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화 삐걱이는 부자지간
국무총리 관저 인근에 위치한 고급 한식집.
현 국무총리인 박보군의 단골집이기도 한, 이곳 가장 구석진 방.
고요한 방 내부에 노크 소리가 조용히 울려 퍼진다.
똑, 똑, 똑.
홀로 앉아 젓가락을 놀리고 있던 박보군이 멈칫했다.
손에 쥔 젓가락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자, 곧이어 출입문 밖에서 여종업원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손님 도착하셨습니다.”
드르륵.
미닫이문이 부드럽게 열리더니, 잠시 후 한 중년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얼마 전까지, 도윤과 대화를 나누었던 조국일보 박성준 회장이었다.
오래간만에 보는 자신의 아버지를 향해, 박성준이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어쩐 일이냐? 니가 나하고 밥을 다 먹자고 하고.”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총리님.”
“그럼 그렇지…….”
박성준의 대답에 박보군 총리가 역시나 하는 표정을 지었다.
이내 자세를 바로 한 박보군 총리가 박성준의 얼굴을 바라본다.
손녀인 박보윤을 대할 때와는 확연히 다른, 무심한 표정으로.
“이 나라의 총리라는 자리가, 언론인이 만나고 싶다고 그냥 만날 수 있는 사람이던가?”
“…일 얘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총리님이 전화로 지시하신 그 일 말입니다.”
박보군 총리가 순간 멈칫했다.
잠시 후, 픽 하고 웃음을 터뜨린 박보군 총리가 작게 고개를 저었다.
“재미없는 놈. 원, 애비가 자식에게 장난도 못 치겠군.”
“…….”
“그래, 김문성이는 만나 봤나? 그래도 몇 안 되는 절친한 친구 사이 아닌가. 이럴 때 아니면, 언제 소주나 한잔하겠어?”
“…다 지난 일입니다.”
박성준의 대답에 박보군이 쯧 하고 혀를 찼다.
“아직도 니가 일개 기자라고 착각하는 모양인데 너, 이제 회사 회장이야. 기자들의 대표라고. 한 집단의 대표가 되었으면, 개인감정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는 것 잘 알고 있을 텐데?”
“…….”
“너 자신보다, 회사를 먼저 생각해. 김문성이는 회사에 충분히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람이야.”
“…총리라는 자리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뭐야?”
박보군이 눈살을 찌푸리며 반문했다.
입술을 한차례 꾸욱 깨문 박성준이 낮게 읊조리듯 대답한다.
“국무총리. 보이지 않는 곳에서 대통령을 보조하여, 누구보다 국민들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 자리 아닙니까? 아버지의 조국일보를 위해서가 아니라요.”
“너…….”
박보군이 입을 살짝 벌렸다.
마음을 가라앉히려는 듯, 한차례 작게 한숨을 내쉰 박성준이 말한다.
“…오늘 총리님을 뵙자고 한 건,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김문성 대표 건 때문입니다.”
“…….”
“오늘 중으로, 진실을 보도하겠습니다.”
촤아아아악!
순간 박성준의 얼굴 위로 물세례가 쏟아졌다.
화를 참지 못한 박보군이,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물컵을 들어 그대로 박성준의 얼굴에 쏟아부었기 때문이다.
“이런 미친놈이…….”
“…….”
“뭐가 어쩌고, 저째? 진실을 보도해?”
박보군이 분노로 잘게 몸을 떨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니놈은 어린 시절부터 그랬지. 착실하게 지도자 수업을 받으라는 애비 말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고작 한다는 게 대가리에 똥만 들어찬 운동선수들 똥구멍이나 따라다니는 스포츠 기자가 되었지. 그것만으로도 내 얼굴에 먹칠이건만…….”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는지, 말을 잇는 박보군의 얼굴이 시간이 지날수록 붉게 달아올랐다.
스포츠 기자.
혹은, 체육부 기자라고도 불리는 이 취재기자들의 인식은, 당시만 해도 주변 인식이 그리 좋지 않았다.
아나운서들과 같은 맥락에서였다.
뉴스 메인 데스크에 오르지 못한 아나운서들이 대게 스포츠 전문 아나운서로 전향하곤 했다.
여자 스포츠 아나운서의 경우, 잘나가는 운동선수와 결혼에 성공하게 되면, 로또 잡았다며 대놓고 무시까지 할 정도였다.
여느 회사와 마찬가지로, 언론사들에도 소위 잘나가는 부서가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당시 조국일보의 사장인 박보군의 아들.
박성준이 언론인으로서 첫 걸음을 스포츠 기자로 시작한 것은, 회사 내에서는 상당히 신선한 충격이었다.
아버지인 박보군의 영향력이라면, 정치부 기자뿐만 아니라, 잘나가는 방송국 앵커가 되는 것도 충분히 가능했으니까.
입을 다문 채 침묵을 지키는 박성준을 보며, 박보군이 씹어 내뱉듯 말을 잇는다.
“그뿐이면 다행이지. 한국에서는 아무런 비전도 없는, 발레 선수단 따위를 쫓아다니며 취재한다고 했을 땐 또 어떻고.”
이 부분에서 박성준이 제 주먹을 꽈악 말아 쥐었다.
“사람들 앞에서 춤이나 추는 광대. 근본도 없는 천한 발레리나 따위와 결혼을 한다고 했을 때, 애비인 내 기분이 어땠는지. 너는 절대로 모른다.”
“…….”
박성준의 속에서 무엇인가가 툭 하고 끊어졌다.
항상 이런 식이었다.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이런 오래된 얘기들을 끄집어내곤 했다.
박성준의 눈에 비치는 자신의 아버지는 이런 사람이었다.
두 얼굴의 남자.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한없이 인자하고 다정한, 그야말로 나라의 안주인다운 모습을 보이지만, 자식들 앞에서 만큼은 한없이 차갑고 냉정했다.
마치, 제 자식은 혹독하고 강하게 키워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사람처럼 말이다.
박성준은 어린 시절부터 그런 아버지가 정말로 싫었다.
“내가 지금 회사를 위해서 이따위 짓을 저지르는 줄 알아!? 야당이 완전히 무너지면, 그 뒷감당은 어떻게 할 거야!?”
“…….”
“지금도 내 말을 귓등으로 듣는 여당 의원들이야. 내 힘이 약해져서? 아니! 이번 일로, 여당의 힘이 너무 강해졌기 때문이야. 여론까지 등에 업고서!”
“…….”
“임팩트 있는 한 가지 일로, 국민들은 여당이 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오냐, 오냐만 하고 있지, 다른 걱정 따위는 하지도 않아! 그래서, 그 국민들을 대표하여 내가 있는 것이야! 또 다른 형태의 독재체제를 막기 위해서!”
박보군이 박성준의 두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을 잇는다.
“군말할 생각하지 말고 덮어. 지금 그 친구 집안일이 바깥에 새어 나가 봐야, 좋을 것 하나도 없으니까. 대의를 위해서…….”
입을 꾸욱 다문 채 침묵을 지키고 있던 박성준이 이윽고 입을 열었다.
“아버지는 항상 대의라는 이름으로 누군가의 희생을 강요해 오셨죠.”
“뭐라?”
박보군의 얼굴이 조금씩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아버지로서의 권위를 위해서! 집안의 명예를 위해서! 국가의 안위를 위해서! 아버지는 항상 당신의 욕망을 대의라는 이름으로 포장하여 밖으로 표출하곤 하셨죠.”
“박성준!”
박보군이 참지 못하고 버럭 고함쳤다.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박성준이 조용한 목소리로 말을 잇는다.
“오늘… 강도윤, 그 친구를 만났습니다.”
“…뭐?”
순간 박보군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자기가 직접 저를 찾아왔더군요. 기사의 의중을 알고 싶다면서요.”
“…….”
“처음에 그 얘기를 들었을 때는, 웬 미친놈인가 했습니다. 어느 누가, 그 따위 이유로 신문사 회장을 직접 찾아올 생각을 하겠습니까?”
“…….”
“그런데… 그게 묘하게 싫지 않았습니다. 아니, 주변 눈치 따위는 개나 줘 버리고, 제 소신을 밝히는 모습에 없던 호감까지 생기더군요.”
“그 아이는…….”
무어라 말하려는 박보군보다 한발 먼저, 박성준이 말을 잇는다.
“반짝반짝 빛이 나는 아이였습니다. 마치, 젊은 시절의 꿈 많던 지영이의 모습을 다시 보는 것처럼…….”
“……!”
마침내, 박보군의 얼굴이 흉신악살처럼 완전히 일그러졌다.
결국 불안감이 현실이 되었다.
세상 물정 모르는 그 애송이 검사를 직접 만났다기에 설마 했더니, 완전히 빠져 버린 듯했다.
사실 처음만 하더라도 박보군 또한 도윤이 싫지만은 않았다.
아니, 박성준의 말대로 없던 호감까지 생겼던 것도 사실이다.
검사로서의 경력이 일천한 그.
고졸 출신 신임 검사라는 타이틀로, 대한민국의 정계와 재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을 때, 박보군 또한 얼마나 가슴 설레었던가.
무엇보다, 남자에게는 관심조차 없던 손녀까지 그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는 듯 보였기에, 그때의 박보군은 도윤이 참 마음에 들었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대통령 탄핵 기각과 야당의 사기극을 연이어 겪으며, 여당의 힘이 어느 때보다 강대해진 것이 현실이다.
자신의 말이라면 꼼짝을 못 하던 여당의 의원들이, 이제는 한낱 초선 의원조차 자신에게 콧방귀를 뀌어 대곤 했다.
여당의 일부 강경파 의원들은 평소 박보군을 탐탁지 않게 생각했다.
분명 임명권자인 대통령의 사람임에도 같은 편이나 다름없는 여당의 손을 들어 주지 않고, 철저하게 중립을 지켜 왔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언론인 출신인 만큼, 자신이 아니다 싶은 것은 설령 공식석상일지라도 대놓고 면박을 주곤 하였기에, 그 정도가 더했다.
이 모든 것이 견제 세력인 야당의 힘이 약해졌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일부 의원들뿐이지만, 특정 당의 독주체제가 장기간 지속되면, 이런 일 따위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문제들이 속속 터져 나오기 시작할 것이다.
아무리 옳은 권력일지라도, 견제받지 않는 권력은 썩기 마련이니까.
그래서, 지금껏 야당에서 터져 나오는 문제들을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필사적으로 막아 왔다.
견제 세력이 완전히 무너지게 되면, 다시 새롭게 쌓아 올리는 것은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는 것보다 더욱더 힘이 드니까.
하지만.
강도윤이라는 놈은 그런 자신을 한순간에 생각 없는 멍청이로 만들었다.
악순환의 반복이니 하는, 웃기지도 않는 말들로.
시간은 많이 있었다.
김문성이 저지른 일들을 그대로 덮어 두자는 뜻은 절대로 아니다.
굳이 약해질 대로 약해져 녹다운 상태인 야당의 심장에 칼까지 꽂아 넣을 필요는 없다는 뜻이다.
시간이 지나, 정국이 어느 정도 안정화 단계에 접어들면, 그때 비로소 일을 추진해도 충분하니까.
“영웅심에 심취한, 세상 물정 모르는 철부지 놈에게 반하기라도 한 것이냐? 죽은 니 아내 얘기까지 끄집어낼 줄은…….”
상념을 털어 낸 박보군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끝을 흐렸다.
입을 다문 채 침묵을 지키는 박성준을 보며, 박보군이 조용히 벗어 둔 외투를 손에 들었다.
“나는 더 이상 할 얘기가 없다. 김문성이 건. 덮어.”
“……”
“완전히 덮으라는 게 아니라는 거, 너도 잘 알고 있을 텐데? 때가 되면, 그때 세상에 알려도 충분해.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
“이건 우리 집안과 오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김문성이와 신뢰 문제이기도 해. 그놈도, 그걸 알기에 가장 먼저 우리에게 연락했던 것 아닌가? 단독보도라는 타이틀까지 걸고 말이야.”
“저는…….”
박성준이 무어라 말하려 하자, 박보군이 손을 들어 제지했다.
“니 얘기, 더 듣고 싶지 않아. 그래도 하고 싶다면, 어디 니 마음대로 해 봐. 나도, 내 나름대로 내 생각한 바를 시행할 테니…….”
“…….”
입을 꾸욱 다문 채, 몸을 작게 떠는 박성준을 보며, 박보군이 마지막 말을 이는다.
“생각 잘 하거라. 니가 나만큼이나 회사에 대한 애정과 욕심이 많다는 것. 누구보다 내가 잘 알아. 이번 선택에 따라,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것. 명심해.”
드르륵.
조용히 미닫이문을 연 박보군이 그대로 출입문을 빠져나갔다.
홀로 남게 된 방.
“…빌어먹을.”
박성준이 내뱉는 욕지거리가 조용히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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