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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잡는 회귀검사-142화 (142/174)

142화 박성준과의 독대

“어서 오게.”

“실례하겠…….”

박성준의 방에 막 들어서던 도윤이 멈칫했다.

미리 와 있던 손님이 출입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박 검사님?”

“우리 요즘 자주 보네요.”

도윤의 부름에 보윤이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연락도 없이, 저희 집엔 어쩐 일이세요?”

보윤의 어투에서 은근히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기에, 도윤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게…….”

“만나려던 사람이 내가 아니라, 보윤이였던가?”

순간 보윤의 등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도윤이 그곳을 향해 재빨리 고개를 숙였다.

“인사가 늦었습니다. 서울중앙지검 강도윤 검사라고 합니다.”

“…….”

적당히 허리를 숙인 도윤의 자세에서 사뭇 당당한 기세가 느껴진다.

급한 와중에 한 것임에도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인사였다.

박성준의 두 눈빛 사이로 이채가 스쳐 지나갈 때, 보윤이 도윤을 한차례 흘겨보며 말한다.

“…조금 이따가 얘기해요. 분위기를 보니, 아무래도 제가 끼어 있으면 안 될 것 같네요.”

“그때 설명드리겠…….”

쿵!

도윤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보윤이 소리 나게 문을 닫고 출입문을 빠져나갔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던 도윤이 이내 쓴웃음을 짓고 있을 때, 책상에 자리하고 있던 박성준이 입을 열었다.

“남자 앞에서, 저렇게 감정을 드러내는 건 또 처음 보는군.”

“……?”

고개를 갸웃한 도윤이 그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박성준이 자못 신선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출입문에서 시선을 땐 박성준이 말을 잇는다.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이군. 다른 남자들 앞에서 하는 언행을 보면, 아마 내 말이 이해가 갈 걸세.”

“아, 예…….”

“그보다, 조금, 아니. 많이 의외야. 요즘 가장 핫한 인물 중 하나인, 강 검사님이 직접 나를 찾아오실 줄은…….”

말을 잇던 박성준이 순간 ‘아차’한 표정을 지었다.

“딸 또래라, 너무 자연스럽게 말을 놓았네만… 편하게 말해도 되겠나?”

“물론입니다.”

박성준의 물음에 도윤이 옅게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굳이 눈앞에 있는 남자가 부연 설명을 하지 않아도, 반말에 어떠한 악의도 없다는 것을 도윤은 알고 있었다.

악의를 나타내는 보랏빛 광채.

그 광채가, 사내의 가슴팍에서 전혀 모습을 보이고 있지 않았으니까.

‘거래 따위가 아니라면…….’

속으로 중얼거린 도윤이 무어라 말하려고 할 때, 박성준이 한발 먼저 입을 열었다.

“자네가 나를 찾아온 것. 우리 신문의 기사 때문이겠지? 재욱이. 김문성 대표의 아들 건 말이야.”

“……!”

도윤이 눈을 크게 떴다.

정치인만큼이나 닳고 닳은 인물이 자신의 눈앞에 있는 사내다.

그 사실을 감안하면, 이곳을 찾아온 목적 따위야 유추해 낼 수 있을지라도, 이렇게 상대방이 먼저 얘기를 꺼낼지는 몰랐다.

이쪽 바닥 일이라는 것이, 하나부터 열까지 다 눈치 싸움이다.

아쉬운 놈이 먼저 나선다고, 구태여 저쪽에서 한발 앞서 화두를 던질 필요는 없었다는 말이다.

대화의 주도권을 잡고, 우위를 점하는 데 있어, 그 부분은 생각보다 상당히 중요했으니까.

“우선 앉지. 손님을 너무 오래 세워 둘 수는 없는 법 아니겠나?”

“…감사합니다.”

“커피? 아니면, 녹차나 주스?”

“괜찮습니다.”

“그래?”

재차 권하지는 않을 생각인지, 이윽고 박성준도 도윤의 맞은편에 자리했다.

“내 의중이 궁금한가?”

“예?”

“명성그룹과 자유당에서 짜고 친 사기극. 그 사건 담당 검사가 자네라고 들었는데, 그래서 나를 찾아온 것 아닌가?”

“…….”

도윤이 입을 다물었다.

회귀 전의 인생까지,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만나 봤지만 이런 부류의 사람은 또 처음이었다.

저 정도 위치에 있는 사람이, 자신이 가진 패를 먼저 까고 판을 시작하는 경우는 분명 흔치 않았으니까.

생각을 정리한 도윤이 입을 열었다.

“…알고 계시다니 제가 말씀드리기가 쉬울 것 같습니다. 혹시, 회장님은 이번 일의 진실을 알고 계십니까?”

“진실이라…….”

묘한 눈초리로 도윤을 바라보던 박성준이 말끝을 흐렸다.

잠시 후, 박성준이 말한다.

“알 수도 있고, 모를 수도 있지.”

“예? 그게 무슨…….”

“자네가 이 자리에 가져온 패에 따라 말이야.”

“…….”

도윤이 입을 다물고, 멍하니 박성준을 바라봤다.

그래.

이런 것을 예상했다.

처음부터 이렇게 나왔어야 옳았다.

사람마다 성격이 다르듯, 방식의 차이가 있을 뿐, 박성준도 여느 사람들과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되니, 도윤은 오히려 가슴속에서 피어오르던 당황스러운 감정이 잦아들기 시작했다.

‘내 페이스대로…….’

도윤이 곧바로 자세를 바로 하며 묻는다.

“어떤 걸 원하십니까?”

“원하는 바가 있어서 찾아온 것은, 내가 아니라 자네 아니었나?”

“…….”

목마른 놈이 우물 판다.

이런 경우에 딱 어울리는 말이다.

박성준은 지금, 협상의 기본 중 하나인 ‘선(先) 제시’를 요구하고 있다.

마치 자신은 전혀 손해 볼 것 없다는 태도였다.

박성준과 김문성 대표 간에 모종의 거래가 없었다는 전제하에, 분명 도윤이 쥐고 있는 매력적인 패를 충분히 예상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회장님은 언론 쪽이 아니라, 개인 사업이나 회사 경영 쪽으로 도전하였어도 대성하셨을 것 같습니다.”

“이왕이면 CEO(Chief executive officer)로 말이지? 종종 듣는 얘기네.”

도윤의 말에 박성준이 피식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속에 능구렁이가 수백 마리는 들어앉은 듯한 박성준의 모습에, 도윤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차피, 지금 상황에서 아쉬운 쪽은 다름 아닌 자신이었다.

저쪽에서 먼저 패를 내보였는데, 패조차 내밀지 않고 게임을 이어 나가는 것도 이치에 맞지 않고 말이다.

단지, 눈앞에 있는 사내에게 끌려 다니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 거부감이 들었을 뿐이다.

판단을 마친 도윤이 곧바로 입을 열었다.

“…영장 발부 여부라든가, 구금과 같은 강제처분 문제에 대해서는 독점적으로 드리지 못합니다. 저한테 그럴 권한도 없구요. 대통령님의 최종 승인이 필요한 만큼, 아마 청와대에서 직접 대국민발표를 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마치 누군가가 당연히 구속될 것처럼 말하는 것이 마음에 걸리지만… 말하는 주체가 수사담당 검사라면 얘기가 달라지지. 그만한 정황이 나왔다는 뜻일 테니까.”

“…….”

도윤이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채 침묵을 지켰다.

그런 도윤을 향해 픽 하고 웃음을 터뜨린 박성준이 말한다.

“그런 건 바라지도 않네. 온 국민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는 대형 사건의 단독보도권. 충분하다 못해 넘쳐날 정도로 매력적이긴 하지만, 먹이가 클수록 체할 확률도 높은 법이거든.”

“…….”

“그따위 짓을 했다간, 도리어 회사 이미지만 안 좋아질 거야. 그러니까… 자네 능력 범위 내에서, 제시할 수 있는 패를 꺼내어 보게.”

“…제가 드릴 수 있는 것은 하나입니다.”

도윤이 박성준의 두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향후 수사에서, 조국일보에 대한 건은 깊게 파고들지 않겠습니다.”

“…뭐라?”

박성준이 잘못 들었나 싶은 표정으로 멍하니 반문했다.

“말 그대로입니다. 조국일보에 대한 수사는 하지 않겠습니다. 물론, 진실을 알려 주시는 등 수사에 적극 협조해 주셔야 하겠지만요.”

“이… 이……!”

황당한 감정이 사라지자, 분노가 물밀 듯 들이닥쳤다.

눈앞에 있는 새파랗게 어린놈.

제정신인가?

조국일보의 주인을 눈앞에 두고, 감히 조국일보를 두고 협상 테이블에 나설 줄이야.

기껏해야 향후 수사 사항에 대한 우선 보도권 정도를 예상했다.

사실 박성준은 그 정도만으로도 충분히 협상에 응할 생각이 있었다.

시간문제일 뿐, 어차피 세상에 알려질 일이었고, 무엇보다 눈앞에 있는 놈이 밉지 않았으니까.

아니, 오히려 자신을 눈앞에 두고 보인 그 당당한 모습에 호감마저 일려고 했다.

소문은 과장되기 마련인데, 오히려 소문이 부족하다는 느낌까지 받았으니까.

그런데, 지금 보니 그게 아니었다.

자신감과 자만심은 종이 한 장 차이라고 했다.

능력에 맞게, 일을 결단력 있게 추진하는 것은 자신감이지만, 주제도 모르고 설쳐 대는 것은 자만심이고, 오만이고, 만용이다.

도윤이 지금 보이는 모습은 박성준에게 명백히 후자였다.

최근 내부적으로뿐만 아니라, 외부적으로도 큰 인기를 얻었다고 하더니, 콧대가 하늘을 뚫고 우주까지 찌를 기세였다.

그런 자만심이라면 지긋이 눌러 줄 필요가 있었다.

자신의 자존심 문제를 떠나, 눈앞에 있는 새파랗게 어린놈을 위해서라도 말이다.

분노가 극에 달하면, 오히려 냉정해진다고 했던가?

어느새 박성준이 얼음장같이 차가워진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사람은 자신이 한 말에 책임을 져야 하네. 그 말… 감당할 수 있겠나?”

“물론입니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하는 도윤을 잠시 바라보던 박성준이 말을 잇는다.

“우리 회사에 대한 수사라… 그래, 한번 얘기해 보게. 내가 이 제안을 거절했을 때, 대체 우리 회사의 무엇을 수사하려고 하는지.”

“이미 아시지 않습니까? 언론사가, 진실을 알고 있음에도 세상에 알리지 않은 것. 그 사실 자체만으로도 국민들이 어떤 생각을 가질지 말입니다.”

“그래서, 그 증거를 찾기 위해 언론사를 상대로 표적수사 같은 미친 짓이라도 하겠다는 건가?”

씹어 내뱉듯 중얼거리는 박성준을 향해, 도윤이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설마요.”

“…….”

“다른 곳도 아닌, 대한민국 신문사를 이끌어가는 조국일보 아닙니까? 굳이 총리님이 아니더라도, 그따위 미친 짓을 할 생각은 없습니다.”

“너… 지금 뭐 하자는…….”

박성준의 말을 끊고, 도윤이 빠르게 말한다.

“단독보도로 안 그래도 심기가 불편한 경쟁 신문사들. 만약 조국일보와 김문성 대표 사이에 모종의 거래가 있었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하면, 굳이 제가 나서지 않아도 눈에 불을 켜고 물어뜯으려 할 겁니다. 어디까지나 소문의 출처가, 신빙성 높은 검찰에서 흘러나온 것이니까요.”

“지금 나를 협박하는 건가!?”

결국 참지 못한 박성준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협박이요?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이건 거래입니다.”

“거래!? 일방적으로 상대를 강제하는 이따위 것이 거래라고!?”

“예. 만약 계획대로만 되면, 조국일보는 타 신문사보다 더욱더 신뢰받는 신문사가 될 테니까요.”

“…뭐라고? 이득?”

박성준이 분노도 잊고 멍하니 반문했다.

“타 신문사들은 아마 이런 식으로 보도를 할 겁니다. 김문성 대표와 조국일보 간의 모종의 거래가 있었다. 그 증거로 조국일보는 독점보도라는 이름하에, 원인불상의 의식불명과 같은 얼토당토않는 사실만을 세상에 알리고 있다. 마치, 진실을 은폐하려는 듯이 말이다, 라는 식으로요.”

“…….”

“언론매체 말고는 정보를 얻을 곳이 한정적인 국민들은 당연히 조국일보를 손가락질할 겁니다. 그 상황에서 밝혀지지 않은 진실 따위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죠. 현재의 민심이라면…….”

입을 다문 채 가만히 듣고만 있는 박성준을 보며, 도윤이 말을 잇는다.

“그 손가락질이 극에 달할 때, 제가 직접 나설 겁니다.”

“…나선다니…….”

“김문성 대표에 대한 수사 입건과 체포동의 요구에 대한 사실 발표.”

“……!”

순간 박성준이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 수사 입건 과정에서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조국일보와 김문성 대표 사이의 모종의 거래 건은, 의심되는 어떠한 정황도 발견할 수 없었다, 라는 내용을 덧붙일 생각입니다.”

“…….”

“확인되지 않은 사실로 특정 언론사를 비방하는 상황에 대해, 적당히 유감을 표시해 주면 더욱 좋겠지요.”

“너…….”

“그 상황에서, 게임은 이미 끝입니다. 조국일보가 아니더라도, 국민들은 검찰의 말을 믿을 겁니다. 정계 최고의 거물. 그것도 현재 국민들에게 가장 많은 욕을 먹고 있는 정치인에 대한 수사 입건. 그 사실만으로도, 국민들은 열광할 테니까요.”

“…….”

마침내 완전히 입을 다문 박성준을 보며, 한차례 씨익 미소 지은 도윤이 말한다.

“거래, 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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