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화 새로운 움직임
오춘화 회장의 지원 약속을 받아 낸 김문성은 곧바로 절을 떠났다.
산을 내려오자마자 차량에 몸을 실은 김문성이 운전석에 앉아 있는 수석 보좌관에게 말한다.
“밤에, 룸 하나 잡아. 항상 가는 그 집으로.”
“알겠습니다.”
“정 실장한테 특별히 신경 써 달라는 부탁도 잊지 말고.”
“대표님이 가신다고 하면,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A급 애들로만 준비해 놓을 겁니다.”
“그래…….”
김문성이 이내 창밖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주변 풍경들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고, 그 모습을 김문성이 멍하니 바라봤다.
“그런데… 혹시 누구를 만날 생각이십니까?”
“…응?”
순간 김문성이 고개를 갸웃했다.
수석 보좌관은, 다름 아닌 자신이 직접 뽑은 인재였다.
이미 곁에 둔 지도 20년이 다 되어 가기 때문에, 그 기간만큼이나 자신에 대한 충성도도 높은 인물이었다.
상관에 대한 배려는 더 말할 것도 없었고 말이다.
“뭐, 걸리는 거라도 있나?”
눈치 빠른 김문성이 창밖에서 시선을 돌리며 반문했다.
“…특별히 신경 쓰실 일은 아닙니다만… 전의 일로, 대표님께 기자들이 따라붙었습니다.”
“기자들?”
김문성이 슬쩍 미간을 찌푸렸다.
“대놓고 미행하는 기색은 보이지 않고 있지만, 집 주변이나 사무실, 국회 근처에는 살다시피 하고 있습니다. 혹여나, 그중에 따라붙는 사람이라도 생긴다면…….”
“음…….”
김문성이 작게 침음을 삼켰다.
“차라리, 재욱이 일을 미리 밝히시는 게 움직이는 데 제약이…….”
“그건 안 돼.”
김문성이 딱 잘라 말했다.
“지금은 아니야. 이제 곧 재욱이도 의식을 회복할 거다. 그때 얘기해도 늦지 않아. 나보다는, 그놈이 제 입으로 직접 얘기하는 편이 더 나을 테니까.”
말을 잇던 김문성이 재욱의 얼굴을 떠올리곤 씁쓸하게 미소 지었다.
그런 김문성의 얼굴을 잠시 뒤로 힐끗 바라본 수석 보좌관이 말한다.
“알겠습니다. 차는 도착하는 대로, 외부에 노출되지 않은 승용차로 바꿔 움직이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해.”
“손님은…….”
“그건 내가 직접 하지.”
말을 마친 김문성이 곧바로 품 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들었다.
몇 번의 신호음이 채 들려오기 전에, 수화기 너머로 중년 사내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아이고, 김 의원님! 아니, 이제 대표님이십니까? 하하하! 어쩐 일로 저한테 전화를 다 주셨습니까?”
“저희가 무슨 일이 있어야 통화를 하는 사이였습니까?”
“그건 절대 아니지요!”
휴대전화를 통해 들려오는 목소리에 김문성이 옅게 미소 지었다.
“혹시, 오늘 저녁에 약속 있으십니까? 없으시면, 저랑 저녁이라도 한 끼 하시지요.”
“전혀 없습니다. 혹시 있더라도, 대표님 저녁 약속이라면 다 취소해야지요.”
김문성의 미소가 한층 짙어졌다.
“그럼 저녁에 뵙겠습니다…….”
잠시 말끝을 흐리던 김문성이 마지막 말을 잇는다.
“…청장님.”
* * *
정치부 기자 사무실.
“알아봤습니까?”
지금 막 사무실로 들어오는 기자들을 향해, 배영준이 급히 물었다.
“그게… 쉽지가 않습니다. 김문성 대표의 아들이 정말로 병원에 입원한 사실은 확인되지만…….”
“뭐라고요? 그게 말이라고……!”
흥분한 배영준이 무어라 말하려고 할 때, 옆에 있던 기자가 한발 먼저 입을 열었다.
“아마, 조국일보 쪽에서 정보를 철저히 독점하려는 모양입니다.”
“…그건 무슨 소리예요?”
“일단 사실을 확인하려면, 김재욱 검사의 상태부터 확인하는 게 급선무인데, 눈으로 확인조차 할 수 없습니다. 담당 의사도 입을 꾸욱 다물고 있구요.”
“명분이 없다, 이 말입니까?”
배영준의 말에 기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병원 측에서 환자의 건강 악화를 문제 삼아 취재를 거부하면, 저희로서도 방법이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결국 담당 주치의를 통해 확인할 수밖에 없는데 말씀드렸다시피…….”
“젠장…….”
가만히 듣고 있던 배영준이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더 듣지 않아도, 어떤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지 머릿속에 그려졌기 때문이다.
“…조국일보 쪽에서 정보를 독점한다는 말은 뭡니까?”
“그게, 이걸 보시면…….”
배영준의 기세에 찔끔하여 고개를 숙이고 있던 다른 기자가 서류 가방에서 신문 한 부를 꺼내 조심스레 내밀었다.
그것을 건네받은 배영준이 안의 기사 내용을 채 확인하기도 전에 눈을 크게 떴다.
“이건……!”
더 볼 것도 없이, 메인 페이지만 봐도 무슨 얘기를 하는 것인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조국일보에서 나온 신문 메인 페이지에는, 산소 호흡기를 착용한 김재욱 검사가 침상에 누워 있는 모습이 큼지막하게 나와 있었다.
덧붙여, 생명에 지장이 있는 상황은 아니라 곧 의식을 회복할 거라는 설명까지…….
“저희도 이 기사를 보고 김재욱 검사가 실제 입원하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겁니다.”
“병원에서 이따위로 대놓고 독점보도권을 주고 있는데, 다른 대형 신문사에서 가만히 있는다구요!?”
기자가 제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한다.
“그게… 출입을 통제하기 전에, 저쪽에서 막무가내로 찍은 사진이라고…….”
“웃기지도 않는 변명을……!”
배영준이 기가 찬다는 표정으로 씨근거렸다.
잠시 무언가 생각하던 배영준이 의자에 걸쳐 둔 외투를 빠르게 손에 들었다.
“그 병원, 어디입니까?”
“차장님이 직접 가시게요?”
정치부 기자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반문했다.
“가야지요. 국민들이 눈에 불을 켜고 지켜보고 있는 사건 아닙니까?”
“그럼, 저희도 같이 가겠습니다.”
두 기자가 배영준을 급히 뒤따랐다.
“그래서, 병원 위치는요?”
“비단병원입니다. 여기서 택시로 가면 10분이면…….”
배영준이 우뚝 걸음을 멈췄다.
“…어디라고요?”
“비단병원. 옛 성명병원 말입니다.”
“……!”
배영준이 눈을 크게 떴다.
“왜 굳이…….”
배영준의 의문을 오해한 기자가 말한다.
“조국일보 박성준 회장과 한우리당 김문성 대표가 오랜 친구 사이라는 건, 차장님도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아마 그래서 김문성 대표와 은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명성그룹이…….”
“명성그룹은 성명병원, 아니. 비단병원의 최대주주가 아닙니다. 주인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래도… 명성의 지분은 꽤나 남아 있지 않겠습니까? 병원 고위 관계자들도 제법 알고 있을 테고…….”
“…….”
배영준이 입을 다문 채, 상념에 빠져들었다.
배영준은 여기 있는 기자들 중, 누구보다도 비단병원의 속사정에 대해 더 잘 안다고 자신한다.
비단병원은, 다른 누구도 아닌 그의 병원이었으니까.
하지만, 일반 사람들은 이 사실을 잘 알지 못한다.
병원은 일반 회사와 다르다.
사인(私人)이 사람의 생명을 가지고 돈 장난을 하는 것을 미리 방지하기 위해, 애초에 사인은 병원을 인수할 수 없도록 법적으로 막아 뒀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외부적으로는 호식의 KS그룹이 비단병원을 운영하고, 관리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KS그룹 산하에는, 회사 차원에서 관리하고 있는 수많은 그룹 의사들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누가 뭐라고 해도 비단병원의 실질적인 주인은 그다.
만약 비단병원 고위 관계자들과 명성그룹 간에 아직 어떠한 연결 고리가 남아 있다면, 그것은 극히 일부분일 것이다.
의사협회와 그의 약속.
전체 의사의 20퍼센트는, 협회의 추천을 받아 의사를 채용한다는 그 조항 때문이다.
그 조항으로 비단병원 내 파벌이 형성되었고, 협회와 친한 명성그룹과 모종의 대화가 오갔기에, 20퍼센트 모두 명성그룹 쪽 의사들이 채용된 것이라면 얘기가 된다.
협회 입장에서도, 굳이 외부의 새로운 의사들을 추천하는 것보다, 기존의 의사들 중 20퍼센트만 따로 추려 내어 병원에 유지시키는 편이 더 손쉽고, 자존심까지 지킬 수 있었으니까.
‘아마 병원 쪽 내부 사정은 신경도 쓰지 못하고 있겠지. 당 대표의 체포 건에만 정신이 팔려 있을 테니…….’
속으로 중얼거린 배영준이 이내 상념에서 빠져나왔다.
“두 사람은 지금 바로 비단병원으로 가서, 상황을 지켜보세요.”
“예? 하지만 병원에서 기자들을…….”
배영준이 작게 고개를 저었다.
“김재욱 검사가 입원한 병동으로 찾아가라는 말이 아닙니다.”
“그럼…….”
“모든 환자들에게 개방된 병원 로비. 그곳부터 시작해서 병원 분위기를 한번 파악해 보세요. 단, 기자라는 것은 티내지 말구요.”
“병원 분위기라면, 어떤…….”
최초, 배영준에게 찔끔했던 소심한 기자가 조심스럽게 말끝을 흐렸다.
그 기자를 힐끗 바라본 배영준이 말을 잇는다.
“아마 병원 내 의사들 간에, 파벌이 형성되어 있을 겁니다.”
“네? 파벌요?”
기자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반문했다.
“아마 병원 내 직원들끼리 나누는 대화나 행동만 조금 지켜봐도, 곧바로 티가 날 겁니다.”
‘내 예상대로의 두 파벌이 형성된 것이라면…….’
뒷말은 속으로 삼킨 배영준이 두 기자를 바라본다.
“지금 바로 움직이세요. 기자는 시간이 생명이라는 것, 잊지 마시구요.”
“알겠습니다, 차장님!”
힘차게 대답한 두 기자가 빠르게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한차례 한숨을 내쉰 배영준도 이내 휴대전화를 꺼내 들었다.
배영준이 잠시 손에 쥔 휴대전화를 조작하자, 곧바로 누군가에게 통화가 연결되기 시작한다.
밝게 빛나는 휴대전화 화면에는, ‘강도윤 검사’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아로새겨져 있었다.
* * *
“이렇게 빨리 연락 주실 줄은 몰랐습니다, 회장님.”
커피숍 한구석에 자리를 잡고 있던 도윤이 지금 막 출입문을 통해 이쪽으로 걸어오는 중년 사내를 발견하고는 옅게 미소 지었다.
박보윤 검사의 아버지이자, 박보군 국무총리의 아들이기도 한 조국일보의 박성준 회장.
만난 지 단 하루 만에, 제안에 대한 답변을 주겠다며 그가 직접 찾아왔던 것이다.
“내가 늦은 건 아닌가 모르겠군.”
“저도 지금 막 도착했습니다.”
박성준이 내민 손을 도윤이 맞잡으며 대답했다.
“한 가지 물어보겠네. 자네… 최근에 총리님을 만났던가?”
갑작스러운 박성준의 물음에 잠시 멈칫한 도윤이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예. 얼마 전에, 박보윤 검사와 함께 식사를 했었습니다. 김문성 대표 수사와 관련해서 드릴 말씀이 있었기에, 제가 먼저 만남을 부탁을 드렸던 거구요.”
“음…….”
박성준이 역시나 하는 표정으로 침음을 삼켰다.
“아마도 그 얘기… 김문성 대표 구속과 관련된 것이겠지? 사건 담당 검사인 자네가 총리님을 뵙고자 했다면…….”
“…맞습니다.”
“하나만 더 묻겠네. 만약 김문성 대표를 구속시킴으로써, 후에 들이닥칠 후폭풍을 자네는, 어떻게 감당할 생각인가?”
박성준이 도윤의 두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
그런 박성준의 두 눈을 마주 바라보며, 도윤이 흔들리지 않는 눈빛으로 대답한다.
“무얼 우려하시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저는 그저, 더 이상 억울한 국민들이 생기지 않는, 건강한 정치문화를 만들고 싶습니다.”
“건강한 정치문화……?”
“정계와 재계의 고질적인 유착 관계를 끊어 내고, 정치인들이 진정으로 국민들의 눈치를 보도록 만들 겁니다.”
“…….”
“김문성 대표는 그 시작일 뿐입니다. 만약, 이 틈을 이용하여 자신의 사리사욕을 챙기려는 또 다른 정치인들이 생겨난다면…….”
잠시 말끝을 흐리던 도윤이 차갑게 눈을 빛내며 마지막 말을 잇는다.
“제가… 모두 잡아넣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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