 개인의 의견문이나 그것도 아니면 소설일 뿐이죠.”

말을 잇던 보윤이 입술을 꾸욱 다문 채, 박성준의 두 눈을 똑바로 마주 바라본다.

그런 보윤을 보며, 박성준이 조용한 목소리로 말한다.

“…재욱이는 곧 의식을 회복할 것이다.”

“네?”

순간 보윤이 멍하니 반문했다.

“가격당한 곳이 좋지 않아 일시적인 뇌진탕 증세를 보인 것일 뿐,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고 한다. 그전에 무슨 대화가 오가 또 다른 충격을 받았는지는 모르겠지만, 경과를 봤을 때 아마 곧 의식도 회복할 것이야.”

“아…….”

보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박성준이 계속해서 말을 잇는다.

“팩트는, 그때 가서 세상에 알리면 된다. 니가 말한 진실의 의무처럼, 기사를 내는 시기를 조절하는 것 또한 우리의 일이니까.”

“…….”

“혼란스러울 때는 조금 천천히, 필요할 때는 보다 신속하게. 일개 연예계 찌라시도 마찬가지 아니니?”

“그럼 할아버지는…….”

말끝을 흐리는 보윤의 표정이 한층 밝아졌다.

박성준이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나도 모른다.”

“네?”

“니 할아버지. 내 아버지가 무슨 생각을 가지고 계신지는, 나도 아직 잘 모르겠다. 워낙 의중을 파악하기 힘든 분 아니냐?”

“아…….”

보윤이 작게 입을 벌렸다.

“중요한 것은 아까 말했듯이, 시기상 문제일 뿐, 총리님도 분명히 진실을 세상에 알릴 생각은 가지고 계시다는 것이겠지.”

“그렇군요…….”

대답하는 보윤의 얼굴이 어느새 귀까지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겉으로 표현은 하지 않았지만, 진실을 알게 된 지금, 보윤은 상당히 부끄러웠다.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제 아버지를 범죄자와 타협한 몰상식한 사람으로 대하지 않았던가.

얼굴이 후끈거려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조금 섭섭은 하구나.”

“네, 네?”

“니가 날 그 정도로밖에 보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 말이다.”

“그, 그게 아니라…….”

보윤이 당황하여 무어라 말하려고 할 때, 박성준이 조용한 목소리로 묻는다.

“아직도, 내가 원망스럽니?”

“…….”

순간 보윤이 입술을 꾸욱 깨물었다.

“니 어머니 일은…….”

“그만요. 그 얘기는, 지금 듣고 싶지 않아요.”

“…….”

“실, 실례했습니다. 이만 나가 볼게요.”

박성준을 향해 한차례 허리를 숙인 보윤이 재빨리 몸을 돌렸다.

그런 보윤의 뒷모습을 박성준이 뚫어지게 바라봤지만, 보윤은 아랑곳하지 않고 출입문을 향해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이내, 보윤이 출입문 바로 앞에 이르렀을 때.

똑, 똑, 똑.

노크 소리가 들리더니, 잠시 후 출입문이 조용히 열렸다.

“회장님…….”

보윤도 몇 차례 본 적이 있는 박성준의 개인 비서가 안으로 들어서다 보윤을 발견하고는 잠시 멈칫했다.

“오래간만에 뵙습니다, 아가씨.”

정신을 차린 사내가 보윤을 향해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네, 오랜만이네요, 아저씨.”

보윤도 마주 고개를 숙이고 있을 때, 사내가 조용한 목소리로 말한다.

“회장님, 손님이 한 분 찾아오셨습니다.”

“…손님? 오늘은 일정에도 없는 내 손님이 무척이나 많군. 내가 여기 있는 건 어떻게 알고…….”

“그게, 안 계시면 말씀만이라도 전해 달라고 부탁해서 말입니다.”

“누구라던가?”

박성준이 안경을 고쳐 쓰며 반문했다.

“그게…….”

잠시 앞에 있는 보윤의 눈치를 살피던 사내가 조심스레 대답한다.

“서울중앙지검의…….”

“……?”

“…강도윤 검사라고 합니다.”

이내 사내가 말을 마쳤을 때, 부녀가 약속이라도 한 듯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